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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몸으로 황제 폐하를 꼬드겨내신 건가요? (48/151)

48. 몸으로 황제 폐하를 꼬드겨내신 건가요?2021.06.17.

내 말에 약이 올랐는지 아이샤의 사랑스러운 가면에 금이 갔다. 잠시 뒤, 가까스로 표정을 정돈한 그녀가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16549682759742.jpg‘아이, 황후 폐하도 참. 빈말이라니요, 제가 폐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16549682759751.jpg‘그래? 나는 너 별로 안 좋아하니까 헛고생은 그만하고 이만 가보렴.’

16549682759742.jpg‘폐하, 그러지 마시고요……. 저,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만 가르쳐 주세요.’

  정말 귀찮았지만 아무래도 이대로는 그냥 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16549682759751.jpg‘뭘 말이니?’

16549682759742.jpg‘최근 알렉산드로스 폐하와 사이가 많이 좋아지신 듯하던데…… 무슨 방법을 쓰신 거예요? 비법이 너무 궁금해요.’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결국 그거였다. 알렉산드로스에게 냉대당하던 내가 대체 무슨 수를 써서 그를 유혹했냐, 아이샤는 그것이 궁금해 이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아이샤는 순진무구한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16549682759742.jpg‘저, 신문을 읽었는데……. 황후 폐하는 어른이시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역시 어린애 같은 저랑 달리 요염하시구나, 라고요.’

  기자회견에서 알렉산드로스는 나와 대량의 성인용품들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아이샤는 그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리라. 소박한 자리 같아 보이지만 황후와 황비의 만남이니만큼 주변에는 그들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16549682759777.jpg‘어머…….’

16549682759777.jpg‘저런 이야기를…….’

  궁인들은 얼굴을 붉히며 수군거렸다. 그런 와중 주변의 눈치 한 번 보지 않고, 아이샤는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16549682759742.jpg‘그러니 역시 황후 폐하께서는 어른의 방법으로 황제 폐하와 사이가 좋아지신 건가요?’

  순진한 척 물었지만 결국 아이샤의 말은 그거였다. 알렉산드로스를 몸으로 유혹했냐는 것. 제국에서 숙녀들은 정숙하기를 요구받았다. 아이샤는 그 점을 이용해서, 내가 남자를 유혹하는 음란한 여자라는 사실을 주변에 각인시키고 대조적으로 자신의 순수함과 순결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속이 빤히 보이는 의도를 모를 내가 아니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내가 수치스러워하거나 주변의 눈치를 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아이샤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16549682759742.jpg‘왜, 왜 웃으세요?’

16549682759751.jpg‘네 빤히 보이는 속이 웃겨서. 어쩜 이렇게 유리구슬처럼 투명할까? 넌 결코 좋은 사교가는 못 되겠구나, 아이샤.’

  갑작스러운 모욕에 놀란 아이샤가 입을 벌렸다.  

16549682759742.jpg‘속이…… 빤히 보인다고요?’

16549682759751.jpg‘그래. 아이샤, 내가 처음 황제 폐하께 이혼을 요구하러 갔을 때 너는 분명 나에게 그렇게 말했지. 「황제 폐하의 침소에 가려다가 집무실로 왔다」고. 마치 황제 폐하와 밤을 함께 하는 사이인 걸 나에게 자랑하려는 듯이 말이야.’

  내 말에 아이샤의 얼굴이 천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16549682759742.jpg‘제,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러세요…….’

16549682759751.jpg‘분명 그랬어. 게다가, 나뿐만 아니라 귀부인들에게도 황제 폐하와 뜨거운 밤을 보낸 것처럼 꾸며 자랑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런데 그런 네가 이제 와서 순수한 척을 하는 거니?’

16549682759742.jpg‘……!’

  아이샤는 기겁해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무수한 궁인들의 관심이 이곳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듣지 않는 척, 관심 없는 척 입을 다물고 눈을 돌리고 있었지만, 사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주의 깊게 듣고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황궁에서 일하면서 이렇게나 흥미롭고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만날 일은 흔치 않을 테니까. 나는 쿡쿡 웃다가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16549682759751.jpg‘게다가 어른의 방식이라니. 꼭 너는 어린아이라도 되는 듯이 이야기하는데, 성국 측에서 보내온 자료를 따르면 너는 이전의 세계 기준으로도, 이곳의 기준으로도 성인이지 않니? 나이는 먹을 만큼 먹어놓고 귀여운 어린아이를 가장하는 모습이 참으로 꼴불견이로구나.’

16549682759742.jpg‘꼬, 꼴불……!’

16549682759751.jpg‘아직도 할 말이 남은 거니? 그럼 하나만 묻자. 그래서 너, 방금 네가 네 입으로 말한 대로 황제 폐하와 밤을 보낸 적이 없는 거니? 아니면 나와 귀부인들에게 자랑한 대로 밤을 보낸 적이 있는 거니? 한 번 확실히 말해보렴. 어차피 그 답은 황제 폐하께도 들을 수 있을 테니 속일 생각은 하지 말고.’

  물론 이미 알렉산드로스에게 들어서 그가 아이샤와 밤을 보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지만,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아이샤에게 물었다. 그러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16549682759742.jpg‘그, 그건……! 아……!’

  모순을 지적당하자 아이샤의 얼굴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결국 그녀가 가까스로 내어놓은 대답은 이것이었다.  

16549682759742.jpg‘그…… 그건…… 시, 실례예요. 그렇게 사적인 일에 대해 물으시다니……!’

16549682759751.jpg‘그래? 근데 그런 사적인 일에 대해 먼저 물어봤던 건 누구시더라?’

  케이오. 이제 아이샤가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녀는 내게 완전히 패배하고 만 것이다. 그 사실을 나와 아이샤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들이 눈치챈 것 같았다. 궁인들은 서로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시선을 교환했다. 간혹 킥킥거리며 소리죽여 웃는 사람마저 있었다. 결국 내 이미지를 깎아내리려다가 자신의 이미지만 완전히 망치고 만 아이샤는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응접실을 뛰쳐나갔다.

16549682759751.jpg‘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나는 생각했다.

16549682759751.jpg‘아이샤는 분명 내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어. 분명 잃어버린 자신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였겠지.’

그때는 내 말주변에 완전히 휘말려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갔지만, 아이샤가 그 정도로 물러설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16549682759751.jpg‘그래, 물증은 없지만 심증으로는 아이샤가 의심스러워.’

사실 여태까지 나는 아이샤를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귀찮은 시비를 걸긴 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그런 시비가 나에게 의미 있는 타격을 준 적도 없었기에 나는 아이샤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16549682759751.jpg‘이렇게 스케일이 큰 여론전을 시작한다면야 얘기가 달라지지.’

여태까지 나는 아이샤가 원작과 달리 날 견제하는 이유가 그저 어린애의 시기심 같은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론전까지 시도할 정도라면 그것은 그저 어린애의 치기 따위가 아니었다. 아이샤가 제법 지능적으로 내게 위해를 끼치려는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16549682759751.jpg‘물론 아이샤가 내 이미지를 깎아 먹는 여론전을 펼쳐봤자 이혼을 원하는 내 입장에서는 좋을 뿐이지만, 문제는 아이샤가 내게 이미지 이상의 위해를 가하려고 할 때야.’

물론 아무리 재수 없고 머리가 비었어도 아이샤는 로판의 여주인공이었다. 세상 그 어떤 여주인공이 조연 따위를 견제한답시고 평판에 영향을 주는 것 이상의 해를 끼치는 음모를 꾸미겠냐만…….

16549682759751.jpg‘그렇게 치면 아이샤가 나를 견제할 때부터 이미 이상했으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작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이 대체 왜 저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랜 사회생활 경험으로 인해 나는 알고 있었다. 보잘것없는 열등감이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타락시키는지. 세상에서 제일 순하고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인 이상 예외는 없었다.

16549682759751.jpg‘아무래도 앞으로 몸을 조심하고, 아이샤를 주의 깊게 지켜보는 것이 좋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내 눈이 한순간 날카로워졌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곰곰이 고민하다가, 결국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16549682759751.jpg“골치 아픈 것은 진짜로 싫지만…… 어쩔 수 없지. 어휴, 난 그저 지방의 소도시에 저택 하나 사서 정원을 가꾸고 개와 고양이를 키우며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인데 평화롭게 사는 게 이렇게나 힘들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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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편, 아이샤는 로벨리아에 대한 여론을 나쁘게 만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16549682759742.jpg‘단순히 로벨리아의 인식을 깎아내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무엇보다 내 인식을 상대적으로 끌어올리고, 「황비야말로 국모의 자리에 어울린다.」라는 여론을 조성해야만 하니까.’

살롱의 실패, 그 후 연이은 패배가 이어져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는 판도를 뒤집을 것이 필요했다. 아이샤는 보여주고 싶었다. 여전히 자신은 건재하다는 것을. 그간 자신을 비웃고 조롱했던 사람들과 언론에 말이다. 그러기 위해 아이샤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16549682759777.jpg“황비 전하, 오늘도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16549682759777.jpg“황비 전하, 부족한 저희 부부를 이런 귀한 자리에 초청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이샤가 원하는 대로 그녀의 대규모 티파티의 좌석은 한 자리도 남김없이 채워졌다. 최근 몇 번의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눈치를 보고 그녀의 호의를 입어보고자 노력하는 자들이 이렇게나 많은 것이다. 아이샤는 파티장 안을 둘러보며 그 사실에 만족감을 느꼈다. 이번 파티의 참가자는 약 이백여 명. 물론 그녀에게 호의적인 인사만으로 구성한 인원이다. 아이샤의 유능한 시녀들이 준비한 티파티는 물 흐르듯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각 손님이 이름표가 꽂혀 있는 자리에 안내되고, 궁인들의 극진한 보필을 받았으며, 향 좋은 홍차와 맛 좋은 티푸드가 제공됐다. 파티를 위한 인테리어 역시 아름답고 운치 있기 그지없었다. 다만 딱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 보통 이런 자리에는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한 연주를 하는 관현악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티파티에는 연주자들이 없었다. 다만 홀 한복판 눈에 띄는 자리에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아이샤는 홀 중앙으로 나섰다. 모든 손님의 시선이 모이자 그녀가 말했다.

16549682759742.jpg“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제가 여러분을 위한 연주를 준비했습니다. 전문 연주가에 비하면 많이 모자란 실력이지만 부디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파티는 자신의 명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아이샤는 이 파티 내내 자신이 제일 주목받도록 철저한 계획을 짜두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계획이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이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

16549682759777.jpg“오오! 황비 전하의 연주라니.”

16549682759777.jpg“정말 기대되는걸요.”

아이샤는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이 깜짝 퍼포먼스를 위해 드레스도 일부러 멀리서 볼 때 더 아름다운 디자인을 고르기까지 했다. 아이샤는 피아노 건반 위로 두 손을 올렸다. 가늘고 하얀 손가락은 피아노의 희고 검은 건반과 무척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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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손끝에서, 높고 낮은음이 뒤얽혀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맑고 청명한 선율이 홀을 울렸다.

16549682759777.jpg“어머나, 어쩜. 황비 전하께서 이렇게 피아노를 잘 치시는지 몰랐어요.”

16549682759777.jpg“역시 숙녀의 교양으로는 피아노가 잘 어울려요. 저희 딸도 재작년부터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죠.”

16549682759742.jpg‘다른 일과 달리 피아노는 자신이 있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아이샤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16549682759742.jpg‘아주 어릴 적부터 배웠으니까. 몇 달 정도 쉬었어도 여전히 손끝에 감각이 남아 있어.’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안전책이었다. 살롱처럼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 아니라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해보았기에 익숙한 일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피아노 연주회는 이세계 발표회나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일과 달리, 너무 흔했다. 제국의 귀족 소녀들은 어릴 적부터 교양으로 악기를 하나씩 배우곤 하니까. 귀족 여인이 개인적인 연주회를 여는 것도 전혀 보기 드문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16549682759742.jpg‘그래,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어. 이런 쉽고 익숙한 일부터 차근차근 시작해나가면 돼.’

그렇게 생각한 아이샤는 자신의 연주를 음미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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