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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황후 폐하만을 평생을 바쳐 따르겠습니다 (37/151)

37. 황후 폐하만을 평생을 바쳐 따르겠습니다2021.05.09.

짧은 연설이었으나, 나는 연설에서 내용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말하는 사람의 태도였다.

1654968033858.jpg‘이 말을 하는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단호하게 보여야만 해.’

떨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원래 표정을 숨기는 일에 익숙하기도 했고, 시녀들이 해준 찐한 화장이 긴장을 숨기는 데 도움이 됐다.

1654968033858.jpg‘전생에 수도 없이 했던 프레젠테이션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되는군.’

나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내 의도가 잘 먹힌 모양인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동요하는 것이 보였다.

1654968033858.jpg‘이 정도면 제대로 기선이 제압된 듯하니, 충분하겠지.’

바냐가 괴롭힘당하는 모습을 보고 끼어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궁인들에게 단단히 경고를 하는 일은 의도한 것이었다. 나는 궁인들이 노예들을 따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 내 황후로서의 권위를 이용했다.

1654968033858.jpg‘노예제는 반인륜적이라거나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거나 하는 정론을 말한다고 그들이 알아들을 리가 없으니까. 제국인들에게는 이런 말이 더욱 와닿고 이해하기 쉽겠지.’

또 내 악녀 캐릭터에도 더 어울릴 테고 말이다. 궁인들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벌벌 떠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흘끗 경고의 시선을 주곤, 몸을 돌렸다.

1654968033858.jpg“가지.”

볼일은 끝났으니, 이만 침실로 돌아가 볼 생각이었다. 시녀들이 내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때였다.

16549680338603.jpg“저, 저기……. 폐하. 폐하!”

가녀린 목소리가 자리를 뜨려던 내 발길을 붙잡았다. 돌아보니 침방 하녀인 바냐였다. 얼마나 허겁지겁 날 쫓아왔는지 흐트러진 머리에 밭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1654968033858.jpg“무슨 일이니?”

16549680338603.jpg“저, 다름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읍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저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폐하.”

그 진심 어린 감사 인사에 나는 꽤 머쓱해졌다. 그녀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고, 그저 내가 발끈해서 끼어든 것 뿐이었으니.

1654968033858.jpg“내가 끼어든 것은 널 도와주고자 한 것이 아니라 건방진 아이들을 혼내주기 위함이었단다. 그러니 감사 인사는 그만두거라.”

그녀가 너무 감사해하지 않길 바라며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본 모양이었다. 내 말에 바냐의 큰 눈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코와 눈가가 붉어지는 것이 아닌가?

16549680338603.jpg“제가 부담을 느낄까 봐 걱정까지 해주시다니……. 정말 폐하의 배려심은 하해와 같으세요.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존경하고 있어요.”

1654968033858.jpg‘이게 아닌데.’

상대의 예상 밖의 반응에 진심으로 당황한 나는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해버렸다.

1654968033858.jpg“아니……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정말로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란다, 바냐.”

말을 꺼낼 때만 해도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지 못했던 나는, 바냐가 숨을 멈추고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녀는 어찌나 놀랐는지 숨을 헐떡이다 크게 삼키곤 이렇게 물었다.

16549680338603.jpg“설마…… 제 이름을 알고 계셨나요?”

사실 대단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내 수하의 인물들 – 즉 시녀들, 황후궁 담당 궁인들, 호위기사들까지 전부 알고 있었으니까. 전생의 직업병 때문에 인력명단을 몇 번 읽었을 뿐인데 이름을 전부 외우고 만 것이다.

1654968033858.jpg‘게다가 바냐는 경매에서 제일 먼저 본 노예이기도 했고.’

하지만 바냐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16549680338603.jpg“한낱 노예일 뿐인 저의 이름까지 외우고 기억해주시다니……. 정말 이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별것 아닌 몸이지만, 오직 폐하만을 평생을 바쳐 따르겠습니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서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거의 울려고 하고 있었다. 큰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코를 훌쩍이며, 간간히 매여오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런 바냐의 모습을 본 내 머릿속에는 경보 신호가 징징 울리고 있었다.

1654968033858.jpg‘그럼 안 돼! 난 너희들을 1년만 데리고 있다가 독립시켜줄 생각이라고!’

아무래도 상황의 첫 단추부터가 잘못 꿰인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녀의 감동과 나에 대한 호의를 깨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1654968033858.jpg‘그렇다고 방금 괴롭힘당하던 아이한테 갑자기 욕을 할 수도 없고. 얘가 알렉산드로스나 아이샤도 아닌데…….’

결국 나는 당황하던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황급히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16549680338603.jpg“앗, 폐하!”

16549680338603.jpg“폐하, 같이 가요!”

바냐의 아쉬운 듯한 목소리와, 내 시녀들이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화끈거리는 얼굴에 저녁의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 생각했다.

1654968033858.jpg‘이런 상황에서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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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일럽을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16549680395939.jpg“황후 폐하께서 저희의 근무지를 옮기신다고요?”

로벨리아의 시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49680338603.jpg“네. 반드시 그러신다고는 하지 않았지만요.”

시녀의 말에 케일럽은 드물게도 초조한 얼굴을 했다. 그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16549680395939.jpg‘궁인들이 따돌릴까 봐 노예들의 근무지를 먼 곳으로 옮기시겠다니……. 노예들 따위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던 케일럽의 입꼬리가 한순간 슬며시 올라갔다.

16549680395939.jpg‘뭐, 그런 다정함이 폐하다워 좋긴 하지만.’

하지만 그는 곧 다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16549680395939.jpg‘그래도 폐하의 곁을 떠나 먼 곳으로 가는 것만큼은 절대 안 돼. 정말로 폐하께서 우리를 먼 곳으로 보내실 생각이라면 급히 대책을 강구해야만 해.’

그렇게 생각한 케일럽은 더없이 선량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16549680395939.jpg“그거 정말 슬프네요. 저는 이곳, 폐하의 곁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먼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아요. 이레네 씨, 혹시 괜찮으시다면 폐하를 설득해주시겠어요? 폐하께 노예들을 멀리 보내지 말라고 말씀드려주시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케일럽의 햇살처럼 아름다운 미소에 시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빙글빙글 돌았다.

16549680338603.jpg“무, 물론이죠. 이미 그렇게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진지하게 말씀드리도록 해볼게요.”

16549680395939.jpg“정말 감사해요.”

케일럽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자, 시녀는 입술을 깨물며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16549680338603.jpg“저…… 케일럽. 괘, 괜찮다면 이걸 받아주시겠어요?”

16549680395939.jpg“네? 어떤 것을요?”

케일럽의 눈앞에 무언가가 드밀어졌다. 자세히 보자, 그것이 손수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손으로 직접 수를 놓은. 오랜 경력을 가진 공예가가 놓은 듯이 아름다운 모양새로 그의 이름이 수 놓여 있었다.

16549680338603.jpg“이거…… 케일럽을 생각하면서 한 땀 한 땀 열심히 놓은 거예요.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부디 받아주시면 좋겠어요.”

이 선물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황후가 직접 노예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말라고 말한 바 있긴 하지만, 케일럽은 노예인 데다가 다리도 절었다. 더군다나 황후의 시녀는 귀족이니, 그가 아무리 아름답게 생겼다고 한들 꽤 이례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케일럽의 눈에는 조금도 감명받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얼어붙을 정도로 냉랭한 빛이 한순간 그의 갈색 눈동자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한순간 뿐이었다. 케일럽은 금방 다정한 얼굴을 되찾고는 말했다.

16549680395939.jpg“아아……. 성의는 정말 감사해요, 이레네 씨. 하지만 전 이걸 받을 수가 없어요. 저는 평생을 황후 폐하께 충성하기로 한 몸이어서요.”

16549680338603.jpg“네? 하, 하지만…….”

16549680395939.jpg“아시죠? 이레네 씨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게 이런 건 너무 과분하니 사양할게요.”

16549680338603.jpg“전 다른 거 바라는 거 없어요, 케일럽. 그저 손수건 한 장 받아주셨으면 하는 것뿐인걸요.”

시녀가 간절하게 말했지만 케일럽의 다정한 가면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웃는 얼굴로 시녀가 내미는 손수건을 밀어냈다.

16549680395939.jpg“정말 죄송해요.”

16549680338603.jpg“케일럽, 제발요! 그저 받기만 해주세요. 다른 건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게요. 저는 그저……. 앗!”

실랑이 중 시녀는 손수건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케일럽은 다리가 불편해서 일어난 실수인 듯 발을 헛디뎌 그것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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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680395939.jpg“아…… 이럴 수가. 열심히 만드신 작품을 더럽히고 말았네요. 죄송해요. 그럼 전 이만……. 좋은 하루 되세요.”

케일럽은 멍해진 상대에게 발자국이 크게 남은 손수건을 억지로 넘겨주었다. 그리고 다리를 저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 자리를 떴다.

16549680395939.jpg‘노예 전원의 근무지를 옮긴 다라……. 사실 나 말고 다른 노예들 전원이 경쟁자이니 신뢰하지는 않지만, 이번 일 만큼은 그들과 협력하는 수밖에 없겠어.’

이레네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얼굴로 케일럽은 그렇게 생각했다.

16549680395939.jpg‘황후 폐하는 약자에게 더없이 약하신 분이니까 말이야. 분명 그들이 도움이 되겠지.’

  *** 로벨리아는 아침 식사를 하는 도중에 시녀로부터 간절한 부탁을 받았다.

1654968033858.jpg“노예들의 근무지를 옮기지 말아 달라고?”

16549680338603.jpg“네, 다들 황후 폐하의 곁에서 일하고 싶어 해요. 게다가 새 근무지에 적응하게 만들고 일을 가르치는 것도 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로벨리아는 양파 수프에 크루아상을 찍어 우물거리며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1654968033858.jpg“그건 궁인들이 내 명령에 얼마나 잘 따라줄지에 달렸단다, 이레네. 만약 궁인들이 노예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따돌린다면 아무리 많은 노력이 든다고 해도 그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지.”

16549680338603.jpg“하, 하지만……. 그들도 그걸 바라는걸요. 폐하의 곁에서 일하는 것을…….”

1654968033858.jpg“흐음, 너 저번에도 이 얘기를 했지. 그렇게나 노예들을 다른 곳에 보내기 싫어하는 것을 보니 노예들 중 누군가랑 친해졌나 보구나?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니?”

로벨리아의 정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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