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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노예를 폐하의 침실로 보낼까요? (31/151)

31. 노예를 폐하의 침실로 보낼까요?2021.04.18.

로버트의 말대로였다. 로벨리아는 그저 라만차 거리에서 돈을 썼으며 노예를 구매했다는 악명을 위해 그들을 사들인 것이지만, 노예들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경매 사회자가 그들에 대해 ‘경매 역사상 역대급의 품질’이라고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모두가 제각기 자신의 특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자수와 바느질, 검술, 빨래, 요리, 도예, 악기 연주……. 단지 그것뿐이었으면 그들이 그렇게까지 눈에 띄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누구보다도 강한 ‘의지’가 있었다.

16549679056279.jpg“황후 폐하는 우리를 구제한 은인이셔.”

16549679056279.jpg“맞아. 우리처럼 젊은 여자 노예는 거의 부자들의 밤 시중을 들게 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황실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떳떳한 일을 할 수 있게 되다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16549679056279.jpg“황후 폐하께 이 은혜를 갚으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16549679056279.jpg“그런데 그 소식 들었어? 이곳 황실에서는 황비가 훨씬 더 유망하고 인기가 있대. 모두가 황비만을 좋아하고 황후 폐하는 무시하고 홀대한다지 뭐야.”

16549679056279.jpg“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아무도 황후 폐하를 무시할 수 없도록 하자.”

16549679056279.jpg“좋아. 황후 폐하의 안목을 증명해내고 말겠어.”

모든 노예들은 로벨리아에 대한 감사를 사무치게 느끼고 있었고, 그녀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 게다가 로벨리아가 궁내부 업무를 맡긴 전문가들은 워낙 일을 잘했기 때문에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놓아 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했다. 곧 로벨리아의 구역은 모든 곳이 빛이 날 듯 청결해졌으며, 그 흔한 잡초 한 포기, 벌레 한 마리 볼 수 없었고, 어디서나 좋은 향기와 선율이 흘러나왔다. 더군다나 노예들은 정해진 구역의 일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로벨리아의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황궁 이곳저곳의 일을 도맡아서 했다. 이 새로운 하인, 하녀들에 대한 소문은 곧 모든 궁인들 사이에 퍼졌다.

16549679056279.jpg“황후 폐하께서 새로 데려오신 하인, 하녀들에 대해 들었어?”

16549679056279.jpg“모두가 엄청나게 일을 잘하고, 심지어 자기 구역이 아닌데도 나서서 돕기까지 한다며?”

16549679056279.jpg“게다가 다들 예쁘고 잘생겼더라고!”

16549679056279.jpg“황후 폐하께서는 어디서 그런 훌륭한 인재들을 데려오신 걸까?”

알렉산드로스의 작업으로 인해 궁인들은 그들이 노예인 줄은 모르고, 어디선가 고용해온 일반 평민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일이 편해지니 궁인들은 황후의 뛰어난 안목과 인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16549679056279.jpg“황후 폐하께서는 정말 대단하셔. 당신만 일을 잘하실 뿐만 아니라 다른 일 잘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많이 알고 계시다니.”

16549679056279.jpg“원래 좋은 사람 곁엔 좋은 사람이 따르기 마련이잖아. 황후 폐하의 곁에 이렇게 유능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황후 폐하도 분명 그렇게 따를만한 매력이 있는 거야.”

16549679056279.jpg“멋지다. 황후 폐하와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어.”

16549679056279.jpg“나는 눈길 한 번이라도 받아봤으면…….”

그래서 로벨리아는 정작 본인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궁인들의 신뢰와 찬양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16549679056279.jpg“황후 폐하는 정말 훌륭한 분이셔.”

16549679056279.jpg“그런 분이 우리의 황후 폐하라서 다행이야.”

16549679056279.jpg“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황후 폐하로 지내주셨으면!”

물론 로벨리아 본인은 이러한 일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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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데려온 노예들이 노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16549679070614.jpg‘이러니저러니 해도 황궁에서 1년 동안 지내야 하는데, 노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궁인들에게 따돌림당할지도 모르니까. 그 사실만큼은 숨기는 것이 좋겠지.’

그래서 케일럽을 비롯한 하인, 하녀들이 노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 측근 중에는 시녀들과 시종장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다른 노예들과 달리 케일럽을 유독 가까이 두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노예들을 사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시종장이 내게 이렇게 물어왔던 것이다.

16549679056279.jpg“황후 폐하, 귀애하시는 케일럽이라는 노예를 깨끗하게 씻기고 비단옷을 입혀서 폐하의 침실로 보낼까요?”

16549679070614.jpg“큽!”

그 충격적인 발언에 나는 마시던 홍차를 뿜을 뻔했다.

16549679070614.jpg“침실로 보내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케일럽을 그런 의도로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16549679056279.jpg“네? 그, 그렇다면……. 대체 어떤 이유이신지?”

시종장은 오히려 자기가 더 놀라운 소리를 들었다는 듯 크게 놀랐다.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이런 오해를 받은 것이 민망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16549679070614.jpg‘그래, 젊고 외모가 뛰어난 노예들은 대개 밤 시중을 들게 된다고 하고, 내가 케일럽을 유난히 가까이 한 것도 사실이니 시종장이 그런 오해를 할 만도 해.’

게다가 제국에서 기혼자가 정부를 두는 건 흔한 일이니 시종장이 이런 오해를 한 게 잘못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16549679070614.jpg‘하지만……. 케일럽은 어린애라고!’

물론 제국은 대한민국과 다르다. 미성년자 보호에 대한 인식이 낮아서, 나이가 어린 아이들도 노동을 하거나 결혼을 하는 일이 흔했다. 그래도 나는 정신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온 사람이었기에 케일럽 같은 미성년자를 도저히 그런 눈으로 볼 수가 없었다. 나는 한결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16549679070614.jpg“내가 케일럽을 데리고 있는 까닭은 나이가 어린 그를 보호하고 교육하기 위함일 뿐이다. 그리고 케일럽은……. 아니, 내가 구매한 모든 노예들은 밤 시중 용이 아니야. 다시 그런 무례한 질문을 했다간 경을 칠 테니 조심하도록 해.”

16549679056279.jpg“예, 예. 진심으로 송구합니다.”

진심으로 악녀로 보이고 싶은 나였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지, 노예를 밤 시중 용으로 썼다는 오해는 받고 싶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평판 역시 걸린 문제기도 하고 말이다. 하여간에 나는 이러한 얘기가 케일럽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 순진하디 순진한 어린애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라고 상처를 받겠는가? 그러나…… 내 걱정 어린 소원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

16549679085119.jpg“부르셨습니까? 폐하.”

16549679070614.jpg“그래, 케일럽.”

내 침실에 케일럽이 들어왔다. 나는 읽던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16549679070614.jpg“마법 공부는 잘 하고 있니?”

16549679085119.jpg“예, 덕분에……. 오, 오늘은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습니다. 이 나이에 3서클의 마법을 쓰는 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케일럽은 스승에게 들은 칭찬을 자랑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는 듯했던 그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가 끝에는 꽤 자랑스러운 어조가 섞여 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16549679070614.jpg“그래, 그거 잘됐네.”

16549679085119.jpg“혹시……. 다음 수업에 직접 보러 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선생님께서도 폐하의 참관은 언제든지 환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많이 바쁘시겠지만, 직접 와주신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16549679070614.jpg“으음, 한 번 생각해볼게.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바쁘잖니.”

실제로 그랬다. 지금 읽고 있는 추리소설이 너무 재밌었던 탓이다. 정말 끝내주게 짜릿하고 스릴 있는 사건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가득한 책이었는데, 총 17권이나 됐기에 나는 며칠 동안 책을 읽는 데만 매달려 있었다. 사실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겨우 사나흘 정도 케일럽에게 신경을 좀 덜 써주었을 뿐인데, 그가 그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줄은……. 케일럽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16549679085119.jpg“저어, 폐하.”

16549679070614.jpg“응?”

16549679085119.jpg“저, 궁인들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젊은 노예들은 흔히…… 높으신 분들의 밤 시중을 들곤 한다고요.”

16549679070614.jpg“뭐?”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책을 접어버리고 케일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케일럽은 수줍은 듯 두 뺨에 홍조를 띄우고 미소지었다.

16549679085119.jpg“이제야 절 봐주시는군요.”

16549679070614.jpg“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니, 케일럽? 밤 시중이라니.”

16549679085119.jpg“저어……. 아무리 생각해도 폐하께서 제게 해주시는 것에 비해, 제가 폐하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적은 것 같아서요.”

케일럽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의 갈색 눈망울은 마치 사슴처럼 크고 맑았다. 그의 눈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붉었으며, 입술은 조금 벌어져 있었다.

16549679085119.jpg“그러니, 폐하……. 폐하께서 절 이런 의도로 데려온 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렇지만…….”

케일럽은 어느샌가 나에게 바짝 다가와 내 머리를 천천히 끌어안았다. 어린애라고는 해도 나보다 키와 덩치가 큰 그는 나를 완전히 감싸 안았다.

16549679085119.jpg“제가 이렇게라도 폐하께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그의 울망거리는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분홍색 입술은 느리게, 하지만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갈색 속눈썹이 나비처럼 팔랑이며 내려앉고, 그의 입술이 위험할 정도로 가까워진 그 순간…….

16549679070614.jpg“안 돼!!!”

나는 있는 힘껏 소리 지르며 그를 밀쳤다. 우당탕탕! 분명 민 건 내 쪽인데, 그의 단단한 몸 대신 내가 넘어졌다.

16549679085119.jpg“폐, 폐하!”

16549679114296.jpg“무슨 일이십니까?”

내 비명에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위기사들과 시녀들이 뛰쳐 들어왔다.

16549679070614.jpg“으악, 내 눈! 못 볼 걸 봤어! 누가 물 가져와, 물!”

16549679056279.jpg“예, 물이요?”

시녀들이 황급히 물 주전자와 세숫대야를 들고 왔다. 나는 황급히 그 물로 눈을 씻었다.

16549679056279.jpg“폐하, 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16549679056279.jpg“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한 차례 세수를 한 뒤에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시녀가 건네주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16549679070614.jpg“내가 케일럽한테 할 말이 있으니 모두 나가보거라.”

16549679056279.jpg“하, 하지만…….”

16549679070614.jpg“어서!”

결국 기사와 시녀들은 다시 복도로 나갔다. 나는 케일럽을 돌아보았다. 그는 몹시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는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져 있었다.

16549679085119.jpg“폐, 폐하……. 제가 그, 그렇게 못생겼나요? 눈을 급하게 씻으실 정도로……?”

케일럽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16549679085119.jpg“폐하의 귀하신 눈을 더럽혀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저, 폐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연습도 열심히 했고, 그리고 또…….”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16549679070614.jpg“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야, 케일럽. 네가 못생겼거나 그런 게 아니야. 다만 너는 너무 어리잖니.”

16549679085119.jpg“네? 하, 하지만……. 고향에서는 제 나이면 대부분 결혼도 하는 걸요…….”

내가 계속 어린애라고 부르고 있긴 하지만 케일럽도 2차 성징이 거의 다 지난 청소년이니 무리도 아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젓고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단호하게 말했다.

16549679070614.jpg“아니야, 케일럽. 너는 16살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 미성년자야. 성인과 스킨십을 갖기에는 부적절한 나이지.”

16549679085119.jpg“네에……?”

16549679070614.jpg“내게 도움을 주려고 한 건 기특하지만 방법이 심히 잘못됐어. 자, 따라 해 보렴. 내 몸은 소중하다! 나는 아무한테나 내 소중한 몸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16549679085119.jpg“폐, 폐하는 ‘아무나’가 아닌 걸요……?”

16549679070614.jpg“씁, 따라 해 보라니까?”

16549679085119.jpg“내…… 내 몸은 소중하다! 나는 아무한테나 내 소중한 몸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16549679070614.jpg“좋아, 똑같이 열 번!”

결국 케일럽은 내가 한 말을 열 번 따라 했다.

16549679085119.jpg“폐하…… 저 너무 부끄러워요.”

16549679070614.jpg“이 말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고 네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걸 부끄러워해야지.”

케일럽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한 눈치였다. 그가 소심한 얼굴로 내 눈치를 보자, 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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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679070614.jpg“알았지? 네 몸을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다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정말 꼭 허락하고 싶은 상대에게만 허락하도록 하렴.”

16549679085119.jpg“……저는 그게 바로 폐하…….”

16549679070614.jpg“어허. 그러면 안 된댔지?”

16549679085119.jpg“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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