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남주인공을 김치에 싸서 드셔보세요2021.03.07.
알렉산드로스는 한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결국 그가 무언가를 꾹 억누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벨리아, 제발. 내가 이렇게 사정할 테니 이거 덮어.”
황제가 ‘제발’이라고까지 하는데 어찌할 수 있으랴. 결국 로벨리아는 그가 주는 외투를 무릎에 덮었다. 그제야 주변의 반응도 약간은 진정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샤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유 부리기는……. 하지만 그것도 지금이 마지막이야.’
그렇게 생각한 아이샤는 마침내 발표를 시작했다. 아이샤는 오늘을 위해 다양한 주제의 발표를 준비했다. 한국에는 마법은 없었지만, 대신 극도로 발전한 과학이 있었다. 제국인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은 무궁무진했다.
“먼저 ‘스마트폰’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살았던 나라, 한국에서는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입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면…….”
아이샤는 스마트폰이라는 놀라운 물건의 굉장한 기능과 쓰임새에 관해 설명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그것을 사용하며, 깊게 의지하고 있는지도.
“정말로 믿을 수가 없군요. 손바닥만 한 물건으로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니!”
두꺼운 안경을 쓴 왕궁학자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굉장히 발전한 마법 국가인가 봅니다. 모든 국민들이 이런 고성능의 마도구를 하나씩 소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요.”
“이건 마법이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아이샤가 자부심이 드러나는 얼굴로 말했다.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살롱의 모두가 빠져들었다. 단 한 사람, 로벨리아를 빼고는.
“질문이 있다만은.”
길고 곧게 뻗은 팔이 천장을 향했다. 도저히 듣지 못했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아이샤는 질문을 요청한 사람이 다름 아닌 로벨리아라는 사실에서 현기증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네, 황후 폐하. 질문이 무엇입니까?”
아이샤는 최대한 상냥하고 자신 있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노력을 비웃듯, 로벨리아의 질문이 그녀의 웃음을 산산조각냈다.
“그래서 그 이세계의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의 이야기가, 제국인들에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지? 황비는 여기서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나?”
로벨리아의 말에 아이샤의 표정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네, 네……?”
그녀의 떨리는 시야에서, 관중들이 기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 보였다.
“만들 수 있지 않으면 왜 굳이 설명했겠어?”
“이제 우리도 그런 대단한 기계를 써볼 수 있는 건가?”
사람들의 수군거림마저 귓가에 닿았다. 기대에 찬 시선, 자신이 그런 걸 만들 수 있을 리 없다는 듯이 보는 황후의 눈빛. 아이샤는 땅 밑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뻔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못합, 니다.”
그녀의 말에 장내가 한순간 술렁였다.
“허어, 그럴 수가…….”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에 대해 큰 기대감을 드러냈던 궁중 학자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말했다.
“어째서 만드실 수 없으신 겁니까? 황비님은 성녀님이잖습니까.”
“그건…… 저, 저는 과학자나 기술자도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었을 뿐이라…….”
“대학생이라면 어마어마한 지식인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기계의 제조법도 모르신다고요?”
아이샤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는데, 대학이라는 곳에 대한 한국과 대륙에서의 위상은 사뭇 달랐다. 한국에서 대학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지나치는 관문이었지만 대륙에서는 귀족가 자제 중에도 대학을 나온 자가 드물었다. 대학에 갔다는 것 자체가 평생을 지식과 학문에 투신하겠다는 사실의 방증이었다. 아이샤는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난 그저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주의를 끌고 싶었을 뿐인데…….’
그러는 동안 주변의 수군거림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그러던 그때였다.
“조용히 좀 합시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황비가 발표를 못 하지 않나요.”
도도한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로벨리아였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잡담을 하는 관중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녀의 말에 관객들은 멋쩍은 얼굴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아이샤의 마음속에는 안도와 분노의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이제 와서 착한 척 동정이라도 해보겠다는 건가? 나를 궁지에 빠뜨린 것은 바로 자신이면서!’
하지만 그런 마음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이대로 발표를 끝내면,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었다. 아이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무대 뒤에서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시녀들에게 눈짓했다.
“그걸 가져와.”
아이샤가 시녀들에게 입 모양으로 말했다. 시녀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예상 일정보다 훨씬 이른 타이밍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하, 하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당장.”
아이샤가 무섭게 쏘아보며 입 모양으로 말하자, 놀란 시녀들은 허둥지둥 어딘가로 달려갔다. 아이샤와 그녀의 관객들은 약 삼십 분 정도를 기다렸다. 아이샤에게는 어느 때보다도 긴 삼십 분이었다. 마침내 시녀들이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아이샤는 말라붙은 입술을 핥고는, 다시 무대 위로 나섰다.
“여러분,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감사를 뜻하는 마음에서 제가 있었던 세계에서 언제나 먹던 요리를 준비했어요.”
“오오, 시식회인가?”
“다른 세계의 음식이라니 정말 궁금한데.”
아이샤가 종달새처럼 사랑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별로 좋지 않던 분위기도 꽤 누그러졌다.
‘맛있는 요리는 어느 세계의 어떤 사람들이라도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지.’
아이샤는 그렇게 생각했다. 곧 하녀들이 들어와 손님들에게 접시와 간단한 커트러리를 나누어주었다.
“마음껏 드실 수 있도록 뷔페식으로 준비했어요. 몇 번이고 드셔도 좋아요.”
응접실에 두 개의 코너가 만들어졌다. 시녀들이 손님들에게 줄을 서도록 안내했다.
“이게 뭐지?”
“알록달록하고 예쁜데. 게다가 한입에 들어가는 앙증맞은 크기야.”
“냄새도 달콤하고 좋은데.”
줄을 선 손님들은 새로운 요리에 흥미를 드러냈다. 아이샤가 준비한 음식은 바로, 꿀떡과 김치였다. 아이샤가 이 음식들을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꿀떡은 색깔이 알록달록해 눈에 띄고 한입에 쏙 들어가는 앙증맞은 크기로 핑거푸드에 적합했다. 더군다나 고소하고 달콤한 맛은 취향을 타지 않고 누구나 좋아할 것이었다. 김치는 아삭아삭한 식감과 새콤매콤한 맛으로 입맛을 돌게 하기 좋았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아, 한국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었다. 둘 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좋아하는 요리였다.
‘시식 이후에 내가 요리법과 김치의 효능에 대해 발표하면 틀림없이 반응이 좋겠지. 좋아, 이만하면 괜찮아. 적어도 아무런 소득도 없는 발표는 아니었으니까.’
아이샤는 떨리는 기분으로 손님들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손안에 땀이 차서 몇 번이고 드레스에 닦아내야 했다. 그런데…….
“윽! 이게 뭐야!”
꿀떡을 입에 넣은 손님들이 불평을 내뱉었다.
“이에 다 달라붙잖아!”
“너무 찐득찐득해요!”
‘어?’
상상과는 다른 반응에 아이샤는 눈을 크게 떴다. 한편 김치를 입에 넣은 손님들은 더 했다.
“윽, 매워!”
“여기 물 좀 줘요!”
“뭘 넣었기에 이렇게 매운 거죠?”
김치를 먹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활화산처럼 새빨개진 채로 물을 찾았다. 준비해둔 식수가 있긴 했지만 예상보다 금방 떨어져서 하녀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샤는…….
‘대체…….’
아이샤는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희게 질린 얼굴로 생각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한편,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로벨리아는 요리를 금방 받을 수 있었다.
‘간만에 먹으니까 맛있는걸. 잘 만들었네.’
꿀떡을 우물거리던 로벨리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아하니 사람들의 반응은 엉망이었고, 아이샤는 희게 질린 채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저런……. 꿀떡과 김치가 제국인들 입맛에 안 맞을 줄 몰랐구나.’
제국에 오기 전, 로벨리아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한 동영상을 보았다. 미국인이 미국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한국 음식을 먹이는 내용의 동영상이었다. 그 영상에 따르면 어떤 메뉴들은 반응이 좋았지만 어떤 메뉴들은 반응이 좋지 않았다. 특히 후자 중에 대표적인 것은 떡과 김치였다. 찹쌀떡을 먹어본 미국인들은 완전히 새로운 식감을 낯설어 할 뿐더러 끈적이고 이에 달라붙는 감각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렇게 새로운 음식을 맛있게 먹이려면 어느 정도 적응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리라. 김치는 물론 많은 수의 미국인들이 맵게 느꼈다.
‘둘 다 좋은 요리이지만 외국인에게 접근성이 좋은 요리는 아니지.’
로벨리아는 생각했다.
‘게다가 꿀떡과 김치라니, 두 요리의 조합도 미묘하고. 나 같으면 불고기 같은 고기 요리에 달콤한 식혜를 대접할 텐데.’
기름진 고기 요리와, 느끼함을 씻어줄 달콤한 음료수라니!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한 번 다음에 정말로 대접해 볼까?’
느긋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알렉산드로스였다.
“아주 맛있게 먹는군. 그렇게 맛이 좋나?”
그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아까는 귀찮아서 안 먹겠다고 그러더니…….’
그를 보고 픽 하고 웃던 로벨리아는, 친히 포크로 김치를 찍어 그에게 내밀었다. 아주 드으으음뿍.
“궁금하시면 한 번 드셔보시지요.”
그녀의 낯선 행동에 알렉산드로스의 눈이 커졌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유혹적으로 눈꼬리를 접었다.
“우리도 그동안 꽤 가까워진 것 같아. 내 그간의 노력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군. 그렇지 않나?”
‘뭔 소리래.’
로벨리아의 싸늘해져 가는 마음도 모르고 알렉산드로스는 웃으며 입을 벌렸다. 그의 귀가 붉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음식을 먹여주는 행위에 감동한 모양이었다. 로벨리아는 설레발 치는 그의 입에 김치를 듬뿍 넣어주었다.
*** 아이샤는 자신이 준비한 요리가 인기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지 대단히 많은 양을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남았다. 나는 곁눈질로 아이샤를 보았다. 그녀는 이미 멘탈이 털릴 대로 털렸는지, 멍한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아이샤의 시녀들도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내가 보기에도 불쌍할 정도로 털렸으니 힘든 건 이해하지만……. 책임지고 발표회를 마무리 짓긴 해야 할 거 아니야.’
하지만 그것까지는 과도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이걸 다 어쩐다.’
나는 안타까운 눈으로 줄어들지 않는 떡과 김치를 바라보았다. 이미 관객들은 요리는 나 몰라라 하고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끼리 수다나 떨고 있었다. 내가 준비한 요리는 아니라지만, 지금도 7초에 1명씩 아프리카의 어린이가 굶어 죽고 있다는데 이렇게나 다량의 음식물 쓰레기가 남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제국인이 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내 안의 한국인이 음식을 남기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떡은 돼지 먹이로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김치가 문제네.’
사람들도 매워서 뒤집어졌던 김치를 이렇게 많은 양을 먹이는 건 인간적으로 동물학대다. 남은 요리의 양을 체크한 나는 궁인들을 불러 지시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해주는 레시피를 받아 적고 그대로 행하도록. 김치…… 이 매운 배추절임이 하얗게 될 때까지 물로 씻고, 잘게 다져. 밀가루를 물로 반죽하고, 혹시 쌀이 있다면…….”
“예, 예.”
궁인들은 내가 불러주는 레시피를 받아적고 다량의 김치를 가지고 부엌으로 사라졌다. 그쯤 되자 알렉산드로스가 돌아왔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지만, 궁인이 넌지시 귀띔해주기로는 물을 아주 많이 마셨다고 한다. 내가 알려준 레시피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라 약 30분쯤 뒤, 궁인들이 돌아왔다.
“분부하신 대로 요리했습니다, 황후 폐하.”
“수고했다.”
그들이 수레에 요리를 잔뜩 싣고 돌아오자 응접실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가득 찼다. 각자 대화 삼매경에 빠져 있던 관객들도 놀라 고개를 돌릴 정도로 맛있는 냄새였다. 나는 아이샤를 다시 살폈다. 그녀는 여전히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라도 대신 마무리 짓는 게 좋겠지. 바쁜 와중에 와준 사람들이니 요기나 시켜주고 보내야겠다. 그럼 음식물 쓰레기도 없애고 일석이조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짝하고 손뼉을 쳐 손님들의 이목을 끌었다.
“모두 주목.”
“황후 폐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궁인들이 눈치 좋게 옆에서 바람을 잡았다.
“모두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어 고마워요. 황실의 행사는 곧 나의 행사이기도 하죠. 그런 여러분을 빈속으로 보낼 수 없어,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했어요.”
이쯤 되니 대부분의 관객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요깃거리라고……?”
“황후 폐하께서도 요리를 준비하셨다고?”
손님들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군침이 도는 냄새가 공기 중에 퍼지고 있었지만, 아까 아이샤가 거대한 헛발질을 한 탓에 그렇게 기대감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뭐,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은혜에 감읍합니다만, 폐하. 혹시 이번에 준비하신 요리가 어떤 것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안경을 쓴 궁중 학자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황비가 준비했던 매운 배추절임을 활용해서 만든 볶음밥과 밀가루 부침이에요.”
그렇다. 내가 만든 요리는 바로 김치볶음밥과 김치부침개였다. 볶음밥은 제국 내에도 존재하는 요리이고, 부침개는 밀가루를 주재료로해서 바삭한 식감을 내어 제국인들의 입맛에도 맞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치를 물로 씻어 매운맛을 줄여서 내 입맛에는 다소 싱거울 것 같지만…… 이 동네 사람들 입맛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지.’
“매운 배추절임으로 만든 요리라고요?”
궁중 학자가 난색을 표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김치로 만들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배가 고프긴 하지만 그걸로 만든 요리는 좀…….”
“그걸 먹는 건 정말 무서운 경험이었어. 입안이 다 타버리는 줄 알았다고.”
이런 반응일 줄 예상했다. 다들 김치를 먹고 크게 실망했는데, 김치로 만든 요리를 기꺼워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속여서 먹이는 것은 꺼려졌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황비가 만든 배추절임이 너무 매워서 물로 씻어서 매운맛을 대부분 제거했어요. 다진 고기를 넣어 밀가루로 바삭하게 부치고, 베이컨과 쌀을 함께 볶았으니 맛도 좋고 요기가 될 거예요.”
내 설명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이나 아까의 김치가 너무 충격적이었나 보다.
‘실패인 걸까?’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사실 이런 반응이 놀랍지 않긴 했다. 나라도 끔찍한 음식을 맛본 직후 그걸로 만든 다른 요리를 먹으라고 하면 못 먹을 테니까.
‘김치와 베이컨의 조합은 정말 완벽한데, 이 맛을 보여줄 수 없다니 안타깝네.’
그렇다고 싫다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억지로 먹일 수도 없고. 아쉬운 마음을 삼키려던 바로 그때.
“내가 맛보지.”
누군가가 한 걸음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