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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황후의 만행을 폭로합니다 (17/151)

17. 황후의 만행을 폭로합니다202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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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파티가 있었던 직후의 국정 회의 날. 젊은 백작은 인생에서 다시 없을 정도의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16549675907085.jpg‘과연 내가 하기로 나선 일이 잘한 행동일까?’

하지만 젊은 여자들 앞에서 호기롭게 나섰는데 이제 와서 못 하겠다고 물릴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을 지원해줄 다른 귀족 친우들까지 포섭해놓은 상태였다. 아직 경력이 1년도 채 안 되는 풋내기인 자신이 국정 회의에서 혼자 안건을 제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16549675907085.jpg‘그래, 이렇게 많은 수의 젊은 귀족들이 한목소리로 건의하는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젊은 백작은 클렉스턴이 경질된 때에 그 자리에 없었기에, 그가 경질된 이유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만일 클렉스턴이 경질된 이유를 정확히 알았더라면 아무리 여자들이 등을 떠민대도 절대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16549675907085.jpg‘더군다나 충분히 국정 회의에 올라올 만한 안건이잖아. 그런 포악하고 머리 빈 여자가 황후라니, 말도 안 되지. 차라리 황비 전하야말로 그 자리에 잘 어울려.’

로벨리아, 그 악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절로 끓어올랐다. 황비를 핍박하여 감히 숭고하고 고아하신 황비 전하의 눈에 눈물을 보이게까지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라를 생각하는 젊은이로서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젊은 백작은 자신의 애국심과 충정에 스스로 감탄했다.

16549675907135.jpg“제137회 국정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비서관의 말을 시작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백작은 드디어 자신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16549675907085.jpg“존경하는 황제 폐하.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하기 전에 제가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16549675907085.jpg“드레이프 백작, 무슨 일인가?”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발언에 그의 삼촌이자 스승인 자코 후작이 당황하며 물었다.

16549675907085.jpg“안건을 내놓기 전에는 항상 내게 확인을 받으라고 하지 않았나, 백작!”

하지만 젊은 백작은 꿋꿋했다.

16549675907085.jpg‘이번 기회에 내가 언제까지나 삼촌의 의견만 따르는 어린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드려야겠어.’

그는 삼촌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정면만을 바라보았다. 귀족들은 모두 서 있었기에, 앉아서 서류를 읽는 알렉산드로스의 검은 정수리가 보였다.

16549675907085.jpg“저희 7인의 젊은 귀족들이 이번 회의의 주제로 제안할 안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황후 로벨리아 폐하에 대한 것입니다.”

16549675907085.jpg“저희가 조사한 보고서를 여기 계신 전원께 나누어드리겠습니다.”

16549675907085.jpg“드레이프 백작! 이런 건 대체 언제……. 어떻게 삼촌인 나에게는 말도 없이 이런 걸 준비할 수가 있나?”

당황한 자코 후작은 백작의 발언을 막으려 하였으나, 그런 행동은 오히려 반발심만 부추길 뿐이었다.

16549675934445.jpg“아니, 자코 후작. 가만히 있게.”

낮지만 멀리까지 울리는 목소리가 회의장을 흔들었다.

16549675934445.jpg“이거 흥미롭군. 황후의 만행에 대한 공론화와 처벌에 대한 안건이라.”

바로 황제였다. 그가 고개를 들자, 금빛의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오기와 패기로 똘똘 뭉친 백작조차 찔끔할 정도로 강렬한 눈빛이었다.

16549675934445.jpg“이것이 정말 젊은 귀족들, 그대들의 의견인가?”

16549675907085.jpg“예, 그렇습니다.”

16549675934445.jpg“그렇군. 어디 한번 계속해보도록.”

그렇게 말하는 알렉산드로스의 입꼬리는 살짝 말려 올라가 있었다. 백작은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해석했다.

16549675907085.jpg‘황제 폐하께서 우리의 의견에 관심을 보이신다. 좋은 징조야.’

그렇게 생각한 백작은 조금의 용기를 얻었다.

16549675907085.jpg‘지금은 최말단 석에 서 있는 처지지만 이번 일로 나의 능력과 혜안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럼 삼촌만큼, 아니 삼촌보다도 상석에 설 수 있겠지.’

그는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16549675907085.jpg“예, 그럼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백작은 그동안 조사해온 로벨리아의 만행들에 대해 발표했다. 특히, 사교계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빌헬름 후작 폭행과 궁내부 일을 외부인에게 맡긴 일에 중점을 뒀다.

16549675907085.jpg“허어, 저런…….”

16549675907085.jpg“요즘 젊은이들이란…….”

나이 든 가신들이 당황한 얼굴로 수군거렸으나 백작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어차피 삼촌과 같은 전형적인 구세대들일 것이 뻔했다. 반면 황제는 자신처럼 젊은 사람이다. 그것도 아이샤 황비를 누구보다 아끼는 사람이니, 다른 나이 든 가신들과는 의견이 다를 것이다.

16549675907085.jpg‘그 증거로 황제 폐하께서는 내 발표 내내 웃고 계셨어. 내 발표를 의미 있게 여기신 게 분명해.’

그가 느낀 대로 알렉산드로스의 얼굴에는 내내 가벼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 빠른 속도로 보고서를 읽은 그는 어느샌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발표에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이리라.

16549675907085.jpg“……이상입니다.”

발표를 마친 뒤 그가 허리를 숙였다. 회의장은 고요했다. 그 누구도 손뼉을 치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나이 든 가신들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서로를 보고, 삼촌인 자코 후작은 종잇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황제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낮은 목소리가 고요를 깼다.

16549675934445.jpg“발표 잘 들었네, 드레이프 백작.”

알렉산드로스였다.

16549675934445.jpg“그대는 이것이 그대들의 의견이라고 했지. 그 의견에 다른 누구의 입김도 들어가지 않은 것이 확실한가?”

칭찬을 받으려나 싶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백작은 기다렸다는 듯이 삼촌과 선을 그었다.

16549675907085.jpg“예, 그렇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저와 저의 친우 6명이 함께 조사하고 준비한 내용입니다.”

16549675934445.jpg“그거 다행이군.”

16549675907085.jpg“하하, 저도 그렇게 생…….”

16549675934445.jpg“이 자리에 등신천치처럼 얼빠진 놈들이 일곱밖에 없다는 사실이 말이야.”

뭐라고? 백작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와 함께 알렉산드로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 덩치와 위압감이 어마어마해서 백작은 순간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맹수를 닮은 한 쌍의 금안이 자신에게 와닿았다.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16549675934445.jpg“황후가 빌헬름 후작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폭행한 만행이라. 그대는 황후가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생각해 보았나?”

16549675907085.jpg“예? 아, 아니……. 그건…….”

급변한 분위기에 겁에 질린 백작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로벨리아가 그런 짓을 벌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남자 귀족들 사이에서 빌헬름 후작의 평판은 나쁘지 않았다.

16549675934445.jpg“비서관.”

16549675907135.jpg“예.”

알렉산드로스가 부르자 비서관 로버트가 재빠르게 한 무더기의 서류를 가져다주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것을 던지듯 뿌리며 말했다.

16549675934445.jpg“머리가 장식으로 붙은 게 아니라면 읽어보도록. 경들도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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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작은 허겁지겁 서류를 주워 읽었다. 서류에 쓰여 있는 내용에 따르면…….

16549675907085.jpg‘빌헬름 후작의 군수물자 유출과 세금 횡령 혐의라고?!’

충격을 받은 것은 백작뿐만이 아니었다.

16549675907085.jpg“빌헬름 후작이 이런 짓을?”

16549675907085.jpg“하지만 이 증거자료는 완벽하군요. 허어…… 빌헬름 후작,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회의의 참석자들은 각자 알렉산드로스가 뿌린 서류를 읽고는 충격을 받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이었으나, 알렉산드로스가 제시한 증거는 너무나 완벽했기에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16549675934445.jpg“당시 후작은 루티칸 왕국으로의 도주를 앞두고 있었다. 즉 황후는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빌헬름 후작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직접 손을 쓴 것이지. 자신의 명성이 다소 빛바래는 것을 감수하고서 말이다.”

16549675907085.jpg“아니, 황후 폐하의 행동에 그런 의미가……!”

16549675907085.jpg“정말 놀라운 혜안이었군요.”

아무도 알렉산드로스의 말에 의심을 하지 않았다. 원래 가장 무서운 것은 진실에 약간의 거짓을 섞는 것이니까.

16549675907085.jpg“황후 폐하께서 그런 깊은 뜻으로 그런 일을 하신 줄 몰랐습니다.”

16549675907085.jpg“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런 짓을 하면 명성에 아주 큰 해가 되리란 걸 황후 폐하께서 모르시지 않으셨을 텐데요.”

16549675907085.jpg“이 얼마나 숭고한 희생입니까? 개인의 명성보다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신 황후 폐하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가신들이 한목소리로 감탄했다. 한편 백작의 머릿속은 온통 새하얘졌다.

16549675907085.jpg‘뭐야, 황후의 행동에 그런 의미가 있었다고? 그, 그럼 내가 발표한 것들은…….’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자신이야말로 오늘 끝나고 말 테니까! 백작은 다른 안건을 물고 늘어졌다.

16549675907085.jpg“그…… 그렇다면 궁내부 업무에 외부인을 고용하신 건은 어떻습니까? 이것은 황후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일이며 막대한 양의 국고 유출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백작의 눈에는 더 이상 그의 웃음이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16549675934445.jpg“황비 아이샤가 궁내부 업무를 전담하였을 때 황궁의 상태가 어땠는지는 그대도 알고 있겠지?”

16549675907085.jpg“…….”

16549675934445.jpg“그에 대해서도 자료를 준비했으니 눈 크게 뜨고 잘 보도록.”

알렉산드로스는 또 다른 서류를 집어 던졌다. 그리 힘을 주지도 않은 것 같은데 서류는 멀리 날아가 백작의 앞에 툭 떨어졌다.

16549675934445.jpg“황후는 그때 깨달은 것이다. 궁내부의 업무를 겨우 한, 두 사람이 총괄하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일인지 말이다. 궁외부의 일은 다수의 장관들과 부장관들이 업무를 분담하고 있지만 현재 궁내부는 황후가 업무를 하지 못하게 되면 전체의 업무가 마비되는 위험한 상황이다.”

16549675907085.jpg“…….”

16549675934445.jpg“당장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외부인의 힘이라도 끌어서 쓰는 것뿐이지. 황후는 그런 비상상황을 예견하여 방지책을 마련해둔 것이다. 그대에게는 관습이 중요한가? 궁내부 업무가 어느 때고 원활히 굴러가도록 안전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가?”

16549675907085.jpg“그, 그건…….”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목구멍이 커다란 무언가로 틀어막힌 것처럼 숨이 찼다. 백작은 눈앞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16549675934445.jpg“이제 문제는 하나로군.”

백작의 눈에 알렉산드로스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안 그래도 체격이 큰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커지는 압도적인 분위기가 그를 짓눌렀다.

16549675934445.jpg“앞뒤 사정도 모른 채 세 치 혀로 황후를 모독한 이 7명의 얼간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의 문제 말이지.”

16549675907085.jpg“폐, 폐하!”

자코 후작이 허겁지겁 황제의 앞에 나섰다.

16549675907085.jpg“이번 일은 저의 교육이 부족해 일어난 일입니다. 백작은 제가 궁중의 법도에 대하여 잘 가르칠 테니, 그의 어린 나이와 혈기를 보아서 부디 용서를……. 억!”

알렉산드로스의 손짓 한 번에 후작은 너무나 손쉽게 나가떨어졌다.

16549675934445.jpg“약관을 넘기고 성인식을 치른 청년의 허물을 어리다고 봐줄 수는 없지.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다. 그렇지 않은가?”

어느샌가 그의 거대한 그늘이 백작의 머리 위로 드리웠다. 이가 딱딱 부딪치고 몸이 떨렸다. 하늘이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16549675907085.jpg“폐, 폐, 폐하. 부, 부디 용서를……!”

16549675934445.jpg“아무래도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알렉산드로스가 실망스러운 듯 말했다.

16549675934445.jpg“한마디의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그 무게를 모르는 자가 이렇게 위험한 것을 지닐 필요가 있다고 보나?”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는 본능적인 공포. 마치 거대한 맹수를 마주한 듯 했다. 눈물과 땀이 옆얼굴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더 이상 체면도, 예의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백작은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16549675907085.jpg“제,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16549675934445.jpg“기사단장.”

16549675907085.jpg“예.”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처절하게 용서를 구하는 백작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가 냉혹한 목소리로 말했다.

16549675934445.jpg“끌고 가서 드레이프 백작의 쓸모없는 혀를 자르도록.”

16549675907085.jpg“분부 받들겠습니다.”

그 낮고 냉엄한 말은 백작에게 있어 청천벽력과 같았다.

16549675907085.jpg“으아아아아악! 폐하, 폐하! 용서해주십시오! 제발 용서를…… 커헉!”

거친 손아귀가 백작의 멱살을 붙들었다. 애원도 속절없이, 백작은 비참한 꼴로 회의장 밖으로 끌려나가고 말았다.

16549675934445.jpg“그리고 이번 일에 가담한 7인 전원에게 징역형을 명한다. 기간은…… 흠,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지.”

16549675907085.jpg“예.”

기사들에 의해 젊은 귀족들이 끌려나갔다. 그러는 동안 가신들 역시 찍소리조차 하지 못했다. 회의장 내에 불편하고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기사들이 자리를 떠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최상석으로 돌아간 알렉산드로스가 말했다.

16549675934445.jpg“뭣들 하나? 회의를 계속하도록.”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엔 여상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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