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오셨습니까 아가씨!”
“그놈의 아가씨 타령은 그만 좀 하라니까.”
헬기에서 내린 다나는 착용하고 있던 헤드셋을 거칠게 벗어던졌다.
예민해진 그녀의 청각에 헬기는 아무래도 너무 시끄러웠다.
“파병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귀환은 무슨. 그냥 휴가내고 잠시 쉬러 온 건데.”
성좌들을 모두 쓰러뜨렸다고 해도 이미 만들어진 천사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전 우주적으로 벌어지던 전쟁이었다.
숨어든 패잔병들을 색출해내는 작업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다나는 그 작업의 한 축을 맡고 있었는데, 반은 지구 재건작업에 무인인 자신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고, 나머지 반은 뒤따라 헬기에서 내린 사람 때문이었다.
“나까지 휴가를 줄 필요는 없었는데.”
신시아 스펜서.
한 때 웨어울프였고, 사도였던 그녀는 이제 평범한 인간이 되어 타이탄 슈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입은 타이탄 슈트는 형벌부대를 위해 특수제작된 것으로, 형기를 마칠 때까지 벗을 수 없는 걸어 다니는 감옥이었다.
형벌부대를 위해 슈트를 만들어준 무르무르는 해병다운 모습을 기대하겠다며 흡족해했는데, 다나는 왜 해병 소리가 나오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다나는 전직 웨어울프들을 모아 만들어진 형벌부대를 이끌고 온갖 차원을 넘나들며 천사들을 잡아들였다.
힘이 사라졌다곤 해도 전투경험은 그대로였기에 타이탄 슈트의 보조를 받은 울프팀은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군소리하지 말고 쉬랄 때 쉬어요. 다시 파병 나가면 또 반년은 못 쉴 테니.”
“내가 쉬는 걸로 네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어딜 수작질이냐며 정강이를 걷어찼겠지만 다나는 그것이 신시아의 진심임을 알았다.
그녀의 비정상적인 가족에 대한 집착은 어린 시절, 자매가 물려받은 재산을 노리고 접근해오던 어른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리라.
다나는 그런 신시아에게 지켜진 사람으로서 그녀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신시아가 자신을 위해 벌인 일이라면 원치 않았다 해도 조금은 책임이 있지 않겠는가?
“대주교님!”
그것이 어스름 수도회 지구 교구 대주교인 다나가 직접 울프팀을 이끌고 파병을 다니는 이유였다.
“밤비!”
밤비는 전쟁이 끝난 후 지구에 남아 어스름 수도회에 입회했다.
성진처럼 강해지기 위해 수련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총본산은 박살 나고 성검은 여기에 있는데다, 다나는 검강 사용자이기도 했으니 지구에서 배우겠다는 것이었다.
다나는 자신의 꼬마 제자가 뛰어든 것을 받아내곤 볼을 비벼댔다.
“빅토르 씨도 오랜만이네요. 별일 없으셨죠?”
“여전히 수련하고 자원봉사 다니고 그러는 게 전부지요. 걱정하실 일이 생길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지구에 손댈 수 있는 세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곤 해도 일단 사룡왕이 이 근처에 머물고 있었으니까.
어스름 수도회는 그 특성상 사람이 늘어난다고 운영이 어려워질 것도 없어서 주교라고 딱히 그녀가 뭔가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하여 28살의 이 젊은 주교는 제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그러는 사이 어스름의 두 선배와 같은 3단계 초월자가 될 수 있었다.
그 성장속도를 생각하면 다나가 언젠가 신성에 도달하는 것도 기대해볼 법 하리라.
지난 전쟁에서 모든 신성존재가 한 번씩 죽어 영혼만 남았으며, 따라서 살아 있는 육체를 지닌 신성존재는 아직 없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새롭게 탄생할 신성존재들이야말로 다음 시대를 이끌어나갈 주역이 되리라는 건 명백했다.
신시아는 그 점이 걱정이었다.
‘다나가 신이 된다면 아주 오래 살겠지. 전쟁도 끝났으니 정말 긴 시간을 살게 될 거야.’
자신은 언젠가 죽을 테지만 다나는 그 후로도 계속 살아가리라.
주변인들을 계속 떠나보내며, 오랜 시간을 홀로.
걱정은 잔소리가 되었다.
“오랜만에 길게 쉬겠다. 너도 이참에 남자나 좀 만나보지 그러니.”
“어어?”
신시아의 갑작스러운 말에 다나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는 듯이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믿을 수 있는 건 가족밖에 없단다. 그러니 가족을 늘려.”
“언니 미쳤어?”
신시아의 사고방식이 늘 중간단계 서넛을 뛰어넘어 결론부터 툭 튀어나온단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익숙해지는 건 아니었다.
“남태수 그 남자라면 너 못지않게 오래 살 테니 괜찮지 않을까?”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특이점이라는 주성진이 더 확실하겠지만 그 남자는 사라져 버렸으니 원.”
“내가 못 살아 진짜!”
다나는 죄인의 폭주를 막기 위한 타이탄 슈트의 작동정지 버튼을 연타하고는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게 된 신시아는 빅토르와 밤비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어깨를 으쓱이곤 그냥 다나를 따라가 버렸다.
“다나야? 언니 화장실 가고 싶은데, 다나야?”
버려진 고양이처럼 애처로운 울음소리는 2시간이나 이어졌다.
* * *
이틀 뒤, 다나는 오랜만에 편한 옷차림으로 해변의 바에서 맥주를 마셨다.
파병을 나가면 다나는 항상 전투복 차림을 고수했다.
인벤토리가 없으니 전술조끼에 파우치를 주렁주렁 달고 아예 특수부대처럼 하고 다녔는데, 실제로 총화기와 방패도 곧잘 썼다.
검강을 써야 할 만큼 위험한 상황도 없었고, 작전에는 칼보다 유용한 장비가 많았으니까.
그녀의 재능은 전투 전반에 관한 것이라 딱히 검이 아니더라도 다루는 데 문제는 없었다.
실제로 천사를 잡으러 다니는 일은 전투보다 수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대낮부터 술 마시고 있으니 진짜 날백수 같네.”
쉴 때도 전술조끼를 벗을지언정 하네스와 장갑, 군화는 벗지 않았었다.
슈트를 벗지 못하는 울프팀 앞에서 혼자 편히 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청결이나 다른 것들은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니 문제도 없었다.
그렇게 항상 전술장비를 끼고 살다 보니 편하게 맨다리를 내놓고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느낌이었다.
다행히 관광지 해변인지라, 그런 날백수가 다나만은 아니었다.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반쯤 맥주를 뿜을 뻔 한 다나는 저건 또 뭐하는 놈인가 싶어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서양인 남성 하나가 셀카봉을 들고 개인방송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수영복 차림의 여자들을 끼고 다니는 게 ‘쟤는 참 즐겁게 놀고 있구나’ 싶었다.
그보다 다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문구들이었다.
“ID? 탑은 다 부서졌는데 저게 뭔?”
놀라서 심안을 떠보니 카르마는 없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건 그냥 단순한 환영마법의 일종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다시 보니 그들의 ID는 아주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데다, 딱히 이름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닉네임인가? 그러니까 무슨 [zi존법사] 같은?’
이제 보니 이들 외에도 해변에 ID를 달고 있는 사람이 꽤 보였다.
다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남자에게 물었다.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음? 어어?”
가벼운 인식저해마법을 걸어둔 터라 지금까진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였으나, 본인이 먼저 말을 건 마당에도 마법이 유지되진 않았다.
“다, 다, 다, 다나 스펜서……?”
“머리 위에 그거 뭐예요? 보니까 하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유명인의 등장에 남자는 황급히 카메라로 그들을 찍으며 말했다.
“머리 위에 ID를 꾸미고 다니는 게 요즘 유행인데 모르세요?”
“최근에 다른 차원에 있다 와서. 그런데 그게 왜 유행이에요?”
“10년 전까진 플레이어가 상류층이라는 말과 동의어였으니까, ID도 부의 상징처럼 자랑할 만한 거였단 말이죠? 그러니 마법사가 많아진 요즘엔 마법으로 자기 ID를 꾸미는 게 자기 마법실력 자랑 겸, 트렌드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성좌들이 나눠주던 걸?”
“정작 성좌들이 나쁜 놈이란 게 밝혀진 이후에는 ID가 다 사라졌잖아요. 그래서 성좌의 잔재라기보다는 그냥 핸드폰 케이스 꾸미듯 꾸미고 노는 거예요.”
“허어.”
솔직히 이해는 안 갔지만 그렇다고 하지 말라 할 일도 아니라서 다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원래 서로 다른 세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 아닌가.
당장 다나 본인도 신시아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을 때가 한둘이 아니었다.
“바텐더? 이분들 마티니도 이 카드로 결제해요.”
“와우!”
분위기가 싸해지기 전에 성실한 답변에 사례한 다나는 빠르게 그 자리를 떴다.
잠시 걷다 보니 인식저해마법이 다시 작동했다.
다나는 그사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를 비롯해 전쟁을 겪은 이들이라면 평생 그 일을 잊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 모든 일을 남의 일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는 거야.’
당시에 너무 어렸거나, 아니면 아예 그 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그걸 남의 일이라 여기는 게 당연했다.
성진이 있었단 사실은 길이 남더라도, 성진이라는 사람을 아는 이들은 계속 줄어가리라.
평화로운 시대에 영웅의 이름은 잊혀가는 법이었다.
“정작 아저씨는 이 평화를 누려보지 못했는데.”
성진은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차원의 틈에 떨어져 고철행성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때부터 마지막 그 순간까지 성진의 삶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누구보다도 보답받아야 할 사람임에도 성진은 보답받지 못했다.
신시아의 일도 함께 책임지려하는 다나가 그걸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나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는 항상 성진에 대한 일이 자리 잡고 있었다.
10년 전부터, 계속.
해소할 수 없는 이 마음은 평생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으리라,
고 생각했다.
“다나야!”
“아재?”
길을 걷던 그녀의 앞에 갑작스레 튀어나온 것은 전직 지구대통령이었다.
“안 그래도 한번 찾아뵈려고 했더니. 뭐하러 여기까지 오셨대요?”
“큰일 났어! 아니 큰일이라고 안 좋은 일은 아니고, 사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긴 한데…….”
“왜 그렇게 횡설수설하세요? 어디 남아 있던 성좌라도 발견됐대요? 진정하고 침착하게 말해보세요.”
“내가 성진 씨를 발견한 것 같아.”
그 말과 동시에 다나는 침착함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