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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부수는 플레이어-168화 (168/170)

<168>

한때 지구의 하늘에는 24시간 끊이지 않는 유성우가 가득했다.

천상으로 진격하기 위해 우주 곳곳에서 모여든 전사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것으로 인류는 그들이 우주의 외톨이가 아님을, 창백한 푸른 점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 모든 전사들의 선두에 선 것이 인간임을.

성진이 모든 전사들을 이끌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0년이 지나 지구에 수많은 이종족들이 살게 된 지금에도 우주의 특이점은 전설로 남아 있었다.

서울, 시청 앞 광장.

이곳에는 주성진의 동상이 서 있었다.

뉴욕에 있는 남태수 동상을 바라보도록 설치된 이 동상은 그 재질부터가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오리할콘.

마력 전도율 100%의 이 초전도체는 우주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금속이었다.

그것이 단순한 기념물인 동상에 쓰인 경우는 성진이 유일하리라.

“그러니까 저기 있는 장식품 하나만 떼어다 팔아도 인생 쫙 핀다는 거지. 알겠어?”

동상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

그곳에서는 일단의 중고등학생들이 롱패딩 차림으로 자신들끼리 쑥덕거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유난히 작은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학생이 무리의 유일한 중학생이었으며 이번 계획의 핵심이었다.

“이거 진짜 해도 돼요? 저기 붙어 있는 걸 떼어온들 어떻게 팔려고요?”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한다니까? 너는 네 초능력으로 저걸 떼어오기만 하면 돼.”

고등학생들은 문제가 커지면 자신들은 발뺌할 것임을, 그러면서 ‘너는 촉법소년으로 풀려나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중학생 소년에게 죄를 떠넘길 계획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이거 한 번이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다고.”

“안 할 거냐?”

고등학생들의 압박에 중학생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빠르게 걷는다.

소년이 숨을 멈춘 순간 온 세상이 멈췄다.

언제부턴가 그에게 생긴 이 초능력은 그가 숨을 참고 있는 동안 시간을 멈추는 힘이 있었다.

불알친구에게만 가르쳐준 이 능력을 저들이 알게 된 건 그 불알친구 놈의 부주의함 때문이었다.

‘야, 너 초능력 있다며?’

‘진짜냐?’

‘한번 해 봐.’

소문을 듣고 온 고등학교 형들은 소년의 능력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거면 은행에서 돈 털어도 모르는 거 아냐?’

‘은행 금고는 잠겨 있잖아 병신아. 숨참을 수 있는 시간 동안 털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럼 가게 포스기?’

‘자잘하게 여러 번 털면 위험하지 않냐? 한 번에 제일 많이 벌 수 있는 게 뭐지?’

그리하여 영웅의 동상을 털러 온 그들에게 죄책감은 없었다.

대전쟁은 10년 전의 일이었으니까.

당시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그들에게 대전쟁은 사실상 남의 일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멀리서 숨 참기 시작했나. 돌아갈 걸 생각하면 많이 챙겨가긴 힘들겠는데.’

높이 오르긴 힘들겠다 생각한 소년은 어쩔 수 없이 망치 손잡이 끝에 달린 보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이 닿는 순간.

“성진 씨?”

멈춘 시간 속에 어둠이 일렁였다.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것은 소년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인류 최초의 대마법사.

사룡왕의 사도.

모든 용들의 막내로서 그들의 비호를 받는 반인반룡.

세상을 구한 마왕이자, 신세계의 주인.

절대적 존재가 그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소년은 겁에 질린 마당에도 숨을 내쉬어 시간을 다시 돌려놓진 못했는데, 딱히 그의 의지가 강해선 아니었다.

그냥 카르마에 짓눌려 숨이 막히는지라 능력이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는 사이 마왕은 소년의 팔을 붙잡고 들어 올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소년은 창백한 푸른 안광이 자신을 낱낱이 해체하는 것처럼 느꼈다.

“뭐야, 그냥 선천마법사잖아? 그래도 시간정지라니 꽤 특이한 능력이긴 하네.”

몬스터 중에는 가끔 신체구조가 일종의 마법진 역할을 해, 입에서 불을 뿜거나 투명화가 가능한 종들이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 중에서도 미묘한 차이로 장기의 크기나 위치가 딱 들어맞아 특정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

이렇듯 신체에 특정 마법을 내장한 채 태어난 돌연변이들을 선천마법사라 불렀는데, 이들은 마법적 지식 없어도 자신만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횡격막이 수축했을 때 딱 절묘하게 시간정지가 발동되는 돌연변이인가?”

마법 자체는 별거 아니었다.

어설픈 마력으론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범위도 한정적.

게다가 시전자보다 마력이 많으면 멈춘 시간 속에서도 움직일 수 있었다.

제대로 마법을 배운 적도 없는 소년의 마력을 생각하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시간정지는 2급 마법인데 너 취급자격은 있니? 없지? 비인가 마법 사용은 중죄인 거 알지?”

최대한 드래곤 피어가 발동되지 않도록 조곤조곤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정확히는 대답 못 했다.

아까부터 숨을 못 쉬던 소년은 슬슬 숨넘어가기 직전의 상태였다.

“아차.”

그제야 소년의 상태를 파악한 마왕이 손짓하자 그들은 순식간에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엇, 뭐야?”

“그 새끼 어디 갔어?”

소년이 떠나자 다시금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광장에선 고등학생들이 갑자기 사라진 소년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튀었잖아?”

* * *

사무실에서 한창 업무를 보던 프라임 리치는 갑작스러운 방문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스터! 이게 얼마만입니까, 며칠 째 집에도 안 들어오시더니.

“미안, 일하는 중이었어?”

-괜찮습니다. 새로 고용한 마법 교수를 면담 중이었거든요.

방 안에는 한 여인이 리치와 면담을 하고 있었는데, 방금까지만 해도 리치의 마력 앞에 오들오들 떨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그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제가 이 친구한테 볼 일이 있어서 그런데 잠시…….”

“나가 있을게요! 대신 혹시 싸인 가능하실까요?”

“아 예. 그 정도야 뭐.”

그의 마력이 담긴 서명을 받은 여성은 룰루랄라 방을 나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왕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스름 사제네? 마법학교 교수로 들이려고?”

-실력도 신분도 확실하니까요. 지구가 어스름 수도회의 성지가 된 뒤, 꽤 많이들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인원은 대부분 죽고, 문도 완전히 닫혔는데 용케 안 망했네.”

-혜택은 사라졌어도 신앙은 어디 가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요즘 들어 유례없는 부흥기랍니다. 특이점 신화가 더해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리치의 손짓에 소형 드론이 차를 내왔다.

그는 자리에 앉아 데려온 소년을 가리켰다.

“밖에서 우연히 발견한 선천마법사야. 두고 갈 테니까 교육 좀 시켜줘.”

-얼마든지요.

이어서 소년을 보고도 말했다.

“아차, 본인 의사를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네. 자, 이제 고르는 거야. 비인가 마법 사용으로 깜빵에 갈래? 아니면 여기서 저 해골 아저씨한테 마법 배울래?”

소년은 이미 아까부터 일어나는 일들에 바짝 쫄아 있었으나, 이어지는 남태수의 말은 그를 더 쫄게 만들었다.

“참고로 깜빵에 가면 노동용 육체에 빙의해서 24시간 잠도 안자고 외계 행성에서 일할 거야. 촉법소년이라고 보호해주는 건 없어. 마법범죄 특별법은 인간이 아닌 종족이 주 대상이라 나이 같은 거 안 따지거든. 진짜니까 믿어도 좋아. 그 법안 내가 승인한 거라.”

“마, 마법 배울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선천마법사면 꼭 마법 배워야지. 자기 몸에서 마법이 나가는데 그걸 관리할 이론적인 지식이 없어서야 쓰나.”

그는 소년의 등을 두드려 방 밖으로 내보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리치의 또 다른 육체가 소년을 맞이해 학사설명을 위해 어딘가로 데려갔다.

분신을 조작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 방에 있는 리치 또한 분신체였으니까.

무르무르의 본체는 난쟁이들이 공여해준 우주전함에 깃들어 우주공간을 떠다니고 있었고, 이곳에서 활동하는 모든 육체는 원격으로 조종되는 것이었다.

-하루에 한번은 배에 들리시죠? 헬가 양이 보고 싶어 합니다.

“아, 요즘 좀 바빠서…… 그보다 그냥 헬가도 여기 마법학교 다니게 하면 안 되나? 또래랑 지내는 게 나을 텐데.”

-저희가 초등부는 아직 없습니다만, 필요하면 이참에 만들도록 하지요.

무르무르는 그러면서 화제를 옮겼다.

-다른 종족들이 보낸 선물이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냥 네가 적당히 까보고 정리해줘. 죄다 지구에 기증해 버려도 상관없으니까.”

-폐하께서 아시면 기겁을 하시겠군요.

“뭐 어때. 그날 이후 완전히 드러누우셔서 아무 말씀도 없으신데.”

성진이 사라진 이후 사룡왕은 헬가의 영혼을 지구의 굴레에 연결해 환생시킨 뒤, 목성에 들어가 칩거했다.

중력과 자기장, 그리고 폭풍으로 가려진 그 행성에서 사룡왕이 무얼 하고 있는진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가끔 용들이 와서 목성 주위를 날아다니다 돌아간다는 점을 빼곤, 사실상 없는 것과 같았다.

10년을 그랬다.

그러는 동안 마왕은 지구를 다스렸다.

처음에는 못 배운 놈으로서 전문가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려던 그는 성진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고 선거에 나갔고, 압도적인 지지율로 지구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업무를 잘하는 건 아니었으나, 마침 그 시기의 지구에 필요한 건 업무능력이 뛰어난 대통령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초월자들과 대등하게 설 수 있는 대통령이었다.

지구는 빠르게 재건했고, 그는 마법의 전파를 위한 마법학교 개교를 마지막으로 임기를 끝내고 은퇴했다.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어 그는 영구집권을 할 수 있음에도 겸허히 물러난 위인으로 남았지만, 사실 그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정말로 그분께서 돌아오실 거라 생각하십니까?

“물론이지. 그러겠다고 말했는걸.”

지난 세월 동안 그는 성진을 찾고 있었다.

-설령 그 이론이 옳다고 쳐도 특이점께선…… 아니,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말도록 하지요. 그보다 드릴 게 있습니다.

리치가 내민 서류는 두 사람의 인적사항이었다.

-전에 물어보신 자료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십시오.

리치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묻지 않았다. 대신 업무가 있다며 그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수백이 넘는 분신을 두고 있으니 할 일이 생겨도 분신 하나 더 만들면 될 텐데도.

마치 그가 이 자료로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이.

그는 홀로 남아 자료를 확인했다.

언젠가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낳은 아이를 고아원에 버리고 간 이들의 자료를.

그리고 그들의 삶이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임을 확인하고는 검은 불꽃을 피워 자료를 모두 태워 버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진짜 부모는 따로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준 주성진이야말로 그의 아버지였고,

자신에게 그것들을 이뤄낼 수 있는 힘을 준 사룡왕이야말로 그의 어머니였다.

그에게는 이미 부모가 있었으므로 다른 부모는 필요 없었다.

“…… 자 그러니 다시 찾으러 가볼까.”

그러니 자신은 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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