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하늘의 틈으로부터 길게 늘어진 침묵과 광기의 팔에는 늑대의 그것처럼 털이 나 있었다.
그 털들은 지구의 대기와 만나 미세한 포자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그러나 신성한 권능이 담긴 털이 주변의 동식물에 닿자, 그 모든 것들이 웨어울프로 변했다.
“온다! 거인들 앞으로!”
가장 먼저 쏟아져 나온 것은 뉴욕 지하의 시궁쥐들이었다.
인간은 이미 언데드들이 모두 대피시킨 뒤였다.
그러나 대도시답게 방대한 지하시설을 갖춘 뉴욕에는 인간이 아닌 생물도 많았다.
숫자로만 따지면 인간보다도 더.
콰과과과곽!
웨어울프화한 쥐 때의 습격은 거인의 영혼이 들어있는 타이탄의 강철 몸체조차 구겨 버렸다.
“1열 역소환! 2열 앞으로!”
쥐들과 뒤엉켜 구겨지고 있던 타이탄들이 역소환되자 뒷줄의 다른 타이탄들이 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는 사이 남태수는 역소환한 이들을 다시 소환하고 무기를 쥐어주었다.
“저놈들이 못 퍼지게 막아! 절대로 뉴욕 안에서 막아!”
웨어울프가 될 수 있는 건 인간만이 아니었다.
쥐들이, 나무가, 모기도, 벌레까지.
저 신성한 역병에 닿는 순간 모두가 침묵과 광기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심지어는 시체인 언데드조차 웨어울프가 되면 남태수의 통제를 벗어나기 때문에, 놈을 막기 위해서는 타이탄 코어를 이용해 메카 언데드들을 만들어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완전 자연재해구만…….”
남태수는 밀려오는 적들을 보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생물이라면 당연히 있을 생존본능이 거세된 채 파도처럼 밀려드는 괴생물들.
반은 원래 모습인 채로, 반만 늑대화된 그것들은 무슨 재난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어떠한 생물과의 전투라기보다는 어떠한 현상과의 전투에 가까운 모습.
“이것이 성좌…….”
심지어 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느라 가진 힘의 1할도 못 쓰는 게 저랬다.
“아니, 1할이 뭐야. 1푼은커녕 1리도 안 되겠다.”
남태수의 심안에는 아직도 병목현상으로 틈 바깥에 남아 있는 성좌의 영혼이 보였다.
그에 비하면 지금 들어와 있는 건 손가락 하나도 못 될 일부분에 불과.
그 일부분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웨어울프로 만들어 버릴 역병을 풀어놓고 있었다.
“날아가는 것도 전부 막아!”
대공포의 일부가 웨어울프가 되어 날아가던 새를 향해 방향을 돌렸다.
그러자 줄어든 화력만큼 차원의 틈을 통해 쏟아지는 침묵과 광기의 양도 늘어났다.
답답한 상황이지만, 아직 나설 순 없었다.
-은인, 내 뒤로 와라. 은인이 오염되면 다 죽는 거다.
아이젠그라드는 불타는 대방패를 들고 남태수를 향해 쏘아지던 웨어울프를 쳐냈다.
-9번가 방면이 뚫렸습니다.
“뭐? 30분도 안 됐는데? 강까지 밀리면 끝이야! 물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갈 거라고!”
하늘에 보이는 신성광휘가 뻗어나간 범위는 맨해튼을 넘어 뉴저지에 닿을 정도였다.
그러나 차원의 틈 자체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상공의 작은 범위에 그쳐, 웨어울프 역병도 그곳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지는 중이었다.
만일 이들이 맨해튼 섬 양옆의 허드슨 강이나 이스트 강까지 도달한다면 그때부턴 정말로 들불이 번지듯 순식간에 퍼져나가리라.
“그냥 지반 째로 건물을 무너뜨려서 길을 막아!”
남태수 본인도 계속해서 언데드를 역소환하고 적절한 위치에 재배치하며 정신없이 마법을 펼쳤다.
다나는 아무리 피의 저주를 극복했다곤 해도 침묵과 광기를 직접 맞닥뜨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도 가까이 다가가면 역병에 오염될 수 있으니 결국 언데드를 다룰 수 있는 남태수가 어떻게든 해야 하는 상황.
솔직히 오래 버티긴 힘들었다.
“나한테 인류 대표 카르마가 들어올 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줘!”
이미 바깥에서는 신시아의 대국민 사과 방송이 한창이었다.
실제로 남태수는 자신의 이름이 퍼져나갈수록 관련된 카르마가 생겨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인류의 과반.
그만큼의 숫자가 남태수를 받아들인 순간, 남태수는 인류 대표로서 문명 카르마를 사용할 수 있게 되리라.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이클립스의 그림자로 뒤덮인 맨해튼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데드들은 계속해서 죽었다 살아나며 의식이 끊기니 감각이 사라졌고, 남태수는 정신없이 소환수의 위치를 옮기느라 눈물콧물 다 빼고 있었기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사람 몸으로 파도를 막겠다는 형세였으니, 그게 진짜 가능한가 어떤가와는 별개로 한순간도 쉴 시간이 없었다.
남태수가 어떻게든 필요한 위치에 언데드를 소환하면, 거기 들어간 영웅들의 영혼이 어떻게든 막았다.
말 그대로 어떻게든 이었다.
“무르무르 나 죽어!”
-포션으로 참으십시오, 이전처럼 이성을 잃는 저주 같은 건 못 걸어드립니다.
이 전쟁에서 남태수의 역할은 언데드 부대의 지휘관이었다.
직접 나서서 싸우는 게 아닌, 뒤를 봐주는 마법사였으므로 힘들고 배고프고 무서워도 정신줄을 꼭 잡고 있어야만 했다.
“포션도 물배 차서 안 들어간다고!”
-그럼 주사로 놔드리겠습니다.
푹!
-전장이란 원래 이런 겁니다. 압도적으로 밀어 버릴 수 있는 전투가 아니라면, 이기든 지든 개고생을 피할 수 없지요.
피차 목숨 걸고 싸우는 마당에 얌전히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인간과 인간의 전쟁이라면 그렇겠지만, 종의 존속을 두고 멸망전을 펼친다면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할 수 없는 법.
대전쟁의 모든 전투는 이렇듯 전력을 다한 필사의 싸움이었다.
-잔탄 제로! 마탄 다 썼습니다!
“전원 착검!”
마티아스의 명령에 화기를 붙잡고 있던 요정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오염되는 순간 자폭하도록 세팅된 슈트형 타이탄의 기사대가 일제히 검기를 피워 올리자 데스나이트로 이루어진 벽이 형성되었다.
한편 침묵과 광기는 미친 듯이 쏟아붓던 화력이 끊긴 순간, 짐승처럼 빈틈을 파고들었다.
신성한 빛이 내려온다.
근처의 빌딩들은 진작 다 박살난 마당이었지만 빛은 그 잔해마저 이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
‘먹었잖아?’
초월자인 남태수는 그 신성광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휘이잉!
공기가 사라지며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바람이 불었다.
저 거대한 늑대는 영혼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만물에 카르마가 깃드니, 저 탐욕스러운 신성존재는 이 땅의 모든 것을 다 먹어 치워야 만족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저것과의 양립은 불가능하다.
생물이라면 누구나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 감각과 함께, 기사대와 신성광휘가 충돌했다.
마력의 응집체인 검기는 신성광휘를 조금은 밀어냈다.
그리고 그 직후, 빛에 삼켜져 소멸했다.
자살특공이나 다름없는 시간벌이.
요정기사들이 전멸한 직후에는 거인들이 나섰다.
중장형 타이탄에 깃든 거인들은 권능에 몸이 녹아내리면서도 신성광휘를 잡아 눌렀으나 신을 막아낼 순 없었다.
남태수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짐승의 발을 보며 대낫을 휘둘렀지만 그의 카르마가 깃든 칼날조차 빛에 휩쓸려 사라졌다.
위기의 순간, 슈트의 탈출기능으로 사출된 남태수는 순식간에 맨해튼 섬 밖으로 날려졌다.
그 잠깐의 사이, 침묵과 광기의 신성광휘는 맨해튼 전체를 뒤덮었다.
무르무르가 섬 주위에 빼곡히 둘러둔 십자가가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았으나, 핵 샤워도 거뜬히 버텨냈던 그 결계는 순식간에 금이 가고 있었다.
‘이게 신……!’
지극히 일부에 불과한 힘으로도 마주하는 순간 모든 것이 파괴된다.
빛에 닿는 모든 건 그 자리에서 소멸했기 때문에 저만한 파괴가 일어나는 와중에도 별다른 소음조차 없었다.
신의 발걸음 앞에 모든 것이 침묵한다.
100시간을 버티는데 그럭저럭 자신감을 보이던 남태수도 저 모습에는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젠장 성진 씨 제발 늦기 전에 와 줘요!’
* * *
사방천지가 불타는 세상에서 성진은 티타니아를 불렀다.
“복수의 시간이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30층에서 대차원문을 만들고 있던 티타니아는 성진의 부름에 즉시 응답했다.
보통 자신의 본모습을 본뜬 정령체로 소환되던 티타니아였으나 이번만큼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간 대차원문의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쥐어 짜이던 사도의 영혼이 티타니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성진은 그 영혼을 받아 청동망치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망치에 불길이 피어오르며 사도가 가지고 있던 권능의 힘이 망치에 발현되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천상의 가장 뜨거운 불꽃으로 네놈을 불태워주마.”
비록 사도의 영혼을 연료로 타오르는 일시적인 불꽃일지라도, 이 불은 미카엘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불과 광채의 권능이었다.
불과 광채의 성좌 본인에게는 통하지 않을, 하지만 똑같은 불과 광채의 사도인 미카엘에게는 통할 사도의 불꽃.
불과 불이 충돌하자 적어도 이쪽이 불타서 계속 피해를 입는 일은 사라졌다.
“보조해라.”
-네!
정령술은 신성마법의 한 가닥으로, 정령의 힘을 빌리는 마법이었다.
빌려오는 힘의 형태와 크기는 시전자의 역량과, 정령 본인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 그 외의 제한은 없었다.
따라서 정령술의 오의는 정령을 자신의 몸에 깃들게 하는 강신.
두 사람의 정신이 이어지자 성진에게도 반신의 신성이 옮겨왔다.
────!
대기가 전부 타 버린 완전한 진공 속, 소리 없는 격돌이 일어났다.
온 세상을 불태워 버릴 싸움.
미카엘은 성진이 왕들의 권능으로 강화되었음에도 그에게 밀리지 않았다.
[약해졌구나 특이점!]
“그걸 단번에 쓰러뜨리지 못하는 걸 보니 너도 정상은 아닌 모양이지?”
전장의 최전선을 달리던 미카엘이 이런 변방의 탑 관리를 맡고 있는 이유.
미카엘은 전투에서 얻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이곳에서 요양 중이었다.
피차 과거의 모습에 비하면 만신창이나 다름없는 영혼을 하고 있는 것.
[그렇다고 해도 너 정도는 아니다!]
미카엘의 불꽃이 하나로 압축된다.
고온 고압의 불길은 이내 검의 형태로 연단되었다.
강렬한 빛 때문에 마치 광선검처럼 보이는 불꽃.
미카엘이 그것을 휘두른 순간 불길 형태의 검강이 성진을 덮쳤다.
검강과 검강의 충돌.
찬란한 광채가 온 세상에 춤추듯 늘어졌다.
두 광채는 서로 상쇄되지 않고 끊임없이 퍼져나가 세상 끝에 닿았다.
혈궁이 충격에 비명을 지르듯 낮게 떨었다.
쇳물이 터지듯 불티가 날렸다.
하나하나가 검강 조각으로 이루어진 불티.
가히 신화적인, 아니 확실히 신화급 카르마로 길이 남을 전투.
그 전투의 끝은,
[내 승리다.]
푹!
미카엘의 검이 성진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래 네가 이겼다.”
가끔은 멀리 돌아가는 길이 더 빠른 길인 법.
“그 무서운 특이점을 쓰러뜨리셨으니 이제 승천하셔야지?”
성진에게서 승리를 쟁취한 미카엘의 영혼에 막대한 카르마가 쏟아졌다.
힘이 차오르는 걸 넘어, 넘쳐나는 카르마를 주체하지 못해 당장 신성존재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네, 네놈……!]
“그럼 이제 천상으로 꺼져.”
[제정신인 것이냐! 그런 식으로 잠깐의 유예를 번다고 해도 그 상태로는 결국 이어지는 싸움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건 네 알 바 아니고.”
[죽지 마라! 내가 돌아올 때까지 다른 놈에게 죽지 마! 네놈을 쓰러뜨린 카르마만이 아니라 네놈을 죽였다는 카르마도 반드시 내가 가지러 올 것이다!]
신성존재가 되어 버린 미카엘은 천상의 법칙에 따라 그곳으로 되돌아갔다.
남겨진 성진은 불타는 자신의 심장을 뽑아내 던져 버리고, 그 안에 드래곤 하트를 심었다.
관리자가 모두 떠난 탑.
이제 그를 막을 자는 없었다.
“가자.”
-네, 선생님.
최후의 플레이어가 탑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