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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부수는 플레이어-152화 (152/170)

<152>

다나와 남태수가 각각 사도와의 전투에 들어갔을 때, 빅토르는 태평궁 내부에 신시아와 함께 남았다.

“빅토르 이바노비치 카렐린. 마지막으로 본 건 탑에서였지. 그새 남태수의 부하가 된 건가?”

빅토르는 최고 레벨 플레이어 중 하나였던 만큼 사도인 신시아와도 안면이 있었다.

신시아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사도인-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는- 남태수의 부하가 되어 나타난 빅토르를 도발했다.

사도인 남태수 본인에게 정보를 얻는 것보다 일반 플레이어인 빅토르를 흔드는 것이 쉬울 거라는 판단에서였으나, 빅토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지금의 나는 그분의 충실한 종이지.”

결국 사도가 되지 못하고 사도의 부하 따위가 되었구나 놀리려던 신시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몰랐지만 지금의 빅토르는 남태수가 신발을 핥으라 하면 감히 본인의 침이 묻어나올까 걱정하며 밑창까지 쪽쪽 빨아먹을 자세가 되어 있었다.

때문에 오히려 빅토르가 신시아를 깔보듯 내려다보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성좌의 권능으로 묶여 있나.”

신시아는 은은한 신성광휘로 묶여 있어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신시아를 지키고 있던 두 사도는 빅토르가 있음에도 굳이 손을 쓰지 않고 다나를 상대하러 나섰다.

어차피 사도를 붙잡아놓기 위한 권능.

당연히 사도도 아닌 빅토르의 힘으로는 풀 수 없으리라는 계산이었다.

“손 떼라. 이건 네놈 능력으로 될 게 아니다. 사도인 남태수가 직접 오지 않는 한에야…….”

“과연 남태수 님의 예상대로군.”

빅토르는 멍청한 사도들을 비웃어주며 그림자 3번을 열었다.

그곳에서 튀어나온 것은 바로 천사 산달폰.

-이거라면 내 권한으로 해제가 가능한 종류의 봉인인데. 다만 내가 직접 건 봉인이 아니라 몇 분은 집중이 필요할 거야.

“충분해.”

천사를 데리고 다니며 수족처럼 부리는 그 모습에 신시아는 눈을 크게 떴다.

“도대체 무슨 성좌를 모시고 있기에 천사마저…….”

“성좌가 아니다.”

그러는 사이, 저 멀리선 다나가 밀리아의 목을 따고 있었다.

“보아라, 저기 다나 님이 싸우시는 모습을.”

“다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설마 저 애까지 사도로……!”

“사도를 상대하는 데 성좌의 힘 따윈 필요 없다.”

“지랄 마. 인간이 어떻게 플레이어로서의 힘도 없이 사도를 상대해!”

“인간은 원래 그럴 수 있다.”

빅토르는 자신의 손 위에 검은 불꽃을 피워냈다.

웨어울프로 종족이 바뀌며 자연스럽게 육감을 각성한 신시아는 그것이 스킬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능성. 성좌의 유혹에 홀려 그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면 인간은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

“뭐라고……?”

“남태수 님도. 다나 님도 성좌의 사도 따위가 아니다. 두 선지자께선 스스로의 노력으로 저 경지에 도달하셨다.”

빅토르에게 남태수와 다나는 주성진과 삼위일체를 이루는 성인이었다.

때문에 그는 다나의 친족인 신시아가 사도로서 성좌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버렸지. 하지만 다나 님께선 네년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지키려고 하신다.”

“……좀 강해졌다고 해서 인간의 힘으로 그 괴물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렇다면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을 잘 봐둬라 어리석은 사도야.”

빅토르는 경건한 마음으로 저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투를 바라보았다.

“저분들이야말로 인간을 옳은 길로 이끌어주실 진정한 메시아시다.”

* * *

같은 시각.

남태수는 그림자를 타고 미끄러지며 엔리케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피와 폭식의 사도.

‘놈에게는 상대의 힘과 능력을 흡수하는 권능이 있으니 공격을 허용하면 안 된다.’

남태수에겐 치명적인 권능이지만 사실 엔리케 본인의 전투력은 그리 무섭지 않았다.

엔리케 라미레즈는 떡대를 자랑하는 성기사였지만, 피와 폭식의 성좌는 생과 사의 성좌와 달리 전투적인 녀석이 아니었다.

‘이름만 들으면 광전사 같지만, 실은 전장에서 적을 학살하며 강해지는 성좌가 아니라 하이에나 같은 성좌랬지.’

즉, 최초의 일격을 허용하지 않으면 스노우 볼이 굴러가지 않는 저점이 낮은 사도.

게다가 남태수는 작정하고 사도와의 전투를 준비해온 상태였다.

“레일건 발사.”

남태수가 통제를 위해 주차해둔 차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차량의 트렁크가 열리며 레일건이 튀어나와 엔리케를 향해 발사했다.

성기사의 보호막은 레일건의 대미지를 막아냈지만, 순수한 질량과 물리력에 의해 엔리케가 뒤로 날아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놈! 정정당당히 승부해라!”

“내가 유리하면 비겁한 거고 네가 유리하면 정정당당한 거냐? 개소리하지 마.”

절대로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앞서 남태수가 이동시킨 차량들에는 미리 타이탄 코어로 제작해둔 난쟁이 장비들이 들어있었다.

무르무르가 없어도 마력만 불어넣으면 언제든 작동할 수 있게 만들어진 그 무기들은 치밀한 계산에 따라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애초에 노인 외에도 다른 사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상황.

당연히 남태수는 어떤 사도가 나타나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그래도 한 번에 이만큼이나 튀어나올 줄은 몰랐지만.’

자기 앞에 하나.

무르무르 앞에 하나.

다나와 빅토르 앞에 둘.

신시아를 제외하고도 4명이나 동시에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이거 안 좋은데.’

사도를 상대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건 권능이었다.

아무리 남태수가 초월자라도 성좌의 힘을 빌려온 기술에 당하면 위험했으니까.

‘권능을 상대로 가장 좋은 방법은 쓸 새도 없이 조져 버리거나, 철저히 준비해 카운터를 먹이는 것.’

노인이 있다는 건 확실했으니 그에 대한 준비를 해둔 덕분에 그는 아무것도 못하고 남태수에게 제압당했다.

그러나 다른 사도의 경우에는 노인처럼 공짜로 발라먹긴 힘들다고 봐야 했다.

‘하나도 아니고 이렇게 여러 명이 한 번에 나오면 권능을 아예 못 쓰게 하고 잡는 건 불가능하다.’

문제는 지금처럼 여럿이 나올 경우에 있었다.

‘이 새끼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들이 밀리는 것 같으면 필살기를 쓸 거야.’

사도의 권능은 어떤 성좌를 모시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필살기라 함은 모두 같았다.

‘강신.’

탑의 30층에서 리처드 카이만이 성좌를 불러냈던 바로 그 기술.

성진이 청동망치를 부를 수 있을 만큼 회복되어 있던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났으리라.

‘그때 성진 씨가 기습을 먹인 덕분에 불과 광채의 성좌도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다지.’

천상의 성좌들은 서로 협력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론 경쟁관계였다.

불과 광채의 성좌가 다친 상태로 다른 성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면 그 즉시 다른 놈들에게 뜯어 먹히리라.

때문에 놈은 성진이 이곳에 있다는 정보를 알고도 몸이 회복되기 전까지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사도인 리처드 카이만도 붙잡혀 있으니 회복하는 동안 완전히 손발이 묶인 상태로 이 전쟁에서 리타이어된 셈.

반면 지금은 그때와 달리 강신할 사도도 여러 명이고, 청동망치를 든 성진도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강신 쓰면 못 막아.’

사도들이 안 되겠다 싶어 일제히 자기 성좌를 부르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당장 남태수가 살아나가기 힘든 건 둘째 치더라도, 마구 호출당한 성좌들이 탑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면?

‘그땐 진짜 타임어택을 넘어서 서든데스가 시작되는 거야.’

그러니 노인처럼 강신을 쓰기 전에 잡는다.

남태수는 그런 목적으로 엔리케를 유인하고 있었다.

[무르무르, 북극성은?]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1호가 지금부터 18분, 2호가 23분간 북경을 사정권에 담습니다.

[천벌 투하해.]

-마스터의 뜻대로.

천벌.

과거 미국에는 신의 지팡이라는 이름의 위성병기 계획이 존재했다.

방사능이 퍼지는 핵미사일 대신, 궤도상에 위성을 띄워놓고 거기서 텅스텐 막대를 떨어뜨리는 계획.

궤도상에서는 단순히 무거운 물체를 떨어뜨리기만 해도 점점 가속해 운석이 낙하하는 것과 같은 파괴력을 낼 수 있었다.

“그간 인공섬에서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란 말이지.”

이 계획은 단점이 많아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지만, 난쟁이 기술과 마법을 가진 남태수에겐 달랐다.

그는 인공섬에 펼쳐둔 이클립스의 어둠 속에서 몰래 수백 개의 위성을 띄워 올렸다.

마법으로 은폐된 이 위성들은 대량의 병기를 탑재한 채 지구 전역을 커버했다.

궤도상에서 타이탄을 운용하는 건 지속적으로 마력을 보급할 방법이 없어 힘들었지만, 이 방식은 그냥 적재된 물건을 떨어뜨리기만 하면 됐다.

“천벌.”

그것은 소리 없이 낙하했다.

“허?”

엔리케는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마력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강화된 그의 시력에도 특별히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시각은 이상을 느끼지 못한다.

육감은 비상을 외친다.

두 감각의 괴리감 속에서 엔리케는 마침내 하늘에 천천히 그어지고 있는 검은 실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아니, 천천히가 아니었다.

너무 멀리에 있기에 천천히 그어지는 것처럼 보이던 그 선은 엄청난 속도로 지상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신의 지팡이 계획은 텅스텐 막대를 떨어뜨리게 되어 있었지만, 남태수의 천벌은 달랐다.

떨어지는 건 살아 있는 그림자 한 마리.

“허튼 수작을.”

엔리케의 검기가 살아 있는 그림자를 갈랐다.

살아 있는 그림자는 죽으면 그 안에 들어있던 모든 것을 내뱉는다.

천벌 안에 들어있던 것은 어떠한 생물의 사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들어는 봤나?”

남태수가 보아온 그 어떤 생물보다 거대한 몸체가 하늘을 가렸다.

“마왕 받아라.”

마왕 염제의 사체가 지상을 강타했다.

[먹어치워라.]

염제의 몸뚱이에 깔리는 순간 엔리케는 피와 폭식의 권능을 발동했다.

사체를 흡수하고 그 힘을 빼앗는다.

덕분에 북경 일대를 초토화시키기에 충분했던 천벌은 태평궁 인근을 파괴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하하 멍청한 놈! 힘이! 힘이 솟아난다!”

엔리케는 염제의 사체를 흡수하고 전신에 힘이 끓어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아니, 실제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감당할 수 있는 것만 삼켰어야지.”

폭식의 권능은 신성존재의 힘이라 초월자의 사체도 삼킬 수 있었다.

그러나 권능으로 흡수한 힘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엔리케 본인.

1단계 초월자인 엔리케의 육체는 2단계 초월자인 염제의 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뭐, 뭐냐! 그만! 그만!”

사도가 되며 육감이 트였다곤 해도 마력을 조작하는 연습 따윈 해본 적도 없는 엔리케였다.

그는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끓어오르기 시작한 염제의 마력을 잠재우지 못하고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냐! 이것은 성좌의 권능인데!”

“성좌가 뭐 네 얼굴이 예뻐서 그런 힘을 줬겠냐? 너 좋으라고 준 게 아니라 자기 편하려고 준 건데 형편 좋게 너한테 딱 맞게 작용할 리가 없잖아.”

애초에 인간의 힘이 아니다.

그걸 인간의 관점에서 써먹으려고 들면 저런 꼴이 나는 것.

“잘 가라 멍청아.”

남태수는 자신이 맡은 상대를 불지옥에 처박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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