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150화 (150/170)

<150>

“저 새낀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지만 그냥 미친놈이 맞는 것 같아.”

평화궁에서 멀리 떨어진 곳.

남태수는 빅토르를 내보낸 뒤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열정적인 게 보기 좋지 않습니까?

“열정적인 게 아니라 열성적인 거 아니냐 저건?”

말 안 듣는 것보다야 낫긴 한데, 저걸 좋아해야 할지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탑에서 나왔을 땐 저쪽이 대기를 타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지만, 원래 사령술사는 뒤에서 전장을 관리하는 법이지.”

남태수에게는 차원문이 있었으므로 전장을 확대시켜 놓고 다방면에서 치고 빠지는 편이 유리했다.

또한 그가 가진 전력이 상대보다 우세하다고 해도 핵심인 남태수 본인이 사도에게 권능을 맞으면 위험한 것은 똑같았다.

“일단 빅토르 그림자에 애들 넣어놨고, 다른 쪽은?”

-3분 후 북극성 1호와 2호가 사정권에 들어옵니다.

“……그 이름은 또 누가 지은 거야? 너냐? 너지 인마?”

-마리아 대수녀원장입니다만.

“어쩐지 유난히 좋은 이름이다 싶더라고.”

당장의 국면은 이랬다.

남태수가 권능에 당하면 치명적인만큼, 상대인 노인 또한 남태수의 권능을 의식해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 대신 남태수는 빅토르를, 노인은 신도들을 앞세워 전황을 살펴보고 있는 상황.

“먼저 패를 까는 놈이 불리해지는 상황. 아쉬운 건 저놈들이지.”

빅토르는 혼자서도 노인의 부하들을 쓸어 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빅토르는 성진의 혈청을 받아 고위 흡혈귀의 육체를 갖추었다.

딱히 피를 많이 빨진 못했지만, 드래곤 하트 조각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 마법 없이도 상당히 강력한 상태였다.

“아마 초월자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면 누가 덤벼도 죽진 않겠지.”

이기진 못해도 죽진 않는다.

이러한 흡혈귀 능력에 더불어 현재 필드에는 이클립스가 깔린 상태.

흡혈귀인 빅토르는 밤이 되어 2배 강력해졌고, 적들은 저주의 효과로 2배 약해졌다.

이 상황에서 맞다이로 빅토르를 잡을 수 있는 플레이어는 손에 꼽으리라.

“빅토르 하나로 노인을 끌어낼 수 있으면 최선이긴 한데.”

노인이 혼자서 신시아를 생포할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사도 둘 이상을 상대해야 하리라.

“내가 나서기 전에 어디까지 이득을 뽑아먹을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할까.”

남태수는 계속해서 빅토르를 전진시켰고, 빅토르는 막아서는 모든 적을 분쇄하며 나아갔다.

그리고 내궁으로 들어선 순간.

-노인은 끝까지 나서지 않고 싶은 모양이군요.

15명의 랭커로 이루어진 공격대가 태평궁에서 튀어나왔다.

빅토르의 능력이라면 랭커라고 해도 1대1로는 바를 수 있다.

그러나 손발을 맞춰 시너지를 내고 있는 팀 단위로 공략해온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노템에 스킬도 없이 스탯만으론 어쩔 수 없나.”

빅토르는 15인을 상대로 점차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스펙이 뛰어나도 아직 전투 중에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적은 탓.

“하지만 장비랑 인원이 부족한 거라면 채워주면 돼.”

[빅토르, 그림자 1번.]

남태수의 명령에 빅토르의 발밑에서 살아 있는 그림자가 꿈틀대며 병사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명을 받듭니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것은 마티아스를 비롯해 요정들의 영혼이 들어간 데스나이트 30기.

불타는 검과 13강 AK, 난쟁이 미니건에 로켓포로 무장한 요정기사들이 등장하자 순식간에 전황이 뒤집어졌다.

콰과과광!!!

폭발과 함께 불꽃이 치솟았다.

지금까지 하늘이 어두워진 것을 제외하면 대인전으로만 진행되어 조용하던 북경이 본격적으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남태수는 그에 맞춰 바깥에 대기시켜두었던 차량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량부대 이동 시작.]

그의 명령에 시내 곳곳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 내부에 그림자가 일렁였다.

지난 며칠간 인류해방전선은 태평궁 근방의 온갖 주차장에 몰래 살아 있는 그림자가 스며든 자동차를 갖다 두었다.

그렇게 북경 곳곳에 주인 없이 방치되어 있던 차량들은 남태수가 명령한 순간 스스로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을 숨겨둔다면 사도의 눈을 피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그게 일반인들이 타고 다니는 것과 하등 다를 거 없는 자동차라면?

“일반 시민까지 모두 걸어 다니라고 명할 게 아니라면 이것까지 막을 순 없지.”

[차량으로 민간인 못 들어오게 선 긋고, 막아서는 놈들이 있으면 그냥 박아 버려.]

차량들은 남태수의 지휘아래 봉쇄선을 치고 길을 틀어막기 시작했다.

“막아! 막아!”

“미친 운전자가 없는데 어떻게 막아!”

“바퀴를 터뜨리든 엔진을 부수든 해 버려!”

어차피 고레벨 플레이어를 상대론 덤프트럭이 풀악셀을 밟고 들이받아도 안 된다.

이쪽은 사실상 민간인들의 출입을 막고 판을 짜기 위한 수.

“이걸로 저쪽에서도 우리가 작정하고 대대적으로 쳐들어온 것이라는 걸 알았겠지. 어떻게 할 테냐?”

그러는 사이 빅토르는 랭커들을 뚫고 대웅전에 들어섰다.

빅토르 하나에 미드가 오픈될 판이 되자 마침내 노인이 직접 나섰다.

“과연 사령술사답게 치졸한 수를 쓰는군.”

노인이 손을 들어 올리자 빅토르는 무형의 힘에 의해 대웅전 바깥으로 날려 보내졌다.

“부하들을 보내놓고 자신은 어딘가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겠지? 언제까지 그럴 수 있나 보겠다.”

쿵!

또다시 휘둘러진 무형의 힘이 데스나이트 하나를 통째로 으깨 버렸다.

노인은 계속해서 알 수 없는 힘을 휘둘러 데스나이트를 하나씩 처단해갔다.

“데스나이트 몸으로는 화력을 못 버티네. 그렇다고 어스름에서 가져온 몸들을 쓰면 너무 눈에 띌 테고.”

-전투에 특화된 타입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사도라고 화력이 상당하군요.

평화와 화합의 성좌.

연합은 이미 무명왕의 기록을 통해 성좌들의 정보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놈은 뇌가 비대하게 발달한 정신능력자 종족 중 하나였습니다. 순수 정신체가 아니었기에 신성을 얻고도 육체에 얽매여 있었고, 그걸 개조하려는 과정에서 천상과 접촉한 존재입니다.

그리하여 천상에 합류한 이놈은 다른 생물의 뇌를 떼어다 붙일 수 있도록 자신을 개조했다.

-두뇌수집가. 죽이고 영혼만 취해가면 되는 다른 성좌들과 달리 멀쩡한 머리통을 손에 넣기 위해 정신조작 능력이 발달한 놈입니다.

사도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정신조작 권능도 이놈 작품이었다.

-전반적으로 주변에 연동할 수 있는 뇌가 많을수록 강해집니다. 머릿수부터 줄여놓으면 알아서 약해지는 놈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문제는 도시에 가득할 놈의 신도들이고 말이지.”

이미 도시의 상공에 이클립스를 펼쳐둔 마당이지만, 남태수는 여기서 대량으로 언데드를 일으켜 민간인들까지 죽여 없앨 생각은 없었다.

“방법은 있어.”

-저로서는 괜히 쉬운 길을 마다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날 믿어. 요는 저놈이 사람들의 정신을 자기 자원으로 쓰지 못하도록 만들면 되는 거잖아?”

[빅토르, 그림자 4번.]

대량의 마력반응.

그림자 속에서 머리를 내민 본 드래곤은 빼꼼과 동시에 장전해둔 브레스를 발사했다.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온 강력한 화력에 노인은 크게 얻어맞고 날아갔다.

공격 자체는 막아냈어도 몸이 인간인 이상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리라.

남태수는 그사이 빅토르를 전장에서 이탈시키고 언데드만으로 노인을 포위했다.

[우리 목적은 어디까지나 신시아의 확보다. 너는 탐색에 집중하도록.]

“존명.”

그러는 사이, 전장의 반대편에서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태평궁 바깥 북쪽에서 언데드 소실 반응.

“뭐? 거긴 왜?”

-웨어울프들입니다. 막을까요?

혼란을 틈타 신시아가 움직인 웨어울프들이 태평궁 내로 잠입하고 있었다.

“아니…… 막지 말아봐. 양동으로 쓰자.”

남태수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그쪽에 있는 차량 하나 드론으로 개조해서 웨어울프들을 태평궁 내부로 유도해. 놈들이 뭘 더 우선하는지 보자고.”

날려간 노인은 하늘에서 주변 상황을 파악하곤 강력한 힘의 파장을 발했다.

내궁의 정원 위에 떠 있는 노인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파장은 마치 EMP처럼 북경 전체로 퍼져나갔다.

“큭!”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강력한 정신적 충격.

가장 먼저 회복한 남태수는 주변의 상황부터 파악했다.

“무르무르! 피해는?”

-차량을 조작하던 영혼 없는 언데드가 모두 소멸했습니다.

노인이 발한 정신적 EMP는 범위 내에 있던 모든 존재의 육체와 정신의 연결을 일시적으로 끊어놓았다.

영혼이 없는 언데드는 한순간이라도 연결이 끊어지면 그 자리에서 소멸한다.

-민간인들도 기절했을 테지만, 앞선 피난권고 덕에 대부분은 실내에 있어 피해가 덜한 모양이군요.

길에 서 있다가 의식이 날아가 넘어지면 그것만으로도 뇌진탕이 올 수 있었다.

때문에 남태수는 빅토르를 통해 습격 전 피난권고를 하고서야 공격을 개시했다.

실제로 북경을 떠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그러나 최소한 사람들이 실내로 들어가게 만들 수는 있었다.

앞선 피난권고는 사실 피난권고라기보다는 공습경보 사이렌을 울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것만 가지고는 여전히 휘말린 민간인이 많이 나오겠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미리 공격을 예고할 순 없으니까.”

신시아를 구출하려고 이러는 건데 미리 예고를 하면?

노인은 그냥 신시아를 다른 곳에 옮겨 버리리라.

-그 외의 피해는 전무합니다.

영혼 없는 언데드는 정신파에 바로 실 끊긴 인형이 된다지만, 진짜 영혼이 들어있는 언데드들은 달랐다.

“왜 멀쩡한 것이지?”

그러나 노인을 포위하고 있던 데스나이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압박했다.

“옳아. 이게 네놈의 권능이로구나! 부하를 강화시키는 류인가? 사령술사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군!”

노인은 요정기사와 웨어울프들의 반응을 보며 남태수의 권능을 추측했다.

남태수는 거기에 확신을 주기 위해 타이탄을 호출했다.

[타이탄 강하 개시.]

-타이탄 강하 개시. 낙하지점에 주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어둠의 장막 너머.

궤도 위에 띄워놓은 수송용 위성에서 강철의 거인들이 낙하했다.

“데스나이트의 육체가 힘에서 밀린다면, 이건 어떨까?”

이클립스의 범위를 벗어난 고고도.

어둠의 장막을 이용해 북경 상공에 날아온 수송선에서 타이탄이 낙하했다.

[평화와 화합의 사도를 붙잡아라.]

타이탄에 들어간 거인의 영혼들은 남태수의 명에 따라 요정기사들에게 가세했다.

노인이 발하는 역장을 타이탄이 힘으로 잡아 뜯고, 그 틈을 파고든 데스나이트들이 목을 노린다.

정신계 성좌의 사도답게 노인의 전투능력은 기껏해야 평균적인 랭커 수준밖에 안 됐다.

타이탄의 출력으로 염동력을 감당할 수 있게 되자 천상과의 전장에서 활약하던 용사들은 순식간에 노인을 몰아쳤다.

노인은 방어 대신 회피에 나서며 타이탄이 떨어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본체는 위쪽이렷다!”

머리 위의 수송선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존재감.

노인은 그 거대한 존재감을 근거로 남태수의 위치를 확신했다.

“염동연동.”

의식을 잃어도, 잠에 빠져도 뇌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북경에 있는 모든 인간의 정신과 연결하여 강대한 정신력을 확보한 노인은 가장 단순한, 그러나 강력한 공격을 준비했다.

“사이킥 볼텍스.”

정신력을 강제로 확장시키는 염동연동은 아무리 사도라고 해도 인간의 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때문에 노인은 이를 최대한 단순하게 가공했다.

수천만 명의 정신력을 모아, 그냥 염동력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단순하다 못해 무식한 방식이지만, 전방위를 휘감고 도는 염동폭풍은 무적의 방패이자 최강의 탄환이었다.

이러한 폭풍을 전신에 휘감은 노인은 총알처럼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븅~신.”

그리고 그것이 남태수의 노림수였다.

태평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북경의 한 거리.

겨울용 코트 차림의 남태수는 머리 위의 ID를 가리기 위해 쓰고 있던 우산을 접었다.

노인이 머리 위에서 감지한 거대한 존재감.

그것은 바로 노인을 유인하기 위해 마력을 뿜어내고 있던 무르무르였다.

“자, 그럼 이제부터 네가 염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연동한 수천만 명의 정신을 깜짝 놀래볼게.”

남태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드래곤 피어를 끌어올렸다.

탑의 초반부에서 성진은 기합만으로 몬스터를 전부 쓰러뜨린 전적이 있었다.

죽이는 게 아니라면, 자신도 못 할 건 없지 않은가?

“갈(喝)!!!”

드래곤 피어가 북경의 민간인들을 강제로 각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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