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자금성.
아니, 한때 자금성이 있었던 그곳에는 지금 태평교단의 평화궁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 명분과 상징성을 찾을 것이라면 공산주의자들의 전통도 이어받지 그랬나?”
신시아는 권능에 의해 묶여 있는 와중에도 노인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전통?”
“그놈들은 제 지도자를 박제해서 전시해놓는 전통이 있었다지? 네놈의 그 비루한 몸뚱이도 미라로 만들어놓으면 잘 어울리지 않겠나.”
투둑!
그 말과 동시에 신시아의 송곳니가 뽑혀 나왔다.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지 마라.”
“엿이나 먹어.”
신시아는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웃었다.
미소와 함께 드러난 그녀의 이에는 이까짓 걸로는 막을 수 없다는 듯이 이미 송곳니가 다시 자라나 있었다.
이번에는 턱에 말뚝이 박혔다.
괜히 입을 털다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었지만 신시아로서도 이유가 있는 행동이었다.
‘사람을 붙잡아놓고 뭐하자는 거지?’
죽일 생각이었으면 붙잡을 필요도 없었다.
실제로 그녀를 습격한 이들은 그녀를 생포하기 위해 추가적인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힘들게 생포를 했다는 건 정보를 캐내든 뭘 하든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건데. 고문은커녕 오히려 입을 틀어막는다?’
“흐흐흐, 눈알 굴리는 모습이 답지 않게 귀엽구나. 슬슬 네년도 알 수 있겠지. 맞다. 우린 네년에게 관심이 없다.”
사도만 죽으면 남은 웨어울프쯤이야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분명 그들은 강대한 세력이지만, 사도의 비호를 받지 못하는 이상 지구상에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게 될 테니.
그러니 지분만을 목적으로 했다면 그냥 신시아를 죽이고 나온 걸 알아서들 갈라먹으면 될 일이었다.
굳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하나뿐.
“네년을 붙잡아두고 있으면 네년의 협력자도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
마왕 남태수 또한 인공섬 밖으로 끌어내 죽인다.
“네년의 동생이 마왕 남태수와 붙어먹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새로운 사도를 끌어들이기 위해 동생까지 팔아먹고. 아주 야심가야.”
“……!”
신시아로서는 개소리 말라는 외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소리였다.
다나의 행동은 신시아의 의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나는 센트럴 시티에서 신시아가 붙여두려던 웨어울프들을 역으로 굴복시켜 자신의 무리로 편입시키고 그녀의 손에서 벗어났다.
이 와중에 그걸 보고 신시아가 남태수와 붙어먹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억울할 만도 했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놈들은 내가 실제로 그놈과 한편이든 아니든 상관치 않을 놈들이다.’
그냥 신시아를 일방적으로 족칠 명분이 생겼으니 족칠 뿐.
오해?
그딴 건 신경도 쓰지 않으리라.
‘하지만 다나의 존재가 드러난 건 안 돼.’
그래서야 의미가 없다.
다나까지 놈들의 표적이 되면 신시아가 해온 모든 일이 무의미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언니로서 동생이 외간남자와 붙어먹었다는 소리를 흘려 넘길 수도 없고.’
사실 이쪽 지분이 한 80%는 된다.
그리하여 상대의 목적을 알게 된 신시아였으나, 그녀는 잡혀 있는 상태였다.
애초에 노인도 신시아를 완벽하게 확보했다고 생각했기에 그 이야기를 해준 것이었으니까.
-아직인가?
신시아는 권능에 의해 포박당해 모든 능력이 차단당한 상태였다.
아무리 그녀라도 이 상태에서 다른 사도를 쓰러뜨리고 홀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이 아니라면 이 상태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10분 안으로 준비가 끝납니다.
웨어울프의 신경망.
신시아는 그것을 이용해 잡혀 있는 와중에도 바깥의 웨어울프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다만, 그 전에 저들이 먼저 움직일 모양입니다.
“저쪽도 도착한 것 같군.”
* * *
평화궁 공략전.
그 선봉을 맡게 된 빅토르는 홀로 정문 앞에 나섰다.
“빅토르? 저거 그 ‘사도가 되지 못한 자’ 아니야?”
299레벨의 플레이어였던 빅토르는 이미 그 이름과 얼굴이 대중에게 알려져 있었다.
최근에는 탈옥수로 더 유명해진 그가 갑작스레 등장하자 평화궁의 보안팀은 소란스러워졌다.
“안 그래도 사도께서 곧 습격이 있을 거라더니. 인류해방전선에서 전령을 먼저 보낸 건가?”
“어이, 네가 내려가서 확인해봐.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그래 봐야 레벨 제로.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은 모두 잃어버렸을 거 아냐?”
어차피 세계정부가 모든 걸 지배하고 있는 시대.
사도가 기거하고 있는 평화궁에 쳐들어올 외적 따윈 없었으므로 보안팀은 사실상 건물 관리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노인은 이들에게 사도를 잡아왔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기 따윈 해주지 않았다.
빅토르는 멀리서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표정을 굳혔다.
“버림패. 아니, 버림패 정도로도 쓰지 않는 건가.”
당장 그들이 아니더라도 언제 웨어울프들이 습격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경계를 엄중히 하긴커녕 부하들을 방치해놓았다.
마치 부하들의 목이라도 내주는 것처럼.
“사람 몇 명 목숨보단 자기가 다른 사도를 감금해놨다는 사실이 퍼져 이미지가 실추되는 게 더 싫다는 건가. 가지가지 하는군.”
“정지, 정지, 정지!”
벽 너머에서 수하를 시도하는 동안 특수한 은신 아이템을 지닌 한 명이 몰래 그에게 다가왔다.
플레이어가 아닌 민간인이나, 플레이어라도 딱히 탐지스킬이 없다면 이 기습에 바로 제압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빅토르는 은신상태인 병사의 생명반응을 꿰뚫어 보았다.
“그 아이템도 피 냄새는 지워주지 못하는 모양이군.”
내뻗은 손에 사람의 목이 잡혔다.
피부의 접촉.
그것을 매개로 혈마술을 발동시킨 빅토르는 상대의 행동을 완전히 제압했다.
-평화와 화합의 신자들은 들어라!
이어진 빅토르의 목소리는 마력파와 함께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너희들의 사도는 다른 이들과 야합하여 침묵과 광기의 사도를 납치하고 감금했다!
-우리는 신시아 스펜서를 돌려받기 위해 왔을 뿐이며, 그 외의 인간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
-이것은 대피 권고다!
-싸우지 않는 자는 건드리지 않는다!
-죽고 싶지 않은 자는 이곳을 떠나라!
-노인은 너희가 바란 평화와 화합을 주지 않는다!
빅토르는 정해진 내용을 읊으면서도 다소 회의적인 생각이었다.
‘이렇게 목이 터져라 외쳐봐야 노인은 저 안에서 코웃음이나 치고 있겠지. 차라리 돌격을 명령해주신다면…….’
그런 그에게 신의 계시가 내려왔다.
[이게 무슨 헛짓거리냐.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지?]
‘나, 남태수 님?’
마치 생각을 읽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절묘한 타이밍.
빅토르는 화들짝 놀라 몸가짐을 바로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남태수 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신성한 임무에 그런 생각을…….’
[어허, 얘가 사람이 무슨 성좌 새낀줄 아나. 신성존재라도 틀릴 때는 틀려. 그러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는 게 정상이야.]
바깥에서 무공을 배운 이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빅토르였다.
또한 바깥에서 마법을 배운 이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 또한 빅토르였고.
때문에 빅토르에 대해서는 남태수도 꽤나 신경을 쓰며 지켜보고 있던 와중, 표정을 보고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너무 답답하다고 생각하지 마. 대피 권고는 어디까지나 민간인들을 위한 거니까.]
이곳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평화와 화합의 성좌를 따르고 있는 신도들도, 신도가 아니지만 그냥 이 근방에서 살고 있을 뿐인 사람들도 있었다.
남태수가 보기에 성진이라면 그러거나 말거나 밀고 들어가서 적들의 머리통을 다 으깨놓겠지만, 그건 성진의 방식이지 남태수의 방식이 아니었다.
[이건 민간인들을 위한 경고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다만 성진의 방식에서도 배울 점은 하나 있었다.
[사도 새끼랑은 대화 안 해. 그 새끼한테 줄 건 죽음뿐이야.]
그리하여 남태수는 빅토르가 바라 마지않던 말을 해주었다.
[자, 경고 다 했으면 이제 가서 남아 있는 놈들을 다 부숴 버려.]
“역시 남태수 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셔……!”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의 간사한 마음 따윈 진작부터 꿰뚫어 보고 있었으리라.
“신의 사도를 참칭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널린 이 시대에, 진정한 신의 사도를 보고도 허튼 생각이라니. 정신 차리자 정신.”
빅토르는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이미 완전하신 남태수 님께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믿음뿐이니 믿음으로 답하겠나이다.’
기도를 올린 빅토르는 저주로 무력화된 보안팀을 내버려 두고 당당히 정문으로 쳐들어갔다.
“수배자가 제 발로 찾아오다니. 자수라도 하시려고?”
100레벨 미만의 플레이어들은 남태수의 일식 아래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인원이 무력화되자 평화궁에서도 상위 플레이어들을 내보냈다.
“평균 레벨 130이라.”
사도라도 휘하에 랭커들을 쌓아두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상위 플레이어를 잡졸처럼 부리는 건 대단하긴 했다.
“왜? 쫄리시나?”
“댁이 과거에 얼마나 대단한 플레이어였든 지금은 0레벨이잖아? 무슨 깡으로 여길 들어왔대.”
레벨제로.
플레이어로서 부여했던 모든 능력을 수거해가는 그 권능에 당하면 스킬도, 스탯도, 인벤토리도 뭣도 못 쓴다.
사실상 NPC랑 같은 상태가 되는 것.
“저런 놈쯤은…….”
도적 계통의 플레이어 하나가 수술용 장갑처럼 얇은 장갑을 착용하며 앞으로 나섰고,
“몸풀기도 안 되겠군.”
“컥……!”
동시에 목이 꺾이며 빅토르의 발 앞에 쓰러졌다.
“뭣?”
“놈은 흡혈귀로서의 종특밖에 남지 않았을 텐데? 흡혈귀가 이렇게 세다고?”
“전원 진형전개!”
아군의 등을 맞출 걱정 없이 원딜들은 뒤에서 공격만 하면 되는 게임과 달리, 현실에서는 손발이 안 맞으면 팀킬도 일어날 수 있었다.
신도들은 상위 플레이어답게 순식간에 진형을 갖추었지만, 빅토르가 이미 마법을 발동시킨 뒤였다.
“검은 불꽃.”
흑마법 계통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그러나 마력을 팍팍 집어넣어 위력만은 사람을 통째로 화장해 버리기에 충분한 불꽃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신도들은 레벨에 걸맞게 나름대로 저항력 아이템을 갖추었으나, 빅토르의 검은 불꽃을 막을 순 없었다.
“억……!”
“으아아아아악!”
화염 저항력이 낮은 이들은 순식간에 폐가 익어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높은 저항력을 지닌 탱커들은 충분히 회복 가능한 상처에 그쳤으나, 온몸이 불타는 고통에 정신을 못 차렸다.
그나마 진형상 후방에 서 있던 이들은 대처에 성공했으나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레벨제로가 스킬을……!”
“스킬이 아니다.”
애초에 스킬로 배우는 검은 불꽃은 저레벨 마법이라 대미지도 낮다.
이는 플레이어의 레벨이 올라가고 아이템이 좋아져도 한계가 있었다.
반면 빅토르가 사용한 검은 불꽃은 드래곤 하트 조각을 먹고 나온 마력을 담은, 용의 불꽃.
어설프게 방어를 시도한 탱커들은 갑옷째로 익어 버렸다.
“진정한 인류의 령도자 남태수 님께서 가로되.”
빅토르는 하늘을 향해 양팔을 펼쳤다.
“어둠이 있으라.”
북경의 하늘에 일식이 찾아왔다.
* * *
한편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남태수는 마시고 있던 마나 포션을 뿜었다.
“미친놈인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