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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부수는 플레이어-142화 (142/170)

<142>

인공섬에 도착한 순간, 남태수의 강약약강은 찬란한 카르마에 짓눌려 빛을 발했다.

눈앞에 사도가 여덟.

아니 아홉.

더 이상 자신이 확실한 우위에 서 있다고 느끼지 못한 순간, 정신이 되돌아왔다.

‘내가 미쳤지.’

강약약강은 일반급 카르마.

무언가 대단한 힘을 부여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정신적 버프를 조금 걸어줄 뿐.

문제는 그 버프가 강자를 만나자 역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내가 거기서 왜 나서가지곤. 세상이 망하든 말든 나 같은 놈이 뭘 할 수 있다고. 그냥 성진 씨한테 맡겨놨으면 무슨 묘수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사도를 상대로 할 만한 것도 한둘이지, 아홉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남태수는 위기에 처하면 원래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되는 성격.

혼자였다면 여기서 어이없게 무너질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스터.

‘내인생은망했어나는이제끝이야차라리그냥자살을할걸어설프게살아서무슨부귀영화를맛보겠다고이제사도한테붙잡히게생겼으니…….’

-다 마스터를 위한 거니 그냥 달게 받으십시오.

무르무르의 저주가 남태수에게 작렬했다.

광폭화.

이성을 잃고 무분별하게 적에게 달려들게 되는 저주.

분명 디버프였지만, 이 상황에서는 배신이라고 인식되지 않는지 무르무르는 문제없이 저주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주에 걸린 남태수는,

“다음.”

그 자리에서 오메가의 목을 따 버렸다.

[크아아아악!]

천사인 오메가는 목이 좀 잘렸다고 죽진 않았다.

그러나 잘린 목이 비명을 내지른다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사도들은 일순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주춤했다는 것은 심적으로 밀렸다는 것.

정신에 빈틈이 생겨난 순간, 남태수의 드래곤 피어가 그들의 육체를 장악했다.

어둠이 일렁였다.

“이런……!”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사내.

피와 폭식의 사도 엔리케 라미레즈는 자신의 그림자가 촛불처럼 일렁이는 모습을 보자마자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즉시 반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데스나이트의 검은 그의 발을 관통했다.

“170레벨 주제에 신체강화계 권능을 가진 내 육체를 뚫다니, 이게 네놈의 권능인가!”

아니었다.

이것은 그저 8대 종족의 필두로 꼽히는 용족의 힘이 담긴 저주가 엔리케의 육체를 약화시켰기 때문.

마법 자체는 평범한 공격계열 흑마법이었으나, 그들은 스킬이 아닌 직접발동방식의 마법에 당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덕분에 강인한 육체능력으로 반응마저 빨랐던 엔리케와 달리, 마법사들은 대응이 느렸다.

“꺄악!”

음유시인 계열의 마법사였던 밀리아는 정통으로 데스나이트들의 검에 꿰뚫렸다.

노인을 비롯한 다른 마법사들은 템빨인지 능동방어스킬을 켜놓은 건지 나름대로 버텼지만, 그쪽은 피해가 커 보였다.

‘저년은 안 되겠군.’

밀리아의 상처도 플레이어인 이상 포션만 먹으면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미와 사랑의 사도인 그녀는 탑에 있을 때부터 랭커치곤 직접적인 전투능력이 떨어졌다.

그마저도 한참 전 일이니 아티스트니 우주대스타니 하면서 십 년 넘게 노래나 부르고 다닌 지금은?

반면 신시아는 차원이 달랐다.

‘미친개들의 여왕.’

모두가 새롭게 등장한 사도의 능력에 선뜻 먼저 나서지 못하는 상황.

웨어울프 광전사는 남들의 생각은 알 바 아니라는 듯이 순식간에 상대에게 돌진했다.

‘저게 맞다. 놈은 사령술사이니 여유를 주면 안 돼.’

뒤늦게 엔리케도 신시아에 호응하기 위해 돌진했으나, 남태수는 이미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성좌의 개.

거대한 기계팔이 허공에서 솟아나 두 사도의 접근을 막았다.

타이탄 코어로 만들어낸 강철의 육체에 거인의 영혼이 깃든다.

-은인에게는 손댈 수 없다.

기계팔이 주변을 휩쓸자 엔리케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타이탄의 거대한 팔은 위력과 별개로 엄청난 공격범위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위력 모를 공격을 받아내는 대신 크게 물러나는 것을 택한 엔리케였으나, 신시아는 아니었다.

콰직!

강철의 장벽을 뚫고 신시아가 남태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남태수는 이미 그림자를 타고 그곳을 벗어난 뒤였다.

‘어디지?’

이어서 남태수가 나타난 곳은 날아간 오메가의 머리가 떨어진 곳.

다수와 싸울 때는 가장 약한 놈부터 노린다.

성진의 불꽃으로 무력화된 천사야말로 가장 먼저 끝장내야 할 놈이었다.

이만큼 약화된 사도를 상대하는 것은 다시 있기 힘든 기회였으니까.

카르마로 강화된 남태수의 대낫이 오메가를 확실히 마무리했다.

그리고,

[모든 초월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영혼의 격이 상승합니다.]

[초월 1단계.]

사도이자 천사이며, 남태수보다 훨씬 높은 레벨을 지닌 오메가가 사망하는 것으로 남태수의 영혼이 초월 1단계에 이르렀다.

그와 동시에 대낫의 궤적을 따라 어둠이 번져나갔다.

이클립스.

“성기사! 사제!”

이번에도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신시아였다.

플레이어의 직업은 대부분 다재다능한 성기사나 사제, 마법사 등에 몰려 있었다.

이는 사도들도 마찬가지라 그들에겐 사령술사의 각성기에 대항할 수단이 넘쳐났다.

“성역선포!”

사령술사의 각성기와 반대로 아군을 보호하며 능력을 강화시키는 각성기.

사령술사의 완전한 카운터나 다름없는 스킬이 발동되었으나,

“뭣?”

“효과가 없잖아?”

남태수의 어둠은 빛을 잡아먹었다.

스킬 따위가 아닌, 사룡왕의 역작.

이클립스의 권능 아래 남태수의 모든 마법이 즉시 발동되기 시작했다.

“놈의 권능인가!”

처음 이곳에 모인 세계정부의 사도들은 남태수가 나오면 인원수를 이용해 그를 압박, 배신자의 존재를 알아보고 리처드 카이만의 상태를 확인하는 등 대화를 시도할 생각이었다.

대관절 어떤 미친놈이 아홉을 상대로 홀로 달려들겠는가?

덕분에 그들은 선빵을 허용했고, 드래곤 피어는 그 선빵을 꽤 뼈아프게 만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상처는 포션을 마시면 되고, 권능은 권능으로 맞서 싸우면 된다.

결국 기습적인 공세로 오메가가 죽긴 했으나 여전히 수적 우위는 그들에게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맞서 싸우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으리라.

문제는 이놈의 연합이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었다는 점이었다.

-어이 엔리케, 지금 그쪽으로 대량의 핵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뭐라고?”

-정의와 영광의 사도, 그 새끼가 기어이 일을 저지른 모양이다.

지구상의 12사도 중, 이곳에 모인 건 아홉.

오메가가 죽고 새로이 마왕 남태수가 나타났으니 그 숫자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남은 셋 중 불과 광채의 사도인 리처드는 행방불명이니 뺀다고 쳐도 둘이나 이번 일에 참여하지 않은 것.

정의와 영광의 사도는 바로 참여하지 않은 둘 중 하나였다.

-아마 어디 안전한 곳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시꺼먼 게 퍼져나가는 걸 보고 쏴재낀 모양인데. 같이 맞고 싶은 게 아니라면 빠지는 게 좋을걸.

사도의 권능을 이용한다면 핵미사일도 버틸 수 있었다.

정확히는 터지기 전에 없애 버리든, 핵반응을 차단하든, 멀리 도망가든 ‘직접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사도라고 해도 그 육체는 인간.

순수한 파괴력만 따지면 핵미사일을 직접 맞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발사된 핵탄두가 못해도 1,200발이야. 저거 뒤처리만 해도 골치 아플걸. 이 정도면 정의와 영광 이 새낀 이미 정치적으로도 나가리지.

사도는 지구상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그건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

이 핵 샤워로 남태수를 잡든, 실패하든 정의와 영광의 사도는 이 돌발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 말은 사도 둘이 경쟁에서 나가리됐단 말이군.”

그들이 남태수를 잡기 위해 모인 것은 새롭게 나타난 사도가 기존의 지분을 빼앗아가는 것이 싫기 때문.

그러나 오메가가 죽었고, 정의와 영광이 제재를 받는 것이 확정되었으니 여기서 남태수가 끼어들어도 오히려 그들의 지분은 늘어난 셈이었다.

엔리케는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이러한 정보가 전해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리라.

“본인은 여기서 빠지지. 아무리 수적 우위에 있어도 사도를 상대하는 와중에 뒤에서 핵미사일이 날아오는 상황을 감수하긴 싫거든.”

노인이 차원문을 열어 인공섬을 벗어나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사도들 또한 연달아 그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파티는 끝났군. 예정된 계획과는 달라졌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나.”

엔리케는 자신도 떠날 준비를 하며 아직도 싸우고 있는 신시아와 남태수를 바라봤다.

저쪽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싸우려는 것 같았는데, 엔리케로서는 둘 다 여기서 핵 맞고 뒤져주는 게 가장 좋았으므로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떠났다.

그리하여 인공섬에는 남태수와 신시아만이 남게 되었다.

‘으윽 머리야.’

강약약강에 의한 디버프가 끝나고 부정적인 사고가 사라지자 남태수의 영혼은 그제야 광폭화를 디버프로 인식하고 저항해냈다.

-마스터, 기회입니다. 지금 빨리 다나 양에 대한 것을 전하시지요.

남태수는 마티아스가 신시아를 막아선 틈을 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다나는 건강히 잘 있다.”

“뭐?”

“이제는 웨어울프의 피도 이겨내서 생간을 먹을 필요도 없지.”

미쳐 날뛰던 신시아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협박이라면…….”

“곧 동생과 만날 자리를 준비하지. 이쪽에서 연락할 테니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최대한 성진의 말투를 따라한 남태수는 그 직후 차원문을 열어 신시아를 날려 보냈다.

도착 좌표를 확실히 하지 않은 강제이동이었으나 뭐 어떻겠는가.

“내가 이동하는 것도 아닌데. 알아서 잘 살겠지.”

이제야 머리가 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오메가가 죽어 버리긴 했다만, 리처드 카이만 때와는 다르게 이번엔 ‘사도 간의 다툼’인 것으로 되었으니 괜찮겠지?”

-놈의 성좌가 가만있지 않을 테지만, 한동안은 다른 사도들의 성좌가 방해되어 지구에 개입하기 힘들겠지요.

그렇다고 한들 아예 알려지지 않은 것과는 달랐다.

-그래도 이만한 일이 벌어진 이상 언젠가는 놈들이 지구를 확인하게 될 겁니다. 이제는 정말 타임어택이로군요.

“아예 여길 거점화시켜서 탑의 입구를 틀어막고 눌러앉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럼 일단 인류해방전선을 이쪽으로 부르고 산달폰을 통해 이쪽 상황을 성진 씨한테 전해야…….”

앞으로의 계획을 짜기 시작한 남태수는 곧 멀리서 날아오는 미사일들을 알아채고 한숨을 내쉬었다.

“별 지랄을 다 하네. 무르무르.”

-처리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거대한 묘비가 연달아 떨어져 인공섬 인근의 바다에 처박혔다.

해저에서부터 수면 위까지 튀어나온 거대한 십자가들은 결계를 형성해 핵폭발의 여파를 완전히 차단했다.

인류보다 훨씬 진보한 난쟁이 기술에 아크리치의 마법이 더해진 결과.

인공섬은 검은 태양 아래 독기 대신 방사능에 휘감긴 마왕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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