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그 후로도 남태수와 성진의 경주 아닌 경주는 계속되었다.
피차 점수를 벌면서 올라가고 있는 상황.
그것만이라면 아무리 남태수가 강해졌다 한들 성진보다 빠를 리 없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절박하다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긴가민가한 성진과, 늦으면 모든 게 끝이라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탑을 오르는 남태수.
그 차이가 선두를 갈랐다.
[170층으로 이동합니다.]
[진행에 따라 레벨이 상승합니다.]
[Lv.169 > Lv.170]
[원래 육체를 돌려받습니다.]
[오류! 불러올 육체가 없습니다.]
[해당 과정을 생략합니다.]
“됐다!”
마침내 170층.
남태수는 성진보다 먼저 그곳에 도달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탑의 170층은 이미 천사의 힘을 이용해 오메가가 선점해놓은 상태였다.
그는 몸을 되찾으러 갔을 때 조져놓은 원래 관리자 대신 170층을 꿰차고 직접 그곳에서 남태수를 맞이했다.
[160층에서는 잘도 내 분신체를 파괴해줬어. 관리자 권한으로 만든 NPC 육체라 평범한 방법으로는 죽여도 계속 재생하는 몸이었는데.]
-이번엔 확실히 본체로군요.
170층에서 다시 만난 오메가는 원래의 소년 몸에 날개와 천사의 고리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일반인들은 물론, 다른 사도들에게도 천사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저쪽도 아예 끝장을 보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성진 씨가 붙였다는 검은 불꽃은…… 한쪽으로 몰아뒀나.’
오메가의 오른팔은 특수한 붕대에 휘감겨 있었다.
그 사이로 검은 불꽃이 새어 나오는 게 당장에라도 흑염룡의 봉인이 풀릴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실제로는 화상과 재생을 반복하며 상당히 고통스러우리라.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지. 성좌의 권능은 강력하지만 그 성좌의 분야에 맞게 한정적인데 말이야. 나야 미리 은혜를 받아 천사로서의 힘도 사용할 수 있다지만 너는 그건 아니고.]
“저런, 나는 이게 기본인데. 느그 주인님은 별로 유능하지 않으신가 봐?”
빠직!
다 이겼다는 듯이 구는 꼴이 꼬와서 일단 한마디 박았더니 반응이 격렬했다.
‘리액션 혜자네.’
이미 살면서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본 남태수였다.
아가리 파이팅이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성진 씨처럼 사람을 공손하게 만들고 일방적으로 패는 거면 모를까, 맞딜이면 안 지지!’
-그건 자랑할 만한 내용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강약약강.
이 전형적이다 못해 ‘일반급’으로 분류되는 카르마야말로 지금의 남태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쯧쯧, 그러게 줄을 잘 섰어야지. 사탕 준다고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되는 거 모르나? 부모님이 안 가르쳐 주시디? 혹시…… 없나?”
남태수는 언젠가 자신이 들었던 말들을 떠올리며 패드립을 술술 쏟아냈다.
“잠깐만 있어 봐 내가 한번 찾아볼게. 아씨오 니엄마! 뭐야 아무것도 안 나타나잖아? 진짜 없나 보네 못 찾겠다 야.”
“쓰읍, 애새끼가 부모도 없으면 납치범한테 돈은 누가 갖다주냐? 거 납치범 새끼도 멍청하네. 확인도 안 해보고. 이러면 어쩔 수 없네. 애는 버려야지 뭐.”
“캬 그러면 애미애비에 이어 성좌한테도 버려지네. 벌써 2관왕이야? 좀 이따 세계정부에서도 버려지면 그랜드슬램 달성하겠다?”
[뭐……?]
오메가는 남태수의 이상할 정도로 자신만만한 태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앞선 도발은 그렇다 쳐도 세계정부가 그를 버린다는 말은 흘려 넘기기가 힘들었다.
‘다른 사도들이 나를 배신한다면?’
남태수를 데리고 나갈 생각으로 바깥에 세계정부의 사도들을 불러둔 상황.
만일 그때 사도들이 노리는 게 남태수가 아니라 자신이라면?
‘이놈이 다른 사도들과 먼저 손을 잡고 이미 나를 담가 버릴 준비를 끝낸 상황일 수도 있다는 건가?’
원래 남의 뒤통수를 노리는 놈은 세상 사람들이 다 제 뒤통수를 노리고 있을 거라 의심하는 법.
오메가 자신부터가 남태수를 잡기 위해 함정을 판 마당이었다.
그렇다면 남태수도 자신을 잡기 위해 함정을 팠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 녀석만 내보내고 나는 따라 나가지 않으면 될 일.’
마왕 남태수의 처분을 바깥의 사도들에게 전부 맡긴다 해도 그를 탑에서 끌어내린 것은 자신이니 얼마든지 지분을 주장할 수 있으리라.
[개소리. 그런 말로 나를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응, 흔들렸죠? 존나 흔들렸죠? 쫄리니까 말 돌리죠? 새끼 귀엽네.”
[더는 못 들어주겠군. 네놈한테 들을 건 비명 소리밖에 없다. 처형을 시작하지.]
[스테이지 클리어!]
[눈부신 기록을 세운 플레이어에게 특수한 보상이 제공됩니다.]
[보상 수령을 위해 공간이동이 필요합니다.]
[이동까지 5초, 4초, 3초…….]
-마스터.
“기다리고 있었지.”
보상 지급 메시지가 뜨자마자 무르무르는 타이탄 코어를 작동해 남태수의 손에 권총을 생성해냈고, 남태수는 곧장 오메가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조준이고 뭐고 대충 방향만 맞춰서 쏜 사격.
오메가는 간단히 고개를 까닥이는 것으로 총알을 피해냈다.
[추한 발악을…….]
“해야 하는 건 너지.”
다음 순간, 발사된 총탄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남태수는 타이탄 강화장갑을 착용한 팔로 오메가의 목줄을 틀어쥐었다.
총알 그림자에 살아 있는 그림자를 숨기는 트릭.
오메가는 그 손을 떨쳐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플레이어로서의 레벨 차이, 직업에 따른 스탯 보정 차이, 거기에 천사라는 종족적 차이까지.
남태수의 힘이 오메가의 힘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해야 했다.
‘무슨 힘이……!’
난쟁이 기술의 정수인 타이탄.
근접전에 특화된 특수한 개체가 아닌 이상 천사라도 힘으로 그걸 상대할 순 없었다.
[…… 1초. 이동을 개시합니다.]
우주가 펼쳐졌다.
-잠시만 참으십시오 마스터.
달의 뒤편.
지구 문명의 카르마가 닿는 마지노 선.
나치의 비밀기지 대신 사도들이 사용하는 침략의 전초기지만 존재하는 그 땅에 발을 내딛은 순간.
[오류 발생!]
[이미 신성존재의 가호를 받고 있는 영혼입니다.]
[추천이 취소됩니다.]
탑의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남태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넣어야 할 기능이 엄청나게 많으니까. 중요 기능을 꾸역꾸역 넣은 게 한계지.’
당장 성진만 해도 입장부터 오류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그러고도 170층까지 잘만 올라가고 있었다.
탑은 오류 수정 능력이 없다.
성좌들은 혹시 모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들게 탑을 최적화하는 대신 그냥 탑에 천사를 박아 넣었다.
탑을 관리하는 생체 컴퓨터.
탑의 용도를 생각하면 이는 반인륜적인 행위였다.
‘굳이 따지면 복귀계획 없는 우주비행선이나 인공위성 따위에 컴퓨터 대신 조종사를 박아둔 느낌이지.’
어차피 천사를 도구로 여기는 성좌들에겐 거리낄 것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아무 천사나 대충 박아둔 결과, 탑에서 열의를 가지고 제대로 일하는 천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오류가 날 때, 그걸 처리하는 방식은 천사의 손에 달려 있다.’
그리하여 오메가가 마왕 남태수를 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일으킨 오류는, 그들을 탑 밖으로 인도했다.
[오류 발생시 지정된 좌표가 존재합니다.]
[해당 좌표로 이동합니다.]
마침내 남태수는 모든 일이 시작된 그곳으로 되돌아왔다.
* * *
지구상에서 탑이 나타난 곳은 태평양 한복판이었다.
세계정부는 그 위치에 콘크리트를 쏟아 부어 인공섬을 만들어냈고, 이후로 그 섬은 탑의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하는 거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득이라는 걸 왜 모르는가? 나는 차라리 오메가 그놈이 허탕을 쳤으면 좋겠다네.”
“허?”
“그러면 그 책임을 물어 오메가까지 함께 실각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늙은이가 음침하기는. 난 이런 칙칙한 곳이 싫어. 고작 저런 걸로 누굴 잡겠다고 대포를 깔아둔 거야?”
인공섬은 세계정부의 군대가 상주하며 철통보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총부리가 향한 곳은 바깥이 아니라 안쪽이었다.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중인 탑은 핵미사일을 맞아도 멀쩡하다.
그러니 외부의 무언가로부터 탑을 지킬 필요는 없다.
막아야 하는 것은 탑을 졸업하고 나오는 플레이어들.
고레벨 플레이어가 PTSD를 앓는 상태로 탑에서 튀어나온다면?
그런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탑에서 나오는 플레이어를 막아서기 위해 자리한 것이 인공섬의 군대였다.
“사도 잡겠다고 우리들이 이렇게 모인 거 아냐. 그놈은 사령술사라는데 쟤들은 치워두는 게 낫지 않겠어?”
“어차피 이만한 숫자의 사도가 모였다. 놈이 힘을 발휘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신시아 또한 소집된 사도 중 하나로서 밀리아의 투덜거림을 차단했다.
현재 인공섬에 와 있는 사도는 총 일곱.
하와이에서 거리를 두고 원격으로 지원하는 사도까지 합치면 여덟.
탑에서 마왕 남태수를 끌어내는 역할인 오메가까지 합치면 총 아홉의 사도가 이번 작전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만하면 나 하나쯤은 빠져도 될 것 같은데.”
세계정부 수립 이래 최다 사도 동원.
“그냥 즐겨. 지금 아니면 언제 이 인간들이 함께 움직이겠어?”
“하긴 그래. 지분을 더 나누기 싫다는 공감대 아래 참 많이도 모이셨어? 평소에는 다들 그리도 고상한 척하더니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헐레벌떡 뛰어온 게 웃겨서라도 사진 좀 찍어놔야겠네.”
밀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이리저리 셀카를 찍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사도 간에 단합이 안 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었던지라 아무도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았다.
“……!”
“온다.”
그러던 중,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공간이동의 전조.
직후, 차원이 갈라지며 두 사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억……!]
천사의 모습을 한 소년이 사신의 손에 붙잡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이윽고 산양의 두개골을 쓴 검은 사신이 그 목에 대낫을 드리웠으나, 인공섬에 모여 있던 사도 중 그 누구도 그 행동을 제지할 수 없었다.
“미친…….”
밀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욕지기를 내뱉었다.
오메가가 천사라는 사실?
놀랍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일의 범주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사신은 아니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아.’
마치 어둠이 그를 휘감고 있는 것 같았다.
보기만 해도 영혼을 빼앗길 것 같은, 완전히 압도되는 감각.
이곳에 있는 사도들은 모두 그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저놈에게서 성좌와 같은 격이 느껴진다고?’
엄밀히 말하면 달랐다.
그들이 느낀 것은 남태수가 가진 막대한 카르마와, 신화급의 격이었으니까.
그러나 사도라 해도 마력 좀 볼 줄 알지 영혼의 본질과 카르마에 대해서는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반면 남태수는 침착하게 오메가의 머리채를 잡고,
“다음.”
카르마를 일으켜 그 목을 베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