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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부수는 플레이어-139화 (139/170)

<139>

성진은 일행과 헤어진 뒤 100,000점을 획득하기 위해 가장 어려운 스테이지를 진행했다.

10만.

각각의 스테이지마다 얻을 수 있는 점수란 점수는 모조리 싹 쓸어 먹었을 때 나오는 최고 점수.

이 점수를 얻기 위해 성진이 한 일은 간단했다.

“블러드 러스트.”

혈마술을 활성화시킨 성진은 그저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갔다.

캬아악!

커억……!

그것만으로 스테이지의 모든 적들이 쓰러졌다.

-옛날 생각이 나네요.

강력한 혈마술사는 단순히 피를 조종하는 것을 넘어, 피의 성분을 바꾸거나 피를 마력으로, 마력을 피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했다.

경지에 이르면 자신의 피가 아니라 상대의 피조차 조종할 수 있었는데, 성진은 이를 이용해 주변의 모든 적들을 학살했다.

피를 독으로 바꾼다.

그것만으로도 생물은 신경이 마비된 채 썩어 문드러지며 남은 피를 안개처럼 뿌렸다, 신체에 피가 없는 몬스터마저 해당 안개에 휩쓸려 그 자리에서 삭아 버렸다.

이러한 독기는 모두 성진의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는 적만을 골라 해치우며 걸어 나갈 수 있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제왕의 행진.

-선생님께서 전장에 나서면 항상 이런 모습이었지요. 카르마가 없어져도 흡혈귀마저 부러워하던 혈마술은 여전하시네요.

“그 정도는 아닐 거다. 흡혈귀라면 저 피를 다 독으로 소모하는 게 아니라 흡수해서 강해졌겠지.”

피를 마시면 강해지는 흡혈귀와 달리, 성진은 순수한 인간이었다.

흡혈을 한다고 강해지진 않으니 그냥 얻은 피를 그 자리에서 다 써 버리는 것.

“혈마술은 결국 흡혈귀들을 위한 마법이야.”

성진은 그런 혈마술마저 흡혈귀보다 잘 썼다.

그 어떤 기술도 성진의 손에서 펼쳐지면 가장 완벽한 모습이 된다.

특이점.

우주가 기억하는 완벽함을 재현하는 자.

“그래도 최대 점수를 받아내기에는 이만한 게 없지.”

최소한의 전투로 스테이지의 모든 적들을 쓰러뜨려야 최대치의 추가점을 받을 수 있다.

100,000점 만점의 스테이지에서 100,000점을 벌기 위해선 눈에 보이는 모든 적을 즉살할 필요가 있었다.

-선생님께는 딱히 어려운 조건이 아니네요.

“그래. 그러니 100,000점을 얻는 것보단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

170층을 너머 그 이후로 펼쳐질 스테이지들.

마침 새로운 정보도 있었다.

“남태수의 말대로라면 199층에 아네모네가 있을 테지.”

퍼스트 레이디 아네모네.

1세대 흡혈귀 중 유일한 여성체이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흡혈귀.

1세대 흡혈귀는 단순히 위계가 높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이 퍼스트 블러드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이유는 1세대가 모든 흡혈귀의 우두머리를 맡고 있기 때문.

-누군가에게 피를 받은 것이 아닌, 자연 발생한 흡혈귀들의 왕…….

“정확히는 그 왕들 중 하나지.”

8대 종족 중 하나인 흡혈귀.

그 흡혈귀들을 지배하는 것은 퍼스트 블러드‘들’의 의지.

“1세대 흡혈귀들은 하나이자 여럿인 자. 각각의 개체는 분명 독립성을 가진 존재지만, 그 영혼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프라이멀 블러드 말씀이시군요.

프라이멀 블러드.

흡혈귀라는 종족을 탄생시킨 피의 원류이자, 왕의 인자.

“왕의 인자는 필요할 때마다 1세대 흡혈귀 중 하나의 몸에 발현된다. 그리고 인자가 발현된 녀석이 흡혈왕이 되어 모든 흡혈귀를 이끄는 거지.”

즉, 필요하면 그때그때 가장 적합한 녀석이 왕이 되는 특수한 시스템을 가진 종족이란 뜻이었다.

이는 모든 흡혈귀가 하나의 피로 이어져 있기에 가능한 시스템.

온몸의 세포가 제각기 역할을 다해 나라는 사람이 살아가듯, 흡혈귀들도 각각의 개체가 프라이멀 블러드라는 하나의 거대한 신성존재를 이루고 있었다.

프라이멀 블러드는 따로 자의식이 없는 ‘흡혈귀들의 총의’로, 모든 흡혈귀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일종의 시대정신이었다.

“현재 흡혈왕을 맡고 있는 것은 카인이지만, 모든 퍼스트 블러드가 연결되어 있는 이상 아네모네를 구하면 카인의 힘도 강해지겠지.”

이렇듯 퍼스트 블러드는 구할 수 있다면 반드시 구해야 할 인물 중 하나였다.

“다만 문제는 그 녀석이 어떻게 여기 있냐는 점인데.”

아네모네는 천상과의 전쟁 중에 죽었다.

그러니 그녀의 영혼이 탑에 붙잡혀 있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아네모네를 죽인 것이 증오의 성좌라는 점.

“증오의 성좌가 지구에 관여하고 있나?”

성진은 이미 세계정부의 사도들이 각각 어떤 성좌의 사도인지 확인해둔 바, 개중 증오의 사도는 없었다.

하지만 사도 중 하나가 다른 성좌의 이름을 사칭하고 있는 것이라면?

또는 증오의 성좌가 다른 성좌의 이름을 사칭해 사도를 두고 있는 것이라면?

“증오의 성좌는 위험하다. 자신을 규정하는데 성공한 절대좌라면 일반적인 신성존재와는 격이 달라.”

증오의 전리품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이상, 어떤 식으로든 놈이 지구에 연관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절대좌라면 다소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즉시 지상에 강림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러면 더더욱 선생님의 정체를 들켰다간…….

“고작 2단계 초월 상태로는 청동망치를 불러오더라도 놈을 상대하기 힘들겠지.”

절대좌는 원래의 카르마를 가져오더라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적이었다.

거기에 더해 육체의 성능도 떨어진 지금이라면 그 불리함도 커졌을 터.

현시점에선 놈을 이기기 힘들다고 봐야 했다.

“증오는 분명 자신의 눈을 세계정부에 심어뒀을 거다. 어떤 사도가 놈의 눈인지 알아내는 한편, 빨리 초월 단계를 높여야 한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이는 연합에서 성좌를 두고 하는 말이었지만, 반대로 성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었다.

성진은 아네모네에 대한 정보를 남태수에게 들었을 때부터 이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당장 행동을 달리할 것도 없었기에 섣부른 선택을 지양하고 있었다.

“아네모네도 이 사실을 알고 별다른 말 없이 자신의 존재만을 전한 거겠지. 일단은 199층까지 빨리 올라갈 수밖에 없다.”

199층까지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성진은 파티원들의 진행 현황을 확인했다.

[점수 현황]

- 65,480

- 52,960

- 6,300

“52,960점?”

남태수의 목표는 25,700점이었다.

물론 점수를 정확하게 맞추는 건 운적인 요소도 필요했으니 실패할 수도 있었으나 저건 단순한 오차 수준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

“티타니아.”

-연결이 안 돼요. 붙여놓은 미니언이 소멸했습니다!

“사도가 움직였나? 하지만 사룡왕이 붙어 있을 텐데?”

남태수가 그들을 배신하고 성좌의 편에 붙을 일은 없었다.

사룡왕이 붙어 있는 이상 그런 짓을 했다간 그 즉시 영겁의 시간 속에 갇힐 테니까.

마찬가지로 남태수가 외압에 의해 행동이 강제당할 일도 없었다.

사룡왕이 붙어 있는 이상 그에게 무언가를 강제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 테니까.

아예 성좌가 움직였다면 성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을 터.

허나 그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기에 저러는 건진 몰라도 뭔가 큰일이 벌어진 건 확실하군. 이렇게 된 이상 빠르게 170층으로 향해 남태수를 만나보는 수밖에 없다.”

걸어서 스테이지를 가로지르던 성진은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성진이 점수판을 확인하기 조금 전.

남태수는 160층에서 오메가를 마주하고 있었다.

[워워. 무기는 집어넣으시지. 어차피 여기 있는 건 내 본체가 아냐. 싸우려고 온 거였으면 인사하기 전에 목부터 쳤을 거라고.]

오메가가 그리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태수는 경계를 풀 수 없었다.

[현재 시스템 창을 열 수 없습니다.]

남태수가 진행하는 이 구간은 NPC의 몸에 스킬까지 봉인된 상태로 진행하는 구간.

다만 그렇다고 해도 상태창을 열어 자신의 스탯 등을 확인하는 것까지 막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시스템 창이 안 열린다는 건 저놈이 뭔가 했다는 건데.’

덕분에 시스템 창을 이용해 사룡왕과 소통하고 있던 남태수는 소통이 불가능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소환수로 취급되는 무르무르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정령도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함정에 걸린 것 같군요.

‘어떡하지 무르무르?’

-본체가 아닌 건 사실인 것 같군요. 정말로 싸우러 온 게 아닐 수도 있으니 일단 상황을 좀 지켜보시죠?

‘그래.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자고.’

오메가는 그러한 남태수의 반응을 보곤 웃었다.

[스킬을 쓸 수 없어서 당황했나? 그럴 만도 하지. 아무리 강력한 권능이라도 사용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이렇게까지 네놈에게 유리한 상황에서 싸우러 온 게 아니라는 걸 믿으라고?”

[하! 잊었다고 할 셈은 아니겠지? 이 몸은 아직도 네놈에게 입은 상처 때문에 이가 갈리는데 말이야.]

지금의 상황은 분명 오메가에게 기회였으나, 성진에게 당한 그는 아직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아, 성진 씨 말인가?’

당시의 성진은 장화신은 고양이가 되어 있던 상태였기에 오메가는 그것이 남태수가 한 짓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뭐 휴전이라도 제안하려고 왔나?”

[휴전? 웃기는 소리. 내가 네놈에게 제안할 것은 오로지 항복뿐이다.]

“쳐맞고 도망친 놈이?”

[이 씹……!]

성진이 한 일을 자기가 한 것처럼 말하려니 좀 이상한 기분이긴 했지만, 오메가를 놀리는 것 자체는 꽤 재미있었다.

‘어차피 저 새끼 저거 성좌가 어떤 놈들인지 알고도 지구를 팔아넘긴 매국노 새끼 아냐?’

단순한 매국노도 아니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 별 하나, 종 하나를 통째로 팔아먹은 놈 아닌가?

솔직히 저놈 영혼이라면 죄책감 없이 사룡왕의 손에 넘기고 따봉을 날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핫! 제 운명이 이미 결정된 것도 모르고 개소리나 짓거리는 꼴이 우습군.]

“네가 뭔데 내 운명을 결정해? 내 운명은 내…… 주인님도 모르거든?”

남태수가 사도가 될지 안 될지는 남태수의 결정에 달려 있었으므로 사룡왕도 모르는 일이긴 했다.

[쯧쯧쯧, 내 특별히 설명해주지. 잘 듣고 버러지처럼 절망하도록.]

오메가는 보기만 해도 손가락을 분질러놓고 싶게 검지를 좌우로 까닥이며 말했다.

[나는 이미 관리자 권한을 이용해 스테이지의 최고 보상을 바꿔뒀지.]

“뭐라고?”

[이곳에서 1등을 한 플레이어는 그 보상으로 사도 추천을 받는다. 사도로 추천되어 천상의 성좌들 앞에 그 영혼을 내보이게 되는 거지. 당연하게도 이미 사도인 네놈은 그냥 탑을 졸업하고 밖으로 쫓겨날 거다.]

오메가는 자기가 생각해도 기가 막힌 작전이었다는 듯이 말했다.

[이미 바깥에는 너희들을 잡기 위해 세계정부의 사도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다. 개중에는 너희 내통자도 있겠지? 하지만 많아봐야 과반을 넘진 않을 거야. 그쪽 세력이 더 컸으면 이렇게 비밀리에 일을 벌이진 않았을 테니까.]

“그게 무슨…….”

[즉, 전면전이다! 네놈들은 몰래 이곳에서 힘을 더 키우고 싶었을 테지? 절대로 그럴 기회는 주지 않겠다!]

오메가는 탑에 숨은 마왕 남태수를 바깥으로 끌어내기 위한 함정을 준비했다.

성좌에게 들키면 안 되는 그들에겐 아주 치명적인 함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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