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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부수는 플레이어-137화 (137/170)

<137>

식사를 마친 성진은 스테이지를 확인했다.

“고작 이런 것 때문에 기다리고 있던 거냐. 카르마도 볼 수 있는 놈들이.”

“여기 사막에 깔린 환경마법이랑 카르마가 무슨 상관인데요?”

“속성교육의 폐해가 여기서 나오는군.”

일반적으로 마력을 다루는 기술을 연마해 카르마를 이해한 경우엔, 그만한 경험과 교육에 따른 기본 역량이 동반됐다.

반면 이 둘은 실전압축 전투기술만 주입식으로 때려 박고 나머지는 그냥 성진이나 무르무르 등에게 맡긴 상태.

덕분에 이만한 실력이라면 당연히 가능해야 할 기본기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네놈, 텔레파시는 쓸 수 있나?

-이렇게요? 이거야 얼마든지 가능하죠. 애초에 무르무르가 맨날 이걸로 말하는데.

텔레파시.

마력을 이용해 대화를 나누는 이 기술은 굉장히 일반적인 기술이었다.

-딱히 텔레파시 마법을 배운 게 아니더라도 영혼이나 정신체 종족처럼 애초에 소리를 내어 대화하는 게 아니라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종족도 많지.

-남들에게는 비밀로 원하는 사람에게만 말을 걸 수 있으니 유용하기도 하고요.

마법이 아닌 무공에도 이와 비슷한 전음이 존재할 정도.

사실상 마력을 조종할 수 있게 되면 육감으로 주위를 감지하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까웠다.

-저도 전음이라면 가능한데요.

-당연히 되어야지.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다나의 전음까지 확인한 성진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카르마를 이용한 의사소통은 가능한가?]

마력을 통한 의사소통이 아니라, 카르마 그 자체를 전하는 기술.

이러한 방식은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기에 언어가 달라도 뜻이 통했다.

탑의 시스템도 이와 같이 카르마를 이용하고 있었기에 실시간 통번역은 물론 플레이어 당사자만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창을 구현할 수 있었다.

“아뇨 아직 그것까진 안 되는데요…….”

“그게 가능하려면 마력 없이 카르마만 사용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듣는 건 문제가 없지.]

“그야 그렇죠? 애초에 시스템 창도 카르마를 몰라도 볼 수 있게 되어 있잖아요.”

[또한 너희들은 사람의 영혼에 담긴 카르마도 볼 수 있지. 근데 왜 사물에 담긴 카르마는 못 보는 거냐?]

“어?”

영혼이 아니라 사물에도 카르마가 담길 수 있다.

그 사실 자체는 성진의 청동망치나, 다나의 성검처럼 이미 예시까지 본 마당이었다.

[길가의 돌멩이에도 카르마는 있다. 심지어 딱히 미약하지도 않지. 별다른 업적을 쌓진 못했어도 수천 년은 족히 된 돌멩이일 테니까.]

쇳덩이를 재련해 검을 만들면 이전의 카르마는 효력을 잃고 검으로서의 카르마만 작용한다.

때문에 돌멩이라고 해서 46억 년 치 카르마가 쌓여 있고 그렇진 않았다.

[너희들은 이미 만물의 실체를 꿰뚫어볼 수 있다. 정신을 집중해라.]

정작 성진도 탑의 입구에서는 리처드 카이만이 분신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지만, 충분한 마력과 카르마가 갖춰진 상태라면 달랐다.

[마법은 너희들의 육감만을 혼란시킬 뿐. 신성마법에 당한 게 아닌 이상 카르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거다.]

심안.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어디까지’ 볼 수 있을지는 달라지지만 사용여부 그 자체는 엄연히 기본효과에 해당하는 기술.

탑이 플레이어의 카르마 습득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카르마로 본다…….”

평소에도 해방된 NPC들의 영혼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남태수는 설명만 듣고도 금세 심안에 눈을 떴다.

“오 이거 되게 신기하네요.”

육감과는 또 다른 감각.

사막 스테이지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된 남태수는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봤다.

“태수 아재 어떻게 한 거예요? 저는 안 되는데?”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 왜 엄청 강력한 적을 만나면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잖아. 그러면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민감해지고.”

“그래서요?”

“그런 것처럼 사방에 있는 모든 것에 쫄면 돼. 모래알 하나하나가 다 나를 죽일 수 있는 괴물이라고 생각하면 자동으로 예민해져서 잘 보여.”

“……아재 설마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살아왔어요? 무슨 정신병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니 가르쳐 달래서 가르쳐줬더니 사람을 왜 정신병으로 몰아.”

남태수는 그러면서 뭐라고 해달라는 듯이 성진을 바라봤으나, 성진이 보기에도 미친놈 같은 것은 똑같았다.

“용케 그러고도 안 미치고 살아 있군.”

“다 나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억울해도 싸우면 질 게 뻔했으므로 비난의 화살은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

“아니 이런 기술이 있으면 진작 가르쳐주셨어야죠. 폐하도 무르무르도 지금까지 말 안 해주고 뭐한 거예요?”

[용의 피도 받은 놈이 그것도 못 쓸 줄은 몰랐지.]

-그냥 수준이 낮아서 그렇지 당연히 쓰실 수 있으신 줄 알았는데요. 애초에 특별한 기술도 아니고 그냥 카르마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뿐 아닙니까 저거.

용들은 원래 날 때부터 심안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걸 ‘배운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내가 워낙 허접해서 심안을 쓰고도 이 모양이라고 생각했다는 거네?”

-정확하십니다 마스터.

그러는 사이 성검을 꺼내 들고 낑낑대던 다나 또한 심안을 개안했다.

“육감이랑은 달라. 하지만 보는 요령은 비슷…….”

그러고는 하늘을 보며 정지했다.

“아저씨 저건…… 저건 도대체 뭐죠?”

남태수는 그 말에 자신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

탁 트인 사막의 밤하늘.

그곳에는 아까까지 보이지 않았던 붉은 선이 복잡하게 엉켜 거대한 마법진을 이뤘다.

멀리서 본 마법진은 마치 FPS 게임의 조준선과도 같은 형태로 지상을 겨냥하고 있었다.

“천사의 눈이다.”

“천사의 눈이라니, 저런 게 계속 저희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 1층부터 그랬지.”

충분한 마력이 없으면, 그리하여 충분히 육감이 발달되지 않으면 저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카르마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 관리자는 폐하께서 처리하셨는데?”

“오메가일 거다. 잠깐 꺼졌다가 방금 다시 켜진 거니까.”

“잠깐만요. 놈이 저희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요? 큰일 난 거 아니에요?”

“티타니아가 우리의 대화를 숨겨주고 있다. 그래도 행동까지 가려주진 못해. 그랬다간 정령술을 사용한 게 티가 나니까.”

그러니 당장은 놈이 이쪽을 보고 있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었다.

“심안이 몸에 익었으면 이제 움직여라.”

하지만 일단 저 눈이 켜졌다는 건, 오메가가 느리게나마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는 것.

“놓친 녀석을 마무리하러 가야지.”

굳이 그걸 다 기다려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사막을 돌파했다.

원래 몸을 가지고 보호막을 두른 이상 사막의 환경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스테이지 클리어!]

[다음 층으로 이동합니다.]

[진행에 따라 레벨이 상승합니다.]

[Lv.152 > Lv.153]

좌석에 앉아 기다리면 알아서 레일을 따라 달리는 기차여행에 가까운 클리어.

152층의 사막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153층의 해저였다.

“수중 호흡 아이템을 착용해라. 빠르게 진행한다.”

153층의 바다에는 지구상에선 볼 수 없었던 온갖 해양 생물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심해의 수압도, 무서운 해양 몬스터도 그들을 막아설 수 없었다.

[스테이지 클리어!]

[다음 층으로 이동합니다.]

[진행에 따라 레벨이 상승합니다.]

[Lv.153 > Lv.154]

바다를 지나니 나온 것은 우주공간.

이쪽도 생물이 살 수 없는 극한의 환경임은 분명했지만, 플레이어의 육체는 우주공간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

해저와 마찬가지로 산소를 공급해주며 방어막을 치거나, 아니면 종종 포션만 먹어줘도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했다.

“우주전 교육은 따로 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 말에 다나가 불만을 표했다.

“왜요? 마왕들 스펙만 봐도 얼마든지 우주에서 싸우는 경우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던데요.”

“우주에서의 전투는 필연적으로 거리 싸움이 된다. 때문에 신성존재 미만은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지.”

성진은 지구를 가를 정도로 거대한 검강을 뽑아낼 수 있었으나, 그래 봐야 12,000 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그에 비하면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만 해도 380,000 킬로미터 이상.

달에서 돌만 던져도 지구상에서는 대응하기 힘들다.

검강이 아무리 성좌마저 벨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해도 닿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쪽은 따로 연습하는 것보다 그냥 상대보다 강해지는 게 훨씬 낫다. 괜한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지.”

차라리 수중전은 물이라는 매질이 있어 전술 전략이 달라질 수 있지만, 우주전은 그런 것도 아니었다.

‘어이가 없군.’

검은 관에 붙들린 자토는 이들의 스테이지 돌파 속도를 지켜보며 해탈할 지경이었다.

‘쥘 베른이 80일 걸린 거리를 이들은 3일 만에 돌파한단 말인가?’

스테이지 내에서의 이동거리를 생각하면 사실상 비행기 탄 것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속도.

당연한 말이지만 플레이어는 원래 이 스테이지들을 돌파하는데 100일씩은 우습게 걸렸다.

3개를 모두 통과하기까진 별일 없어도 1년쯤 걸린다는 소리.

극악한 환경과 싸워야 하는데다, 애초에 힘들고 오래 걸리라고 이동해야 하는 거리도 엄청 길었으므로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플레이어라도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텐데…….’

때문에 탑을 더 올라서 검술을 수련하는 대신 151층에 안주한 자토로서는 어이가 없어지는 일이었다.

‘이게 평범한 인간과 사도의 차이? 검술을 위해 내가 해온 짓들은 헛된 발악에 불과했단 말인가……?’

그러나 놀라기에는 일렀다.

155층.

151층부터 이어졌던 장애물 구간이 한차례 종합되는 보스 스테이지.

남태수는 해당 스테이지의 설명문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것도 극한의 환경이긴 하지.”

[스테이지 클리어!]

[다음 층으로 이동합니다.]

[진행에 따라 레벨이 상승합니다.]

[Lv.154 > Lv.155]

[이곳에서는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이곳에서 살아남으십시오.]

NPC의 육체에 이은 스킬 사용 불가 페널티.

자토는 내심 이들이 이번에는 고전을 면치 못할 거라 생각했다.

‘이놈들이 사도라 해도 스킬을 사용할 수 없으면 그저 몸 좀 튼튼한 인간형 몬스터와 다를 게 없지. 잘하면 여기서 도전에 실패해 밖으로 나갈 수도 있을 거다.’

“개꿀 스테이지네.”

“이딴 게 페널티?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걸까요?”

“타인이 부여한 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을 쌓아온 대가지.”

역대급 혜자 스테이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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