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136화 (136/170)

<136>

152층.

원래라면 계속해서 NPC의 몸으로 진행하게 되는 스테이지.

다나와 남태수는 검은 관에 붙잡아온 자토와 아킬레우스를 통해 스테이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리치의 영혼석은 말 그대로 영혼만 넣어 다닐 수 있었는데 검은 관은 몸까지 통째로 집어넣을 수 있으니 편리한데?”

사령술사라면 언데드를 생성하기 위해 질 좋은 시체들을 들고 다닐 필요가 있었다.

거기에 남태수의 경우에는 타이탄 코어를 활용하기 위해 온갖 장비템을 더 들고 다녀야 했고.

그런 의미에서 수납기능까지 완비된 검은 관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장비였다.

-과연 어스름의 그림자라곤 해도 폐하께서 직접 만드신 물건답군요.

현재 검은 관에 들어있는 것은 해방된 NPC들의 영혼, NPC들이 어스름에서 각자 들고 온 자기 자신들의 몸뚱이, 에렉투스에서 챙겨온 온갖 난쟁이 장비들.

거기에 151층에서 잡아 온 두 플레이어까지 들어있었다.

“이 정도면 탑을 나가서도 인벤토리 대용으로 쓸 수 있겠네.”

남태수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식량과 포션 등의 생필품을 인벤토리와 검은 관에 나눠 담았다.

“그나저나 이거 플레이어를 통째로 넣어놨는데 괜찮은 거야?”

-죽으면 언데드로 만들면 되겠지요.

“아니 그 이야기가 아니라…….”

자토와 아킬레우스.

이 둘은 세계정부와 너무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에 그냥 밖으로 나가게 둘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아예 통째로 들고 가기로 한 것이 지금의 상황.

“그나저나 다나 너는 괜찮겠어?”

“예? 다, 당연하죠!”

햇빛이 쨍쨍하다 못해 지글지글 내려쬐는 모래사막.

그 한가운데서 저주로 신체능력과 온갖 저항력이 깎여있는 다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말라가고 있었다.

“물은 충분히 있으니까 힘들면 말 하고.”

마계대전부터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드넓은 스테이지.

이번에는 장대한 사막이 그들을 맞이했다.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남아 있는 플레이어도 얼마 없을 텐데 공간은 엄청 차지하는 스테이지가 많네.”

-그래도 여러 플레이어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이지 않습니까. 개인별로 공간을 따로 나눠주는 스테이지에 비해 이쪽이 더 싸게 먹힐 겁니다.

“그런가? 하긴 스테이지의 외벽은 검강도 버텨낼 정도니까 마법적으로 엄청 두껍겠네.”

이러면 반대로 그걸 구멍 냈던 청동망치의 위력이 말도 안 된다는 뜻이었지만, 이제 와서 성진이 강한 건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었다.

-마법적으로 두꺼운 만큼 점유율도 많이 차지할 테지요. 차라리 이렇게 강당처럼 하나의 큰 공간으로 만드는 게 더 싸게 먹힐 겁니다.

탑의 안쪽이 바깥보다 넓다고 해도 공간압축과 확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탑은 공간이 부족하다고 다른 곳이랑 연결되는 차원문을 둘 수도 없었다.

침략을 위해 대량생산해야 하는 물건이라 모듈화해야 하는 건 덤.

‘반대로 내가 탑을 만든다면 효율적으로 압축할 필요 없이 다 펼쳐놓고 차원문으로 연결해도 된다는 건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될 것 같은 게 어이가 없었다.

‘50층만 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언젠가 탑을 나가야 하니까 그때 가서 마법 수련하기 편하려고 아예 탑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아공간에 이것저것 꾸며놓는 방식이라면 지금도 몇몇 기능은 구현할 수 있었고.

“어어? 다나 너 꼬리 나온다 꼬리. 야수화 컨트롤해!”

“괜찮아요. 그냥 생명의 위기를 느껴서 변신하려는 거니까.”

“아니 그게 더 안 괜찮잖아?”

152층의 미션은 사막의 횡단.

마왕과 같은 전장에 서 있다 온 랭커들에게 고작 ‘사막에서 살아남기’를 시키는 게 우스울 수도 있겠으나, 원래 플레이어들은 이곳을 NPC의 몸으로 진행해야 했다.

게다가 이곳은 그냥 사막이 아니었다.

“아, 해졌다.”

방금까지 대낮이었던 사막이 순식간에 밤으로 변했다.

그림자도 안 생길 정도로 완벽하게 머리 위에 떠 있던 태양은 순식간에 달로 변했다.

그렇다.

태양이 지고 달이 뜨는 게 아니라 그냥 태양이 달로 변했다.

그에 따라 주변의 기온 또한 자연스레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변했다.

“미쳤네 여기.”

“으더더더더더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자 땀에 절어 있던 다나는 한껏 털을 부풀린 꼬리를 붙잡고 덜덜 떨었다.

심할 정도로 약해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그마저도 다나가 웨어울프 플레이어라서 그런 거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뼈와 살이 다 바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저주였다.

“불 피우고 좀 쉴까?”

“아아뇨뇨계계속속가가…….”

“데스나이트처럼 굴지 말고. 어차피 여기 그냥 걸어서 지나갈 수도 없다잖아.”

이 사막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방금 밤낮이 변한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신기루도 마찬가지.

이곳의 신기루는 단순히 허공에 상을 비춰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마법적 효과를 발휘해 사람을 낚았다.

시간 감각과 공간 감각이 모두 어긋나 있으니, 잠깐이라도 서로에게서 눈을 떼면 300년 지난 미라처럼 메말라 있는 일행을 마주할 수 있다고 했다.

“어차피 성진 씨도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끼리 사고 치는 것보단 천천히 가는 게 낫지.”

다나는 어스름에서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후 다소 조급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여는 특이할 것도 없다고 본다만.]

‘그냥 이동하는 동안에도 저주를 걸고 저렇게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냐. 수 세대에 걸쳐 사람들의 힘을 모아도 될까 말까 한 것을 자기 선에서 끝내려면 당연히 고생도 뒤따르는 법이지.]

‘도와달라고 하면 나라도 얼마든지 도와줄 텐데.’

[네 목숨이 위험한 것만 빼고?]

‘그거야…… 그렇긴 한데요.’

목숨을 건다.

말은 쉬운 일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중에 죽어본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죽음 뒤에 일어날 일들을 알게 된 남태수는 무책임하게 기분에 따라 목숨을 걸 수 없었다.

[탓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저 네놈도 언젠가는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오리라는 것이지.]

‘결정이요?’

[네놈은 개인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위해 탑을 오르고 있지 않느냐? 하지만 그건 이미 이뤄졌지.]

남태수는 사룡왕의 사도였다.

이 정도라면 지구가 아니라 다른 어딜 가더라도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으리라.

당장 어스름 수도회에서의 반응만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성진 씨가 지면 끝이지. 이기면 지금 내 수준으로도 꿈은 이룬 셈이고.’

남태수는 바깥에서 발호하기 시작한 주성진 교에 대해서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배운 마법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수준인 건 확실했다.

[네놈의 세상은 시대의 갈림길에 섰느니라. 그리고 너는 그 중심에 서 있지.]

사도들이 지난 30년의 세상을 결정했다면, 다음 세상을 결정하는 것은 그들이었다.

[자, 어쩔 테냐?]

* * *

잠시 후 152층으로 올라온 성진은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아니 성진 씨 그게 다 뭐예요?”

“치킨.”

“예?”

“알파카 놈들에게서 받았다. 그쪽도 슬슬 점수를 다 모아서 마계대전을 클리어하는 놈들이 나오더군.”

개중 몇 명은 성진이 151층을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152층으로 같이 올라오기까지 했다.

물론 다나, 남태수와 파티 설정이 되어 있는 성진과 달리 그들은 사막의 또 다른 곳으로 떨어졌겠지만 말이다.

“만난 김에 가져가라던데. 가끔은 이런 것도 좋겠지.”

플레이어들이 탑에서 먹는 음식은 스테이지의 상황마다 달랐다.

어스름 수도회처럼 사회 인프라가 멀쩡하면 대가를 지불하고 사 먹기도 하고, 서바이벌 스테이지라면 직접 구해 먹기도 했다.

물론 어느 쪽이든 잘 먹고 다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탑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한 번뿐.

들어왔을 때 뽕을 뽑아야 하니 먹는 것에 포인트를 낭비하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밥 대신 포션을 마시기도 할 정도였다.

“이것도 소스 정도나 포인트로 구매했지 닭의 손질과 튀김은 직접 했다고 하더군.”

평소 먹을 것에 그리 관심을 보이는 성진은 아니었으나, 이번만큼은 솔직히 조금 기대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자그마치 치킨이 아닌가?

맛있는지 어떤지와 별개로 어릴 때 먹었던 그 음식이라는 점만으로도 솔깃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기 있는 맛들을 골라 담았다고 하던데 열어보지.”

그들은 둘러앉아 기대감 속에서 치킨 봉지를 뜯었다.

메론 치킨.

바나나 치킨.

딸기 치킨.

“어어, 이거 왜 이러냐.”

남태수는 싸해지는 분위기 속에 다른 봉지도 열어보았다.

초콜릿 치킨.

민트초코 치킨.

치킨무 튀김.

“무는 왜 튀겼는데?”

“……세계정부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놈들이 있었군.”

“저기 성진 씨?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는 게 천벌 받을 일이긴 한데 이거 가지고 화내진 않으실 거죠?”

“수첩을 꺼내라. 지금부터 놈들의 ID와 인상착의를 설명하겠다.”

무자비한 살생부 작성명령에 남태수는 도움을 청하듯 다나를 돌아보았다.

다나는 일체의 편견 없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알록달록한 신호등 치킨을 먹고 있었다.

으적! 으적!

그것도 뼈째로.

“아니 왜 넌 또 뼈까지 씹어 먹고 있는 건데!”

“아재는 그것도 몰라요? 뼈에는 영양분이 많아요.”

“개 껌이 아니라고.”

훗날 남태수는 이 이야기를 인류해방전선에 전했고, 비인간적인 치킨의 제조행위는 국제법으로 금지되었다.

* * *

한편 오메가는 간신히 천사의 영혼을 인증받고 막 관리자 권한을 획득한 상태였다.

“젠장 이 불꽃은 어째서 꺼지지 않는 거냐!”

그의 영혼은 여전히 성진이 붙인 검은 불꽃으로 불타고 있는 상태.

간신히 불이 번지지 않은 부분을 사용해 본인인증은 가능했지만, 이 불꽃 때문에 권능의 사용이 차단되어 있었다.

“그래도 놈이 탑 안에 있는 이상 관리자 권한으로도 충분하지.”

151층부터 이어지는 스테이지들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의 추가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식이었다.

때문에 NPC의 몸에 빙의시켜 카르마를 쌓기 힘들게 하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죄다 어렵고, 불편하고, 시간은 많이 잡아먹는 놈들이지. 그렇다면 조금만 건드려도 놈들을 탑 밖으로 쫓아낼 수 있을 터.”

개중에는 전투능력 위주로 시험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특수한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건 변경.”

관리자의 권한으로 놈들이 클리어할 수 없을 만한 조건을 내건다.

“하지만 사도라면 이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지. 보상도 변경한다.”

기존의 사도들을 몰아내고 자신이 모든 것을 차지하기 위해 이만큼이나 공을 들인 놈이다.

“그런 탐욕스러운 놈이라면 반드시 1등 보상을 노리겠지.”

가장 큰 보상에 함정을 설치.

“이걸로 빠져나갈 길은 없다 마왕 남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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