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9살의 성진은 보호자 없이 337편에 탑승한 아동 승객이었다.
원래라면 혼자 탑승할 수 없는 나이었지만, 사정을 설명하고 직원 동반 서비스를 신청하는 것으로 탑승이 가능했다.
그리하여 성진을 담당한 승무원인 한솔은 비행기가 추락한 뒤에도 나름대로 책임감을 다해 성진을 돌봤다.
꼬르륵!
“배고프니? 누나 거 남겨놓은 게 좀 있는데 이거라도 먹을래?”
한솔은 자신에게 분배된 식량을 쪼개 성진에게 나눠주었다.
성진은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받아든 식량을 오물거렸지만, 한솔에게 그것을 탓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했지.’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국내에선 봐줄 사람이 없어 하와이에 있는 친척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마저도 여건이 안 되어 아이가 혼자 비행기를 타야 했다고.
부모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린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도 사고를 당해 비행기가 추락한 마당에…….’
조난 상황에 비관적으로 변한 생존자들도 많이 있었으나, 한솔은 차마 성진 앞에서 그럴 수가 없었다.
비행기 추락 사고에 휘말린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끼기에는 성진이 너무 가여웠으니까.
“세상에 부기장님 그러고 정찰을 나가시려고요?”
“담배를 다 폈어.”
“예?”
“담배도 다 떨어지니 자살 생각밖에 안 나더라고. 머리가 우울한 것보단 몸이 힘든 게 낫지. 쉽지 않겠지만 한솔 씨는 여기서 승객들 좀 봐줘.”
박준영은 그렇게 말하며 조사팀에 자원했다.
남겨진 이들을 진정시키는 것은 한솔과 다른 승무원들의 몫이었다.
“저희 언제 돌아갈 수 있어요?”
“구조대는 언제 오나요?”
“먹을 거 더 없어요? 너무 배가 고파서…….”
쉽지 않을 거라던 박준영의 말이 맞았다.
사람들을 대하는 일은 지친 몸으로 바깥을 조사하러 가는 것에 비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존자들은 모두 심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솔에게는 그 문제를 해결해줄 방법이 없었다.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상대를 달래는 일은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았다.
조금이라도 실수해서 위험한 영역을 건드리면, 그대로 터지는 거였으니까.
“뭐 씨발? 살아 있는 거에 감사하라고? 그럼 죽은 내 친구들은 뭐가 되는데?”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고…….”
“아니긴 뭐가 아닌데? 친구가 죽고 나는 살았다고 감사하라는 거 아냐?”
기적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긴 했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 극악한 환경에서 멘탈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나도 성진이가 없었으면 저러고 있었을지도…….’
그런 의미에서 책임질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한솔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
“그만들 싸우세요!”
“너는 또 뭐…….”
“그만들 싸우세요!”
“존나 시끄럽…….”
“그만들 싸우세요! 그만들 싸우세요! 그만들 싸우세요!”
옳은 소리로도 말리기 힘든 일이 있었다.
말려도 앙금이 남아 문제가 되는 일도 있었고.
하물며 승무원인 자신이 한쪽 편을 드는 건 싸움의 잘잘못과 별개로 어떤 문제가 될지 몰랐다.
그래서 한솔은 그냥 미친년처럼 외쳤다.
웅성웅성!
생존자의 숫자는 100명을 넘는다.
아무리 양아치 같은 인간이라도 수백 명이 쳐다보는 와중에 손을 쓰려는 사람은 없었다.
“하 씁. 당신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그딴 소리 해봐.”
시비를 걸었던 남성은 결국 주위의 반응에 포기하고 돌아섰다.
협박성 멘트를 내뱉긴 했지만 저건 그저 마지막으로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을 뿐, 이만한 사람들이 봐 버린 마당에 무슨 짓을 저지르진 않으리라.
“미안 무서웠지?”
한솔은 그렇게 말하며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성진은 감싸 안았으나, 성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설마 실어증 같은 건 아니겠지?’
솔직히 걸려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실어증이 말만 못 하는 거던가? 건강에는 이상이 없겠지?’
한솔에게는 딱히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없었다.
승무원으로서 받은 교육이 전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고민은 빠르게 사라졌다.
그보다 훨씬 더 즉각적인 결정을 요구하는 문제들이 넘쳐났으니까.
“숲을 발견했어요. 거점을 그쪽으로 옮깁시다.”
탑에서의 첫날밤.
한솔은 자신을 흔드는 손길에 잠에서 깨어났다.
“성진아……?”
그녀는 손길의 주인을 확인하고 안도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모를 상태로 성진을 안아 들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니?”
“어둠 속에 뭔가 있어요.”
“뭐?”
순간의 당황.
그러나 이내 한솔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누나 옆에서 잘래?”
“지금 자면 죽어요.”
그들의 소곤거리는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습격은 그 순간 일어났다.
“억, 윽!”
“으아아아악! 뭐야! 뭐야!”
아무런 기척도 없이 어둠 속에서 나타난 그것들은 무리의 가장 외곽에서 자고 있던 생존자들을 물고 빠르게 물러났다.
이어서 전혀 다른 방향에서 2차 습격이 있었다.
“부, 불! 일단 불부터…….”
“다들 일어나요!”
한솔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하나는 아니었는지 곧이어 여기저기로 불빛이 퍼져나갔다.
불붙은 상태로 던져진 장작들은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몬스터의 모습을 밝혔다.
“들개? 아니 개라고 하기엔 생긴 게 너무…….”
기나긴 밤의 시작이었다.
* * *
아침이 왔을 때, 생존자들은 12명의 죽음을 확인했다.
이어진 수순은 뻔한 것이었다.
“우린 비행기로 돌아가겠어.”
비행기든 아니든, 여기 이대로 있는 게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건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
21명이 떠났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 *
“어떻게 안 거니? 비밀로 할 테니까 누나한테만 말해봐.”
한솔은 그날 밤 성진이 몬스터의 접근을 먼저 눈치챘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랬다간 사람들이 성진을 광산의 카나리아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았기에.
생존자들의 분위기는 그만큼 살벌했다.
대신 그녀 자신은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그간 한마디도 없다가 그땐 말을 한 것도 있고.’
어쩌면 이걸 계기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기대는 시원하게 빗나갔다.
“…….”
성진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할까?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 말해달라고 설득?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조난으로 심신이 지쳐 있는 것은 한솔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솔은 성진을 보채는 대신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언젠가는 마음을 열고 또 말을 걸어주겠지.’
딴에는 그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맞이한 그날은 생각만큼 즐겁지 않았다.
“일어나세요.”
10층.
5층부터 이어진 험난한 여정 끝에 도시에 도착한 생존자들은 흐르는 물로 씻고 포근한 이불 속에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성진의 부름에 일어난 한솔은 심장이 멎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너…… 설마 또?”
“그것들이 근처에 있어요.”
“그것들이라니? 그보다 어떻게 아는 거니?”
“보여요.”
성진은 자신이 느낀 것을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존자 중에서 육감을 개방한 인간은 그가 유일했으니까.
“그냥 보여요.”
성진은 이곳에 떨어진 이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눈에 괴물들이 접근해오는 게 뻔히 보이는 마당에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순 없었다.
“바로 일어날게 사람들부터 깨우자. 이번에도 그 들개 같은 놈들이야? 숫자도 알 수 있어?”
“그놈들은 아니에요. 그것보단 훨씬 약해요.”
“듣던 중 다행인데?”
“하지만 숫자는 훨씬 많아요.”
성진의 눈에는 사방이 대낮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온통 그놈들로 가득해요.”
지금은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었지만, 이곳에 있는 몬스터의 숫자는 35,303마리에 달했다.
훗날 성진은 놈들을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35,376까지의 머릿수를 전부 세어봤기에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는 여기 숨어 있어.”
그 말을 들은 한솔은 천장을 뜯어 성진을 그 위로 올렸다.
“절대 나오지 말고.”
습격해온 것은 좀비였다.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이곳이 성좌가 침략을 위해 만들어낸 탑이며, 그 용도를 다해 버려진 곳 중 하나라는 것을.
그런 과정에서 마력만으로도 살 수 있는 동식물들이 나름의 생태계를 꾸린 것임을.
10층의 좀비들은 언데드였기에 동면 상태에 빠지는 것으로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으며, 인간의 등장에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아아악!”
좀비에게 죽은 생존자들은 똑같은 좀비가 되어 남은 생존자들을 공격해왔다.
탑의 아이템과 총화기로 무장한 정식 플레이어라면 화력으로 밀어 버리는 스테이지.
그러나 레벨도 뭣도 없는 조난자들은 튜토리얼에 불과한 10층의 좀비조차 버틸 수 없었다.
성진은 천장 위에 숨어 모두가 죽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마력을 조금 볼 수 있다고 해도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모든 죽음 끝에 좀비가 된 한솔이 생전의 기억을 더듬어 천장 부근을 더듬어오기 시작했을 때.
성진은 공포보다 큰 슬픔을,
슬픔보다 큰 분노를 느꼈다.
행동하기로 마음먹은 성진의 첫 행보는 벽돌을 들고 천장에서 뛰어내려 은인의 머리통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그 후 성진은 천장 틈이나 환풍구 등, 좀비가 들어오지 못하는 틈을 통해 살아남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좀비들은 다시 동면에 들어갔고, 이 층에는 사람 하나가 먹고 살 정도의 물자는 남아 있었다.
3년.
성진은 동면 중인 좀비들을 영면시켜주며 이곳에서 살아남았다.
그렇게 쓰러뜨린 좀비들에겐 나름의 묘지도 만들어주었다.
묘지가 늘어갈수록, 그에 반비례하여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식량도 줄어들었다.
5층의 짐승들을 먹어보긴 했지만 그쪽도 수가 그리 많진 않았다.
그렇다고 좀비를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내려갔다 올게요. 언제 올지는 몰라요.”
성진이 가장 처음으로 만든 묘지.
그리하여 단순히 돌을 쌓아 올렸을 뿐인, 돌무더기에 가까운 한솔의 묘.
지난 3년간 몇 번이고 다시 만들까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제대로 된 묘는 지구로 돌아가서 만들어드릴게요.”
반드시 살아 돌아간다.
1102일차 종료.
생존자 1명.
플레이어는 아닌 한 명의 도전자가 탑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탑의 유일한 도전자는, 유일한 NPC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