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30년 전.
지구상에 탑이 나타나던 순간, 그 지점을 날아가고 있던 여객기가 차원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린 여객기의 승객들이 전원 사망했다고 생각했으나, 그들은 살아 있었다.
적어도 한동안은.
“이쪽 잔해 밑에도 사람이 있어요!”
“누가 들것 좀 가져와 봐!”
337편이 추락한 곳은 고철더미로 가득한 쓰레기장 위였다.
다행히 비행기는 고고도에서 추락하는 대신, 지면에 맞닿을 정도의 위치로 이동되어 곧바로 동체로 슬라이딩하며 정지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동체가 반으로 쪼개질 정도로 큰 충격이 있었지만, 하늘에서 그대로 추락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확인된 생존자는 113명인가.”
337편의 부기장, 박준영은 피에 물든 정복 차림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남들이 열심히 부상자를 수습하고 있는 와중에 쉬고 있는 게 미안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관성의 힘으로 지면을 슬라이딩하던 비행기는 정면부터 주변의 고철들을 긁으며 정지했다.
그 말은 머리 쪽의 피해가 가장 크다는 뜻.
솔직히 말해서 그가 살아난 건 기적에 가까웠다.
“씹.”
불을 붙이며 무심코 왼손으로 바람을 막으려던 박준영은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의 왼팔은 완전히 으깨진 기장석 어딘가에서 기장이었던 것과 함께 묻혀 있을 테니까.
‘좆됐네.’
달리 뭐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는 완전히 좆된 모양이었다.
심사숙고할 필요도 없이 확실했다.
꽁꽁 묶인 왼쪽 소매, 비명과 신음 소리가 난무하는 주변 현장, 분명 바다 위를 날고 있었을 텐데 사방에 가득한 고철까지.
심지어 그 고철더미 속에는 날붙이도 섞여 있어 착륙 과정에서 튕겨나간 이들은 그대로 갈려 버린 상태였다.
‘인세에 지옥이 있으면 이런 모양이겠지.’
박준영은 피와 살점이 널려 있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승객 명단을 확인했다.
국제선이었지만, 한국 항공사의 비행기인 만큼 과반수의 승객이 한국인이었다.
“시발 애들은 뭔 죄야.”
개중에는 척 봐도 어린아이들의 이름도 섞여 있어 박준영의 머릿속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쓰레기더미에 날붙이가 섞여 있어 부상자들을 데리고 움직이긴 힘들겠지? 모포 나누고 남은 기내식이랑 비상식량을 까먹으면서 구조가 올 때까지 버텨야 되나.”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곳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불빛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그런지 그 하늘은 짜증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통신도 안 되고, 여기가 어딘진 감도 안 잡히고. 일단은 내일 해가 뜨면 생각해봐야겠군. 뭐가 보여야 말이지.”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박준영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쓰레기장 위에 떨어졌다면, 그들은 사회 인프라가 닿는 범위 내에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적어도 바다 위에 떨어진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다른 승무원들은 이 와중에도 열심히 책임감을 발휘해 부상자를 돌보고 상황을 통제하려 하고 있었으나, 그는 심각한 수준의 환자였다.
당장 지혈은 됐지만 진통제와 항생제가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
그는 고열로 끙끙 앓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1일차 종료.
생존자 113명.
다음날 아침, 해가 뜨면 구조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던 생존자들을 맞이한 건 변하지 않는 밤하늘이었다.
“이상하다? 분명 해가 떠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인데?”
시간상 낮이 되어도 해는 여전히 뜨지 않았다.
“그 와중에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왔을 리는 없고…… 아니 애초에 지구 반대편이라도 10시간 이상 있었는데 뭔가 변화가 생겨야 하는 거 아닌가?”
뭐 하나 이상하지 않은 점이 없는 사고였지만, 이건 그중에서도 특히 이상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앉아 있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아침이 된 지 한참이 지나도 변화가 없자 결국 주변을 둘러보고 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갈래.”
“부기장님? 부상도 그렇게 심하시면서…….”
“다리는 멀쩡해. 그리고 저걸 보고 있으면 더 미칠 것 같아.”
저 끔찍한 비행기 잔해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었다.
다행이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움직일 기력이 남아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기에 박준영도 정찰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정찰의 결과는 심신의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돌겠네.”
미 중부의 드넓은 대평원을 연상시키는 쓰레기들의 향연.
최소 랜턴의 불빛이 닿는 범위,
최대 지평선까지 사방이 전부 쓰레기로 뒤덮여있었다.
“이게 뭐야. 내가 무슨 고철더미로 이루어진 행성에 불시착하기라도 했냐?”
놀랍게도 그의 비아냥거림은 사실이었다.
차원간계면.
온간 차원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떠다니던 그곳에는 특정 중력원을 중심으로 쓰레기들이 뭉쳐 고철행성을 이루곤 했다.
그들이 떨어진 곳은 개중에서도 지구에 준하는 수준의 중력이 형성된 곳.
거기에 지구와 똑같은 성분은 아니더라도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대기까지 중력에 붙잡혀 있는 곳에 떨어진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나마 행성의 중력 자체가 차원이동에 영향을 미처 비행기를 끌어들이긴 했지만, 우주와 마찬가지로 차원간계면도 행성과 행성 사이가 텅텅 비어 있는 공간이었으니 극악의 확률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젠장 이거 굶어 죽기 딱 좋겠는데…….”
박준영의 혼잣말에 주변에서 그를 노려보았다.
정찰에 나선 것은 승무원들만이 아니었다.
비행기 추락이라는 긴급상황.
승객 중에서도 기꺼이 남을 돕고자 나선 이들이 있었기에 초를 치는 듯한 말을 하고도 눈총을 피하긴 힘들었다.
“미안해 미안. 하지만 우린 진짜로 이 문제를 생각해 봐야 돼.”
정말로 쓸데없는 소리였다면 눈총을 살 일도 없었으리라.
모두가 박준영과 같은 생각이었기에 그리 격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일단은 여기까지 하고 돌아갑시다.”
돌아온 그들은 계속해서 구조신호를 보내며, 비상식량을 최대한 잘게 나누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숨만 간신히 붙어 있던 부상자들이 사망했다.
2일차 종료.
생존자 109명.
해가 뜨지 않는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불빛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푸른 소나무 같은 모습에 모두의 숨통이 조여 가던 중, 먹을 걸 찾아보겠다고 나섰던 이들이 뭔가를 찾아냈다.
“들어와 봐요. 여기 안쪽이 더 넓어요.”
지하를 향해 거꾸로 묻힌 거대한 탑.
빙산의 일각처럼 삐죽 튀어나온 1층에 구멍이 나 있는 덕분에 생존자들은 버려진 탑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보세요. 여기 풀도 자라요!”
“이게 무슨 풀이지?”
이 땅에는 해가 뜨지 않으니 빛도 없다.
그러나 탑의 잔여 마력으로 자라난 마법 식물들은 이곳에서 나름의 식생을 이루었다.
“무슨 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곳이면 물이나 식량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추락 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좋은 소식에 생존자들은 흥분한 상태로 조사에 나섰다.
“이게 뭐야. 라퓨타?”
그들은 곧 1층의 안쪽에서 이끼가 가득 낀 수호거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암만 봐도 지구 물건은 아니지?”
“뭐랑 싸우다 부서진 것처럼 서 있네요.”
“그럼 이걸 부숴 먹은 뭔가가 있단 말이야?”
“척 봐도 오래된 것 같으니 이젠 괜찮지 않을까요?”
안 괜찮다고 어쩔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여기도 구멍이 나 있네요. 2층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탑이 뒤집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이 서 있는 실내도 뒤집힌 상태였다.
다만 1층은 원래 천장도 낮고, 안쪽이 온갖 덩굴이나 바깥에서 쏟아진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어 타고 오르내릴 것들이 많았다.
그리하여 잡동사니를 타고 원래는 천장이었을 바닥에 내려선 그들은 2층으로 이어진 구멍을 발견했다.
수호거상은 문지기처럼 그 구멍 앞에 서서 부서져 있었다.
‘하지만 이 구멍은 안쪽으로 이어진 거잖아? 문지기면 바깥을 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마치 바깥에서 들어오는 침입자를 막는 경비원이 아니라, 안쪽에서 탈출하려는 죄수들을 막는 간수와 같은 모습.
박준영은 불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굶어 죽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탑의 2, 3, 4층은 1층보다 훨씬 작고 별것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5층.
5층에 도달한 사람들은 그곳에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환호했다.
“보세요 이 과일 먹을 수 있어요!”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먹는 거냐?”
“굶어 죽으나 탈 나서 죽으나. 어차피 누군가는 먹어도 되는 건지 확인해봐야 할 거 아니에요.”
“높으니까 조심해서 내려가요. 덩굴 잡고 가면 바닥까지 갈 수 있겠네.”
다행히 지구 대기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식물들은 인간의 입에도 맞았다.
이곳에는 널린 게 과일이었으므로 식량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100명 치 식량을 어떻게 다 어떻게 들고 가죠?”
“계속 비행기 잔해에서 지내는 것도 위험하고. 그냥 여기 4층에 거점을 만들고 여기서 지내는 게 낫지 않겠냐?”
그들은 바깥의 생존자들을 데려와 고철의 산을 넘는 여정 끝에 4층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날 밤.
야생화된 몬스터가 그들을 덮쳤다.
3일차 종료.
생존자 97명.
12명이 죽었다.
개과 생물을 닮은 그 몬스터는 생존자들이 돌을 던지고 고철더미에서 주워온 쇠꼬챙이나 날붙이 등을 휘두르자 결국 물러갔다.
그러나 놈들이 물러갔어도 한밤중에 습격을 당한 사람들은 완전히 지치고 말았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기서 나가야 된다니까?”
“나가봐야 어쩔 건데! 저 위에는 먹을 것도 없잖아!”
어둠 속에서 경계심을 곤두세우고 밤을 지새운 이들은 한없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결국 이야기는 주먹다짐 끝에 한 사람이 피를 보고 난 뒤에야 결론이 났다.
“나갈 사람은 나가고. 남을 사람은 남자고!”
21명이 비행기로 돌아가기로 하고 76명이 남았다.
남은 이들은 이제 그들끼리 몬스터의 습격을 대비해야 했다.
“탑의 파편들을 모아 바리케이드를 치고, 고철을 모아 무기를 만듭시다. 불침번도 세우고요.”
이전까지는 소수의 승객과 승무원들이 책임지고 앞장서는 편이었으나,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협력해야 했다.
다행히 4일째 밤에는 몬스터도 습격해오지 않았다.
4일차 종료.
생존자 76명.
5일째 아침.
비행기로 돌아간 쪽은 괜찮나 확인해보러 올라간 이들이 1층 입구에서 몬스터를 확인하고 되돌아왔다.
“사실 3일 차의 습격은 밖에서 온 거 아니냐?”
그렇다면 나간 이들은 다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생존자들은 5층을 포함해 더 아래까지 수색해보기로 했다.
5일차 종료.
생존자 75명.
6일째의 저녁이 되자 수색하러 갔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명훈 씨는?”
“……죽었어. 중간에 몬스터를 만나서.”
돌아온 정찰대에는 부상자도 하나 있었다.
“여긴 의사도 뭣도 없는데…….”
치료할 여건이 안 되는 상황.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진통제를 계속 놔주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그들의 정찰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10층에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가 있어. 거꾸로 뒤집힌 탓에 천장에 붙어 있긴 하지만, 빌딩끼리 하늘다리나 덩굴로 이어져 있어 충분히 오갈 수 있는 환경이고. 거기 마트나 편의점에는 통조림 같은 것들도 남아 있었어.”
정찰대는 그렇게 말하며 가져온 물건들을 꺼내놓았다.
한글은커녕 지구상의 그 어떤 문자와도 닮지 않은 상표들.
잠시 할 말을 잃었던 생존자들은 이내 통조림을 따고 나온 내용물의 ‘오랜만에 먹는 공산품의 맛’에 기뻐했다.
“10층으로 내려가자. 거기 가면 식량은 물론, 건물을 요새화해서 쉘터를 만들 수도 있어.”
“하지만 가다가 몬스터를 만날 수도 있는 거 아냐? 이만한 인원을 데리고 이동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여기 남아 있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진데?”
투표 결과 다음 날 아침 모두가 10층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부상자는 결국 그날 밤 고통 속에서 눈을 감았다.
6일차 종료.
생존자 74명.
7일째 아침.
푹 자고 최대한 체력을 회복한 생존자들은 10층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74명 전원 10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와아아아!”
“젠장 침대랑 이불도 있잖아?”
“이게 얼마 만이냐!”
생존자들은 피로도 잊고 현대 문물을 즐기며 몸을 씻고 배불리 먹었다.
그런 와중에도 창문을 막고,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침번과 경계조를 구성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행기 추락으로부터 일주일.
이제는 모두가 자기 역할에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다들 푹 쉬고, 내일 이 층을 좀 더 돌아보자고.”
생존자들은 그렇게 잠에 들었고,
7일차 종료.
생존자 1명.
홀로 남은 아이는 이제 스스로 살아남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