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오메가는 전이를 통해 누군가가 넘어오자마자 즉시 정신지배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미 초월을 이룬 성진의 정신은 해당 마법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권능스킬이 통하지 않다니.]
오메가의 상식에서 사도의 정신조작 스킬이 통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아닌 자들뿐.
천사가 아니라면, 같은 사도밖에 없었다.
[과연, 네가 바로 마왕 남태수인가.]
그는 고양이 상태의 성진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도인 점을 들어 남태수라고 넘겨짚었다.
성진은 굳이 그 오해를 정정해주지 않았다.
“네놈이 알 거 없다.”
전이의 완료와 동시에 이루어진 냥냥펀치.
고양이의 자그마한 손으로 가한 공격에 오메가는 천사의 방어막을 펼쳤고,
콰직!
깨졌다.
콰아아아아앙!
오메가는 충격에 저항하지 않고 뒤로 튕겨 나갔다.
성진은 곧바로 그 뒤를 쫓아 추격타를 가했지만 오메가는 권능스킬의 다발을 뿜어냈다.
‘반응했나? 아니 이건 반응한 게 아니군.’
아무리 뛰어난 아이템과 강력한 스킬을 지니고 있어도 그걸 사용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정신.
때문에 랭커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자신이 의식을 잃거나, 반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동으로 기술이 발동되도록 장비와 스킬을 세팅해두고 있었다.
‘효율적인 대응이 아니다. 그저 시간을 벌기 위해 아무 스킬이나 쏟아내고 있을 뿐.’
그러나 효과는 확실했다.
사도의 권능스킬은 기본적으로 성좌에게 받은 신성마법.
아무리 성진이라도 대놓고 그 효과를 씹을 순 없었다.
‘망치의 소환은?’
아껴둔다.
정령술을 비롯해 눈에 띄는 기술은 사용할 수 없다.
대신 성진이 꺼내든 것은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기술.
거기에 초월 2단계의 영혼이 고양이 몸의 한계를 돌파시켰다.
“벽력참.”
스킬을 사용하듯 굳이 기술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며 팔을 내질렀다.
내지른 손에는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이 검기가 쥐어져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이름, 검의 위력을 극대화시킨 일격을 날릴 뿐인 흔한 효과.
그러나 그 위력은 전혀 흔하지 않았다.
우르릉!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참격의 실체를 보지 못했다.
눈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검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일어난 천둥과 번개.
그리고 파괴된 대지뿐이었다.
[굉장한 위력이군. 기본 능력을 강화하는 권능인가?]
오메가는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오르며 성진의 공격을 피했다.
[어떤 성좌를 섬기는지 점점 더 궁금해지는걸?]
사도 간의 전투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권능스킬에 달려 있었다.
아무리 강화한다고 해봐야 인간의 몸은 전투에 적합한 구조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방어를 우회해서 급소를 파괴하기만 하면 일격으로도 충분하니, 결국 끝까지 아껴놓은 권능스킬을 한순간에 퍼붓는 일격필살의 승부가 정석인 것.
[그게 전부라면 근접전에 어울려주지 않으면 될 뿐이지.]
오메가는 공중에서 강력한 염동력으로 압축시킨 공기 탄환을 만들어냈다.
[자, 네 능력을 더 보여봐!]
초당 수백 발에 달하는 염동탄이 성진을 향해 쏟아졌다.
말 그대로 광선이라 쏘는 즉시 적중하는 파괴광선보단 느린 공격.
그러나 염동탄은 추적이 가능한 데다 중간에 유폭시킬 수도 있어 회피나 방어가 훨씬 까다로웠다.
“본 쉴드.”
성진이 마법을 발동하자 뼈로 된 방패가 나타나 염동탄을 막아섰다.
염동탄은 강력한 위력으로 뼈 방패를 박살 내며 들어왔지만, 성진이 만들어낸 본 쉴드는 빌딩을 몇 개씩 겹쳐놓은 규모로 시간을 벌어주었다.
[소모전을 해보자고? 멍청한 녀석. 같은 사도라도 플레이어로서의 레벨이 차이 나는데 그게 될 것 같아?]
오메가는 성진을 비웃었으나 성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애초에 오메가가 거리를 벌리고 원거리 견제로 넘어가게 만든 것은 전부 성진의 노림수였으니까.
‘일단은 이 녀석들부터 도망치게 한다.’
인연의 반지를 사용한 성진이 도착한 곳은 베르나데트의 조사팀이 토끼굴의 경유지로 사용하던 이름 없는 무인도.
그가 도착했을 때 조사팀은 전부 오메가에게 당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베르나데트.”
“마왕 남태수라니, 보스가 아니라 태수 씨였어요?”
성진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 것은 베르나데트나 빅토르도 마찬가지.
급한 와중에 상황을 설명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성진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군. 먹어라.”
성진은 그들의 영혼을 보고는 드래곤 하트의 조각을 꺼냈다.
영혼의 손상은 포션으로도 치료가 안 된다.
이대로라면 여기서 살아나가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 판이었기에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긴 했다.
“이건……?”
“용의 심장이다. 8조각으로 나눈 거지만 이걸로도 효과는 확실할 거다.”
그들에게 드래곤 하트를 섭취시킨 성진은 빅토르의 가슴에 발톱을 찍었다.
이어서 앞발을 떼자 끌려 나온 피가 사방으로 퍼졌다.
“혈궁 전개.”
혈궁.
빅토르는 흡혈귀였으나 아직 귀족만이 사용 가능한 이 혈마술의 결정체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진은 놀라운 혈마술 실력으로 타인의 혈궁을 강제로 꺼내버렸다.
빅토르의 마력으로 발동된 그 혈궁은 인류해방전선이 사용하는 핵잠수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탈해라. 너희들을 챙기면서 싸울 여유는 없으니까.”
성진은 산달폰의 시체를 포함해 조사팀 전체를 혈궁에 태운 후, 통째로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직후 염동탄의 비가 쏟아졌다.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나!]
“물론 벗어날 수 있다.”
용왕파천무.
힘을 다루는데 특화된 무공.
금방이라도 터지려던 염동탄들이 다시 안정화되며 성진의 손안으로 모여들었다.
어떤 무공에든 하나쯤은 있는 상대의 힘을 이용한 반격기.
성진은 묘기에 가까운 마력 조작으로 그 힘을 붙잡아 상대에게 뿌렸다.
쿠구구구구!!!
강제로 뽑아내진 혈궁을 타고 그곳을 이탈하던 조사팀은 폭격과도 같은 충격에 섬을 바라보았다.
“저분이 바로 그분의 왼팔이라 불리는 남태수 님이신 겁니까?”
“……아마도? 왜 고양이가 되어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마계대전을 넘어가셨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말이 됩니다. 그곳은 NPC의 몸으로 진행하는 스테이지니까요.”
299층까지 올라본 경험이 있는 빅토르는 어렵지 않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보다 NPC의 몸으로도 저만한 위력이라니. 과연 남태수 님. 저희가 배우고 있는 무공과 마법 따윈 이미 마스터하셨다는 거군요.”
“어…… 그런? 가?”
베르나데트는 자신이 기억하던 남태수의 모습을 떠올리곤 의문을 표했지만 100층 이후에 대해선 모르니 뭐라고 반박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용의 심장에서 끝없이 용솟음치는 이 마력. 과연 주 성진께서 내리신 은혜란!”
“……주성진이라는 게 딱히 주님이라는 뜻은 아니지 않을까?”
베르나데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으나 빅토르는 드래곤 하트의 마력에 취해 거기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역시 진정한 주님의 은혜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법이군요!”
“확실히.”
온갖 것들에 대가를 요구하는 성좌와 달리 성진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힘을 내려주는 게 아닌, 인류가 스스로 그 자신을 지킬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방식.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용의 심장을 내어주며 그들을 돕는 모습.
대가 없이 인간을 돕는 그 모습은 마치 성좌가 나타나기 전, 사람들이 그리던 이상적인 ‘신’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이 기적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둬야 합니다!”
“그래 봐야 오메가한테 다 부서져서 지금은 카메라고 뭐고 없잖아?”
“그럼 이렇게라도!”
빅토르는 혈마술을 사용해 피를 조종, 눈앞의 광경을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새겼다.
놀랍게도 빅토르는 마치 신화의 한 장면을 그린 벽화처럼 예술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그림 실력은 또 왜 이렇게 좋아?”
“현상에 대한 정확한 관찰과 재현은 마법사에게 중요한 능력이니까요.”
베르나데트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산달폰의 시체를 돌아보았다.
천사라는 이유로 내심 산달폰을 꺼리던 베르나데트였으나, 정작 산달폰은 그녀가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금제를 깨면서까지 그녀를 구하려했다.
‘물론 그거 하나만 보고 천사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하지만…….’
저 오메가라는 개자식은 두들겨 패주지 않으면 참기 힘들 것 같았다.
‘태수 씬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 새끼의 역겨운 면상을 진흙탕에 처박아주시길.’
* * *
날아드는 염동력 칼날을 피해낸 후, 염동탄의 포화 속에서 역장을 뚫고 나아간다.
그러는 사이 오메가는 다시금 거리를 벌리며 성진의 접근을 떨쳐냈다.
[하하핫! 그런 속도로는 날 따라올 수 없을걸!]
성진은 쉽사리 오메가를 날려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는 천사의 힘과, 사도의 힘, 300레벨 이상인 플레이어의 힘을 동시에 다루고 있었다.
비록 받아서 쓰는 힘이라곤 해도 오메가는 그걸 다뤄서 ‘전투’를 행하는데 특화된 인물.
고양이의 몸으로는 확실하게 상대를 압도하기 힘들었다.
[하핫, 그게 전부야? 좀 더 힘내봐. 네 성좌의 권능스킬을 보여달라고!]
더욱이 성진은 사도 앞에서 검강을 포함해 신성마법을 사용하기가 힘들었다.
검강 또한 우주적으로 흔치 않은 기술.
성좌의 눈길을 끌 가능성을 생각하면 이렇게 개방된 곳에서 섣불리 사용할 수 없었다.
[사령술사라 들었는데 이만한 격투술이라니. 적성을 잘못 안 거 아닌가?]
쓸 수 있는 것은 공통 스킬과 사령술뿐.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이클립스.”
태양이 검게 물들었다.
[사령술사의 각성기라. 끝까지 네 권능은 보여주지 않겠다 이거야?]
이클립스는 사령술사 플레이어가 100레벨에 배우는 각성기.
대지에 그늘을 드리우고, 그늘 아래에 존재하는 시체를 계속해서 언데드로 되살리며 상대에게는 지속적인 디버프와 도트딜을 주는 스킬.
[그래 봐야 100레벨 스킬. 변변찮은 시체도 없는 이곳에서 그걸로 뭘 하겠다고?]
오메가는 속박을 피해 날아오르는 한편 후광을 내뿜어 저주를 떨쳐냈다.
이클립스는 대단위 전투에 특화된 스킬이었기에 일대일에는 재미를 보기 힘들었다.
[그게 네 전부라면 이만 죽어라.]
“아니.”
그것이 스킬이라면 말이다.
사령술의 시조는 사룡왕 엘드리치다.
탑에 등장하는 사령술 스킬 또한 사룡왕의 마법을 개조한 것이었다.
그것은 각성기인 이클립스 또한 마찬가지.
스킬로 등장하는 이클립스는 단순히 사령술사의 여러 스킬들을 지속형 필드기로 까는 것에 불과했지만, 원본인 ‘마법’ 이클립스는 달랐다.
‘사룡왕은 고작 그런 간단한 마법들을 쓰기 힘들다고 새로운 마법을 만들 녀석이 아니지.’
‘스킬’에는 들어있지 않은, ‘마법’ 이클립스의 진짜 효과.
“네놈이 죽을 시간이다.”
검은 태양을 등지고 용의 그림자가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