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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부수는 플레이어-122화 (122/170)

<122>

“흠냐.”

다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성진은 마지막 일격에 숨길 것 없이 감탄했다.

‘아직은 미완성. 그마저도 무의식적으로 찍은 고점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래도 저건…….’

검기성강.

우연에 불과하다 해도 일단 한번 발현된 이상 다나는 검강을 ‘쓸 수 있는 부류’라고 해야 했다.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되는 것이 검강이라면 다나는 언젠가 검강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

그때가 정확히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다나는 저것만으로도 이미 모든 검사가 바라 마지않는 기적을 행한 셈이었다.

“쿨럭!”

“명줄도 질기다냐.”

그 와중에 자토는 다나의 참격에 반응해 몸을 트는 데 성공했다.

오른팔을 포함해 어깨가 통째로 날아가긴 했지만 죽진 않은 것.

아직 다나의 숙련도가 부족하기 때문이었으나, 그걸 감안해도 상당히 질긴 모습이었다.

“어째서냐! 왜 응답이 없지? 대답해라!”

“소용없다냐.”

자토는 피를 토하면서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으나 그 모든 신호는 성진의 혈마술에 의해 차단되고 있었다.

“마력을 보는 법은 잊었냐? 주위를 둘러봐라냐.”

“무슨 소리지? 여기에 뭐가 있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반사적으로 육감을 확장시킨 자토는 이내 경악했다.

“이게 무슨……?”

혈마술의 극의.

“혈궁?”

“이미 이곳은 내 손바닥 안에 있다냐.”

성진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육구를 활짝 펼쳐 보였다.

고양이의 몸은 작은 만큼 피의 양도 적었다.

때문에 성진이 불러낸 혈궁은 눈에는 물론 육감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얇고 미세하게 만들어져 주위를 장악하고 있었다.

“왜 내가 혈궁을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하냐?”

“혈궁은 흡혈귀만이 사용할 수 있을 텐데? 장화 신은 고양이가 흡혈귀일 리 없잖나!”

물론 아무리 성진이라도 흡혈귀가 아닌 이상 자신만의 혈궁을 만들어낼 순 없었다.

그러나 이어받은 혈궁을 불러내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게 네 한계냐?”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초월에는 이를 수 없다.

“네가 계속 시도하던 것은 이거였냐.”

성진은 잘려나간 자토의 팔에서 반지를 빼냈다.

[인연의 반지A]

유니크 반지 아이템

인연의 반지B 소유자의 레벨에 비례하여 스탯 상승

인연의 반지B 소유자와 실시간 대화 가능

일시적으로 인연의 반지B 소유자의 위치로 전이 가능(3/10)

(해당 옵션의 지속시간은 사용자의 마력에 비례하며, 지속시간 종료 후 원래 위치로 돌아옵니다.)

짝을 이룬 반지를 나눠 가지면 서로 연결되는 아이템.

자토에게서 느껴지던 사도의 카르마는 이 반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반대쪽은 누가 가지고 있냐.”

“……오메가다.”

자토는 반항해봐야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어차피 세계정부의 관계자 사이에선 비밀이랄 것도 없는 공공연한 사실.

이제 와서 숨길 이유도 없었다.

“인연의 반지를 이용하면 오메가도 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물론 플레이어로서 참가한 게 아니기에 소환된 스테이지를 벗어나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횟수가 소모된 건 이미 사용한 적 있다는 거냐?”

“그래. 오메가는 이미 이곳에서 몇 번이나 ‘공물’을 받아 갔지.”

자토에 의해 개미 측의 클리어가 막혀 있는 스테이지.

이곳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개미 플레이어가 쌓이기 마련이었다.

오메가는 그럴 때마다 인연의 반지를 통해 탑으로 들어와 그들을 수거해갔다.

“오메가가 그놈들을 데려가 어디에 사용하는진 나도 모른다. 그러나 공물이라고 부르는 이상 멀쩡한 꼴은 아니겠지.”

자토는 그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네놈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고작해야 인간. 신이나 다름없는 성좌에겐 거스를 수 없을 거다.”

“재밌네.”

콰직!

영혼의 분노가 육체의 제약을 짓밟았다.

강렬한 카르마가 육체를 초월해 고양이 말투를 뚫고 나왔다.

자토는 카르마를 느낄 수 없었으나, 막대한 카르마의 여파가 만들어낸 마력의 폭풍은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닌, 자연재해에 가까운 모습.

과거 인간은 자연현상들을 신의 분노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것은 자연현상이 인간이 어쩔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자토가 보기에 성진은 이미 신과 다르지 않았다.

“어디 한번 해보라지.”

* * *

“아무래도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아네모네는 멀리서 성진의 혈궁이 발동된 것을 감지하고 무릎에 뉘어 두었던 남태수를 일으켜 세웠다.

“응애.”

“몸을 되찾기 전에 사도 오메가와 싸워선 안 됩니다.”

“응…… 예?”

남태수는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짧은 꿈속에서 깨어났다.

“자, 잠깐. 여기서 그 이야기해도 돼요?”

“걱정 마시길. 제 궁전은 바깥의 스테이지와 완전히 다른 공간. 이곳에선 천사의 눈을 피할 수 있답니다.”

사실 남태수는 제페토의 뒤로 나온 게 아니라 아네모네의 힘으로 소환된 상태였다.

“오메가, 그는 인연의 반지를 통해 자토와 협력하는 척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자토는 반지의 효과로 오메가를 탑으로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론 그저 천사여서 탑을 오갈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건 확실히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천사에 사도라도 성진 씨한테는 별문제 없을 것 같은데요.”

“물론 집행자께서는 그 누가 상대라고 하여도 물러서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떠올려보세요.”

일행은 지금 스테이지의 특수성 때문에 NPC의 몸에 빙의해 있는 상황.

원래 몸은 스테이지의 뒤편에 따로 보관되어 있었다.

“천사인 오메가는 그곳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앗.”

“원래의 몸을 잃게 되면 지금보다 크게 약화될 것은 불가피. 놈과 싸우기 전에 육체를 되찾는 것이 먼저입니다.”

당장 육체에 쌓아둔 마력은 둘째치고, 패배의 카르마가 생기기라도 했다간 상당히 골치 아파질 터였다.

일단 패배의 카르마가 생기면 그걸 뛰어넘는 게 배로 힘들어지는 데다 무패의 카르마가 깨지며 원래 있던 카르마도 박살 날 테니까.

심지어 상대에게 특이점을 쓰러뜨렸다는 카르마가 생기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집행자께서 약화된 상태에서 반 특이점 같은 존재라도 생겨나게 된다면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겠지요.”

주성진 같은 적이 나타난다면?

남태수는 잠시 그간 성진이 해온 일들을 상대편의 시선으로 떠올려보았다.

‘보통 머리가 터지거나, 상반신이 터지거나, 아니면 그냥 전신이 터졌지?’

“살려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렇게 터지면 리치도 못 된단 말이에요! 뼈다귀라도 남기지 않으면!”

“언데드가 되시려고요?”

“아니 그건 아닌데!”

잘 먹고 잘 살다 평범하게 죽고 싶지, 머리통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싶진 않았다.

“진정하시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답니다. 그걸 위해서 남태수 님을 불러온 것이기도 하고요.”

아네모네의 말한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남태수 님을 잡아먹은 제페토는 뱃속에 아공간을 두고 있지요. 그 공간은 단순히 뱃속이 아니라, 목구멍을 통해 이어진 완전 별개의 공간이고요.”

“그렇죠?”

“아공간에서 나가면 다시 제페토가 있던 스테이지로 나가질 거예요.”

“그런데요?”

“그럼 제페토가 죽어 있는 상태에서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오오?”

남태수가 떨어진 곳은 엄밀히 말해 제페토의 뱃속에서 이어진 공간이지, 실제 뱃속이 아니다.

그러니 제페토가 죽어도 해당 공간은 여전히 남아 있으리라.

“죽은 NPC의 육체가 스테이지의 뒤편으로 이동됐을 때, 그곳에서 뱃속을 탈출하면 플레이어도 뒤편으로 넘어갈 수 있을 거예요.”

그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상어째로 스테이지 뒤편에 불려가는 것.

몸속에 아공간을 품고 있다는 몬스터의 기믹을 이용해 뒤편으로 넘어가자는 계획이었다.

“제페토는 제가 스테이지의 흡혈귀들을 시켜서 공격하고 있으니 곧 죽을 거예요. 그러니 그때까지 여기서 쉬시다가 출발하시면 된답니다.”

“저희가 올 걸 알고 계셨군요?”

“높은 세대의 흡혈귀들은 피의 원류를 볼 수 있거든요.”

흡혈귀는 자신을 흡혈귀로 만든 직계존속에게 귀속된다.

그리고 모든 흡혈귀는 결국 피의 원류라 불리는 프라이멀 블러드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었다.

높은 세대의 흡혈귀들은 이를 통해 자신의 직계비속이 아니더라도 그 연결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일종의 통합된 정신을 갖출 수 있었다.

“웨어울프의 신경망이랑 비슷한 건가요?”

“그들과 비교되는 게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그러는 편이 이해가 쉽다면 그렇게 생각하셔도 상관없어요.”

“앗, 아앗. 죄송…….”

“이러한 능력으로 저는 이곳에서도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답니다. 특히 바깥에 있는 빅토르라는 아이가 도움이 되었지요.”

빅토르의 외모는 아이라는 말과 거리가 멀었지만, 고대의 흡혈귀인 아네모네의 눈에는 지구인이야 전부 유치원생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아이가 조폐국을 공격한 덕분에 오메가의 시선도 바깥에 묶여 있어요. 지금이야말로 아무런 방해 없이 몸을 찾으러 갈 기회에요.”

양쪽을 다 보고 있던 아네모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원래는 집행자님께 접촉할 생각이었지만, NPC의 몸으로는 그러기가 여의치 않더라고요. 정말이지 너무하지 않나요?”

NPC는 시스템으로 보호받고 있는 플레이어의 카르마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이 스테이지에선 누가 성진인지 구분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실수로 다른 사람을 불렀다간 큰일이니까요. 혹시라도 잘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었어요.”

“그런데 왜 성진 씨가 아니라 저를?”

“집행자님은 확실하지 않았지만, 남태수 님은 확실했으니까요. 그도 그럴 게 바보같이 변기에 빨려 들어가는 건 남태수 님뿐인걸요?”

“쿨럭!”

정말로 비하의 의도 없이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발언이었기에 대미지는 훨씬 강력했다.

“정말이지 햄스터 같아서 귀여우세요.”

“가, 감사합니다?”

“용왕님이 왜 실험쥐로 키우고 있는지 알 것 같다니까요.”

“칭찬 맞죠?”

“영혼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분명 용왕님께 온갖 카르마를 받아서 찐빵처럼 빵빵해져 있겠죠?”

“찐빵?”

“꾹 누르면 찐빵처럼 옆구리가 터져서 앙금이 흘러나오지 않을까요?”

“앙금???”

“분명 그 내용물도 달콤한 맛이겠죠…….”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들이미는 아네모네의 모습에 남태수는 고양이 앞의 쥐가 되어 바짝 굳어 버렸다.

아네모네는 그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가리며 물러섰다.

“어머나, 저도 참. 피를 안 마신 지 너무 오래되어서 정신이 이상해졌나 봐요.”

“하하,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러니까 조금만 마시게 해줄 수 있으신가요?”

이번에는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 입만, 그러니까 20리터 정도만…….”

“저기요? 사람 몸에 피가 20리터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런 건 포션을 마시면 얼마든지 차니까 괜찮다구요. 자, 어서요. 제페토가 죽기 전에 빨리요.”

“아니 잠깐 저는 피를 드리겠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에잇, 그렇게 누나를 안달 나게 하면 못써요!”

푝!

“푝?”

아네모네가 손가락으로 남태수의 가슴을 콕 찌르자 구멍에서 피가 졸졸 새어 나왔다.

“으아아 심장에서 케첩 샌다아아아!”

남태수의 트라우마에 무서운 흡혈귀 누나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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