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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부수는 플레이어-117화 (117/170)

<117>

흔히 ‘세계정부’라는 이름으로 묶어 부르는 것과 달리, 사도들의 연합체는 상당히 복잡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모든 사도들은 각자의 성좌에게 지구를 가져다 바치도록 명령받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는 사도의 자유였다.

어떤 사도는 성좌의 이름을 가지고 종교를 일으켜 기존 종교계를 흡수하려했다.

종교인들의 높은 충성도와 많은 인구수는 상당한 힘이 되었지만, 성좌를 이용한 종교는 필연적으로 ‘다른 성좌를 믿고 있으니 굳이 그 성좌를 믿을 필요가 없다’는 문제를 낳았다.

또 어떤 사도는 피로 이어진 혈맹을 통해 가족관계로 사업을 키워나가려 했으나, 이러한 방식은 유대감이 강력할지언정 사업의 규모를 불리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연예계를 장악해 미디어 제국을 세워보려던 사도도,

환경, 인권 운동을 통해 명분을 잡으려던 사도도,

직접 정계에 나선 사도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인류해방전선을 설립한 사도도 있었다.

사방에 인간을 유혹하는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사도들끼리 정면에서 맞붙었다간 성좌의 비밀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상황.

세계정부는 사도들이 정한 ‘게임의 규칙’이었고, 상호확증파괴와 같이 그들을 억제하는 억지력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모든 사도들의 경쟁은 음지로 숨어들어 물밑에서 이뤄지게 되었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는 건 아무도 없게 되었다.

“재밌네.”

인류 최초의 사도.

소년 오메가는 현 상황을 그렇게 평했다.

초기에는 단순한 하와이 관광객이나 원주민이 탑에 들어간 경우도 있었으나, 그 경우엔 대부분 죽음으로 끝이 났다.

탑은 준비되지 않은 자가 오를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반면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도 있었다.

오메가는 바로 그런 최초의 입탑자 중 하나였다.

“마왕 남태수. 그놈이 신시아의 동생과 함께 다니고 있단 말이지?”

탑이 나타난 지 30년.

오메가는 여전히 십 대 소년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혹자는 그것을 두고 성좌의 축복이니, 스펜서 가문처럼 종족을 바꾼 것이니 떠들어댔으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다른 사도마저도.

“불과 광채를 사칭해서 바보 하나를 보내보길 잘했어.”

결론만 말하자면 둘 다 맞았다.

성좌의 축복으로 종족을 바꾼 존재.

인간에서 천사로 다시 태어나 탑 안팎을 오갈 수 있게 된 존재.

그것이 바로 소년 오메가였다.

마계대전 스테이지에서 엔리코에게 사도 제안을 보낸 것은 사실 그가 성좌의 이름을 사칭한 것이었다.

만일 리처드 카이만이 멀쩡했다면 협정 위반으로 난리가 날 일이었지만 그는 일종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칭을 통해 엔리코를 움직인 오메가는 화산지대에서 남태수와 다나를 보았다.

“마왕 남태수라. 분명 주성진이 처음 등장했던 그날의 입탑식에서도 마지막까지 리처드 카이만과 있었지.”

그리고 오해했다.

“주성진이라는 남자는 놈이 소환한 언데드인 것이 분명하다.”

그의 오해에는 근거도 있었다.

“입탑식에서 사고가 벌어진 날, 주성진이 등장한 타이밍이 묘하군.”

그냥 성적 최하위였던 남태수가 마지막에 들어갔을 뿐이었다.

“천사의 권한으로 커뮤니티의 명단을 확인해도 주성진이라는 이름은 없었지.”

사실 시스템 오류로 성진이 상점도 못 쓰는 상태라 그런 것뿐이었다.

“거기에 마계일통까지.”

안타깝게도 마왕 남태수는 남태수와 다른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탑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도였다는 건가. 대단하군.”

사도 지정은 성좌 자신에게도 영향이 가는 일이었다.

아무나 사도로 지정할 순 없다.

때문에 탑에서 다양한 환경에 던져보고 충분한 능력과 적합성을 가지고 있다 판단되었을 때 사도 제안을 하게 된다.

다만 이 경우 이미 탑에서 구를 만큼 구른 베테랑을 사도로 지정하게 되기에 추가적인 성장 가능성은 적었다.

“반면 먼저 사도로 찍어놓은 녀석을 탑에 들인다면?”

초반부터 권능을 이용해 독보적인 성장이 가능하리라.

아무런 시험 없이 냅다 찍어서 당첨을 고를 확률은 적지만, 만일 성공한다면 단번에 다른 사도들을 찍어 누르는 강력한 사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복권 그 자체.

그것도 이 경우에는 이미 당첨된 복권이었다.

“어떤 성좌인진 몰라도 대단한 짓을 해주셨군.”

새로 참전한 성좌가 어떤 놈인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남태수가 신시아의 동생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신시아 스펜서. 영악하게도 새로운 성좌와 손잡고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이거지?”

이렇게 보면 상황이 참 공교로웠다.

아무도 믿지 않고 피로 이어진 관계만을 믿던 신시아가 마침 남태수가 들어간 그 회차에 자신의 유일한 혈육을 집어넣는다?

“아니, 그럴 확률은 없겠지. 이건 처음부터 계획된 거다.”

마계대전을 통과한 놈들이 도착할 스테이지는 그의 중요한 농장 중 하나.

“안 돼. 이대로 두면 성좌께 바칠 공물의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

모든 사도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가로 성좌의 침략을 돕고 있었다.

사실상 종족 전체를 팔아먹은 행위.

하지만 오메가는 거기서 더 나아가 추가적인 힘을 얻기 위해 ‘시제품’을 만들어 보내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농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

* * *

“그렇다고 하는데요.”

남태수의 손을 타고 이어진 말캉말캉한 슬라임 뱀이 반대편에서 본 정보를 전해왔다.

두 사람은 그를 통해 방 안에 앉아 베짱이들의 계획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엎으실 거죠? 일단은 아킬레우스라는 사람의 능력이 뭔지가 중요하겠네요. 무적이라는 게 일종의 무한부활 같은 식으로 이뤄지는 거라면 생포를 해야…….”

남태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뒤집어엎는 것을 전제로 자기 할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으나, 성진의 생각은 달랐다.

“저놈들 말대로 순순히 시험에 응하는 게 좋겠다냐.”

그 말에 남태수는 대경실색했다.

“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천하의 주성진이 여기서 몸을 사린다니요? 어디 아프세요?”

남태수의 혹이 하나 더 늘어났다.

“놈들의 계획이 사실이라면 시험 당일 최대한 많은 베짱이들이 모일 거 아니냐.”

“그렇겠죠?”

“그럼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단번에 조질 수 있는 거 아니냐.”

남태수의 표정에 그제야 화색이 돌았다.

“암! 그래야 우리 주성진이지!”

그는 어느새 3개로 늘어난 혹을 달고 편안해졌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대로라면 베짱이는 한곳에 모아두고 일망타진 할 수 있다.

방해꾼을 전부 치워놓은 다음이라면 개미 쪽도 별문제는 되지 않으리라.

“이쪽에서 크게 일을 벌이면 다나도 알아서 합류하겠죠. 걔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애도 아니고.”

“그렇다냐.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원래 몸을 되찾는 거다냐.”

“원래 몸이요? 그거야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돌려받는 거 아니에요?”

“플레이어가 너무 많은 카르마를 쌓지 못하게 하려고 NPC의 몸에 넣은 거 아니냐. 이 스테이지를 클리어해도 이어서 또 비슷한 스테이지들이 계속 이어질 거다냐.”

장화신은 고양이 다음에는 또 뭐가 나올지 모른다.

언제 몸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뜻.

“우리가 스테이지를 진행하는 동안 원래 몸은 스테이지의 뒤편에 잠들어있을 거다냐.”

성진은 리처드 카이만을 죽이지 않고 의식을 잠재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놓았다.

지금의 그들이 처한 상황도 그와 마찬가지.

이렇게 스테이지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원래 몸은 천사가 들여다볼 수 있는 곳에 방치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운이 없으면 천사들이 먼저 저희 몸을 발견하고 부숴놓을 수도 있겠네요? 빨리 되찾아야 하잖아요 그럼.”

“그렇다냐.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원래 몸을 되찾는 거다냐.”

남태수는 그 말에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스테이지의 뒤편이라면 또 어디선가 게이트 같은 걸 찾아야겠네요? 좌표야 영혼이 이어져 있을 테니 저희들의 영혼을 살펴보면 추적할 수 있을 테고요.”

이제는 남태수도 어엿한 영혼 전문가로서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마력 모이는 대로 추적귀라도 소환해서 계속 뿌려둘게요. 어차피 다나도 찾고, 스테이지 현황도 파악해야 할 테니까요.”

생각지도 못한 스테이지가 등장했지만, 공략에는 문제없으리라.

남태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때까지는.

* * *

그날 저녁.

“응? 어? 어? 으아아악!”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던 남태수는 그대로 변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푸확! 뭔데! 이거 뭔데!”

황급히 수면으로 머리 위를 내밀고 보니 그곳은 바다 한가운데였다.

어째서 민물이 아니라 바다라고 확신했냐면 입에 들어온 물맛이 짭짤했기 때문.

‘바다라서 그렇겠지? 바다라서 그런 걸 거야. 제발 바다인 걸로 해주세요.’

현실도피도 잠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주변에 뭐가 안 느껴지는데? 진짜 바다 한복판이야?”

변기물을 타고 하수관으로 내려왔다면 응당 위쪽에 베르사유 궁전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남태수의 육감으로도, 시각으로도 저 위는 말 그대로 텅 빈 하늘.

완전히 다른 공간에 와 있는 것이었다.

“게이트? 변기가 게이트였어? 아니 근데 왜 갑자기 작동하는데! 난 아무것도 안 했다고!”

애초에 게이트인 줄 알았으면 거기다 엉덩이를 들이대진 않았으리라.

뭐가 튀어나올 줄 알고 그 앞에서 바지를 내린단 말인가?

‘튀어나온 게 아니라 빨려 들어왔지만.’

아무튼 남태수가 일부러 작동시킨 게 아니니 게이트를 작동시킨 사람은 따로 있는 게 분명했다.

“놈들이 이미 우리 생각을 알고 있었나? 하지만 육감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다른 플레이어들은 마력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므로 이를 숨길 수도 없다.

이러한 점을 이용해 그간 성진의 파티는 자잘한 이득을 보아왔지만, 이번엔 별다른 반응을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이 꼴이었다.

“일단 어디 뭍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이대로는 둥둥 떠다니다 물고기 밥이 되겠다고 생각한 남태수는 천천히 한쪽 방향으로 배영을 시작했다.

헤엄을 친다고 체력을 너무 소모해 버리면 본말전도.

“파도에 몸을 맡기고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추진력을 낸다!”

청약에 당첨된 후, 생존수영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대로 남태수는 누워 뜨기 자세로 천천히 나아갔고,

[조건을 만족하여 필드 보스가 등장합니다!]

“상어?”

거대한 고래상어가 나타나 그를 한입에 삼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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