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114화 (114/170)

<114>

“151층부터의 스테이지는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아요.”

남태수는 자신의 수첩을 덮으며 말했다.

“공략법은 원래 귀중한 정보예요. 마계까지야 101레벨만 되어도 가볼 수 있으니 어차피 기본적인 정보는 다 퍼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랭커는 소수에요.”

150레벨을 넘긴 랭커들은 단합하여 150층 이후의 스테이지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일종의 ‘사다리 치우기’였지만 거기에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밖으로 나온 랭커들이 세계정부의 고위층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있고, 정작 그 랭커들도 정보 없이 목숨을 걸고 들어가서 얻은 자료니까요. 덕분에 일종의 계급고착화가 일어났어요.”

랭커 집안 자식들은 랭커에게 교육받고, 150층 이후의 공략법도 숙지한 뒤 탑에 들어와 랭커가 된다.

반면 평범한 집안에서는 재능 있는 아이가 태어나도 지원이 부족해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재능에 자신이 있으면 클랜에 들어가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 경우에는 탑을 나온 뒤에도 해당 클랜에 충성을 다해야 했다.

갈라서더라도 그간의 지원을 받은 대가는 다 치러야 했으므로 미래를 저당 잡힌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151층부터의 공략정보는 다나한테…….”

“저도 잘 모르는데요.”

다나는 남태수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가문에서 의절된 상태인 다나는 공략에 대한 정보를 듣지 못한 상태로 탑에 들어왔다.

“뭐, 평범하게 진행했으면 센트럴 시티에서 웨어울프들을 통해 정보를 보내줬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거긴 우리가 다 엎어버렸잖아?”

“그러니까요.”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남태수를 보며 성진이 한마디 했다.

“150층 이후의 스테이지라면 내가 대충 안다.”

“예? 성진 씨가 어떻게요?”

“원래 성좌들은 플레이어가 너무 강해지는 걸 원치 않으니까.”

마계는 1층부터 100층까지의 시험을 통과한 플레이어들이 힘을 기르는 스테이지.

어스름의 사제들로 걸러낸 플레이어의 체급을 키우는 곳이었다.

반면 151층부터는 달랐다.

“어차피 천사고 사도고 성좌가 내려준 힘을 쓸 뿐이다. 즉, 일정 수준을 넘으면 굳이 자기 능력을 더 키울 필요가 없지.”

오히려 성장가능성을 계속 열어뒀다간 성좌를 위협할 존재로 성장할 수도 있었다.

성좌로서는 반드시 막아야 하는 상황.

때문에 이후의 스테이지들은 플레이어가 더 이상 카르마를 쌓을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카르마를 쌓을 수 없게라니요?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플레이어의 영혼을 NPC의 몸에 집어넣고 스테이지를 진행시킨다. 그것으로 카르마를 쌓는 걸 방해하는 거지.”

타인의 몸에 영혼이 빙의되어서 쌓은 카르마는 몸의 것일까 영혼의 것일까?

결론만 말하자면 둘 다의 것이다.

성진이 남태수의 이름을 사칭해 마왕 남태수의 카르마를 성진과 남태수 두 명이 다 쓸 수 있게 된 것처럼, 해당 카르마도 지분이 나뉘게 된다.

“몸의 주인과 영혼의 주인이 서로 지분을 주장하는 거다. 그리고 몸의 주인은 그 몸을 만들어낸 탑의 시스템이지.”

일반 플레이어가 탑을 상대로 지분을 빼앗아올 수 있을까?

차라리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이기는 게 쉬우리라.

탑이라는 특수한 환경이기에 가능한 일.

탑은 플레이어들에게 너무 큰 힘을 주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시키는데요?”

“모른다.”

“예?”

“스테이지는 결국 탑에 갇혀 있는 영혼의 사념을 추출해서 만드니까.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까보기 전까지 모른다.”

대신 예상 정도는 해볼 수 있었다.

“지난 30년간 탑에서 죽은 ‘지구인’도 꽤 될 테지.”

“잠깐, 그거 듣기만 해도 싸해지는데…….”

“스테이지를 만들려면 여러 사람에게서 공통적인 기억을 뽑아내야 하지. 그렇다면 2차 대전이든,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이든 뭐가 됐든 우리가 잘 아는 곳이 스테이지로 나올 거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다음 층으로 이동합니다.]

[진행에 따라 레벨이 상승합니다.]

[Lv.150 > Lv.151]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일어나라냐. 언제까지 자고 있을 셈이냐.”

남태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몸을 일으켰다.

‘기절했나? 무슨 상황이지?’

전투 중에 의식을 잃으면 죽는다.

적을 눈앞에 두고 무방비 상태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무르무르와 사룡왕은 끊임없이 남태수에게 그 위험성을 주입했다.

덕분에 남태수는 비몽사몽한 상태로도 몸에 익은 절차대로 안전 확보를 위한 마법진부터 그리며 상황을 확인했다.

“뭐하고 있는 거냐.”

“……장화 신은 고양이?”

그리고 장화를 신은 고양이가 이족보행으로 서서 말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성진 씨?”

남태수는 이내 고양이의 몸속에 들어간 영혼을 확인하고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정신 차리는 데 오래도 걸린다냐. 제대로 배운 게 맞는 거냐.”

“아니 왜 고양이가 되신 거예요?”

“……내가 말했지 않냐. 전 세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아는 것이 스테이지로 나올 거라고냐.”

성진이 계속 냐냐거리는 모습에 남태수는 머리가 어지러워졌지만 가까스로 버텨냈다.

“설마 동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스테이지인 거예요?”

“세계 명작동화도 전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소재긴 한데…… 그렇다고 미디어 속 세상이 스테이지로 구현될 줄은 몰랐다냐.”

미디어라는 소리를 듣고 다시 바라보니 오렌지색 털에 커다란 눈망울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이 생기긴 했다.

“드림웍스?”

순간 좋지 않은 상상을 떠올린 남태수는 자신의 몸을 확인해보았으나, 다행히 녹색 오우거의 몸이 되어 있진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남태수는 자신의 ID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장화신은 고양이의 고양이 주인으로 나오는 막내아들.

여기선 몸만 NPC로 바뀌는 게 아니라 ID도 익명인지 레벨까지 물음표로 변해 있었다.

“동화 속 세상이라…… 아니지. 성진 씨는 영화 속 세상이잖아. 그럼 널리 알려져 있기만 하면 뭐든 나올 수 있는 건가?”

전 세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세계.

이곳 스테이지는 일종의 메타버스에 가까운 형태로 구현되어 있었다.

“공포영화가 안 뜬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장화 신은 고양이도 유능한 캐릭터니 괜찮은 건가……?”

남태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성진을 바라봤다.

영혼이 보이는 그의 입장에선 어떤 모습이든 성진은 그냥 성진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그냥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고양이를 실제로 보니 평범하게 귀여웠다.

“푸훗, 그렇게 저를 고양이로 놀리시더니 결국 본인이 고양이가 되셨네요? 쓰다듬어드릴까요?”

“뒤지고 싶냐?”

리얼한 빡침이 느껴지는 한마디에 남태수는 바로 꼬리를 말았다.

“스킬 창은 확인해봤나?”

“여기서는 안 열린다네요. 인벤토리도요. 무르무르와의 연결도 끊어졌으니 소환도…… 아니 소환이고 뭐고 이 몸에 마력이 하나도 없네?”

“빙의된 상태로 진행하는 스테이지다. 빙의된 몸으로 가능한 일만 할 수 있지.”

남태수는 마치 탑에 들어오기 전의 그 자신처럼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장화신은 고양이도 원래 고양이가 다 해 먹는 내용이긴 했죠? 그럼 저도 놀고 있으면…… 악!”

그는 성진에게 찔린 허벅지를 붙잡고 바닥을 굴렀다.

“마력이 부족하면 새롭게 쌓으면 된다냐. 놀 생각 하지 말고 마력이나 모아라냐.”

몸을 다루는 것이 남태수인 이상, 마력만 있으면 마법을 쓸 수 있다.

마치 성진이 탑에 들어와 다시 힘을 쌓은 것처럼, 빙의한 몸으로 다시 수련하는 건 가능했다.

“그걸 다시 하라고요? 무르무르도, 폐하도, 레벨 업도 없이?”

“원래 마법사들은 그렇게 수련한다.”

맞는 말이었다.

성좌에게 받지 않은, 스스로 쌓은 힘이라는 건 원래 그런 의미였다.

보통의 사람들은 무르무르나 사룡왕 같은 기연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환경에서도 대마법사가 되고, 소드 마스터가 됐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냐.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다냐.”

“예?”

“네가 그간 열심히 해온 것들이 다 쓸데없는 짓은 아니었으니까, 라고 할 수 있겠지냐.”

성진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남태수의 다리를 타고 올라와 어깨에 앉았다.

“이야기는 그쯤하고. 슬슬 출발해야 한다냐. 다나의 빙의체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냐.”

그 말에 남태수는 정신을 차렸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시작은 주인과 고양이가 만나는 것.

다른 등장인물들은 그 후에 나오므로, 직접 찾아가야 했다.

“어서 출발해라냐.”

“장화 신은 고양이면 제가 주인 아니에요?”

“그럼 어서 출발해라 주인놈냐.”

남태수는 잘 알고 있는 동화가 배경이라는 것을 이유로 방심하고 있었으나, 배경은 배경일 뿐.

스테이지는 어디까지나 스테이지였다.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개미가 될지, 베짱이가 될지 선택하십시오!]

[개미를 선택한 플레이어들은 자원을 모아 봄이 올 때까지 생존해야 합니다.]

[베짱이를 선택한 플레이어들은 메뚜기 떼처럼 개미를 약탈하고 겨울을 버텨내십시오.]

훈훈한 원본 내용은 어디가고 서바이벌 생존 게임이 되어 버린 개미와 베짱이.

해당 메시지를 확인한 두 사람은 별다른 고민 없이 진영을 선택했다.

“PvP, PvE로 나뉘는 건가? 그럼 당연히 PvE지.”

“전투 대 생존이라면 당연히 전투다냐.”

[가 개미를 선택합니다!]

[가 베짱이를 선택합니다!]

해당 메시지가 울려 퍼진 직후, 두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봤다.

[신규 개미는 일정 시간 보호를 받습니다. 초보자 보호 기간이 끝나기 전에 안전을 확보하세요!]

[신규 개미는 일정 시간 보호를 받습니다. 초보자 보호 기간이 끝나기 전에 안전을 확보하세요!]

[신규 개미는 일정 시간 보호를 받습니다. 초보자 보호 기간이 끝나기 전에 안전을 확보하세요!]

시야를 가득 메운 경고 메시지들.

남태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니 거기서 왜 베짱이를 골라요? 저는 어떡하라고?”

“지금까지 마법을 그렇게 배워놓고 개미를 왜 택한 거냐? 당연히 다른 플레이어를 조지고 다니는 게 훨씬 빠른 거 아니냐.”

어차피 사건은 이미 터진 뒤.

서로를 탓하는 건 이쯤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해야 했다.

“……저 안 잡으실 거죠?”

* * *

같은 시각, 다나는 몸이 낀 상태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이 몸은 왜 이렇게 약해? 이걸 부수고 나올 수도 없고…….”

온 몸을 꽉 조이고 있는 장난감 집.

그리고 왠진 모르겠지만 손에 들려 있던 식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식칼도 나오던가……?”

어두침침한 주위도 그렇고 뭔가 잘못된 느낌이 팍팍 들었다.

“하긴 여긴 스테이지니 실제 앨리스랑 똑같을 필요도 없지.”

어차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뽑아낸 것이라면, 원본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팍팍 반영됐으리라.

“아니면 앨리스가 아니라 아예 앨리스를 바탕으로 만든 만화나 뭐 그런 건가?”

일단은 이 스테이지가 뭐하는 곳인지 알아보는 것이 먼저.

마침 그런 생각을 예상했다는 듯, 다나의 눈앞에도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개미가 될지, 베짱이가 될지 선택하십시오!]

“사람이랑 안 싸워도 되는 거라면 당연히 안 싸워야지.”

[개미를 선택하셨습니다!]

선택을 마친 다나는 뒤늦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자네는 플레이어인가 NPC인가?”

안대로 두 눈을 감싼, 맹인 검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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