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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부수는 플레이어-112화 (112/170)

<112>

시체궁의 함락.

제아무리 신성황녀라도 이번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으나, 이어진 시체궁의 레이드 모집 소식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큭큭, 멍청한 놈. 그간 삼황오제의 균형이 어떻게 유지되어왔다고 생각하는 거지?”

만일 마왕 남태수가 새롭게 시체궁주의 자리에 올라 삼황오제의 구도를 이어간다면, 신성황녀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 균형이 무너지고 마계가 다시 전화에 휩싸이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천둥벌거숭이 녀석. 제 힘만 믿고 날뛰는 놈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마.”

주인이 변한 시체궁은 역대급 인원을 끌어모아 빙제와 염제를 치러 나섰다.

그에 따라 신성황녀 또한 자신의 군단을 이끌고 친정에 나섰다.

마계에서도 가장 많은 머릿수를 자랑하는 두 세력.

용병을 끌어모아 한껏 벌크업한 두 세력이 정면충돌한다면 이긴 쪽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허나 놈들은 앞서 두 마왕을 상대하느라 지쳐 있을 터.”

모든 싸움이 끝났을 때, 승자는 자신이 되어 있으리라.

시체궁과 빙제, 염제까지.

세 마왕의 영토와 권속을 흡수한다면 자신을 막을 자는 없다.

그리하여 신성황녀가 군단을 이끌고 전장에 도착했을 때.

시체궁의 병력은 대부분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예상했던 그대로의 모습.

“내 승리다.”

돌격을 명령하려는 그 순간.

거대한 슬라임의 파도가 일어났다.

“저건…….”

다르크 지방에서 이미 한번 본 적 있는 광경.

“아무리 거대해 봐야 청소부 슬라임! 일단 한번 물러나서 슬라임째로 밀어 버리면……!”

그러나 슬라임 파도가 덮친 것은 신성황녀의 군단이 아니었다.

두 마왕의 시체가 슬라임에 잠겨든다.

직후, 엄청난 양의 마력이 터져 나왔다.

마족은 마계에 가득한 마력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생물군.

두 마왕의 힘을 진마왕의 권능으로 증폭해 뿜어내자 마족들은 순식간에 회복했다.

진마왕이 뿜어낸 마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회복을 넘어 강화까지.

거기에 무르무르와 남태수의 사령술로 순식간에 군단은 4배로 불어났다.

역전된 인원수.

게다가 언데드는 죽어도 계속되살아난다.

“마왕 남태수!!”

신성황녀는 간악한 사령술사의 이름을 외치며 자신의 군단에 공격을 명했다.

‘어차피 군단이 밀려도 마왕만 잡으면 된다.’

상대도 사령술사라면 직접적인 전투능력은 떨어질 것.

초월 3단계인 자신이 꿇릴 것 없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삼황오제 체제.

그 말은 그동안 마왕간의 전면전은 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두 세력의 정면충돌.

전장은 순식간에 포화에 뒤덮였다.

“적장을 처죽여라!”

신성주문으로 강화된 신성황녀의 군단은 그 명령에 따라 남태수를 향해 진격했다.

누가 보아도 사령술로 언데드를 생성하고, 군단을 지휘하는 것은 남태수였다.

“가라, 나의 칼날들아!”

날개달린 귀족들이 번개처럼 남태수를 노렸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하기 전, 본 드래곤이 귀족들을 가로막았다.

크롸롸롸롸롸롸!

드래곤 피어.

신성주문의 중화.

그 직후, 세 갈래의 드래곤 브레스가 작렬했다.

다수의 귀족들이 브레스에 휘말렸지만, 초신속을 자랑하는 이들은 브레스를 피해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본 드래곤은 브레스를 뿜고 있느라 대응할 수 없는 상황.

무방비 상태의 목을 노리고 파고든 귀족들을 맞이한 것은 성녀모드의 다나였다.

보통 사람들은 눈으로 쫓는 것조차 힘든 속도로 나는 귀족들.

다나는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 서서 그런 그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덤벼.”

무수한 검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신성황녀는 그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암살을 통한 빠른 승리는 저지되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유리함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애벌레와 같은 형태의 거대한 몸집.

그 머리에 더듬이처럼 달린 인간의 상반신은 6개의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수인을 맺었다.

거대한 몸집에 비하면 콩알만 한 상반신이었으나, 사실 몸체야말로 그녀의 머리였다.

거대한 두뇌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연산력.

초당 수십 개의 마법을 쏟아내는 신성황녀는 강대한 매직 캐스터였다.

‘뭐지? 침입자?’

군단 신경망을 통해 강력한 주문을 뿌려대던 신성황녀는 신경망에 이질적인 것을 발견하고 그 위치를 추적했다.

발견해낸 좌표로 고개를 돌린 그녀는 그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는 한 타이탄을 발견했다.

전투에 부적합해 보이는 얄팍한 몸체.

거기에 등 뒤로 뻗어 나온 가시나무 같은 형태의 수정체가 마치 안테나처럼 펼쳐져 있었다.

-전자전용 타이탄이라고 들어는 봤나?

“뭐라고?”

-유리몸이지만 매직 캐스팅 능력을 800% 이상 향상시켜주는 물건이지.

진마왕이 무한정에 가까운 마력을 공급해주는 상황.

그간 남태수의 마력을 공유하느라 제한되어 있던 무르무르의 캐스팅 능력이 전자전용 타이탄을 통해 폭발했다.

-관리자 권한 획득. 강제 명령. 붐(Boom)!

“안 돼!”

신성황녀는 황급히 그것을 막으려했지만 전부 막을 순 없었다.

신경망을 통해 전파된 자폭명령.

그에 따라 신성황녀의 정면에서 일직선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권속들의 피와 살이 비가 되어 떨어졌다.

어이없게 군단이 전멸하는 것은 막았지만, 신성황녀 본인에게서부터 일직선상의 권속만이 폭발한 것은 뭔가 이상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것만을 노리고 있었다는 듯한 광경.

“어째서?”

무르무르의 의도는 금방 드러났다.

피로 이루어진 레드카펫 위에 성진이 올라섰다.

“뭣? 사령술사는 분명 저쪽에……!”

마왕 남태수는 사령술사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남태수만을 의식하고 있던 신성황녀는 자신을 향해 뻥 뚫린 길을 달려오는 성진을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막아라! 저놈을 막아!”

그녀의 명령에 수많은 권속들이 몸을 레드카펫 위로 몸을 던졌으나, 성진의 발걸음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

군단을 갈아 버리며 사신이 다가온다.

황급히 주문을 시전하려해도 무르무르의 방해가 들어왔다.

자신은 자랑하는 마법 없이 근접전으로는 저런 괴물을 막을 수 없었다.

“오지 마라!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마!”

파괴광선.

마법을 저지당하자 신성황녀는 순수한 마력의 격류를 뿜어냈다.

성좌들이 천사를 만들 때 참고한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기술.

그러나 성진은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파괴광선을 많이 상대해본 존재 중 하나였다.

검기성강.

파괴광선의 빛줄기가 반으로 갈라졌고,

“끝이다.”

신성황녀의 목도 잘려나갔다.

* * *

[마왕 남태수가 마왕 신성황녀를 쓰러뜨렸습니다!]

[개미굴의 소유권이 마왕 남태수에게 옮겨갑니다!]

“끄, 끝났나?”

이를 악물고 마법을 시전하던 남태수는 숨을 헐떡이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신성황녀의 죽음.

마왕이 죽었다면 권속들은 더 싸울 이유가 없었다.

메시지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계의 과반을 차지했습니다!]

[마왕의 카르마가 다음 단계로 진화합니다!]

[권속의 카르마가 다음 단계로 진화합니다!]

[주성진의 2단계 초월 조건 완료(4/5)!]

[다나의 1단계 초월 조건 완료(1/3)!]

[남태수의 1단계 초월 조건 완료(2/3)!]

“엉?”

초월을 위해서는 신화급 카르마를 포함해 최소한의 카르마 외에도 추가적인 조건들을 만족할 필요가 있었다.

해당 조건은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이번 전투의 승리로 세 사람은 초월조건을 하나씩 만족시켰다.

“성진 씨는 하나만 남았네? 그보다 나는 왜 두 개째…… 아, 하나는 신화급 카르마 보유 여부겠구나? 다나는 신화급 카르마가 없으니까 이번이 첫 번째겠고.”

그렇다면 성진의 조건 중 마지막 하나 남은 것도 카르마 최소치를 만족하라는 내용이리라.

애초에 성진이 마계일통을 하려는 이유가 2단계 초월을 위한 카르마를 얻으려는 것이었으니까.

“잠깐, 그럼 나 이제 하나만 더 달성하면 초월자야? 여기 나온 마왕들처럼?”

물론 삼황은 3단계 초월자고, 오제는 2단계 초월자였으니 그가 초월자가 된다고 해서 저런 괴물이 되는 건 아니리라.

다만 성진이 1단계 초월 상태로도 저런 위용을 보이는 걸 보면, 사도 뺨치는 수준이 될 정도라는 건 확실했다.

“뭐하고 있나. 빨리 병력을 수습해라.”

“깜짝이야!”

그러는 사이 돌아온 성진이 남태수를 불렀다.

“빨리 뒷정리하고 다음으로 가야지.”

“예?”

“더 이상 마왕 공략을 준비한다고 시간을 쓸 필요는 없다. 이미 과반을 차지했으니 이대로 마계일통까지 쭉 달린다.”

“예??”

시체궁 함락으로부터 열흘.

마계를 평정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드디어 끝났네.”

신시아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 더 풀며 의자에 몸을 뉘였다.

사도 소집 이후,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보기까지 참으로 오래도 걸렸다.

원래 사도라는 놈들이 협조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녀석들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어쩔 수 없네. 이걸 보여줄 순 없었으니.”

신시아는 품속에서 사진을 꺼내 들었다.

30층에서 탑의 외벽이 무너졌을 당시 인공위성이 촬영한 사진.

이것을 공개하면 훨씬 더 빠르게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겠지만, 신시아는 그럴 수 없었다.

이 사진의 존재는 신시아가 한참 전부터 리처드 카이만의 부재를 알았으면서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는 증거였으니까.

회의 중에는 증거 없는 의혹이니 더 큰 문제로 눌러 버렸지만, 대놓고 증거가 있다면 또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이 사진을 공개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나.’

사진에는 리처드 카이만이나 주성진, 남태수만이 아니라 다나의 모습까지 찍혀 있었다.

그녀의 능력을 총동원해 다나의 존재를 숨긴 덕분에 사도라고 해도 다나의 얼굴을 아는 이들은 없었다.

그저 신시아의 가족은 동생 하나가 전부라고 알려진 정도.

지금까지 다나를 다른 사도의 마수에서 어떻게 숨겨왔는데 여기서 그녀를 드러낼 순 없었다.

‘그래도 이제 한숨 돌리려나.’

결국 그녀는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사도회의에서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으니 나머지는 천천히 진행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세상사가 항상 예상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가주님! 큰일입니다!

조금 쉬나 했더니 웨어울프의 신경망을 통해 가주인 신시아에게 급보가 올라왔다.

-마계가 통일되었습니다!

“하?”

이건 아무리 그녀라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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