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111화 (111/170)

<111>

얼마 지나지 않아 무르무르는 일행에게 지팡이의 완성을 알려왔다.

“아니 이게, 이게 마법 지팡이라고요?”

“그래. 지팡이를 쐐기처럼 박아 넣는 마법 파일 벙커다.”

성진의 문제는 그 어떤 지팡이도 그의 힘을 버티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그가 사용하기 위해 만든 지팡이는 특수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마법을 지팡이째로 상대의 몸에 박아 넣는 거다. 그러면 마법 한 번 발동하고 지팡이가 깨져도 문제없지.”

일회용 지팡이 카트리지를 장착해 그것을 쐐기처럼 박아 버리는 네일건 같은 형태.

발사기만 멀쩡하면 카트리지를 교체하고 다음 마법을 쓰면 되는 마법 공구를 만들어낸 것.

덕분에 그가 만든 지팡이는 흔히 마법사의 지팡이라고 하면 떠올릴 모습이 아니라, 팔뚝에 다는 묵직한 중장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지팡이를 상대의 몸에 박아 넣는다니…….”

남태수가 당황하든 말든 무르무르는 자랑스럽게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설명했다.

-교체용 카트리지 20발에 예비 총열 하나까지. 당장의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입니다.

“탄창이야 추가 재료가 들어올 때마다 채우면 될 일이지. 그 정도면 충분하다.”

파일 벙커가 성진의 손에 들린 이상, 20발이면 삼황오제를 쓰러뜨리기엔 충분했다.

이 정도라면 화력이 부족할 일은 없으리라.

“그럼 바로 마왕공략전에 나선다.”

준비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성진이 출정을 명하자 군단이 진격을 시작했다.

“빙제와 염제의 공략법은 똑같다. 놈들의 기동력을 제압하고, 숨통을 끊어놓는다.”

“빙제야 날아다니니 그것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염제는 어떻게 기동력을 제압하겠다는 거예요?”

“눕혀야지.”

작전은 간단했다.

전 군단은 염제의 다리 공략에 투입.

그동안 세 사람은 빙제의 날개를 꺾고 확실하게 끝장낸 뒤, 염제의 마무리에 나선다.

“되게 단순하네요. 뭔가 더 상세한 작전은 없어요?”

“기습을 가하는 것도 아니고 전면전을 펼치는 거다. 이 이상 계획이 복잡해져 봐야 유연성만 떨어질 뿐이다.”

최종 목표와 그것을 위한 조건만 기억하고 있으면, 과정은 각자 상황판단으로 진행할 수 있는 법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전력으로 간다.”

* * *

빙제와 염제의 전투는 벌써 보름에 가깝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주위는 귀족급이라도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지만, 둘은 확실하게 지쳐 있었다.

승부가 지지부진한 것은 하늘이 일방적으로 빙제의 것이었으며, 대지가 일방적으로 염제의 것이었기 때문.

이러한 길항 상태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고고도에 등장한 타이탄 수송기였다.

-스텔스 모드 해제. 메인 격납고 개방.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다나 양?

“모든 타이탄 강하 준비 완료.”

타이탄은 원래 난쟁이 전사의 탑승을 전제로 만들어진 전투장비였다.

무르무르는 이러한 타이탄에 거인족 전사의 영혼을 불어넣어 언데드 메카닉을 만들어냈다.

거인족은 타이탄의 크기에 잘 적응해서 움직였으며, 그 자신의 룬 마술을 이용해 기계 몸을 강화할 수도 있었다.

다나는 16기의 타이탄 전사들과 함께 고고도 강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곧 빙제가 반응할 겁니다. 시작해주십시오.

그 이야기에 다나는 성검을 뽑아들고 집중에 들어갔다.

신검합일(身劍合一).

카르마를 다루는 무인들은 무기에 깃든 카르마와 동화하여 그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었다.

개중에서도 대를 이어 내려오는 무기의 경우 이전 소유자의 능력을 빌려오는 것도 가능했는데, 여기에는 제한이 있었다.

시전자 본인의 카르마가 무기의 카르마보다 떨어질 경우, 무기에 잡아먹힌다.

주인을 잡아먹는 마검들이 이렇게 탄생한 것.

성검이라 해도 무리하게 그 힘을 이끌어 내려고 하면 무기에 잡아먹히는 것은 똑같았다.

[<용의 심장을 먹은 자(전설)>가 박동합니다.]

그간 본인의 카르마가 압도적으로 부족했던 다나는 성검의 신검합일을 실전에서 사용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드래곤 하트를 섭취한 지금.

다나의 카르마는 신검합일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피잉!

이명과 함께 다나의 몸이 후광을 발한다.

머리칼이나 눈동자, 손톱 등의 신체 말단부위에 순백의 광채가 어렸다.

성녀모드.

어스름의 전설적인 5단계 초월자, 성녀가 가진 전투경험이 다나에게 깃들었다.

-예상 유지 시간은?

“4분 35초쯤.”

-그렇다면 플랜A로 갑니다. 강하 개시.

타이탄들이 일제히 뛰어내리는 가운데, 다나는 마지막으로 수송기에서 몸을 던졌다.

파아아앗!

맞바람이 전신에 부딪히며 시끄러운 소음이 귀를 어지럽혔다.

그러나 다나의 정신은 고요한 집중 속에 적의 위치를 쫓았다.

‘찾았다.’

빙제가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것보다도 먼저 상대의 위치를 잡아낸 다나는 그대로 공중에서 가속했다.

후광이 만들어내는 잔상이 길게 늘어졌다.

먼저 뛰어내린 타이탄들을 순식간에 지나쳐간다.

유성과도 같이 쏘아진 다나의 검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검기 중첩이 맺혔다.

“만상절단(萬象切斷).”

유성이 빙제의 날개를 갈랐다.

-마왕을 붙잡아라!

날개를 잘린 빙제는 공중에서 속도를 잃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빙제는 단면에서 냉기를 뿜어대며 날개를 재생하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강력한 검기로 잘린 날개는 육체적인 손상만이 아니라 마력에도 손상을 입혔다.

마력이 흐르는 경로가 막혔으니, 그 경로를 트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덕분에 물리적인 날갯짓만이 아니라 마법적인 효과로 비행하던 빙제는 일시적으로 비행능력을 잃었다.

-잡았다!

이어서 떨어진 타이탄들은 그런 빙제를 붙잡고 달라붙었다.

날개를 잃은 상황에서 수십 톤의 타이탄들이 매달리자 빙제는 그들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하고 지상에 처박혔다.

용암이 치솟고, 괴성이 울려 퍼진다.

이어서 무르무르가 공중에서 수송기를 해체해 중력장 발생기를 만들어냈다.

-확보완료! 이걸로 지상에 1분은 붙잡아둘 수 있습니다!

다나는 남은 힘을 전부 아군이 올 때까지 염제를 밀어내는 데 사용했다.

“멸진파쇄참(滅盡破碎斬).”

노린 것은 염제가 딛고 있는 대지.

염제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불안정한 용암대지는 다나의 광범위 참격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염제의 각력이 아무리 강력해도 딛을 곳이 무너지면 제힘을 낼 수 없는 법.

불꽃의 마왕은 출렁이는 용암 속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동안 두 마왕이 반응하지 않는 거리에서 대기하던 군단이 진격을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빙제에게 불 마법을, 염제에게 얼음 마법을 쏟아 부으며 그들의 힘을 최대한 중화시켰다.

전사들은 화산지대의 몬스터들로부터 부대를 보호했고, 귀족들은 염제에게 직행해 그 발걸음을 붙잡았다.

“MP 오링이요!”

두 번의 참격으로 모든 걸 쏟아낸 다나는 신검합일을 해제하고 마나 포션을 마시며 전장에서 이탈했다.

“충분하다.”

그와 동시에 날듯이 뛰어온 성진이 다나의 머리 위를 지나쳤다.

빙제는 날지만 못할 뿐, 지상을 기어 다니며 폭풍을 뿜어내고 있던 상태.

속도도 엄청나 멀리서 보면 지평선이 빠르게 얼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잡았다.”

공중으로 도약한 성진은 주먹으로 빙제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이어서 지면에 빙제의 머리를 딱 붙여놓은 채로 그의 팔뚝에 달려 있던 파일 벙커가 마법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한 발 더.”

파앙!

첫 번째 쐐기가 발동한 마법은 차원왜곡(Dimension Distortion).

물리적인 이동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빙제를 가뒀다.

그리고 두 번째 쐐기가 발동한 마법은 메테오 샤워(Meteor Shower).

쐐기가 표시한 좌표를 향해 마법으로 가속된 수십 발의 운석이 쏟아져 내렸다.

……!

소리 없는 폭격이 이어졌다.

차원감옥은 쏟아지는 운석들을 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시키면서도, 안쪽에서 일어나는 진동과 소음이 새어 나가는 것은 완전히 차단했다.

대지를 갈아 엎기에 충분한 위력이 일점에 집중됐다.

빙제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그러한 공격조차 버텨냈지만, 발과 날개가 모두 묶인 상황.

성진이 검강을 준비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번쩍!

[마왕 남태수가 마왕 빙제를 쓰러뜨렸습니다!]

[천공의 소유권이 마왕 남태수에게 옮겨갑니다!]

“다음.”

성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바로 염제를 향해 뛰었다.

“절대 놓치지 마! 언데드로 되살려줄 테니까 그냥 붙잡고 죽어!”

염제의 발은 조금만 움직여도 근처의 NPC들을 갈아 버렸다.

태산과도 같은 다리를 인간의 몸으로 붙잡겠다는 건 바보 같은 소리.

용인이라도 이는 마찬가지라 귀족들은 순식간에 갈려 나갔다.

“그렇다고 그렇게 빠르게 죽진 말고! 되살리기 빡세잖아!”

죽은 용인들은 순식간에 용아병으로 되살아나 생전에 마치지 못한 임무를 이어갔다.

그러한 소모전 속에서 시체궁의 귀족들은 남태수의 지휘 아래 염제의 두 다리를 꺾어놓고, 꼬리를 붙잡는 데 성공한 상태였다.

쿠오오오오오!

진창처럼 변한 용암에 두 다리가 박혀 버린 염제는 앞다리를 들며 번쩍 일어섰다.

킬로미터 단위의 몸집을 가진 염제가 저대로 땅을 내리찍는다면 화산지대가 통째로 엎어지리라.

“성진 씨!”

남태수가 떨어져 내리는 염제의 내리찍기를 바라보며 비명을 지른 순간, 그 아래로 파고든 성진이 염제의 다리를 받아냈다.

“흡……!”

혈마술의 블러드 레이지와 황금룬의 육체강화.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성진의 근육이 쓰러지려는 태산을 붙잡았다.

멀리서 보면 그저 점 하나가 산맥을 떠받들고 있는 모양.

거기서 팔뚝에서 발사된 쐐기가 또다시 빛을 발했다.

리버스 그래비티(Reverse Gravity).

역으로 성진이 염제의 몸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지도에 그 형태를 그릴 수 있는 거대한 괴물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완전히 하늘을 향해 일자로 선 정점.

그리고 정점을 지난 염제는 거꾸로 배를 드러내며 지면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리버스 그래비티 해제.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지진.

염제의 척추가 충격에 비명을 지르는 동안, 성진은 다시금 마법 쐐기를 박아 넣었다.

볼케이노(Volcano).

염제의 등에 달린 화산.

지면에 처박힌 분화구가 분출을 시작했다.

그러나 염제의 체중에 눌려 분화구는 꽉 막힌 상태.

순식간에 쌓인 압력은 이윽고 대폭발로 이어졌다.

* * *

“으윽…….”

폭발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던 남태수는 울려 퍼지는 알람소리에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섰다.

[마왕 남태수가 마왕 염제를 쓰러뜨렸습니다!]

[화산지대의 소유권이 마왕 남태수에게 옮겨갑니다!]

주성진은 결국 거의 혼자서 저 둘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남태수의 눈앞에 떠 있는 알림창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왕 신성황녀가 마왕 남태수에게 선전포고합니다!]

저 멀리.

그러나 육안으로도 보일 만한 거리에 신성황녀의 군대가 보였다.

“젠장, 우리가 레이드를 준비하는 동안 저쪽은 뒤치기를 준비했던 건가?”

시체궁에서 용병까지 끌어들여 그만큼 크게 일을 벌였으니 신성황녀가 이쪽의 레이드 소식을 아는 건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마왕 둘을 동시에 잡겠다고 나선 지금, 지쳐 있는 그들을 덮치는 것이 신성황녀에게 있어선 가장 유리한 순간이리라.

다나는 마력이 떨어져서 회복해야 하고, 자신과 무르무르는 소환수가 대부분 역소환된 상황.

성진이라고 해도 두 마왕에 이어서 신성황녀와 연전을 펼치는 것은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리라.

“예상대로네.”

딱!

크롸롸롸롸롸롸!!!

신성황녀를 발견한 남태수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본 드래곤이 울부짖었다.

드래곤 피어는 적들을 위압하여 돌격을 막는 한편, 대폭발의 여파로 정신이 없는 아군들을 일깨웠다.

“진마왕님 부탁드립니다.”

“맡겨만 줘다!”

이어서 거대한 슬라임 파도가 빙제와 염제의 시체를 덮쳤다.

두 마왕의 시체를 소화한 마력은 순식간에 아군을 회복시켰다.

“어차피 저 둘만 잡을 거면 이렇게 성대한 레이드를 준비할 필요도 없었지.”

이쪽이 레이드를 시작하면 당연히 신성황녀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뒤통수를 노려올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은 그 노림수마저 집어삼킨다.

진마왕이 환원해낸 마력을 이용해 무수한 언데드가 일어선다.

전장에서 죽은 이들에 더해, 아껴놨던 시체까지 전부.

순식간에 불어난 마왕 남태수의 군단은 신성황녀의 2배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했다.

성진에게서 군단 지휘를 위임받은 남태수는 숨겨놨던 본 드래곤과 진마왕을 이용해 순식간에 상황을 뒤집어 버렸다.

“자 이제 상황 역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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