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남태수와 다나가 시체궁에 도착했을 때, 궁은 완전히 전쟁 준비에 들어가 있었다.
[마왕 남태수가 당신에게 권속이 될 것을 제안합니다!]
[권속 계약을 받아들일 시, 모든 명성치가 마왕군 기여도로 변경됩니다.]
[권속 계약은 언제든지 취소가 가능합니다.]
[권속 계약을 취소할 시, 마왕군 기여도는 명성치로 반환되지 않습니다.]
[권속 계약을 받아들이는 건 다른 마왕의, 됐으니까 빨리 받기나 해라.]
“성진 씨?”
마왕의 권한으로 계약 메시지에 개입한 성진은 그걸 다 읽고 있는 남태수를 타박했다.
계약을 수락하자 남태수는 성진과 자신 사이에 새로운 카르마의 끈이 이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성진을 잇는 끈은 이미 두 자릿수에 달해, 이제는 완전히 밧줄처럼 보였다.
‘마법을 쓰면 만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걸로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거나 대화하는 것도 가능하려나?’
카르마를 다룰 수 있는 문명과 그렇지 않은 문명의 차이는 극명하다.
문화, 기술 그런 것과는 별개의 ‘신이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제.
이러한 카르마를 다루기 위해선 마법이든 무공이든 마력을 다루는 기술이 선행되어야 하므로 지구에는 카르마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베르나데트가 바깥에서 열심히 무공이랑 마법을 전파하고 있다던데. 나 설마 따라잡히는 거 아냐?’
어차피 선구자라고 해 봐야 남태수도 1년차.
<최초의 사령술사> 카르마 때문에 후발대가 늘어나면 좋은 건 맞지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사령술을 배울 것 같진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시체를 구해. 숫자도 숫자고, 전투에 적합한 시체도 없잖아.’
끽해야 원소술사일 텐데, 그럼 직접적인 전투능력도 사령술사보다 뛰어날 것이 분명했다.
‘내 입지. 생각보다 위험할지도?’
실제론 바깥에서 마법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있다고 해도 신성존재의 1대1 특강을 받으며 무르무르를 빙의시켜 실습한 남태수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가 이 사실을 알 방법은 없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갑자기 뭐예요 그 자기반성.”
뚱한 눈빛의 다나와 함께 시체궁 내부로 들어선 남태수는 곧 성진과 만날 수 있었다.
“왔군. 그럼 바로 시작해라.”
“예? 뭘요?”
“뭣 때문에 너희들이 재료를 모으러 돌아다녔다고 생각하나? 지팡이를 만들어야지.”
재료를 모두 모았으니, 나머지는 타이탄 코어로 본체를 제작하는 것만 남은 셈.
코어의 제작능력은 전자동이었으므로 그들은 완성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근처에 있는 대체재로 대충 만드는 게 아니라 시간이 좀 걸리겠군요. 제게 맡겨두시죠.
“하긴 성진 씨의 힘을 버티는 마법지팡이라니. 온갖 공법이 다 필요하겠지.”
우선 시간이 걸리는 일부터 자동으로 돌려놓고 난 뒤에는, 당연하게도 스테이지 공략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팡이가 완성되고 나면 본격적으로 마계일통을 위한 전쟁에 나설 거다. 그 첫 번째는 빙제와 염제가 되겠지.”
“동시에 둘을 상대하시게요?”
“지팡이가 있으면 가능할 거다. 게다가 나 혼자 싸우는 것도 아니니.”
성진은 그렇게 말하며 다나와 남태수를 돌아보았다.
“다나 너는 나와 함께 직접 전투에 나서고, 남태수 너는 시체궁의 궁인들과 용병들을 이끈다.”
“드디어 사령술사답게 후열에서 싸울 수 있게 된 건 좋은데요. 마왕은 제가 아니라 성진 씨인데 걔들이 제 말을 들을까요?”
“용인들은 네 드래곤 피어로 제압할 수 있을 거다. 용병들은 시체궁의 NPC들을 이끌다 보면 알아서 따라올 거고.”
이어서 그는 드래곤 하트 조각을 꺼내 두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먹어둬라. 그게 있으면 더더욱 용인들을 이끌기 편해지겠지.”
드래곤 하트 조각은 육포처럼 생긴 모습이었다.
남태수는 이걸 어떻게 먹나 하는 표정으로 성진을 바라봤지만, 다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그것을 꿀떡 삼켜 버렸다.
“좀 짜네요. 손가락을 빠는 맛? 설마 드래곤 땀 맛 같은 건 아니겠죠?”
“파충류는 땀 안 흘리지 않아? 성진 씨 손맛이겠지.”
“개소리 말고 빨리 처먹어라.”
그냥 먹으면 된다는 게 확인됐기에 남태수는 군말 없이 조각을 삼켰다.
[당신의 행동이 영혼의 업(業)으로 쌓입니다!]
[전설 등급의 카르마를 획득합니다.]
[<용의 심장을 먹은 자(전설)>를 획득하셨습니다.]
[특성 <용의 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용의 심장을 먹은 자(전설)>이 용의 피와 융합합니다.]
[특성 <반인반룡>을 획득합니다.]
[<용의 후예(영웅)>을 추가 획득합니다.]
[해당 카르마는 당신이 용에 가까워질수록 성장합니다.]
“엉?”
이미 용의 피를 가지고 있던 남태수는 조각 하나를 먹었을 뿐임에도 상당한 보너스 효과를 받았다.
다나 또한 부족했던 본인의 카르마가 늘어나며 그만큼 성검의 카르마도 더 많이 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남태수의 변화를 느낀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오잉? 우리 노예의 상태가?]
사룡왕은 남태수가 드래곤 하트를 먹자 귀신같이 그 사실을 깨닫고 달려왔다.
[뭐냐? 여기는 시체궁이 아니냐? 벌써 그 망할 송장벌레년을 잡은 모양구나. 그럼 용의 뼈도 손에 넣었겠지? 얼른 보러가자 용의 뼈~ 용의 뼈~.]
사룡왕은 남태수의 스킬창에 노래를 불러댔다.
카르마를 이용해 정보를 담는 시스템 창은 놀랍게도 사룡왕이 흥얼거리는 리듬까지 전달해주었다.
“어차피 네가 다뤄야 할 놈이니 보고 오는 게 좋겠군.”
성진은 남태수의 반응에서 사룡왕의 접촉을 눈치채고 그에게 본 드래곤을 맡겼다.
본 드래곤은 시체궁의 꼭대기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머리가…… 셋이네요?”
[아지다하카는 원래 삼두룡이니라. 그런데 이빨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구나.]
그에 대한 대답은 성진의 주머니 속에 짱박혀 있던 진마왕이 했다.
“진마왕 그거 안다!”
“우왓 깜짝이야! 누구세요?”
먹을 시체 없으니 잠이나 자라는 말에 실컷 자고 있던 진마왕은 남태수와 다나의 등장에 잠에서 깼다.
반면 진마왕의 존재를 모르던 두 사람은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 녀석은 진마왕이다. 삼황오제 대신 마계일통을 이룬 청소부 슬라임이지.”
“청소부 슬라임이 마계일통이요?”
남태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되물었으나, 성진에게 친절한 설명을 바라는 건 무리였다.
진마왕은 그러거나 말거나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빨은 전부 시체궁주가 뽑았다!”
“시체궁주가?”
“시체궁주가 귀족 용인들을 만들어낼 때 이빨 하나씩 줬다! 이빨이 가장 많으니까 나눠주기 좋다고 했다!”
시체궁주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진마왕은 진마왕이 마룡제의 시체를 어떻게 다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망할 송장벌레가……!]
사룡왕은 그 사실에 분노했지만 남태수에겐 딱히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럼 시체궁의 귀족들은 전부 용의 이빨을 가진 반룡들이란 거네?”
“응! 용아병 만들기 딱 좋다! 그러니까 살은 잘 발라서 나를 주고 뼈만 가져가서 써먹는 거다!”
‘아, 이런 인간이구나.’
사령술사 뺨치는 극악무도한 마인드에 남태수는 곧바로 진마왕의 성격을 파악했다.
반면 다나는 다른 의미로 진마왕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귀여워……!”
성진의 어린 시절 모습을 하고 있는 진마왕은 객관적으로 봐도 그냥 귀여운 어린애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성진과 똑 닮아 있었기에 그 외모의 주인을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보세요 성진 아재! 미니 아저씨예요!”
다나는 진마왕의 겨드랑이 밑으로 양손을 집어넣어 그를 집어 올렸다.
그러자 진마왕은 쭉 흘러내리며 길게 늘어졌다.
“미니가 아니라 롱인데?”
그러는 와중에 본 드래곤 또한 남태수에게 용의 냄새를 맡고 친밀감을 느낀 듯 그에게 주둥이를 비벼댔다.
성진은 그 모습을 한마디로 평했다.
“크리스마스에 애완동물을 받은 애들이 좋아서 날뛰는 꼴을 보는 것 같군.”
하나는 애완동물치고 너무 컸고, 하나는 너무 신성했지만 하는 짓은 별 차이가 없긴 했다.
“이런 마계 정보통이 있으면 저희한테 말 좀 해주시지 그랬어요. 얘가 있었으면 재료를 찾아다니는 데 엄청 도움이 됐을 텐데.”
“엣헴! 진마왕은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천재니까!”
성진과 남태수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다나는 계속해서 말랑말랑한 슬라임 볼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만지고 있을 거다……? 슬슬 볼이 아픈 것이다…….”
“그치만 이 말랑말랑한 감촉.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인데. 조금만 더 만지면 안 되니? 이거라면 명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진짜로 이런 게 도움이 되는 거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진마왕은 천재니까.”
천재인 것과 그게 무슨 상관인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당사자들은 만족하고 있었으므로 모두가 윈윈하는 광경이었다.
“본 드래곤을 다루는 마법들은 기억하고 있나?”
“일단은요? 본 드래곤을 소환할 일이 없어서 써본 적은 없지만 외워두긴 했어요. 브레스만 불러온다거나, 신체 일부분만 불러온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 말씀이시죠?”
“소유권을 공유해주마 이미 소환된 걸 다루는 거라면 너 혼자서도 충분하겠지. 저게 있으면 네가 군단을 지휘하겠다고 해도 불만을 토하는 놈은 없을 거다.”
상대가 불만을 토하면 이쪽에선 브레스를 토할 테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해도 반항하기 힘든데, 용 들고 협박하면 어떻겠는가?
“그럼 가서 시체궁의 귀족들을 구워삶아 놓도록.”
* * *
“그래서 제가 지금부터 여러분의 지휘관이 되었는데요…….”
용의 이빨을 지닌 귀족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남태수는 단상 위에 올라 PTSD에 시달려야 했다.
초등학교 학부모 참관수업에서 홀로 부모님 없이 가족을 주제로 쓴 백일장을 낭독해야 했을 때 이후로 남태수는 이런 발표 자리가 부담스러웠다.
“우린 마왕님만을 따른다. 네놈이 뭔데 우리에게 명령한단 말이냐.”
어스름의 용들과 달리 탑의 NPC들은 플레이어의 카르마를 읽을 수 없었기에 남태수가 드래곤 피어를 내뿜지 않는 이상 그에게 섞인 용의 피를 알아보지 못했다.
문제는 PTSD 덕분에 남태수도 집중을 할 수 없어 드래곤 피어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점.
덕분에 장내의 분위기는 점차 싸해지고 있었다.
“그, 그게…….”
“더 볼 것도 없군. 비켜라! 마왕님과 이야기해봐야겠다.”
귀족 대표가 남태수를 밀친 순간.
콰직!
오독! 오도독! 꿀꺽!
크르릉!
하늘을 날아다니던 본 드래곤이 벌처럼 내리꽂혀 귀족을 오돌뼈처럼 씹어 삼켰다.
“앗, 죄, 죄송합니다! 저희 애는 물어요!”
본 드래곤은 나 잘했지? 하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남태수는 미쳤냐면서 본 드래곤의 다리를 치다가 귀족들의 시선을 느끼고 목을 풀었다.
“흠, 흠, 그래서 불만 있으신 분?”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