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107화 (107/170)

<107>

탑으로 돌아온 산달폰은 사룡왕의 허가 하에 마스크를 벗었다.

봉인 마스크를 벗은 산달폰은 남태수에게 바깥의 일을 전달했다.

“중간보고입니다. 베르나데트 님은 바깥에서 인류해방전선과 접촉하여 세계정부에 잠입하기로 하셨습니다.”

“세계정부에 잠입한다고?”

“네, 베르나데트 님께선 이쪽의 플레이어들을 적의 심장부에 심어두면 훗날 유용하게 쓰실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계십니다.”

“뭐, 사도를 쓰러뜨리기만 해도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세계정부가 무너진 후, 정상화까지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그럴 법도 하네.”

남태수는 그래도 자신들이 하는 일에 따라올 현실적인 변화들을 신경 쓰고 있긴 했다.

[그냥 다 죽이고 언데드로 만들면 되는데 귀찮은 짓을 하는구나.]

그냥 사도 째로 지구를 으깨 버리면 안 되냐는 그의 스승에 비하면 말이다.

“또한 저는 천사로서의 능력을 사용해 사도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지구상에 사도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응?”

“천사의 권능으로도 그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사도들이 왜 없어?”

다나는 산달폰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그러다가 이어진 남태수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사도가 다 같이 죽기라도 했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랬다면 성좌들이 반응했을 것 아니냐.]

“그럼 갑자기 다 어디로 갔단 말이에요?”

[아공간이나 탐지방해 권능이 걸린 장소라면 찾지 못할 법도 하니라. 사도들이 서로 경쟁관계인 이상 다른 사도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을 테니.]

물론 그렇다고 해도 모든 사도가 일제히 사라진 것은 이상했다.

[놈들이 마침 다 똑같은 시간에 혼자 있고 싶어진 게 아니라면, 어딘가에 다 같이 모여 있다는 뜻이겠지.]

“성진 씨의 존재가 들킨 걸까요?”

[아닐 게다. 그렇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곧장 움직였을 테니까.]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특이점 주성진’이 아닌, ‘마왕 남태수’에 대한 대응을 위해 모였을 가능성이 높다.]

특이점의 존재가 들킨 게 아니라, 단순히 새로운 사도가 나타났다고 의심하는 것이라면 말이 된다.

그렇다면 기존의 사도들끼리 쑥덕대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사도면 자기 성좌들한테 어떤 사도가 나타났는지 들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성좌 또한 서로 경쟁관계인 놈들이니까. 외적과 싸우는 게 아니라 내부의 이권다툼이라면, 자기들끼리 협조가 안 될 것이니라.]

아무래도 마왕 남태수의 이름이 마계에 퍼져나가기 시작한 게 슬슬 효과를 보이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사도들이 언제까지고 골방에 틀어박혀 있지만은 않을 테니, 이후 놈들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도록 하는 게 좋겠구나.]

당장은 사도들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낸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베르나데트가 세계정부에 사람을 심어두고, 산달폰이 계속해서 사도의 동태를 확인한다면 놈들이 돌아오자마자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으리라.

“그럼 계속 조사하라고 하면 되는데. 얘는 어떡하지?”

남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봉인구로 꽁꽁 싸맨 미라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정보를 흘리지 못하도록 어디 묶어놓고 가죠.”

“그럼 중립지대에 갖다 두는 편이 낫겠지?”

두 사람은 야음을 틈타 엔리코를 중립지대에 묶어두었다.

“여기라면 잘 보이니까 금방 발견되겠지?”

“누가 보기 전에 얼른 뜨죠. 아직 구해야 할 재료가 많은데 여기서 발목이 잡힐 순 없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마족들은 밤사이 일어난 일에 기겁했다.

“세상에.”

“빨리 저 사람을 저기서 내려줘!”

중립지대에 있던 플레이어들 또한 그 모습을 본 것은 마찬가지였다.

“무슨 멕시코 카르텔이 사람 시체 널어놓은 것도 아니고…….”

신생 마왕과, 그 추적대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그 와중에 추적대의 대장이었던 엔리코가 마치 과시하듯 중립지대에 버려진 것.

‘마왕 남태수는 자신에게 덤빈 이들을 과시하지 않는 잔학한 자다.’

‘괜히 테러리스트가 아니야.’

남태수 전설은 오늘도 늘어만 가고 있었다.

* * *

한편 그 시각 성진은 마계를 가로지르며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검제와는 무승부인가.”

검강이 교차한 그 때.

두 검사는 일격승부가 무승부로 끝났음을 깨닫고 검을 거뒀다.

성진의 입장에선 이 이상 싸울 거라면 검술이 아니라 다른 무기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는 판단에서였지만, 검제는 달랐다.

‘경지에 비해 움직임이 늦군. 뭔가 문제라도 있나?’

워낙 실력이 뛰어나서 그간 아무도, 심지어는 티타니아나 사룡왕조차 눈치채지 못했지만 성진은 원래 힘을 잃으며 감각에 오차가 있는 상태였다.

신성존재라도 알아채기 힘든, 무예에 통달한 자만이 알 수 있는 미묘한 차이.

이걸 알아챘다는 것은 검제가 단순히 힘만 센 괴물이 아니라 진짜 달인이라는 뜻이었다.

“네 녀석의 안에 남은 기억으로만 접해봤는데 과연 실제로도 상당했군.”

성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축구공 사이즈의 동글동글한 슬라임 형태로 변한 진마왕을 바라보았다.

진마왕은 검제를 먹지 못했다는 사실에 완전히 삐져 입을 다물고 있었다.

“칭얼대지 마라. 마계일통을 노리는 이상 언젠가 그놈과 다시 붙어볼 수 있을 테니.”

검제는 언젠가 전력으로 맞붙을 날을 기대하겠다며 검을 거두고 떠났다.

계속 싸웠다간 신성황녀나 황령신수까지 끼어들어 개판이 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성진도 떠나는 그를 굳이 잡지 않았다.

“아무튼. 덕분에 감을 좀 되찾은 느낌이야.”

오제와의 무승부.

성진은 감각을 더더욱 날카롭게 벼려낸 지금이라면 슬슬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아직 삼황은 부담스러워도 오제급은 싸울 만하다.”

성진이 마계에서 신성황녀와 엮인 것은 우발적인 일.

원래 그가 가장 먼저 노리려던 삼황오제는 시체궁주였다.

“마계가 혼란에 빠졌으니 이제 어딜 들쑤셨다고 마왕들이 연합해서 몰려올 일은 없겠지.”

신성황녀를 건드린 것도, 남태수의 이름을 사용한 것도 여기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성진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시체궁으로 간다.”

시체궁주.

오제 중에 하나인 시체궁주의 마왕명에는 황제(皇帝)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시체궁주는 그저 시체궁의 수많은 이들 중 가장 강한 자를 뜻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황오제가 삼황 사제 일궁으로 불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사룡왕이 확인했던 용의 뼈를 손에 넣는다.”

시체궁이 궁전으로 삼고 있는 시체.

바로 그 시체가 고대 마왕인 마룡제의 시체였기 때문.

용의 시체는 언데드 드래곤을 생성하기 위한 가장 뛰어난 재료이며, 성진이 만들려고 하는 지팡이의 가장 중요한 촉매였다.

“해체되지 않은 용의 시체라니. 흔치 않은 물건인데 말이야.”

-이 세상에 있는 용의 시체는 전부 사룡왕이 회수하여 그녀의 군단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고 들었는데요.

“그것도 어디까지나 회수가 가능한 범위 내의 일이지. 소재가 알려지지 않았거나, 성좌의 손에 들어간 물건은 어쩔 수 없으니.”

어쨌거나 시체궁이 용의 시체를 궁전삼아 눌러앉아 있는 만큼, 이번 일은 다나에게 맡겨둘 순 없었다.

“용의 이빨이라면 시체궁 밖으로 유통되는 것들도 있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은 궁주가 지키고 있겠지.”

마왕을 쓰러뜨리고, 용의 시체도 손에 넣는다.

성진은 그러기 위해서 마계 대륙의 절반에 가까운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여기부터 시체궁의 땅이로군.”

검제와의 전투로 성진이 오제급을 상대해볼 만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대일일 경우였다.

시체궁 전원을 상대하게 될 경우에는 꽤나 골치 아파지게 되리라.

“티타니아. 또 부탁하지.”

-선생님께서 부르신다면 저는 얼마든지 상관없답니다.

성진은 그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기척을 숨겼다.

초월자의 눈을 피할 정도의 은신 대신, 평범한 용병 정도로 보이는 위장으로.

이거라면 기척을 숨기는 데 소모되는 힘도 극히 미미한 수준까지 줄일 수 있었다.

소모가 적으면 적을수록 시체궁주와의 싸움에 전력을 다할 수 있으리라.

“모든 마왕이 용병을 끌어 모으고 있는 상황이니 새로운 용병 하나쯤은 티도 나지 않겠지.”

일자리를 찾아온 용병으로 위장한다면 별다른 방해 없이 시체궁까지 이동할 수 있으리라.

성진은 그렇게 추측했고, 그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플레이어슈? 이름이…….”

용병들과 합류한 성진은 상대의 시선이 자신의 머리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말했다.

“이름은 신경 쓰지 말지. 나는 지금 용병이다. 당신이 입을 다물기만 하면 아무런 일 없을 거다.”

“……그럼 조용히 하도록 하지요. 당신이 여기서 테러리스트로 변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성진이 아무리 정체를 숨겨도 플레이어라면 ID를 확인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으나, 그 문제는 간단한 위협으로 해결되었다.

아무리 테러리스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눈앞에 테러리스트가 나타났을 때 굳이 자신이 먼저 달려들지는 않는 법이었다.

성진이 찾은 소규모 용병대는 그와 싸우는 대신 좋게 좋게 가자는 말에 동의했다.

그것으로 성진은 이곳의 주민들과 싸우지 않고 안전하게 시체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용병들은 저쪽으로 가라.”

용병대가 뼈로 만들어진 궁전 앞에 서자 경비탑 위의 용인은 그들에게 갓길로 빠질 것을 명령했다.

용인(龍人).

흔히 드래고니안이라 불리는 이들은 하나의 종족을 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8대 종족 중 하나이며, 어느 차원에서건 강대한 종족인 용족.

그러한 용과 닮았다는 이유로 드래고니안이라 싸잡아진 이들은 외형만이 아니라 능력적으로도 용을 닮아 있었다.

“무슨 경비도 170렙이네.”

다른 용병들이 투덜거리든 말든 성진은 시체궁을 살펴보는 데 집중했다.

뼈로 만들어진 이 새하얀 궁전은 사실 용의 뼈로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용의 뼈는 안전한 곳에 숨겨놨겠지. 이건 전부 용인들의 뼈다.’

용의 뼈는 아니라지만 이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마계에선 죽은 생물의 사체가 슬라임을 통해 마력으로 환원되게 두는 것이 전통이자 예의였다.

그러나 시체궁은 마룡제의 시체를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용인들의 뼈를 모아 궁전까지 지을 정도였다.

사령술사와 다름없는 이러한 만행은 마계의 공분을 사기에 딱 좋은 일이었지만 시체궁은 멀쩡히 마왕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간단했다.

‘용의 시체를 먹은 자들.’

슬라임에게 시체를 넘기는 대신, 스스로 용의 시체를 먹고 용인이 된 자들.

그것이 바로 시체궁의 주민들이었으며, 그중 가장 강한 것이 바로 시체궁주였다.

“최초의 시체궁주가 용의 심장을 먹은 이래로, 역대 시체궁주들은 모두 전대 시체궁주의 몸을 먹어왔다지.”

용의 심장을 먹고.

심장을 먹은 자의 시체를 먹고.

또 그 시체를 먹고.

그리하여 시체궁주는 대대로 드래곤 하트를 이어받아 왔다.

“용들의 것을 돌려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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