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불과 광채의 성좌는 엔리코에게 남태수를 잡아 오면 그를 사도로 삼아주겠다 제안했다.
엔리코는 받아들인 직후, 팀을 꾸렸다.
그가 받은 퀘스트의 내용에선 딱히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고 적혀 있지 않았다.
‘이미 마왕들이 수배를 걸어둔 덕분에 추적대를 꾸리는 것까진 쉬웠는데…….’
[이름 없는 마왕이 마계공작 프린스 오브 다르크를 쓰러뜨렸습니다!]
[다르크 지방의 소유권이 이름 없는 마왕에게 옮겨갑니다!]
[신성황녀의 힘이 약화됩니다!]
[마계의 존재들이 이름 없는 마왕을 인식합니다!]
[마왕 남태수의 이름이 마계에 널리 퍼집니다!]
마왕.
인간이, 어쩌면 사도라도 쓰러뜨릴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는 강대한 NPC들.
“이 인원으로 마왕을 잡을 수 있나? 아니 그보다 플레이어가 마왕이 될 수 있는 거였어?”
연이어 떠오른 공지에 추적대에 소속되어 있던 플레이어들은 순식간에 떠나갔다.
물론 이번 남태수 추적대에는 NPC들도 많이 참가했기에 플레이어들이 빠져도 전력은 충분했다.
상대가 일반적인 플레이어였다면 말이다.
‘설마 저놈도 사도는 아니겠지?’
불과 광채의 성좌가 직접 잡으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
그렇다면 남태수 또한 평범한 플레이어가 아닐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엔리코는 고개를 저어 불안한 마음을 털어냈다.
만일 그렇다면 또 어떤가.
자신이 사도가 될 수 있다면 그런 것쯤은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이보쇼 대장양반. 그래서 저런 공지가 떴는데 우린 어디로 가야 하오? 다르크?”
“다르크 지방은 바로 다시 신성황녀에게 넘어간 걸 보면 페이크일 확률이 높다. 계속 추적해온 대로 화산지대로 향한다.”
중립지대에서부터 남태수를 쫓아온 추적대는 화산지대에 진입했다.
그리고 피닉스가 일으킨 불기둥을 마주했다.
“저길 봐! 토네이도를 타고 뭔가가 날고 있다!”
“남태수다! 저놈이 우리가 쫓던 놈이야!”
추적대는 남태수를 발견하고 그 이름을 외쳤으나, 딱히 전의를 불태우진 못했다.
하늘에 맞닿은 거대한 토네이도는 그들이 마치 거대한 자연재해와 맞서는 느낌을 주었다.
‘분명 저 토네이도는…….’
화산 분화구에 산다는 피닉스가 일으킨 것이리라.
그렇다면 남태수 또한 저 토네이도에 휘말려 있을 뿐인 거겠지만, 엔리코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뭔가 되게 안정적으로 날아다니고 있는데? 저게 토네이도에 휘말린 거 맞나?’
피닉스라면 마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강력한 몬스터였다.
마족이라면 공작 작위를 받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생물.
그러한 놈이 일으킨 토네이도를 인간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없었는데도.
“하늘에서 뭔가 떨어진다!”
“용암상어 같은데?”
토네이도를 타고 화산재 위로 날아올랐던 용암상어들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산지대까지 쫓아온 추적대에게 용암상어 쯤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까부터 이상함을 느끼고 있던 엔리코는 상어들의 상태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잠깐! 저건 그냥 용암상어가 아니야! 모두 조심……!”
엔리코가 말리기도 전에 상어들은 추적대를 덮쳤다.
“으아악! 이게 뭐야!”
“이놈들 그냥 용암상어가 아니다! 좀비 상어다!”
“토네이도 속에서 좀비 상어가 비처럼 내린다!”
내장을 흩뿌리며 날아든 상어들은 몸을 조각내도 죽지 않고 추적대를 물고 늘어졌다.
[좀비 샤크에게 물렸습니다!]
[랜덤한 2개의 저주에 걸립니다!]
[눈 멈 상태가 되었습니다!]
[공황 상태가 되었습니다!]
추적대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물론 그뿐이었다면 시간을 좀 끌렸을 뿐, 금세 상어들을 털어내고 태세를 정비했으리라.
그러나.
-이런 이런, 모처럼 마스터께서 실전경험을 쌓고 있는데 방해꾼들이 나타났군요.
무르무르는 드론 형태로 나타나 상공에서 추적자들을 내려다보았다.
-마스터를 붙잡고 싶다면 제 시체를 넘어서 가십시오.
그와 동시에 카모플라주 상태로 대기하던 육전형 타이탄이 엔진룸을 열어둔 채, 위장을 해제했다.
14미터에 달하는 인간형 타이탄은 무르무르가 엔진룸에 내려앉자 안광을 빛내며 가동을 시작했다.
기본적인 타이탄에 대량의 부가장갑과 포대를 장착한 화력형 타이탄.
-Guns, Guns, Guns!
양팔에 각각 4개씩 장착한 발칸포가 불을 뿜었다.
추적대는 포구가 향하는 방향을 보고 빠르게 몸을 피했으나, 애초에 무르무르가 노린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콰과과과!
지면이 갈아엎어지며 용암이 솟구쳤다.
이곳의 지면은 사실 겉 부분만 굳어 땅처럼 보일 뿐, 아래는 아직 용암이 흐르고 있는 상태였다.
무르무르가 남태수에게 들은 명령은 어디까지나 시간 끌기.
적들의 몰살이 아니었기에 그는 적들의 접근경로부터 차단했다.
-꼬우십니까? 용암을 건너오십시오. 나의 타이탄 당신들을 벌집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피닉스의 토네이도, 거기서 떨어진 좀비 상어, 거기에 엄청난 화력을 쏟아내는 타이탄까지.
“이게 다 뭐야…….”
엔리코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 * *
“괜찮겠지 저거? 괜히 플레이어까지 막 죽이고 그러진 않겠지?”
추적대를 발견하고 무르무르를 보낸 남태수는 하늘에서 그쪽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남태수는 좀비로 만든 용암상어에 타이탄용 비행팩에 들어가는 엔진을 박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용암상어였던 좀비는 내부에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엔진만 달아줘도 하늘을 계속 날아다닐 수 있었다.
“아재!”
“이쪽은 준비됐어!”
“그럼 바로 갑니다!”
직후, 불꽃 속에서 뻗어 나온 검기가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처럼 사방을 베고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불길이 걷히자 피닉스는 추력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다나가 피닉스의 몸에서 뛰어내리자 남태수는 타이탄으로 제작한 정지장을 가동시켰다.
부우우웅!
일정 범위의 마력을 멈추는 정지장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피닉스의 불꽃 자체를 멈췄다.
“저주나 먹어라!”
불길이 사라지며 저항력이 떨어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남태수는 가진 디버프를 전부 걸었다.
다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약해진 본체에서 깃털을 뽑아냈다.
그것도 왕창.
“됐다! 튀죠!”
피닉스의 깃털을 얻었으면 끝.
굳이 이놈을 잡겠다고 늘어질 필요가 없었다.
구구구구구구…….
특히 저 화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카르마의 움직임이 더더욱 그들을 재촉했다.
‘염제가 깨어난다!’
피닉스까진 어떻게 둘이서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왕 염제가 깨어나서 날뛰기 시작하면 그들도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었다.
“읏차! 출발! 아재 빨리!”
상어의 뒤에 다나를 태운 남태수는 풀 스로틀로 그곳을 벗어났다.
빠직!
“저거 정지장 부수고 나온다 저거!”
“쫓아오는 건 제가 막을 테니까 앞만 봐요!”
현지 재료를 이용해 대충 만든 난쟁이 장비는 피닉스의 힘을 오래 버티지 못했다.
키야아아아아아악!!!
분노한 피닉스는 순식간에 초음속으로 가속하며 그들을 쫓아왔다.
“무르무르!”
두 사람은 무르무르에게 신호를 보내며 상어를 버리고 뛰어내렸다.
그들이 뛰어내리자마자 피닉스의 불꽃이 상어를 집어삼켰다.
무르무르는 그러한 피닉스를 향해 전탄을 발사했다.
가진 탄을 모두 발사한 무르무르는 장비를 모두 퍼지하고 두 사람을 맞이해 콕피트를 개방했다.
“다나 네가 주 조종석에 앉아!”
타이탄은 원래 전사가 탑승해서 직접 조작하는 기체.
남태수는 탠덤석의 뒷자리에 앉았다.
“무르무르! 비행장비 소환!”
-Yes my master.
“태수 아재! 저 추적대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어쩔 거예요? 이대로 두면 피닉스한테 다 죽을 텐데!”
“지들도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튀겠지! 저쪽이 도망칠 시간만 잠깐 끌어주고 우리도 바로 튄다!”
이클립스.
남태수가 발동한 각성기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둠 속에서 화산지대의 시체들이 일어섰다.
타이탄이 날뛰는 과정에서 죽은 몬스터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지구의 탑이 나타난 뒤로 30년간 이곳 화산지대에서 죽었던 수많은 몬스터들의 시체가 일제히 일어났다.
“세상에, 저게 다 몇 마리야……?”
“이클립스로 일어난 애들은 죄다 내 스킬 레벨 안에서 가장 낮은 등급의 언데드로 생성돼. 숫자는 많아도 피닉스 앞에선 금방 쓸려나갈 거야!”
생전에도 화산지대의 몬스터들은 피닉스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그런 놈들이 최하급 언데드로 생전보다 더 약한 몸을 가지고 부활했으니 저것만으로는 피닉스를 막아설 수 없다고 봐야 했다.
-비행 준비 완료.
“주익 전개! 보조 엔진 점화!”
“다나야, 이 사이즈로 성검 쓸 수 있어?”
“이단심문관 스킬 잊었어요?”
이단심문관은 획득한 검을 등록해 언제든지 심판의 검이라는 스킬로 복제본을 불러낼 수 있었다.
이러한 복제본은 마력만 지불하면 원본과 똑같은 힘을 발휘했다.
화르르륵!
하늘의 피닉스가 불꽃의 해일을 이끌고 지상을 향해 쏟아졌다.
그에 맞서 언데드로 되살아난 지상의 몬스터들은 무수한 불덩이들을 쏘아냈다.
수천 개의 소방호스가 일제히 물줄기를 쏟아내는 듯한 장관.
그러나 아무리 많은 물줄기라도 해일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륙합니다!”
하늘을 수놓는 불꽃 속으로 타이탄이 날아올랐다.
검기의 중첩.
일시적으로나마 검강도 막아 세웠던 그 기술이 타이탄의 힘으로 펼쳐졌다.
“갈라져라아아앗!”
서걱!
하늘을 뒤덮은 불꽃에 선이 그어졌다.
선은 물감이 번지듯 주변으로 번져가며 피닉스의 불꽃을 갈라 버렸다.
그것은 마치 검으로 하늘을 가르는 기분이었다.
“와, 씨! 이거 출력 미쳤…… 어라? 아재? 아재 정신 차려요!”
“어? 어, 음 마력이 한방에 쭉 빠지니 의식이 흐릿해지네…….”
타이탄을 가동하고 있는 것은 남태수의 카르마.
그러나 그는 아직 카르마를 다루는 게 미숙해 이를 마력에 섞어 쓰고 있었다.
“아재가 여기서 기절해 버리면 안 되지!”
“어지러 죽겠으니까 그만 좀 흔들어봐…….”
불꽃을 갈랐어도 아직 피닉스 본체는 건재한 상태였다.
추적대가 이탈하는 것을 확인한 다나는 자신도 곧바로 자리를 이탈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도망치는 것보다 ‘그것’이 깨어나는 것이 더 빨랐다.
무우우우.
두 사람이 거대한 카르마의 박동을 감지한 그 순간.
“……!”
타이탄의 코앞에 거대한 눈이 들이 밀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