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100화 (100/170)

<100>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눈앞의 시체들을 다 먹어 치워라.”

“정말이다? 이거 다 먹어도 되는 거냐다!?”

“그래. 여기선 사룡왕이 쓸 시체를 따로 남겨둘 필요 없이 다 네가 먹어도 된다.”

성진의 허락이 떨어지자 진마왕은 그 즉시 슬라임 해일이 되어 주변을 휩쓸어갔다.

“허어? 뭘 소환하는가 싶더니 청소부 슬라임인가?”

규모만 좀 클 뿐, 진마왕이 하는 건 평범한 청소부 슬라임들이 하는 것과 똑같았다.

시체를 삼키고 마력으로 환원한다.

그러나 진마왕은 삼킨 것보다 더 많은 마력을 만들어냈다.

“으음?”

청소부 슬라임이 만들어내는 주인 없는 마력은 마족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때문에 무얼 하려는 건지 구경하고 있던 마족들은 진마왕이 일으킨 현상에 눈을 크게 떴다.

차원을 넘기 위해 새로 만든 개체라 담겨 있는 힘은 없었지만 진마왕은 진마왕.

신성에 이른 영혼의 5단계 초월 효과는 슬라임의 마력 변환 효율이 100%를 넘기게 만들었다.

“뭐냐 저건! 삼킨 것의 10배, 아니 100배는 되는 마력을 내뿜고 있지 않느냐!”

그 모습을 본 마족들은 눈이 돌아갔다.

‘저 슬라임이 있으면 무한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실제론 진마왕에게도 한계가 있었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 무한동력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는 사이 성진은 엄청난 속도로 마력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저어기 날아다니는 놈들도 맛있어 보이는데 저것들도 요리해 줄 거냐다?”

“마족 한 접시 푸짐하게 담아주마.”

“숫자도 저렇게 많은데 그럼 당연히 메뉴도 다양하겠지다?”

“아닌데? 미트볼 통일이다.”

“왜째서다……?”

성진은 오랜만에 듣는 기괴한 말투에 피식 웃으며 황금룬을 발동시켜 자신의 신체를 강화했다.

100층에서 다나는 웨어울프의 몸에 온갖 버프를 떡칠해 성진의 신체능력을 따라왔지만, 그건 황금룬으로 강화되지 않은 상태.

룬 마술로 강화된 성진의 육체는 제자리에서 총알보다 빠르게 도약했다.

타앙!

한순간에 공작의 눈앞에 도착한 성진은 주먹을 내질렀으나, 놀랍게도 공작은 자신의 칼날손으로 그것을 막아냈다.

‘더럽게 튼튼하군.’

같은 초월 단계.

그러나 성진의 바탕이 되는 인간의 육체는 원래 튼튼한 편이 아니었다.

반면 마계의 생물인 마족들의 육체는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튼튼했다.

평범한 인간이 코끼리와 힘 싸움을 할 수 없듯, 100레벨 인간보다는 100레벨 코끼리가 육체적으로 더 강력하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족 초월자보다는 마족 초월자가 신체능력이 더 뛰어난 것.

‘육체는 황금룬으로 강화를 해야 동급인가.’

그간 탑을 오르며 한 번도 힘에서 밀린 적 없는 성진이었으나 마계에서는 힘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성진은 힘만 센 게 아니었다.

공중에서 성진과 충돌한 공작은 디딜 곳이 없어 저 멀리 뒤로 밀려났다.

성진은 티타니아가 만들어준 발판으로 공중에서 도약하여 그 뒤를 쫓았다.

날개를 가진 공작은 허공에서 몸을 틀어 성진의 뒤로 돌았다.

속도에서도 밀리지 않는 모습.

그러나 공작의 생각 따윈 이미 성진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푸슉!

“……!”

성진이 밟고 도약한 발판.

그 발판에서 솟아난 검기가 공작의 몸을 꿰뚫었다.

“이런 잔재주를!”

발판의 마력에 검기를 심어두고 시간차로 튀어나오게 만든 기술.

고속전투 중에 그런 함정을 만들어둔 건 놀라웠지만, 마족은 몸에 구멍 한 둘 뚫렸다고 약해지지 않았다.

성진은 뒤에서 짓쳐 든 공작의 칼날을 쳐냈다.

앞으로 가던 도중 뒤에서 앞으로 미는 힘이 더해졌으니 이번에는 성진이 튕겨 나가야 했다.

“고작 이런 걸로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아닐걸.”

튕겨 나가며 수인을 맺는다.

검기를 통해 상대의 몸에 침투시킨 자신의 마력이 공작의 피를 장악했다.

“가시지옥.”

그와 동시에 공작의 몸속에 있는 모든 혈액이 칼날처럼 변하며 육체를 찢고 튀어나왔다.

“캬아아아악!”

공작은 짐승 같은 비명을 지르며 광분했다.

전신의 근육이 찢겨나가도 제압되지 않는 강렬한 투지.

그러나 이미 그 아래에서는 공작이 쏟아낸 피를 마신 진마왕이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충분히 고인 마력은 그 자체로 거대한 화약고나 다름없었다.

“점화.”

불꽃이 치솟았다.

공작은 불꽃에 휘감겨 온몸이 구워지면서도 성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힘과 힘의 정면충돌.

강력한 충격파가 마계의 구름을 자극하자 번개가 내리쳤다.

검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뇌전과 불꽃이 춤을 춘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보다 빠른 상대가 회피를 도외시한 공격을 시도한 그 때.

성진은 끝까지 보여주지 않고 있던 검강을 꺼내 들었다.

서걱!

승리.

하지만 전투가 시작된 그 순간부터 성진은 이미 승리 그다음을 보고 있었다.

“먹어 치워라.”

진마왕이 신성황녀의 공작을 먹어 치움과 동시에 막대한 마력이 환원되었다.

성진은 그 마력을 한 톨도 남김없이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신성황녀의 대규모 공세로 바닥을 치던 마력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이름 없는 마왕이 마계공작 프린스 오브 다르크를 쓰러뜨렸습니다!]

[다르크 지방의 소유권이 이름 없는 마왕에게 옮겨갑니다!]

[신성황녀의 힘이 약화됩니다!]

“이곳은 이제 나의 땅이다.”

마왕은 자신의 영토에서 힘이 강화된다.

이것은 마왕의 영향을 받는 권속들도 마찬가지.

이 땅의 주인이 바뀐 순간, 신성황녀의 기사들은 힘이 약화되었고 성진은 강해졌다.

“덤벼.”

성진의 타깃이 다른 기사들에게로 옮겨갔다.

* * *

공작이 성진과 싸우는 동안 휘하의 기사들은 잠자코 그 전투를 지켜보았다.

“새로 나타났다는 저 마왕도 공작님과 같은 1단계 초월자인가? 그렇다면 어려울 것 없겠군.”

새로운 마왕이 초월자라고 해도 이쪽에는 같은 초월 단계의 공작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수많은 기사들이 모여 있으니 패배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러한 생각은 전투가 진행되며 조금씩 바뀌어 갔다.

“생각보다 잘 싸우는군. 과연 마왕의 자격을 얻을 정도는 되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혼자서 우리 모두를 감당할 수는 없다.”

정령술에 이어 혈마술까지.

성진은 놀랍게도 다수의 신성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놀랍구나. 마력이 바닥난 상태로도 저러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니.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군.”

성진의 빈틈을 노린 공작의 일격.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검강이 빛났다.

초월을 이룬 검사라도 쉽사리 도달할 수 없는 검술의 종착지.

신성존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절대적 칼날이 공작을 완전히 분해해 버렸다.

“새로운 마왕은 검기성강을 이룬 존재였단 말인가!”

[이름 없는 마왕이 마계공작 프린스 오브 다르크를 쓰러뜨렸습니다!]

[다르크 지방의 소유권이 이름 없는 마왕에게 옮겨갑니다!]

[신성황녀의 힘이 약화됩니다!]

이어서 마계 전역에 이번 전투의 결과가 공지되었다.

마계가 이것을 마왕간의 정당한 영토분쟁으로 인식했다는 뜻.

이렇게 된 이상 남은 기사들끼리 성진을 쓰러뜨릴 수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만한 마법과 검술을 동시에 갖춘 존재가 있을 수 있지?”

차라리 5초월을 완성했다든가, 신성존재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진은 1단계 초월자였다.

그가 가진 것은 고작 1단계 초월자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것들뿐.

저만한 능력을 쌓으려면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해 있어야 정상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상황.

“이, 일단 도망쳐야…….”

“누구 마음대로?”

마력을 모두 회복한 성진은 그들 앞을 막아섰다.

“미트볼들은 거기 서는 것이다!”

성진은 예고대로 그들을 모두 미트볼로 다져 버렸다.

한바탕 난타 공연이 지나간 후, 남은 음식은 모두 진마왕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꺼억.”

* * *

그로부터 한참 뒤, 신성황녀는 결국 이름 없는 마왕에게서 제 땅을 되찾아오기 위해 친정에 나섰다.

항공모함에 맞먹는 비대한 몸집.

그에 비해 완전히 퇴화된 다리는 인간 다리만도 못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80명이 넘는 권속들이 마법을 사용해 떠받들어서야 겨우 이동이 가능한 것이 바로 신성황녀였다.

그런 신성황녀가 직접 전장에 나서자, 영토가 맞닿아 있는 빙제 또한 국경 부근까지 나와 하늘을 배회하고 있었다.

“흥, 저 해로운 새가 분수도 모르고 본녀의 것을 탐하는구나.”

“맞습니다. 다르크 지방은 원래 신성황녀님의 것. 아무리 빙제라도 이를 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빙제는 코끼리도 한입에 삼킬 거대한 새의 모습을 한 마왕으로, 평상시에는 제 영토 위를 날며 자신의 땅에 눈보라를 내리는 존재였다.

성진이 빙제의 영역을 가지고 줄타기를 하려 했던 만큼, 다르크는 그의 영역과 맞닿아 있는 땅이었다.

이번 일로 다르크의 주인이 바뀌었으니 그도 이 땅을 노리고 온 것이리라.

“새로운 마왕도 그간 잘 도망쳐 다녔지만 이제 영토가 생긴 이상 그곳을 버리고 떠날 순 없겠지. 다르크를 놈의 묘지로 만들어주겠다.”

그리하여 다르크에 도착한 신성황녀를 맞이한 것은, 텅 빈 대지였다.

[주인 없는 영토에 들어섭니다.]

[다르크 지방의 소유권이 신성황녀에게 옮겨갑니다!]

“뭣이?”

마왕이라면, 마계에서 태어나 마왕이 된 마족이라면 절대로 자신의 영토를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성진은 달랐다.

“이게 무슨 일이냐! 놈이 어디로 갔단 말이냐!”

“혹시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 빙제가 놈을 잡아먹은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이곳이 주인 없는 영토가 아니라 빙제의 땅이라 나와야 할 것이 아니냐!”

성진은 미련 없이 땅을 버렸다.

굳이 이곳을 지키겠다고 신성황녀랑 정면승부를 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

덕분에 신성황녀는 공작 하나를 포함, 자신의 기사들만을 대량으로 잃고도 성진을 놓치고 말았다.

“감히! 감히이이!!!”

신성황녀는 분노했으나 성진은 이미 떠난 뒤였다.

분에 못 이겨 쿵쾅대며 사방을 파괴하던 신성황녀는 이내 이질적인 마력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거기에 있던 것은 한때 신성황녀의 권속이었던 싸구려 스켈레톤 하나.

그 스켈레톤은 성진이 남긴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마왕차이ㅅㄱ

-남태수-

“남태수? 그 사령술사가 바로 새롭게 나타난 마왕이었단 말이냐?”

남태수라면 분명 중립지대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 중인 사령술사.

“사령술사라면 분명 사특한 방법을 이용해 본녀의 기사들을 해쳤으렷다!”

그럼 이곳에 아무런 시체도 남아 있지 않은 것도 말이 된다.

“죽여주마 마왕 남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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