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98화 (98/170)

<98>

성진이 바로 선전포고를 갈긴 것과 달리, 다나와 남태수는 마족 사회에 섞여들어갔다.

애초에 이곳에선 플레이어가 마왕과 맞붙을 이유도 없었고, 마족들도 플레이어를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싸다 싸! S급 용병이 하루에 3만 골! 장기 고용 시 할인!”

“날 갈아요. 칼, 도끼, 발톱, 등뼈 안 가리고 다 갑니다.”

마계시장.

별빛 분지와 같이 각 마왕들의 영토 사이에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중립지역이 있었다.

이러한 지역에는 1년 365일 상시 장터가 열려 있었다.

“장터라고 하기에는 일자리를 구하는 용병들이 대부분인데요? 완전 인력시장인데?”

“마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게 인력이니까. 여기저기서 전쟁이 터지니 수요도 많고, 강자가 많으니까 공급도 많대.”

다나는 성진이 부탁한 물건들을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장터를 찾았다.

열심히 공략을 준비해온 남태수도 자신이 마계대전까지 올라올 줄은 몰랐기에 여기서부터는 정보가 그리 상세하진 않았다.

게다가 성진의 리스트에는 플레이어들에게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는 재료들도 많았기에 몇몇 개는 찾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찾는 것보단 여기저기 돌아다녀봤을 현지의 용병들에게 묻는 게 낫다는 건 알겠는데.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를 모르겠네.”

좀 강해 보이는 용병한테 물어보면 정보도 많겠지 싶었다.

NPC가 강세인 스테이지니 강한 용병도 흔히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용병이라고 있는 애들이 다들 엄청 약한데? 영웅급 카르마도 흔치 않네.”

“부하한테 영업 뛰게 하고 강한 녀석들은 뒤에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런가? S급이 어느 정도인진 몰라도 탑의 시스템이 저렇게 번역할 정도면 용병 중에서도 높은 급수겠지?”

그들은 일단 S급 용병을 제공한다는 마족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용병을 고용하고 싶은데.”

“아이고 고객님 어서오시…… 으음? 인간이시네.”

이 스테이지에서 인간이라면 대부분 플레이어였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상대적 약자.

물주와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다.

‘반응이 안 좋네. 당연한 일인가?’

플레이어들은 보통 포인트를 쓰기보다 벌기를 원한다.

덕분에 상점 포인트를 마계의 화폐로 교환할 수 있음에도 대부분은 최대한 포인트를 아끼려 했다.

물론 다나와 남태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돈은 충분히 있다.”

다나는 그렇게 말하며 인벤토리에서 수백만 골을 꺼내 보였다.

베르나데트가 통합한 센트럴 시티의 플레이어들은 애초에 기업 단위로 포인트를 벌던 이들이었다.

그들의 지원을 받은 두 사람은 수억 골은 쓸 수 있는 상태였다.

“아유 나으리도 참. 제가 설마 그런 걸 의심해서 말했겠습니까?”

의심해서 그런 거 맞다.

하지만 용병은 프로답게 확인을 마치자마자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무슨 일로 용병이 필요하신 겁니까? 광고대로 S급 용병이 하루에 3만 골인 것은 맞지만, 업무 내용에 따라 추가 요금이 붙을 수도 있습니다.”

“정보와 길 안내. 가능하다면 탐색 보조도.”

“보물 사냥이군요. 그런 거라면 전문인 녀석들이 있지요.”

“그런데 S급 용병이라는 게 정확히 얼마나 강한 거지? 너무 약해서 짐이 된다면 정보만 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다나는 우선 용병들의 실력부터 파악하고자 했다.

성진의 리스트에는 각각의 재료가 등장하는 위치가 대강은 적혀 있었다.

이에 따르면 그들은 마계에서도 위험지역에 해당하는 곳을 돌아다녀야 했으므로, 길잡이도 실력이 필요했다.

그게 아니라면 정보만 사서 직접 돌아다니는 편이 편할 테니까.

“허어, 이것 참. S급 용병이라는 것은 용병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당장 마왕군에 들어가도 한자리할 수 있다는 소리기도 하지요.”

용병은 그렇게 말하며 가슴을 쭉 내밀었다.

“그게 바로 저랍니다!”

그 말에 다나는 남태수를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뭡니까 그 표정은. 황금의 메르키데스라고 하면 알 사람은 다 아는 이름이란 말입니다!”

“알 사람이니까 아는 거 아냐?”

“므읏……! 이래서 인간들이란. 말로 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니까. 좋습니다. 까짓것 힘의 차이를 보여드려야겠군요. 어디 저를 한번 공격해보십시오.”

“내가?”

“전력을 다해 공격하셔도 됩니다. 당신의 실력으로는 제 몸에 생체기 하나 내지 못할 테니까요.”

그 말에 다나는 긴가민가하며 성검을 뽑아 들었다.

‘진짜 전력을 다해도 되나? 약해 보이는데.’

의심스럽긴 했지만 저렇게 장담하는 모습을 보니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정말로 강하다면 자신이 실력을 못 알아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가진 카르마나 마력은 적어도 기량이 엄청 뛰어날 수도 있는 거니까.’

저층에서 만났던 성진도 그렇지 않았던가.

‘괜찮겠지.’

다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를 잡았다.

검강을 상대하며 엉겁결에 익힌 다중 중첩검기.

‘검기 500배.’

다나는 부담 없이 최근에 연습 중인 필살기를 준비했다.

메르키데스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마력량은 적어도 꽤나 섬세한 컨트롤이군.’

플레이어들의 스킬은 탑의 시스템에 의해 발동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정교해 보였다.

그가 보기에 다나의 기술은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크게 뛰어나 보이지도 않았고, 마력의 총량이 큰 것도 아니었다.

또한 NPC인 그는 플레이어인 다나의 카르마도 읽을 수 없었다.

문제는 그가 현상을 제대로 포착하고도 해석을 잘못했다는 점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비슷한 기술적 완성도는 다나의 검술이 신성존재들이 만들어낸 시스템과 비견될 만큼의 숙련도를 자랑한다는 뜻이었고,

적은 마력량은 마력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성검의 카르마로 대체되어 있음을.

다나와 남태수가 마왕과의 전투를 대비해 훈련한 만큼, 그 둘의 전투력이 초월자마저 위협할 수준임을 메르키데스는 알 수 없었다.

그는 확실히 강력한 마족이 맞았지만, 이 둘은 마왕급 전력이었다.

안타깝게도 메르키데스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그동안 봐 온 다른 플레이어들의 실력을 바탕으로 다나를 평가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횡베기.

검기를 중첩시킨 기예와는 별개로, 다나가 그걸 써먹은 방식은 단순했다.

그리고 그 단순한 직선이야말로 적을 베어내는 최단경로였다.

최대한의 힘을 최소한의 시간에 우겨넣는다.

쏘아진 검기는 메르키데스를 반으로 가르고 마력으로 이루어진 마계의 구름층을 꿰뚫었다.

메르키데스는 절명했다.

“다, 다나야? 걔를 죽여 버리면 어떡해?”

“아니 태수 아재, 저는 죽이려던 게 아니라…….”

당황하는 와중에 남태수는 일단 메르키데스의 영혼을 챙겼다.

예상치 못하게 상대를 죽여 버린 다나도 놀랐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남태수도 놀랐으며, 장터에 있던 다른 마족들도 놀랐다.

놀라지 않은 것은 죽은 메르키데스 뿐.

그는 자신이 뭐에 죽은 지도 몰랐다.

-어? 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남태수였다.

그는 특유의 위기 감지 능력으로 곧 개판이 벌어질 것을 감지하고 회피에 나섰다.

“튀자.”

남태수는 황급히 다나와 메르키데스의 영혼을 살아 있는 그림자에 집어넣고 현장을 이탈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튀는 속도 하나만큼은 일품이었던 남태수는 순식간에 마족들의 눈을 피해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장터로는 못 돌아가.”

“어쨌든 용병을 얻었으니 된 거 아닐까요……?”

남태수는 그 말에 다나를 째려보았지만,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이 일로 수배가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사실 잡힐 걱정은 없었다.

“S급 용병이 이런 수준이라면 어지간해서 우리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중립지대에서 일어난 일에 마왕급이 직접 나설 리도 없고.”

다만 마족사회의 인프라를 활용하기는 힘들어졌다.

“매일매일 목욕하고 침대에서 잠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돈이 많으면 뭐하나.

이제 쓸 수가 없는데.

남태수는 한숨을 내쉬며 메르키데스의 영혼을 꺼냈다.

“일어나라.”

그의 마법에 메르키데스는 생전의 모습으로 일어났다.

좀비나 데스나이트 등, 언데드를 생성하는 게 아니라 영혼 자체를 일시적으로 실체화하는 마법.

육체가 없으니 전투용은 아니고, 무당이나 영매사가 사용하는 강령술에 가까운 마법이었지만 다나에게도 영혼을 보여주려면 이게 좋았다.

“자, 여기 있는 목록을 보고 아는 걸 다 털어놓는다. 실시!”

-예? 그게 무슨…… 끼야악!

“묻는 말에만 대답한다. 실시!”

남태수는 주성진에 빙의하여 메르키데스를 갈궜다.

실제로 성진이 남태수에게 저런 적은 없었지만, 그간 남태수가 체감한 것은 저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진은 항상 남태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시켰으므로 그는 매번 한계까지 쫓기며 지냈으니까.

“크헤헤! 빨리 빨리 안 움직이나!”

“성진 아저씨가 태수 아재한테 그런 적은 없지 않아요? 뭔가 사도가 되더니 사룡왕을 닮아가는 것 같은데…….”

“어허! 얘가 못 하는 소리가 없네!”

그러거나 말거나 마왕급 괴물들한테 잡혀 온 메르키데스는 바짝 쫄아 있었다.

‘사, 사룡왕의 사도라니! 말을 듣지 않으면 큰일 날 거야!’

다행히 그는 S급 용병답게 짬밥이 상당했다.

-용의 부산물은 부유섬에 있을 거예요. 거기에 용의 시체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피닉스의 깃털은 부유섬 아래의 화산에서 구할 수 있을 테고…….

“생각보다 유능하네?”

다나는 호언장담을 해놓고 한 방에 죽어 버린 메르키데스에게 별 기대를 걸지 않았으나, 그는 생각보다 쓸모 있었다.

“이 정도면 1.5 남태수…….”

“사람 이름을 단위로 쓰지 마! 그보다 1.5 남태수라니!”

“하지만 이제 죽어서 돈도 안 내고 공짜로 부려먹을 수 있잖아요. 그럼 추가점을 줄만 하지 않나?”

“그건 그렇네.”

메르키데스는 다나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성좌나 할 법한 발상을 내뱉는 모습에 영혼을 부르르 떨었다.

‘이게 사고였다고 해도 사람을 죽여 놓고 할 소린가? 아니 탑에 올 때부터 이미 죽어 있긴 했는데.’

“좋아. 그럼 부유섬 근처에 가서 다시 부를 테니까 이 안에 들어가 있어.”

남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메르키데스를 붙잡아 검은 관 안에 집어넣었다.

“후딱 가자고.”

이제는 수배가 안 걸려 있으면 좀이 쑤실 지경까지 온 남태수는 알지 못했다.

용병을 고용하는 문화가 널리 퍼진 마계에선, 중립지대에서 벌어진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는 마왕들이 공동으로 용병을 고용한다는 점을.

또한 인간족이 벌인 일을 해결하기 위해 고용한 것도 인간족, 즉 플레이어이며 사도 후보 중 하나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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