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96화 (96/170)

<96>

[다음 층으로 이동합니다.]

[진행에 따라 레벨이 상승합니다.]

[Lv.100 > Lv.101]

마계에 도착한 순간, 다나와 남태수는 대기 중의 마력을 감지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헛!”

“무슨 마력이……!”

비가 온 뒤 물웅덩이가 고이듯, 세상에는 마력이 고이는 지점들이 존재했다.

“마계는 온갖 차원의 마력이 고이는 곳이다. 마왕 같은 놈들이 득실 거릴 만큼 마력이 풍부한 세계지.”

“이만한 마력이면 평범한 동식물도 죄다 영물이 되어 있겠는데요? 그러면 영약도…….”

다나는 뭐라도 주워 먹을 생각에 눈을 빛냈지만 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자잘한 몬스터는 많아도 영물 소리를 들을만한 놈들은 흔치 않을 거다. 그런 놈들은 이미 마족들의 뱃속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

“그게 뭐예요. 완전히 마경이란 소리잖아요. 여긴 아예 환경부터가 고렙존 그 자체구만?”

플레이어들이야 어차피 레벨 업이나 스킬 습득을 통해서만 강해지지만, 다나와 남태수는 아니었다.

성진과 함께하며 대량의 카르마를 손에 넣고, 그걸 다루는 법까지 배웠지만 그건 영혼의 스펙.

육체적인 스펙은 아직 100레벨 플레이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곳에서 수련하다 보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

“특히 남태수 너는 이미 신화급 카르마를 가지고 있어 초월 조건을 만족했다. 얼른 기량을 키워 환골탈태를 해둬라.”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아나.”

그 말에 남태수는 황망한 표정이 되었다.

“다만 못하면 안 될걸.”

“왜요?”

“여기 마왕들은 사령술사를 아주 싫어하거든. 나는 마왕자격을 얻으러 가야 하니 뒤지기 싫으면 스스로 강해져라.”

“예? 그런 말은 금시초문인데요? 저기요? 성진 씨?”

성진은 그 말만을 남겨두고 먼저 떠났다.

남태수는 멍하니 그가 떠난 자리를 보고 있다가 이내 다나를 바라보았다.

다나는 성진이 준 쪽지의 내용을 토대로 포인트 상점에서 구매한 마계지도에 동선을 그리고 있었다.

“……다나야.”

“전 모아야 할 아이템이 많아서 바빠요.”

“다나야.”

“아재랑 다니다가는 계속 시비가 걸려서 제때 못 모을게 분명한데 그러긴 싫거든요?”

“제발.”

“제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건 그만둬주세요. 애초에 아재도 충분히 세잖아요? 그때 보여줬던 드래곤 브레스면 마왕이고 뭐고 다 갈려 나가겠더만!”

“하지만 그때 예고 없이 한번 불러냈다고 폐하가 계속 내 말을 읽씹하고 계신단 말이야!”

“아니면 무르무르나 다른 챔피언분들도 있잖아요!”

“마왕들이 사령술사 싫어한다잖아! 언데드 소환 없이 어떻게 해!”

“그러게요. 화이팅.”

“그러지 말고 잠깐만 있어봐. 마계 맵 엄청 넓다며.”

남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타이탄 코어에 저장된 설계도를 통해 무언가를 제작해냈다.

“이건…….”

“마력으로 가는 바이크야! 이거라면 기름 걱정 없이 탈것을 타고 돌아다닐 수 있다구.”

남태수가 제작해낸 것은 미래적인 디자인의 바이크였다.

마계대전 스테이지는 하나의 대륙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성진이 지시한 물건들을 다 구하려면 돌아다니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해야 했다.

“이거라면 일주일 컷 쌉가능.”

다나는 따봉을 날리고 있는 남태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태수는 곧장 그 손을 붙잡고 악수했지만 다나는 뭐하냐는 듯이 짜증스럽게 그 손을 털어냈다.

“왜?”

“악수 말고. 헬멧 달라고요.”

웨어울프인 그녀가 헬멧 하나 쓴다고 방어력이 늘어나진 않지만, 바이저가 달린 헬멧이라면 흙먼지나 날벌레들이 부딪히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시동을 걸고 기다리던 다나는 남태수가 헬멧의 설계도를 찾아 그것을 완성하자, 받아든 헬멧을 착용하고 그대로 출발했다.

“야! 왜 혼자 가! 나는? 나는!”

“아재가 뒤에서 껴안고 있는 건 좀.”

결국 남태수는 바이크 옆에 사이드카를 만들어 붙이고서야 그녀와 함께 갈 수 있었다.

* * *

마계는 흔히 그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는 황량한 모습과는 달리 생명력이 가득한 변화무쌍한 곳이었다.

대량의 마력은 그곳에 사는 생물들을 강화시켰고,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할 이상기후를 가능케 했다.

정글 옆에 설원이.

설원 중간에 화산이.

화산 위에는 구름 대신 부유섬이 날아다니는 세상.

“신탁을 받으려면 역시 별빛 대분지로 가야겠지.”

최초의 마왕이 마계일통을 선언한 땅.

최초의 마왕이 마계일통에 실패한 뒤에도 카르마는 그 땅에 남아 수많은 마왕지망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곳에선 별빛 대분지에서 마왕의 자격을 입증해야만 마왕이라는 이름을 칭할 수 있었다.

‘마왕의 자격을 얻으면 마계일통에 도전할 수 있는 것 외에도 많은 특전이 생긴다.’

카르마는 원래 등급과 양으로 찍어 누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일에 특화된 힘이었다.

자신보다 초월단계가 높은 마왕들을 잡기 위해서는 마왕사냥에 적합한 카르마가 필요했다.

“멈춰라!”

정령의 바람을 타고 이동하던 성진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멈춰 섰다.

은신보다는 기동력에 중점을 두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 상태의 자신을 감지할 수 있는 녀석이 흔한 건 아니었다.

“뭐하는 놈이냐! 설마 이제 와서 마왕지망자는 아닐 테고…….”

“맞는데.”

성진을 불러 세운 것은 랜스를 든 데몬이었다.

염소의 다리와 인간의 상반신, 사자의 머리에 날개를 지닌 마족.

기병창을 들고 날아다니며 침입자에게 급강하일격을 날리는 놈들.

‘신성황녀가 별빛 분지에 와 있나?’

마계대전의 주역인 삼황오제의 삼황 중 하나.

이놈들은 신성황녀의 일개미 같은 놈들이었다.

“돌아도 단단히 돌아 버린 녀석이군. 대전이 다 끝나가는 마당에 이제 와서? 허튼짓 하지 말고 돌아가라.”

“대전이 다 끝나기는 개뿔.”

삼황오제의 고착상태는 몇 백 년간 이어지다가 결국 성좌의 손에 끝난다.

결국 마계일통을 이룬 것은 삼황오제 중 누구도 아니었다.

“길을 비켜라. 나는 별빛 분지에 볼 일이 있다.”

“별빛 분지에 들어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성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별빛 분지는 마계의 중립지대. 신성황녀가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을 곳이 아닐 텐데.”

“황녀님의 존함을 삿되게 부르지 마라!”

“네놈은 내게 명령만 하는군.”

성진은 그렇게 말하며 데몬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멈춰라! 그 이상 다가오면 무력을 행사하겠다.”

“해봐.”

직후, 성진과 데몬이 교차했다.

데몬은 나름대로 마왕의 부하답게 성진의 속도에 반응했다.

그러나 반응했을 뿐, 대응하지는 못했다.

“초, 초월자……!”

반으로 부러진 데몬의 창은 그의 심장과 머리에 박혀 있었다.

찰나의 순간, 성진은 데몬에게서 창을 빼앗아 그걸 부러뜨리고 상대의 급소에 박아 넣은 것.

“신성황녀가 이곳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보도록 할까.”

데몬을 처리한 성진은 별빛 분지 내부로 진입했다.

이놈들이 지키고 있다는 건 뭐가 됐든 중요한 게 안쪽에 있다는 뜻.

굳이 데몬을 붙잡아 추궁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분지 내부.

마왕의 제단에 도착한 성진은 그곳에서 신성황녀의 권속들을 발견했다.

‘본인은 없나?’

예상외로 신성황녀 본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신성황녀는 마법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이동이 불가능한 생물이다. 기척을 숨기고 여기에 와 있을 가능성은 없다.’

아예 몰래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놈이니 여기서 기척을 느낄 수 없다면, 여기 없는 게 확실했다.

무엇보다도 마왕의 제단에 있는 권속들의 수준이 매우 낮았다.

개중에는 플레이어도 섞여 있을 정도.

강력한 NPC들이 즐비한 이 스테이지에서 플레이어가 섞인 병력이라면 그리 중요한 부대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네놈은……?”

대장으로 보이는 아크데몬은 성진을 발견하고 의문을 표했다.

부하들을 보내 외부인의 접근을 막으라 명령했음에도 침입자가 나타난 상황.

그는 성진의 실력을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경계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성진의 레벨을 확인하곤, 오히려 자신감을 불태웠다.

‘주성진? 그 테러리스트?’

‘저놈이 갑자기 여기서 왜 튀어나온 건진 몰라도 우린 지금 신성황녀의 세력에 들어와 있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삼황오제 중 하나의 세력에 들었다는 것은 대기업에 입사한 것과 같은 셈.

그만큼 삼황오제의 세력은 그 외의 다른 마왕들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또한 이곳은 플레이어보다 NPC가 더 강한 스테이지.

아크데몬과 함께 하는 그들은 성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른 마왕이 보낸 놈인가?”

성진은 그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마왕의 자격을 얻으러 왔다.”

“마왕지망자라고? 이제 와서?”

“다 똑같은 소리를 하는군.”

그 말에 아크데몬은 성진이 자신의 부하를 만나고 왔음을 깨달았다.

부하는 분명 성진을 막아섰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자신의 부하를 상처 하나 없이 쓰러뜨리고 왔다는 뜻.

‘강자다!’

아무리 그가 신성황녀의 권속이라도 마왕급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급이 떨어져도 마왕은 마왕.

세력 하나 없는 혈혈단신의 마왕이라도 일개 권속보다는 강했다.

반면 플레이어들은 마왕이 되겠다는 성진의 말을 참지 못했다.

“뭐? 당신이 마왕이 되겠다고?”

“레벨이라도 좀 올리고 오든가 101렙짜리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야야,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마왕이라도 좀 만나보고 와라. 플레이어가 어떻게 마왕이 돼?”

보통은 개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갈 것도 정도를 넘으면 참지 못하고 비꼬는 이들이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플레이어들이 보기에 마왕이 되겠다는 소리는 현실에서 진지하게 해적왕이나 호카게가 되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마왕들이 얼마나 센데 101레벨이…… 사도라면 또 모를까.”

“마왕이 되서 뭘 하려고?”

플레이어들은 비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마계일통.”

그러거나 말거나 성진은 적당히 답하며 그들을 지나쳐 제단 앞에 섰다.

모두가 어디 한번 해보라는 듯이 성진을 바라보는 와중에 아크데몬 또한 성진을 막아서지 않았다.

‘이 자가 초월을 이룬 강자라면 어차피 내 힘으론 막지 못한다. 여기서는 하는 것을 보고 결정하는 게 낫다.’

그리하여 성진은 아무런 제지 없이 제단에 자신의 카르마를 흘려 넣을 수 있었다.

[<진마왕의 계승자(신화)>를 확인.]

[마왕의 자격을 인정합니다.]

[마계의 권속이 당신에게 복종합니다.]

[다른 마왕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존재는 당신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모든 마왕을 굴복시키고 그들의 권속을 빼앗으십시오.]

[마계의 유일한 왕이 되십시오.]

마계는 성진의 자격을 인정했다.

[당신의 행동이 영혼의 업(業)으로 쌓입니다!]

[영웅 등급의 카르마를 획득합니다.]

[<이름 없는 마왕(영웅)>을 획득하셨습니다.]

[이름을 얻으십시오.]

[마계의 존재들에게 지음 받은 이름이 마왕으로서의 정체성이 됩니다.]

메시지의 확인을 마친 성진은 자신을 향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다른 마왕의 권속들을 바라보았다.

“보고 있겠지 신성황녀.”

성진이 노리는 것은 패도를 걷는 마왕.

불리하다고 해서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먼저 싸움을 건다.

성진은 아크데몬의 눈을 통해 그 너머의 신성황녀를 바라보았다.

“선전포고다.”

그와 동시에 아크데몬의 목이 날아갔다.

성진은 연결이 끊어지기 전, 떨어져 내리는 머리를 향해 선언했다.

“마왕 대 마왕으로서 너를 죽이러 가겠다.”

패왕의 카르마가 싹을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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