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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다나를 바라보던 성진은 곧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기화는 잘 된 것 같군.”
“동기화요?”
“카르마를 이용한 소통은 말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단순한 정보만을 교환하는 게 아니다.”
성진은 남태수의 물음에 동기화에 대해 설명했다.
“물론 대화 정도로 끝낼 수도 있다만, 깊게 몰입하면 동기화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대상의 경험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지.”
“뭐 상대의 기억을 다운로드하고 그런 건가요?”
“비슷하다. 구체적으로는 내가 직접 그 기억을 체험하는 거지.”
말하자면 지금 다나는 성검의 기억 속에 들어가 성녀의 과거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디까지 몰입할 수 있을지는 다나 본인에게 달렸다. 하지만 충분히 몰입하는데 성공한다면, 재능에 비해 뒤떨어지던 경험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겠지.”
웨어울프의 육체, 성검의 카르마, 천재적인 재능.
거기에 경험까지 채워진다면 다나는 사도를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얻게 되리라.
“그럼 저 녀석이 각성할 때까진 시간이 남겠군.”
“……왜 저를 바라보면서 그런 말을 하시는데요?”
“카르마 사용법을 배워야 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잖나.”
당장 드래곤 피어를 조절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할 건 많았다.
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 * *
탑의 100층은 상위 플레이어와 일반 플레이어를 가르는 경계였다.
랭커들이야 아예 천외천으로 레벨에 따라 상하관계가 나뉘는 게 아니라 특기에 따라 능력이 천차만별이었지만, 150까지는 사실상 단계별 성장.
일단 닭의 머리를 벗어나 소꼬리에 진입하고 나면, 삶이 달라진다.
때문에 100층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도 이제 곧 상위 플레이어가 된다.
이는 심지어 객관적으로 101층에 올라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천국의 계단을 눈앞에 두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기는 쉽지 않았으니까.
때문에 그들은 지금의 이상사태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거 우리 탑으로 돌아갈 수는 있나? 탑을 한 번 나간 걸로 처리돼서 이대로 도전 끝난 건 아니겠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새끼야. 100층까지 와서 그딴 식으로 끝난다고? 그러면 진짜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남태수라는 놈한테 복수한다.”
“할 수는 있고? 나는 눈 마주쳤다고 상태이상이 걸리는 놈은 또 처음 봤다. 사령술사 저주가 원래 패시브 스킬이었냐?”
드래곤 피어로 모든 저항력이 마이너스까지 깎인 플레이어들은 남태수가 직접 저주를 사용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저주가 걸렸다.
그나마 기본 저항력이 높아 드래곤 피어를 맞고도 저항력이 음수가 되지 않은 근접 플레이어들은 저주에 걸리지 않았으나, 마력이 둔화되어 스킬 사용이 느려졌다.
아무리 시스템이 대신 기술을 발동시켜준다고 해도 본인의 마력이 굳어 있으니 그만큼 시스템의 반응도 느려지는 것.
덕분에 멀쩡한 스킬의 시전시간과 재사용 대기시간이 늘어나는 디버프가 걸렸다.
“시발…… 남의 스킬 쿨을 조종하는 저주라니 그런 거 들어본 적도 없다고. 애초에 저거 스킬은 맞냐? 권능 아냐?”
“확실히 저놈이 사도 시련을 받고 있는 거라고 하면 같은 레벨인데도 이렇게 차이나는 게 설명되긴 하는데…….”
“사령술사를 후원할 만한 성좌가 뭐가 있냐? 죽음과 역병의 성좌?”
플레이어들은 자기들끼리 남태수에 대해 떠들어댔다.
성진은 남태수가 잡아온 플레이어들을 영국의 한 호텔에 밀어 넣고 방치했다.
그들은 용들의 강압에 의해 강제로 그들을 받아야 했던 호텔 측의 서비스를 받으며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호텔을 떠나는 것만 빼고.
호텔에 연금된 그들은 남는 게 시간이었고, 덕분에 어스름 곳곳에 흩어졌던 플레이어들끼리 한곳에 모여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
“진짜 사도면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잘 보여 둬야 하나?”
그리고 성진과 남태수는 영혼의 상태로 이 모든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저놈들의 추측도 반은 맞았군. 사도는 맞으니까.
-임시거든요 임시? 그보다 죽음과 역병의 성좌라는 게 진짜 있어요?
-있었는데, 없어졌다. 사람을 좀비 같이 만들어 수하로 부리는 놈이라 까다로웠지. 다만 본인은 약했어.
성좌의 등장소식에 찾아갔더니 아직 토착문명이 잘 버티고 있어서 합류하기로 했던 전투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미 성좌가 역병을 뿌려놓은 상태라 좀비가 되어 있던 현지민과 천사들이 앞뒤로 공격해 와서 골치 아팠던 기억이 있었다.
-적과 아군이 뒤섞여 있으니 골라서 때려잡기 힘들더군. 결국 나 빼고 다 죽었다.
죽음과 역병의 성좌는 성진을 위기로 몰아넣는데 성공한 몇 안 되는 성좌 중 하나였다.
물론 그도 성진을 죽이는 것은 실패했지만.
-그때의 교훈으로 세뇌의 권능을 가진 성좌를 잡을 때는 언데드만 데려갔지.
-아 예…….
성진과 남태수의 대화는 영혼 상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유체이탈.
영혼을 다루는 사령술사의 수련을 위한 준비운동에 해당하는 기술이었다.
또한 이 훈련만큼은 영혼이 없는 어스름의 존재들이나, 영혼이 탑에 묶여 있는 NPC들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이었다.
-느껴지는 건 어떠냐. 영혼의 상태가 되었으니 육체의 감각기관을 이용하던 오감은 사라지고 모든 것을 육감으로 인식하게 되었을 거다.
-확실히 마력을 느끼는데 민감해진 것 같네요. 딴생각을 하고 있어도 완전히 집중했을 때랑 비슷한 수준인 것 같은데.
-오감이 모두 사라지고 육감만 남았으니 마력은 물론 카르마를 느끼는 것도 좀 더 쉬워졌을 거다. 우선 드래곤 피어부터 확인해봐라.
남태수는 성진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용의 피를 확인했다.
사룡왕이 준 용의 피는 실제 피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이름의 카르마였다.
때문에 육체를 벗어난 지금도 그의 영혼에는 여전히 용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거네. 구분은 생각보다 쉽네요. 남한테 받은 거라 그런가?
남태수는 시스템 창을 훑어보는 대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으로 간단히 용의 피를 찾아냈다.
영혼이 된 지금은 전보다 선명하게 카르마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 작동원리를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이렇게 하면 되겠네.
용의 피를 살펴보던 남태수는 간단히 드래곤 피어를 끄는 데 성공했다.
-확실히 처참한 마법 실력에 비해 영혼을 다루는 건 능숙하군.
-사령술사로 전직한 탓일까요?
-내가 사령술사로 전직하라고 했었지. 앞으로 내게 감사하다고 말해도 좋다.
-사룡왕이 옮았어요?
다음은 사령술사 남태수 본인의 카르마였다.
-안 그래도 승천로를 오르고 있을 때 무르무르가 이거에 대해서 말하긴 했었는데.
-뭐라고 했었지?
-대충 ‘플레이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사령술사로서 인정받아 해당 카르마를 쌓아야 된다’ 뭐 그런 식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러면 제가 <지구 최초의 사령술사> 같은 카르마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실제로 그럴 거다. 별로 등급이 높진 않겠지만.
-왜요? 최초의 사령술사라니 타이틀은 엄청 세 보이는데?
-사령술사들의 시조 같은 게 인정받으려면 사령술사들이 그만큼 많고 강해야지. 1명 중 1등이라고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러니까 <지구 최초의 사령술사>라는 카르마는 지구의 사령술사들이 많아질수록 강력해지는 카르마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카르마는 별 볼 일 없는 것에서 시작해 점점 강해지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뒹군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일만 년쯤 집안에서 뒹굴면 에인션트 드래곤 같은 게 되는 법이니까.
시작은 항상 미약한 법이었다.
-지금부터 NPC가 아닌 지구인의 영혼을 사용해 사령술사로 인정받는다.
-설마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을 죽여서 언데드로 만들라는 말씀은 아니죠?
-……나는 네가 자기 자신의 영혼을 이용해 사령술을 펼치게 할 생각이었다만? 벌써 사룡왕에 물들었군.
-아니거든요!
[아까부터 왜 여의 이름을 욕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