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87화 (87/170)

<87>

마리아와 테레사는 성녀를 해방시키며 성진과 똑같이 두 개의 카르마를 손에 넣었다.

<성녀 살해자(전설)>

<어스름의 문을 닫은 자(신화)>

이미 두 개의 신화급 카르마를 가지고 있던 그녀들은 이것으로 3번째 신화급 카르마를 획득한 셈이었다.

성진은 천사의 피에 담긴 마력과 동조하며 생각했다.

‘신화급 카르마 하나면 초월 단계를 하나 올릴 수 있다. 그리고 초월 단계가 5단계에 이르면 신성에 도전할 수 있고.’

신화급 카르마 5개가 있으면 필멸의 운명조차 벗어던지고 신성존재로 거듭날 수도 있었다.

즉, 우주적으로도 흔치 않은 것이 바로 신화급 카르마인 것.

‘난쟁이들이 에렉투스를 말아먹은 이후로는 더더욱 그랬지.’

강력한 카르마를 쌓기 위해선 위대한 업적을 이뤄야 하는 만큼, 큰 전투가 일어나면 얻을 수 있는 카르마도 늘어난다.

에렉투스에서 망치 맛 좀 보고 간 성좌들은 성진이 더 강해지는 걸 막기 위해 대규모 전투를 피하며 최대한 전력을 잘게 쪼개고, 전장의 숫자를 늘렸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성진을 막을 수 없었지만, 성장을 늦출 수는 있었다.

‘망치에 담아둔 힘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존의 카르마를 잃어버린 것은 새로운 카르마를 쌓을 기회이기도 하다.’

성진은 망치를 소환해 원래의 힘을 끌어올 수 있었다.

그럼 거기에 새롭게 얻은 힘까지 더해진다면?

“초월능력을 2배로 사용할 수 있겠지. 남들이 5초월에서 끝날 때 10초월을 이룬 셈이니까.”

성좌들도 이런 건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초월이 어디 맡겨둔 것처럼 할 수 있는 거였으면 세상에 필멸자보다 신성존재가 더 많았을 테니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카르마를 초기화하는 것은 단순히 게임 캐릭터를 초기화하고 다시 키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캐릭터만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경험치도 초기화하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인생사에 필연적인 일은 잘 없고 거의 모든 일들이 우연에 가까운 확률로 일어난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건 그냥 도박이었다.

‘실제로 나 또한 과거의 기억을 남의 일처럼 느끼고 있으니.’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에서라면 모를까, 지금은 전쟁 중.

어지간해서는 연달아 초월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됐다고 다음 주에 또 1등에 당첨될 수 있겠는가?

다만 성진은 달랐다.

성진은 원래부터 맨손으로 버려진 탑에서 살아남은 조난자였다.

그가 살아남은 이유는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더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최악의 환경에서도 이뤄냈던 것을 여덟 왕의 지원 아래 실패할 리가 없었다.

“흡수.”

천사의 피에 담겨 있던 모든 마력이 성진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환골탈태를 마쳤습니다.]

[1단계 초월 완료.]

[모든 능력치의 상한이 상승합니다.]

[재료로 인한 추가 스탯이 상승합니다.]

[마력 +1,303,765]

[초월 단계가 부족하여 해당 능력치가 1%만 적용됩니다.]

마력 스탯이 백만 넘게 올랐다.

레전더리 아이템인 저주받은 사신의 대낫에 붙어 있던 마력 옵션이 +155였던 걸 생각하면 압도적인 수치였다.

1%만 해도 일만 이상.

이 정도만 해도 성진 하나가 가진 마력이 지구상의 모든 플레이어들을 합친 것보다 많으리라.

“이거라면 마력이 부족해서 망치를 소환하지 못하는 일은 없겠군.”

성좌들의 이목을 생각하면 시도 때도 없이 꺼내 쓸 수는 없겠으나, 필요할 때 꺼내지 못해 문제될 일은 없다는 뜻이었다.

“이걸로 고비 하나는 넘긴 셈이네요. 충분히 힘을 회복하기 전에 성좌와 마주쳤으면 위험했을 텐데.”

“이미 한번 마주치긴 했다. 저쪽이 내 존재를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어떻게든 망치를 부를 수 있게 된 이후라서 기습이 먹혀들었지만.”

성진이 30층에서 불과 광채의 성좌를 몰아냈던 것은 어디까지나 방심하고 있던 적을 향한 일방적인 기습이었기 때문.

그러나 충분한 마력을 갖춘 지금이라면 정면승부도 가능하리라.

물론 그랬다간 탑이 작살나서 천상의 좌표는 얻을 수 없게 될 테니 들키는 건 피해야겠지만.

그러는 사이 성진의 발밑에 마법진이 펼쳐졌다.

“소환진?”

“천사를 찾았나 보군.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그 직후, 성진은 수천 킬로미터를 뛰어넘어 뉴욕 한복판에 나타났다.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는 대도시의 풍경.

성진은 뉴욕 상공에 떠 있는 적룡장군의 손 위에 소환되었다.

[특이점. 네 요구대로 다른 인간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천사의 영혼을 찾아 그 모든 것들을 일일이 검사하던 용들은 일주일은커녕 3일 만에 산달폰을 찾아냈다.

“그래. ‘건드리진’ 않았군.”

고온 고압으로 플라즈마화한 불꽃을 전신에 두른 거룡.

그런 존재가 뉴욕 상공에 갑자기 튀어나왔으니 당연히 지상은 난리가 났다.

“미친 저게 뭐야!”

“도망쳐!”

“피하세요!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세계적인 대도시답게 대량의 헌터를 보유한 뉴욕 시는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이미 영국에서 용들이 쏟아져 나온 사건 덕분에 준비는 만전이었다.

적룡장군은 인류가 준비한다고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폐하처럼 말하지 마라. 좀 소름 돋으니까.]

성진은 그렇게 말하곤 적룡장군의 손 위에서 뛰어내렸다.

낙하산 없는 스카이다이빙.

시원한 바람이 전신을 휘감아왔다.

성진은 중력에 몸을 맡기고 떨어져 내리며 인파 속에 숨어 있는 산달폰을 정확히 바라보았다.

‘전투형은 아닌가.’

케루빔은 성좌의 혈족이라는 이유로 두 번째 위계를 차지한 고위천사들.

심지어 그마저도 위로는 4대 천사뿐이라 사실상 최고위 천사였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전투에 걸맞은 것은 아니었다.

성진은 망치를 꺼내드는 대신 황금룬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강화했다.

툭!

지면에 발이 닿은 순간 육체가 소리 없이 가속한다.

용왕파천무의 묘리를 담은 보법은 고속이동에도 주변에 굉음은커녕 산들바람조차 일으키지 않았다.

어린 소녀의 모습.

순식간에 산달폰의 눈앞에 도달한 성진은 우악스럽게 그 목을 잡아채려 했다.

하지만,

휙!

성진의 손은 허공을 훑었고, 그사이 산달폰은 저 멀리 도망가 있었다.

‘공간이동?’

성진의 시도는 완벽했다.

그게 빗나갔다는 것은 상대가 사용한 수법이 틀을 벗어나 있다는 뜻.

즉, 권능스킬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식의 권능을 내려주는 성좌는…….’

생각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몸은 추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 줄기 질풍이 되어 빌딩 숲속을 내달린다.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권능스킬로 공간을 도약하는 것보다 빠를 순 없었다.

‘하지만 공간이동을 행하는 상대의 반응속도보다 빨라질 수는 있지.’

몰아넣은 상대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순간, 성진은 가려던 방향을 돌려 다다음 이동지점을 선점했다.

-커헉!

“일단 한 대.”

때린 뒤에는 미련 없이 다음 이동지점으로 나아간다.

어차피 후속타를 넣고 있을 시간은 없다.

‘용들의 눈을 피해 숨어 있을 수 있고, 이처럼 연속된 공간이동이 가능한 권능은 하나뿐이다.’

참수와 토끼의 성좌.

거인들의 목을 물어뜯었던 그 성좌의 권능스킬인 토끼굴이라면 이 모든 것이 설명된다.

우우우웅!

또다시 나타난 곳에 성진이 먼저 와 있자 산달폰은 뉴욕 상공에 파멸의 오브를 소환했다.

천사의 파괴광선을 미러볼처럼 발산하는 마법.

이것이 수백 개씩 뿌려졌으니 발사되는 순간 뉴욕은 통째로 갈려 나가리라.

성진과 적룡장군이 주변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을 보고 시도한 인질극.

“허튼 수작을.”

번쩍!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빛이 번쩍였다.

형성된 오브가 파괴광선을 뿜어내기 직전, 찰나의 순간에 검강을 발현한 성진이 수백 개의 오브를 일격에 베어냈다.

그러나 성진이라도 그 틈을 타 산달폰이 장거리 공간이동으로 도망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위치가 감지되지 않는다. 단번에 100km 이상 이동했나.’

지금의 초월단계로는 그 이상의 거리를 감지할 수 없었다.

대신 그게 아니더라도 추적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어디로 갔지?”

[행성 반대편이다. 이 행성은 격리된 상태라 밖으로 도망치진 못했군.]

성진은 그 말에 추적을 포기한 것처럼 자세를 풀었다.

[쫓지 않는 건가?]

“굳이 술래잡기를 해줄 필요는 없겠지. 놀러 온 것도 아니니까.”

성진이 멈춰 서자 곧 뉴욕의 헌터들이 그를 포위했다.

“드래곤 피어.”

[건드리지 말라고 해놓고?]

“최대한 약하게.”

적룡장군이 피어를 내뿜자 성진을 포위한 헌터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성진은 거대한 압력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 한 헌터가 들고 있던 검을 빌렸다.

“방향은?”

[저 쪽이다만. 술래잡기를 할 생각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쫓아가진 않고.”

산달폰이 도망친 방향을 확인한 성진은 자세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검강이 솟구쳤다.

“여기서 베려고.”

바다로 보일 지경이었던 천사의 피를 모두 흡수하고 환골탈태를 이룬 상태.

지금의 성진이 다룰 수 있는 마력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한 수준이었다.

“지구 반대편이라고 했으니 거리는 굳이 물어볼 필요 없겠지.”

검에서 솟구친 검강은 어느 선에서 멈추지 않고, 하늘을 뚫고 끝없이 뿜어졌다.

검기성강.

신성광휘를 닮은 이 검기는 단순히 기존 검기의 강화판인 것만은 아니었다.

검강은 단순한 마력응집체인 검기로는 벨 수 없는 것들도 벨 수 있었다.

그리고 벨 수 없는 것들을 베듯, 베지 않아야 할 것은 그냥 통과할 수도 있었다.

검의 극의에 이른 자가 사용하는 검강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베는 것도 가능하다.

“천사의 육체만을 벤다.”

그와 동시에 검이 바닥을 가르고 지나갔다.

서걱!

일만 삼천 킬로미터.

지구의 지름보다도 더 길게 치솟은 검강이 한순간에 지구를 가르고 지나갔다.

검강은 모든 물질을 통과하고 천사의 육체만을 파괴했다.

[검강을 사용하는 자들은 몇 번 봤지만 이런 짓거리가 가능한 인간은 또 처음이군.]

제자리에서 행성 반대편에 있는 적을 베어 버리는 신기.

마법 없이 오로지 무(武)를 통해 이뤄낸 신기는 적룡장군이 보기에도 놀라운 것이었다.

마력이 부족했더라도 검강이 더 얇아졌을 뿐, 충분히 행성 반대편까지 닿았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일만 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지점에서도 성진의 제어력이 완벽하게 작용한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제 천사가 도망친 곳으로 가볼까. 놈의 영혼도 회수해야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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