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현실에 있는 용들의 무덤은 우주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 중 하나였다.
사룡왕의 가장 큰 보물인 그녀의 군단이 잠든 땅.
당연하게도 용의 무덤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장소에 만들어졌고, 그곳의 위치를 아는 건 전 우주에 오직 사룡왕과 주성진 두 사람 뿐이었다.
물론 현실이라면 말이다.
“……아무리 봐도 저것들 언데드가 아닌데?”
살아 있는 용.
이미 현실에서는 멸종한 그 존재들은 하늘에서 두 사람을 발견하고 방향을 틀어 그들에게 날아왔다.
“도망갈까?”
“자신 있어요?”
“아니.”
마법으로 비행하는 용들은 타이탄의 비행장비가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그만한 거체로 고속이동을 하면서도 주위에 초음속의 광풍은커녕 미풍 하나 불지 않는 것이, 단순한 가속마법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온갖 고위마법이 떡칠되었을 게 분명한 기동.
두 다리로 달려서 도망칠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용들이 우르르 착지하는 가운데 편대의 가장 선두에 있던 대장 용이 남태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가야 왜 여기 혼자 있니? 길을 잃었니?]
“예?”
[그 웨어울프는 네 애완동물이니? 어머, 쪼그만 손으로 서로 꼭 잡고 있는 것 좀 봐. 너무 귀엽다.]
“예??”
[언니 좀 비켜봐!]
[얘가 진짜.]
[와 진짜 애기잖아? 위에서 보고 두 눈을 의심했는데, 어떤 미친놈이 애를 여기다 내버려 두고 간 거야?]
“예???”
상상도 못 한 반응에 정신이 아득해지던 남태수는 겨우 잊고 있던 특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용의 혈족]
용과 같은 특성을 얻습니다.
사룡왕과 계약했을 때 얻은 특성.
놀랍게도 용들은 남태수를 30살배기 아기 용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응애.”
딸꾹질 대신 옹알이가 튀어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카르마를 볼 수 있게 된 남태수가 보기에 눈앞의 용들은 하나하나가 90층에서 봤던 성좌보다 강력해 보였으니까.
물론 스테이지에서 재현된 NPC일 뿐이었던 90층 성좌와, 30층에서 보았던 실제 불과 광채의 성좌는 하늘과 땅 차이였기에 그걸 직접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 용들은 몰려다니니까 다 합치면 진짜 성좌와도 싸울 수 있는 전력이 아닐까?’
4마리씩 한 편대로 4개의 편대.
즉, 이 드래곤 비행대대는 무려 16마리의 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쯤 되면 성좌는 몰라도 지구 정도는 점심 먹고 정복에 나서도 저녁시간 전에 끝낼 수 있는 전력이 아닐까?
남태수가 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꼬옥!
용의 피를 가진 남태수가 그럴진대 다나는 어떻겠는가?
그녀는 용들이 착지한 그 순간부터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드래곤 피어.
용들의 카르마가 내뿜는 그 특유의 프레셔는 초월을 이루지 못한 존재에겐 절대적인 것이었다.
신성은 못 되어도 최소한 가장 낮은 단계의 초월은 이루어야 저항이 가능한 게 바로 드래곤 피어였다.
다나에겐 아직 신화급은커녕 전설급 카르마도 없었으므로 이에 저항할 수 없었다.
[어머, 임무 중이라 계속 투기를 발산하고 있었네. 아가야, 강아지한테 미안하다고 전해주렴.]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기지로 데려가자. 여긴 애한테 너무 위험해.]
그리하여 남태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용들에게 보호당해 그들의 본거지로 옮겨졌다.
[다나: 아재 우리 괜찮은 거 맞지?]
[남태수:…… 아마?]
용들의 손에 들려 하늘을 날아가는 동안 두 사람은 귓속말 시스템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용들은 작고 소중한 금쪽이라도 옮기듯 그들을 안고 있었으나 방심할 순 없었다.
혹시라도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무언가 용들의 심기를 거스르기라도 하면 그들은 끝장.
용들이 아무리 호의적이라고 해도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저 아래로 들어갈 거란다.]
그들을 안은 적룡이 친절하게 설명해준 곳에는 붉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 아니 늪인가?”
적룡이 가리킨 바다에는 진한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탁하다 못해 걸쭉해 보이는 모습이 바다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규모는 바다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저건 여기서 우리가 쓰러뜨린 천사들의 피란다.]
“예?”
[천사들의 피에는 진한 마력이 담겨 있어서 천연 위장막이 되어주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천연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진 않았으나 남태수는 그에 항의할 새도 없이 입을 다물어야 했다.
[잠수할 거니 꽉 잡고 있으렴.]
피바다에 돌입한 순간 고속충돌에 의한 충격이 보호막을 덮쳤다.
남태수는 무언가가 피바닷속을 헤엄치는 모습을 보았다.
“상어……?”
[살아남은 토착생물이 천사의 피에 담긴 마력으로 변이한 모양이구나.]
상어를 닮은 괴생물체들이 하나도 아니고 떼를 지어 피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일견 감탄이 나오는 장면이었으나 주변에 가득한 피 냄새가 남태수의 정신을 흐트러뜨렸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피바다의 밑바닥, 천사의 시체로 이루어진 지층을 뚫고 지하에 도착했다.
[이곳이 바로 우리의 대둥지, 적룡신전이란다.]
대장은 비행대를 해산시키고 남태수, 다나와 함께 대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임무 복귀 신고야.]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오다가 미아가 되어 있는 걸 주웠어.]
[진짜요? 완전 어린애인데 가엽게도.]
거대한 용들이 우글거리는 그 광경은 보는 사람의 정신이 아득해지는 모습이었다.
대장은 사람들을 지나쳐 계속해서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안쪽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한 소년과 마주했다.
‘사람? 아니 사람은 아닌데…….’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 그리고 살아 있는 용들과는 반대되는 언데드의 기척.
무엇보다도 상반신 탈의 상태로 반바지만 걸치고 있는 소년에게선 은은한 후광이 비치고 있었다.
신성광휘.
이는 눈앞의 소년이 아예 카르마를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는 뜻이었다.
[비행대장 루프레시아. 적룡장군께 복귀를 신고합니다.]
“그래. 수고했다. 그런데 나가서 신기한 걸 주워왔구나?”
적룡장군이라 불린 소년은 용왕을 묘사한 석상 위에서 남태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냄새는 아무리 봐도 우리 폐하의 냄새인데. 너 혹시 폐하의 사생아냐?”
적룡장군은 석상 위에서 뛰어내려 남태수에게 다가왔다.
그는 남태수의 어깨를 짚고 이리저리 얼굴을 들이대며 킁킁대기 시작했다.
남태수는 당황해서 바짝 쪼는 한편, 상태창의 갱신 메시지를 보고 황급히 스킬창을 띄웠다.
그곳에는 사룡왕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뭐냐? 네놈이 신성광휘에 접촉했다는 알람이 울려서 헐레벌떡 달려왔더니 왜 여의 사천왕이 눈앞에 있는 게냐? 혹시 어스름에 들어온 것이냐?]
용들에게 잡혀온 와중에 사룡왕의 메시지를 보게 되자 남태수는 정말로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매달릴 뻔했다.
가까스로 진정한 남태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룡장군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진짜 폐하의 사생아야?”
[…… 이놈에게 여의 피를 준 건 사실이지만 어떻게 사천왕이라는 놈이 저런 개떡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지?]
그 반응에 뜬금없이 보고 있던 사룡왕이 빡쳤으나, 그녀는 빡친 것과 별개로 남태수의 경거망동부터 막았다.
[기분은 이상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계속 여의 자식이라고 밀어붙이거라. 성좌의 힘을 받아먹은 플레이어라는 게 들키면 그대로 납치 감금되어 실험대에 올라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방금 고개를 끄덕이다가 적룡장군의 오해를 산 남태수는 대답 없이 그 말을 확인했다.
[여의 자식이라고 한다면 일단 용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게다. 어스름에서 이상한 걸 만나 객사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하물며 사천왕인 적룡장군과 함께라면야]
남태수는 사천왕이라는 게 뭔지 묻고 싶었으나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사룡왕은 그런 남태수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설명을 계속했다.
[사천왕은 죽은 용들 중, 여의 신체를 떼어 만들어낸 4명의 장군을 말하느니라. 적룡장군의 경우에는 여의 심장을 받았지.]
언데드를 만들 때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들어갔다.
어떤 영혼을 넣을 것인가?
어떤 시체로 몸을 만들어줄 것인가?
가장 좋은 것은 본인의 시체에 본인의 영혼을 넣는 것이지만, 사룡왕과 싸운 천사들이 기껏 잡은 적의 시체를 온전히 남겨줄 리가 없었다.
[여는 이미 리치가 되어 육체에 구애받지 않는 몸. 용왕의 육체라는 진귀한 재료를 썩혀둘 이유는 없었느니라.]
‘그래서 아예 자신의 몸을 바탕으로 언데드를 만들었다고요?’
[생전의 뼈를 이용해 여가 사용할 리치의 몸을 만들고, 심장, 눈, 뇌, 역린으로 사천왕들을 되살렸느니라. 덕분에 여는 다른 왕들이 죽어 나자빠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천상과 싸울 수 있었지.]
사룡왕과 사천왕의 몸은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때문에 다섯 용 중 하나만 살아 있어도 나머지 모두를 다시 언데드로 부활시킬 수 있었다.
‘미친, 무슨 호크룩스야?’
그 이상이었다.
이쪽은 하나만 살아 있어도 나머지 모두를 계속 복구할 수 있었으니까.
적룡장군에게 신성광휘가 깃든 것도 그 때문.
덕분에 사룡군단은 죽어도 다시 살아나 끊임없이 싸울 수 있었으니, 천사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악몽이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혹시라도 어스름의 보상으로 여의 심장을 받아올 수 있다면 네놈을 지구 황제로 삼아줘도 괜찮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힘들겠지.]
‘왜요? 리젤로테가 자신이 NPC라는 걸 알고 협조해준 것처럼 적룡장군한테도 자신이 어스름의 존재인 걸 알리고 현실을 도우라고 할 순 없나요?’
[어스름이 아무리 현실의 꿈과 같은 세상이라 해도 이곳에 사는 이들에겐 어스름이 바로 고향이자 현실. 어느 정도의 도움이라면 모를까, 어스름에서도 적룡장군의 존재는 중요한 것이니 그 심장을 함부로 내줄 수는 없을 게다.]
현실에서 귀중한 것일수록 이곳에서도 귀중하다.
어스름에서 원하는 것을 찾는 것도 일이었지만, 그것을 들고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스름에서 나온 보물들이 현실에 마구잡이로 풀리지 않은 것도 이 때문.
들어올 수 있는 경로도 한정적인데, 뭔가 귀중한 것을 가지고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스름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것도 다 능력인 게야.]
그런 의미에서 사실 성진이나 사룡왕이나 남태수에게는 별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다.
남태수는 이미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도 다 소화하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탑에서는 층을 되돌아갈 수 없으니 100층에 온 김에 함께 어스름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가 뭔가 중요한 걸 얻을 거라 생각하긴 힘들었다.
‘그럼 다나는?’
문제는 다나까지 남태수의 카르마에 휘말려 이런 곳에 떨어졌다는 점.
남태수가 가진 신화급 카르마는 그의 능력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설마 나 때문에 조진 건 아니겠지?’
“왜 말이 없어? 혹시 내가 건드리면 안 되는 부분을 건드렸나?”
한편 적룡장군은 남태수가 사룡왕과 대화하느라 입을 꾹 다물고 있자 혼자서 진땀을 빼기 시작했다.
비행대장은 그런 와중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부모 이야기는 좀 그렇긴 하지요. 너무하셨습니다 장군님. 안 그래도 버려져 있던 아인데.]
“앗, 아앗. 내가 그러려던 건 아니고…….”
덕분에 잔뜩 쫄아 있던 남태수는 긴장을 풀고 잔머리를 굴릴 수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이 상황. 어쩐지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용들이 남태수를 아기용으로 보며 죄다 둥가 둥가 해주고 있는 상황.
빅데이터를 이용해 현 상황에서 가장 유효한 대응법을 도출해낸 남태수는, 곧바로 그것을 시행했다.
“응애, 나 아기 태수. 엄마 보고 싶어 응애.”
“폐하를 만나러 가는 건 성좌 놈들한테 꼬리를 밟히지 않도록 사천왕인 나라도 정해진 날짜에만 가능한데…….”
“응애애애애애!!!”
“우, 울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까짓것 이쪽 전역의 천사들을 다 쓸어 버리면 복귀해도 되겠지!”
적룡장군은 30세 응애 드래곤을 눈앞에 두고 허둥지둥했다.
다나는 차마 아무 말도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 후.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니야. 용의 피도 없이 여길 끌려온 네가 더 고생했지.”
사태가 진정된 후, 신전 내에 방을 받아 둘만 남게 된 남태수와 다나는 차마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딴 곳을 바라보며 대화했다.
“제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런 짓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 이야기는 좀 그만하면 안 될까? 그보다 내가 무슨 인간의 존엄이라도 판 것처럼 말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
“그, 그럼 아까부터 제 눈은 왜 못 마주치시는데요!”
“너, 너도 내 얼굴을 못 보고 있으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계속 이야기해봐야 피차 아까의 광경이 떠올라 슬퍼지기만 할 뿐이었기에 두 사람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결국 한참이 지나 먼저 입을 연 것은 남태수였다.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현실과 다른 역사가 진행된 세계라니. 무슨 평행세계 IF물 같네.”
어스름은 현실의 또 다른 가능성이기도 했다.
“근데 그럼 성진 씨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그 물음에 답한 것은 사룡왕이었다.
[여를 만나고 있겠지.]
“예? 현실에 있을 폐하를 어떻게요?”
[여 말고, 어스름의 사룡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