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이단심문관은 획득한 검의 형태와 옵션을 심판의 검 스킬에 등록해놓고 자유롭게 불러올 수 있었다.
덕분에 파티가 획득한 검은 모두 다나의 몫이 되었는데, 그중 실제로 쓰는 것은 손에 익은 몇 개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성진은 개중 낮은 등급의 검을 한 움큼 쥐어들고 성채 위로 뿌렸다.
지하성채의 천장에서 낙하하며 뿌린 검들은 아래로 떨어지며 거대화했다.
상공에 거검이 나타난 즉시 성채에서는 각종 화기가 불을 뿜으며 요격에 나섰다.
“으아아아악! 성진 씨 어떻게 좀 해봐요!”
“시끄럽다. 이미 손은 써뒀으니 잠자코 보고 있어라.”
낙하산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남태수는 비명을 질렀다.
보다 못한 다나는 그 비명에 위치를 들킬까 봐 남태수를 옆구리에 끼고 그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선 침착하게 심판의 검을 방패 삼아 충격에 대비했다.
발칸포와 로켓세례를 얻어맞은 검들은 지상에 닿기도 전에 대부분 바스러졌다.
하지만,
“이러려고 강화 없이 거대화만 했지.”
거대한 검들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파편을 휘날리자 고작해야 사람 3명이 숨기에는 충분한 엄폐물이 만들어졌다.
난쟁이의 방공망은 강철 덩어리들 사이에 숨은 성진을 잡아내지 못했다.
쿠르르릉!
파편에 숨어 지상에 착지한 성진은 곧바로 성채의 벽면을 부수고 내부로 진입했다.
“빠르게 따라붙어라. 바깥에 멍하니 있다간 순식간에 납작해질 테니.”
바깥에서는 계속해서 거검의 파편이 떨어지고 있었으므로 수백 톤의 강철 덩어리에 깔리고 싶지 않다면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내부에는 이전과 같이 무인병기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적수는 아니었다.
“스테이지의 경계를 보아하니 이쪽 길은 사용할 수 없겠군.”
현실의 에렉투스를 잘 아는 성진은 내부의 구조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이었잖아요. 이것도 그냥 아래층으로 계속 내려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시설이다. 마구잡이로 다녀서 심장부까지 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성채 내부는 의도적으로 동선을 꼬아놓은 구조였으나, 그래 봐야 평소엔 자기들이 써야 하는 시설이었다.
당연히 길을 알고만 있으면 쉽게 질러갈 수 있는 구간도 많다.
“이쪽이다.”
“여기로 들어가라고요?”
성진이 가리킨 곳은 난쟁이 사이즈에 맞게 만들어진 자그마한 통로였다.
인간이 보기에는 환풍구 정도의 사이즈라 남태수가 저 통로로 들어가려면 영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한참 기어야 하리라.
“다른 종족의 시설인데 그럼 에스컬레이터라도 바랬나?”
“그건 그렇긴 한데요. 제가 먼저 들어가라고요?”
어두컴컴한 곳에 머리를 들이밀고 싶지 않은 남태수는 슬쩍 뒤로 빠지려고 했으나 다나가 그의 뒤를 막아섰다.
“그럼 제 엉덩이라도 보면서 기어가시려고요?”
“아니, 성진 씨가 앞장서고 내가 두 번째여도…….”
“나는 너희들이 넘어가고 나면 설비를 조작해 격벽을 닫고 넘어갈 거다. 너희가 먼저 가라.”
다나가 여전히 눈을 부라리고 있었기에 남태수는 잠자코 통로로 기어들어 갔다.
“이거 어째 갈수록 좁아지는 느낌인데.”
느낌만이 아니었다.
어둠에 가려 그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통로는 실제로 좁아지고 있었다.
“자, 잠깐만요! 더 못 가겠는데?”
“그만 징징대고 빨리빨리 움직여요. 아무리 난쟁이 통로라도 사람이 못 지나가진 않을 텐데.”
“아니 진짜로…….”
뒤에서 들려오는 채근에 어찌어찌 주변을 더듬어가며 더 나아간 남태수는 결국 벽에 끼고 말았다.
“꼈는데?”
“아 쫌 장난치지 말고.”
“아니 진짜 안 빠져!”
잠시 후, 한숨 소리와 함께 검기가 벽을 가르고 지나갔다.
벽을 통째로 잘라낸 다나는 잘라낸 조각에 끼어 있는 남태수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좁으면 자르고 나오면 되잖아요? 낫도 있으면서.”
“이거 잘리는 거였어? 아니 그보다 나 좀 꺼내주고 가!”
다나는 몸이 끼어 옴짝달싹 못 하는 남태수를 버려두고 앞으로 나아갔다.
구획을 넘어온 덕에 또 새로운 무인병기가 밀려오고 있었으므로 그를 붙잡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뒤이어 넘어온 성진 또한 끼어 있는 남태수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뭐하는 거냐.”
“보고만 있지 말고 저 좀 꺼내주실래요? 슬슬 아파오는데…….”
“내가 잘못 건드렸다간 네놈 몸통째로 구겨지게 생겼군. 그보다 살아 있는 그림자를 통해 빠져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
“천재세요?”
온몸을 비틀며 버둥거리고 있던 남태수는 그제야 살아 있는 그림자를 소환해 그 안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 끼인 상태를 탈출했다.
그러는 사이 다나는 무인병기를 전부 침묵시켰다.
“마력의 흐름을 읽고 회로에 디스펠을 꽂아 넣기만 하면 되니까 편하네요.”
“스테이지 레벨에 맞게 약화되어 있으니까. 지금의 네 실력이라면 어렵지 않은 적이겠지.”
반면 남태수는 시체가 나오지 않는 적이라는 이유로 내내 다나의 엉덩이 뒤에 숨어 있었다.
“우리 다나 화이팅!”
“사령술사라도 공격마법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내 능력으로는 언데드 소환술만 연습해도 벅차거든. 하하하…….”
“학업 성취도를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다만, 네가 열심히 마법을 배우는 이유가 학술적인 이유는 아니라는 걸 명심해라.”
마법이 꼭 싸우기 위한 기술은 아니었으나, 남태수가 배우는 마법은 싸움을 위한 것이 맞았다.
아무리 기술을 단련해도 정작 싸움에 써먹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반쪽짜리일 뿐.
“임시일 뿐이라도 사도직을 달고 죽으면 사룡왕의 노예가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 그런 게 있었어요?? 저는 금시초문인데요???”
“걱정 마라. 네가 다윈상이라도 탈 생각이 아닌 이상 네가 죽을 즈음에는 이미 이겼던가, 아니면 다 같이 망해 있을 테니까.”
남태수가 성진과 한배를 탄 이상, 한쪽이 실패하면 둘 다 조지는 건 확정이었다.
물론 성진이 실패하면 어차피 모두 다 골로 갈 테니 걱정할 것도 없었지만.
“그나저나 여기는 아까 있던 곳이랑 다르네요.”
다나는 상황이 종료되자 주변부터 살폈다.
성채에서도 안쪽 구획으로 넘어온 그들이 도착한 곳은 군사 요새라기보다는 무슨 전시회관처럼 화려하게 꾸며진 곳이었다.
화려한 벽화가 그려진 통로와 천장에 양각된 조각들.
또한 사방에 갑옷이니, 도자기니 하는 예술품들이 늘어서 있었다.
“거주구획까지 들어온 모양이군.”
실제 지하대던전은 이보다 거대했으나, 탑의 스테이지는 그 구조를 상당히 압축해둔 상태였다.
“난쟁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를 짓는 김에 아예 자신들도 이곳으로 이주했다. 애초에 이만한 요새를 관리하고 운용하려면 수많은 이들이 상주할 필요도 있었고.”
덕분에 이곳에는 온갖 차원의 난쟁이들이 들고 온 보물들이 가득했다.
“즉, 주인 없는 물건들이니 마음대로 주워가도 된다는 거지.”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해 그냥 지나치게 되는 구간.
성진은 그곳에서 노다지를 발굴해냈다.
“챙겨.”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남태수는 돈 될 만한 물건이라면 뭐든지 일단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단순 장식품조차 보존용 마법이 덕지덕지 걸려 있잖아? 부자들한테 관상용으로 팔든, 기업에 연구용으로 팔든 억 단위는 확정……!”
반면 다나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당장 쓸 만한 것부터 챙겼다.
“무기, 방어구, 마법 장신구, 무기, 방어구…….”
“이 넓은 곳을 다 돌아보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나뉘어서 움직이지.”
남태수도 천사, 사도 같은 이들이랑 마주쳤을 때 답이 없는 거지 일반 스테이지는 아직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그는 성진의 의견대로 일행과 갈라져서 보물을 챙겼다.
“최대한 테트리스를 잘해서 인벤토리를 꽉꽉 채워야…….”
마법 걸린 브로치라도 하나 더 챙기면 통장잔고에 찍힐 금액이 달라지리라.
그만한 액수는 지금이 아니라면 남태수의 인생에서 다시는 만져볼 일 없는 금액일 것이 분명했다.
[눈이 돌아간 것을 보니 완전히 돈독이 올랐구나!]
“왜요? 이제 사도니까 체통이라도 지키라고요?”
[아니? 네가 아공간 마법을 못 배워서 이걸 다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 천추의 한이니라!]
탐욕의 상징인 드래곤.
개중에서도 역사상 가장 탐욕적으로 마법과 지식을 추구한 이 용왕은 용족의 수명조차 부족하여 최초의 언데드가 되었다.
사룡왕의 욕심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여의 수집품 중에는 파괴된 에렉투스도 있느니라. 비록 중요한 내용물은 천사들이 다 털어가 40%밖에 재현하지 못했지만, 역사상 가장 강력한 행성요새라면 수집할 가치가 있지.]
“…… 행성을 수집해요?”
[신성존재가 흔한 건 아니지. 용이라면 신성존재가 없는 세상에서는 왕이고. 때문에 용족은 원래 행성 하나씩은 소유하고 있었느니라.]
그리고 사룡왕은 살아남은 유일한 용족으로서 용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물려받았다.
우주에서 제일부자.
‘그냥 이 양반의 사도가 되는 것도 괜찮을지도?’
남태수의 귀가 웨어울프처럼 늑대의 것이었다면 지금 분명 사정없이 팔랑거렸으리라.
‘아, 아냐. 이 문제는 되돌릴 수 없다고 했으니 신중히 생각해야지.’
순간 혹했으나, 남태수는 빠르게 주제를 파악하고 위험을 회피했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래?”
아이템을 비교하고 인벤토리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팔린 남태수는 어느새 어딘지 모를 위치에 덩그러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표지판도 없는데 이거 조진 거 아닌가……?”
-상관없지 않습니까? 이대로 마스터가 미아가 된다고 해도 계약자님이나 다나 양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같이 클리어될 텐데요.
“그거야 그런데 아이템 챙기느라 나 인벤토리에 있던 먹을 거나 생필품까지 다 버렸단 말이야.”
물론 이대로 인벤토리를 꽉 채운 상태로 탑을 오를 생각은 아니었다.
100층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을 만나면 일부 처분하여 공간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근데 이러면 당장 굶는 게 문젠데?”
-정말이지 매번 참신한 방법으로 한심하시군요, 마스터. 그냥 이참에 리치가 되시는 건 어떻습니까? 육체에서 해방되면 생명활동 따위를 위해 귀중한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답니다.
“싫거든? 언데드는 죽어도 안 할 거거든?”
남태수는 그렇게 말하다가 생각해보니 아니라는 듯 말을 바꿨다.
“아닌가? 그럼 죽을 때쯤에 고민할 거거든?”
죽을 때쯤 되면 좀 더 살고 싶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전쟁 중에 수명을 다 채우고 죽는 건 쉽지 않을 거라 봅니다만…….
“혹시 알아? 나중에 연애라도 하려고 봤더니 언데드인 게 문제가 될지?”
-과연 마스터가 언데드인 게 문제일까요?
“어허.”
일단 그가 지나온 길에는 취사선택 후 버린 아이템들이 널브러져 있었으므로 여차하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순 있을 것 같았다.
“정 안 되면 커뮤니티로 다나 부르면 되니까 좀 더 돌아볼까.”
그렇게 거주구역을 탐험하던 남태수는 이상한 문을 발견했다.
“뭐지 이건?”
-화려하게 꾸며진 이곳에서 유난히 이 문만 투박하고 실용적으로 생겼군요. 다른 시설과 이어지는 문이 아니겠습니까?
“건드리지 않는 게 좋으려나? 애초에 내가 열 수 있어 보이지도 않고.”
남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난쟁이 요새 내부의 시설답지 않게 거대하게 생긴 이 문은 재질을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크기를 보니 물자를 옮기기 위한 화물용이 아닌가 하며 손을 떼려는 순간.
[식별번호 ZGMF-X10A 코어 유닛 확인.]
“엉?”
[시스템 온라인. 타이탄 격납고를 개방합니다.]
거대한 진동과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남태수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문이 완전히 개방된 순간.
남태수는 격납고라 불린 내부를 확인하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수호거상?”
격납고를 가득 메운 것은 그가 1층에서 보았던 수호거상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