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남태수가 완전히 타의에 의해 주경야독을 실천하는 동안 다나 또한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성진은 그녀에게 명확한 예시를 보여주었고, 다나의 재능은 정답만을 보고도 과정을 유추해내기에 충분했다.
다만 다나에게는 한 가지, 그녀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요소가 존재했다.
“또 보름달이 뜨면 어쩌죠? 이런 약점을 달고 있는 상태로는 한계가 있어요.”
웨어울프의 광증.
누군가에게는 축복에 가까운 이 능력도, 다나에게는 저주나 다름없는 제약이었다.
“그 피의 저주는 침묵과 광기의 성좌가 내린 신성마법의 결과물이다. 단순히 검에 대한 재능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이 문제는 성진에게도 꽤나 중요한 것이었다.
“침묵과 광기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 성좌가 네 몸을 화신체로 삼아 이곳에 강림하겠지.”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허튼 생각 하지 마라.”
사도라고 해도 성좌의 모든 힘을 담아낼 수는 없었다.
그러한 사도조차 되지 못한, 그에 준하는 존재라면?
더더욱 그릇이 되기에는 부족하리라.
“이미 지구상에는 무수한 웨어울프들이 바글거리고 있다. 너 하나 사라진다고 침묵과 광기를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뜻이지.”
하지만 수십 수백만. 어쩌면 일반 클랜원까지 합쳐 수천만에 달할지도 모르는 숫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수한 숫자의 생명을 희생시키더라도 한 순간.
단 한 순간이라도 이 땅에 성좌가 강림한다면 이 모든 줄타기는 끝장나리라.
“게다가 웨어울프의 광증을 이겨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어떻게요?”
“결국 그 또한 마법의 일종이니, 해제할 방법이야 차고 넘치지.”
1. 다나 또한 신성존재가 되어 동급의 힘으로 저주에서 벗어난다.
“그게 됐으면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너라면 충분한 시간과 환경이 있을 경우 가능할 것도 같다만. 그럴 여유가 없긴 하지.”
2. 본인이 할 수 없다면 또 다른 신성존재에게서 힘을 빌린다.
“하지만 지구에는 신성존재가 없다. 그렇다고 성좌들이 빤히 보고 있을 텐데 밖에서 불러올 수도 없고.”
사룡왕이 자신의 의식을 지구상에 투영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그조차 한계가 명확했다.
따라서 이 또한 탑이 무너지기 전까진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다.”
3. 신성존재가 안 된다면 신성무구를 이용한다.
“그…… 아저씨가 쓰는 망치 같은 거요?”
영혼의 격이 부족한 다나는 청동망치의 실체를 볼 수 없었다.
덕분에 망치라고 부르기 어색하긴 했지만 일단 그게 뭔지는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 어스름의 성녀가 진짜로 이 탑에 있다면 네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겠지.”
“성녀라면 사람인 거 아니에요? 신성무구를 이용한다면서요.”
“사람이었지. 1만 년 전에는.”
어스름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스름의 특수성을 알 필요가 있었다.
“어스름은 신성존재 중에서도 특이한 존재다. 정확히는 신성존재보단 신성현상에 가깝지.”
“어스름 수도회 자체는 들어본 적 있는데요. 힘을 숭상하는 종교 같은 거라고.”
“그 말대로다. 어스름 수도회는 어스름이라는 신성현상을 숭배하는 이들이고, 그 특성상 강해질수록 어스름에 가까워진다하여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 교리이자 미덕이지.”
“어스름이 도대체 뭔데요?”
그에 대한 성진의 대답은 간단했다.
“꿈.”
“예?”
“어스름은 꿈속 세계이자, 세계의 꿈이다.”
그리고.
“어스름의 성녀는 현실과 어스름을 잇는 에고소드이지.”
* * *
[흐응, 계약자 녀석. 저 개과녀를 어스름에 집어넣어 볼 생각인가.]
한편 성진이 다나와 이야기하는 동안, 사룡왕 또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어스름이 뭔데요?”
[수많은 영혼들의 꿈이 만들어낸 일종의 가상세계이니라. 그보다 손이 멈췄지 않느냐. 뒤지기 싫으면 열심히 받아 적으면서 듣거라.]
남태수는 오늘도 여지없이 갈굼 당하면서 살고 있었다.
[자다가 꿈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 본 적 있느냐?]
“그런 기억은 없지만 그런 장면은 많이 봤죠. 영화나 드라마나.”
[아무튼 꿈속에서 몸을 움직이니 현실의 몸도 똑같이 움직이고 있는 경우는 네놈도 알 게다. 몽유병이든 잠꼬대든 뭐가 됐든 말이다.]
“그래서요?”
[그럼 꿈속에서 쓴 마법은 어떻게 되겠느냐?]
“…… 막 자다가 불같은 걸 내뿜나? 아니 잠깐만 저 사령술사인데 자는 도중에 사령술 발동하고 그러면 어떡해요? 이거 큰일 난 거 아냐?”
[네놈이 뭐 언령을 쓰겠느냐 무영창을 하겠느냐. 힘 빡 주고 집중해도 마법이 성공할까 말까 하는 놈이 그런 걸 왜 걱정하느냐?]
사룡왕은 남태수를 한심하다는 듯이 타박하곤 말을 이어갔다.
[마력을 다루고 있을 때를 생각해 보거라. 생각만으로 마력이 움직인다. 그것은 생각이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말이 아니겠느냐?]
일반인의 생각은 뇌 안에서 전기신호가 일어날 뿐이지만, 마법사의 생각은 마력을 불러 일으킨다.
[평소라면 마법사 자신이 알아서 마력을 조절하겠지. 애초에 의도치 않게 움직이는 마력은 미약해서 마법이 시전될 정도도 아니고. 하지만 꿈속에서라면 어떻겠느냐?]
사람은 잠꼬대로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아예 몽유병으로 거리를 배회하기도 한다.
그럼 마법사가 꿈을 꿀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어떻게 되는데요?”
[마법을 쓴다.]
“…… 방금 저한테는 못 쓸 거라면서요?”
[꿈속에서 불을 뿜는다고 현실에서 불이 뿜어지진 않느니라. 꿈속에서 쓴 마법은 그냥 꿈속에서만 나가.]
“그럼 그냥 꿈을 꾼 것뿐이잖아요. 마법을 쓴 게 아닌 것 같은데요.”
[하지만 마력은 소모된다.]
꿈속에서 마법을 쓰면 현실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실제로 마법이 사용되긴 한다는 뜻.
[참으로 골 때리는 일이지. 그럼 발동된 마법은 도대체 어디서 나가는 걸까?]
“그게 어스름이라는 건가요?”
[정답이니라. 어스름은 영혼들이 꿈속에서 만들어낸 공간이자, 현상이자, 꿈이니라.]
마법사만이 아니었다.
주술사도, 검사도.
마력이 아닌, 카르마나 다른 힘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영혼들이 꿈속에서 힘을 쓰고, 그렇게 조금씩 기여한 힘들이 모여 어스름을 이루었다.
그렇게 무수한 세월 동안 어스름에 쌓인 마력과 카르마는 그것을 신성의 영역에 올려놓았다.
[미약한 마력이라도 그만큼이나 모이면 엄청난 규모가 되지. 헌데 어스름은 신성존재의 꿈조차 먹어치운다.]
남태수도 꿈을 꾸고, 무르무르도 꿈을 꾸고, 사룡왕도 꿈을 꾼다.
그 모든 것들이 겹겹이 쌓인 어스름은 신성존재조차 어찌할 수 없는 축복이자 자연재해가 되었다.
[때문에 어스름 수녀회가 온갖 차원에 다 있는 것이니라. 꿈은 누구나 꾸니까.]
“그런 거면 신앙이 생길 만도 하네요.”
지구의 종교에도 꼭 인격을 지닌 신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덕분에 어스름 교단은 엄청나게 크지. 심지어 그 특성상 세력도 강하다.]
“세력은 왜요?”
[강해지면 어스름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게 되니 강해지는 것 자체가 교리로 정해진 미덕이거든. 덕분에 어스름 교단에는 강자가 많다.]
종족 단위로 천상과 싸운 건 8대 종족뿐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 세력들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어스름 교단은 개중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세력.
[네놈은 어스름의 증표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 그게 있다면 교단에서 엄청나게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니라.]
“예?”
[어쩌면 주지육림을 차려줄지도 모르지. 네놈은 여의 사도이기도 하지 않느냐. 교단은 강함을 숭배하는 만큼 강자도 숭상하니까.]
“진짜요?”
[사룡왕의 마법을 배운 자라고 하면 모두의 환영 속에서 평생 놀고먹는 것도 가능할 것이니라.]
사룡왕의 유혹에 남태수는 눈이 돌아갔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크헤헤, 그래. 그래야지 내 사도답지.]
사룡왕은 다 꺼져가는 남태수의 의욕에 불을 지펴놓곤 사악하게 웃었다.
남태수의 반응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던 무르무르는 그 모습을 보고 깊이 감명받았다.
-저거 개구라 아닌가?
어스름 교단이 강함을 숭배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들은 구도자처럼 자신의 강함을 갈고닦을 뿐, 남의 강함을 부러워하거나 숭배하진 않았다.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그렇다면 저도 구라를 쳐서라도 일단 마스터를 회유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지?
성진은 남태수가 이 사악한 두 고대 리치의 계략에 놀아나는 것을 한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 * *
그날 이후로 다나와 남태수는 마법석을 과자처럼 씹어가며 수련에 매진했다.
육체적 피로는 포션으로 회복할 수 있었으니, 집중력을 잃지 않는 선에서 플레이어는 몇 날 며칠이고 연습할 수 있었다.
물론 값비싼 포션을 물처럼 들이켜는 건 돈을 쏟아붓는 행위였으나, 평소 포션 소모가 0에 가까운 그들 파티에는 포션 재고가 한참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다나와 남태수는 난쟁이 층 내내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한 명은 그냥 낚인 것뿐이지만.
어쨌거나 그 결과, 성진은 홀로 스테이지를 진행해야 했다.
다행히도 광석층은 79층에서 끝나고, 80층부터는 무인병기가 돌아다니는 능동방어계층이 이어졌다.
“이놈들은 영혼이 없어서 회복이 안 되는군.”
노가다를 할 이유가 사라지자 진행은 순식간이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층수가 올라 이제는 90층째.
행성 중심으로부터 지표면까지 이어진 초대형 천사 방위시설인 지하대던전.
마침내 그들은 발아래 빼곡히 늘어선 난쟁이 성채를 마주했다.
“지하인데 지평선이 보여?”
수용인원 100억.
단위 자체가 다른 행성급 요새가 그들을 반겼다.
“여길 쳐들어오는 건 이걸로 두 번째군.”
“쳐들어와요? 지키는 게 아니라?”
“난쟁이 왕이 좀 꼴통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왕 말고, 이걸 지은 전대 왕이.”
성진은 그렇게 말하며 가감 없이 적의를 드러냈다.
원래 적보다 트롤링하는 아군이 더 빡치는 법이었다.
“예전부터 저거 한번 다 부숴보고 싶었어.”
그 말과 함께 성진은 천장에서 지하도시를 향해 뛰어내렸다.
이어서 그의 손에 들린 검이 성벽보다 크게 거대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