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60화 (60/170)

<60>

탑 바깥을 돌아다니는 천사가 있다.

그러면 천사의 영혼을 데리고 있는 성진도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너를 찢어서 온몸에 펴 바르면 나도 천사로 인식되나?”

-키에엑!

무시무시한 소리를 중얼거리는 성진의 모습에 춘식은 전신의 털을 곤두세우며 구석으로 도망쳤다.

-시, 시스템을 속이려면 영혼이 아니라 육체의 정보도 필요할걸? 애초에 대천사인 나한테는 권한도 없다고!

“51층부터 100층까지를 관리하는 건 분명 지천사 케루빔이라고 했지.”

천사의 계급은 단순한 힘의 크기 외에도, 출신에 따라서도 나뉘어 있었다.

흑요정인 춘식은 전향자로 원래는 천사가 아니었던 종족.

때문에 아무리 잘나도 군인계급을 넘을 수 없었다.

반면 케루빔은 태생부터가 성좌와 같은 종족인 이들.

사룡왕 휘하의 용족이나, 요정공주 휘하의 요정족처럼 태생부터가 다른 이들이었다.

성좌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귀족계층.

본인들의 능력과는 별개로 특별대우를 받는 놈들이었기에 힘을 빨아먹는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느 종족인지는 모른다고?”

-뭐 그렇지. 애초에 내가 여기 발령되었을 때부터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어서 만나보기는커녕 이야기도 나눠본 적 없으니까.

“어디 있는지도 모를 놈을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도 없고. 따로 바깥에서 움직일 수 있는 협력자가 있으면 좋을 텐데…….”

탑 안에 있는 성진과는 별개로 바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원이 있으면 좋겠으나, 그쪽은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사룡왕 같은 이들을 데려오면 성좌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남태수나 다나처럼 현지 협력자를 구해도 사도를 감당할 순 없을 테니까.

“사도와 대적이 가능한 실력자는 흔치 않으니.”

모든 차원을 통틀어보면 그런 인물도 적잖게 있었다.

천상과의 전쟁은 8대 종족이 주도하였으나, 무르무르처럼 종족과는 별개로 강력한 개인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성진만 해도 전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던 지구인 출신이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당장 뭔가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거군. 그럼 지금 해야 할 일은 저건가.”

성진은 폐허에 서서 저 멀리서 배경처럼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보스를 바라보았다.

대협곡을 넘어 도착한 75층은 스테이지 전체가 폐허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인들이 살던 이 도시는 몬스터답게 광폭화하여 뒹구는 과정에서 완전히 박살 났다.

“이러니 거인족이 싸울 때만 거대화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거군.”

거인족이라고 해도 평상시에는 인간보다 조금 큰 정도.

거대화하면 가진 룬의 수준에 따라 크기가 천차만별이었다.

당연히 거인들의 도시는 거대화하기 전,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인간 사이즈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다만 탑의 스테이지에선 보스인 아틀라스가 뒹굴며 건물을 모두 다져놓았으니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것.

“저놈이 죽으면 이 스테이지가 끝난다. 티타니아가 거신왕의 룬을 찾을 때까지 나는 저놈을 지켜야 한다는 소리인데.”

칭얼대는 아기마냥 미쳐서 뒹굴고 있는 놈을 이 구간에 있을 모든 플레이어들에게서 지켜야 했다.

그것도 몇날 며칠이 될지 모르는 기간 동안.

-차라리 다른 플레이어들을 조지는 게 더 쉬운 건 아닌지?

“동물도 때려잡으려 하면 도망치는데 사람이라고 다를까. 도망치는 놈들을 일일이 잡아 조지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역으로 저걸 미끼 삼아 일반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이겠다?

성진은 대답 대신 몸을 움직였다

“일단 공사 좀 해볼까.”

아틀라스는 중간 보스이던 아이젠그라드 이상으로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다.

아이젠그라드가 운동장이라면 저건 운동장을 포함한 학교 부지 전체 수준.

저만한 거체에는, 그에 걸맞은 힘이 깃든다.

“힘이라면 나도 자신 있다.”

성진은 그대로 아틀라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2미터도 안 되는 성진과 아틀라스는 모기와 인간을 나란히 둔 것 이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아이젠그라드는 그런 성진을 만류했다.

-안 된다! 아틀라스, 아이젠그라드보다 훨씬 세다!

성진의 눈에 비친 아틀라스의 영혼은 다른 거인들처럼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반푼이인 아이젠그라드와는 다르게 아틀라스는 거인족 중에서도 손꼽히는 재능을 타고난 인물.

비록 그 재능이 개화하기 전에 천사들에게 죽었지만, 그래도 아이젠그라드보단 강했다.

“다나에게 맞춰준 걸 전력이었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성진은 누워 있는 아틀라스의 등 아래로 파고 들어갔다.

워낙 몸집이 크다 보니 파고들 틈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용왕파천권.”

제대로 된 무공도, 마법도 뭣도 없이 전장을 떠돌던 성진에게 사룡왕이 임시로 만들어준 무공.

그저 효율성에만 입각해 만들어진 이 단순한 무공은, 개량에 개량을 반복하며 성진에게 맞춰져 그의 힘과 카르마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절세의 무공이 되었다.

투웅!

모든 위력이 온전히 전해지자 성진의 타격에는 별다른 소음이나 풍압조차 일지 않았다.

대신 위력만큼은 확실했다.

거인의 몸이 하늘 위로 떠오른다.

아틀라스의 몸 아래로 파고든 성진은 어퍼컷으로 거인을 날려버렸다.

곧이어 아틀라스의 몸이 태양을 가리고, 성진의 주먹이 스테이지에 일식을 가져왔다.

-은인. 은인도 거인이었나?

“NPC라도 행동패턴이 조작되었을 뿐, 지능이 사라진 건 아니지. 전투를 위해서라도 짐승만큼의 판단력은 남겨놨을 터.”

떨어지는 아틀라스를 붙잡아 그대로 엎어 친다.

“그럼 죽지 않을 만큼만 패다 보면 알아서 말을 듣겠지.”

거인 스테이지의 보스조차 성진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 * *

거인에게 자신과 카심이 있는 곳을 덮치라 명령한 직후, 남태수는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어 그곳을 빠져나왔다.

60레벨 소환수 살아 있는 그림자.

거기에 65레벨 특성, 그림자 캐리어를 찍으면 살아 있는 그림자들이 물체를 그림자 속에 보관할 수 있게 된다.

항상 시체를 챙겨야 하는 사령술사에게는 그것만 해도 유용했는데, 급하면 이런 식으로 회피용으로 쓸 수도 있었다.

-설마 자기 자신도 함께 있는 곳에 저런 식으로 공격할 줄은 몰랐겠지요. 좋은 기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쪽도 70레벨이 넘는 플레이어니 당연히 저걸론 안 죽었겠지. 포메이션 A!”

남태수의 명령에 거인들은 남태수를 지키며 공격대를 상대하기 위한 스크럼을 짰다.

남태수의 기본 전법은 모든 소환수가 자신을 지키며 주요 영혼들을 소환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

강자와 싸우기 위해 고안해낸 약자의 전투법은 대비에 대비를 거듭해 쌓아나가는 방식이었다.

‘내가 상대보다 임기응변이 느릴 게 뻔하니 먼저 움직인다!’

“타르트!”

-오야.

좀비 메이지로 소환된 타르트가 연금술을 발동하자 주변의 흙이 거인들을 감싸고 구워져 진흙쿠키 갑옷이 완성됐다.

그 직후 공격대 마법사들의 얼음창이 거인들의 관절에 틀어박혀 움직임을 봉인했다.

“아니 기습이었는데 쟤들 반응이 왜 미리 준비한 우리보다 빨라?”

-떠들 시간에 집중이나 하십시오, 마스터.

이어서 중갑으로 무장한 탱커들이 달려나와 거인과 충돌했다.

중간보스인 아이젠그라드는 몰라도 일반 거인, 그것도 동레벨 사령술사가 언데드로 소환한 거인의 스펙은 탱커들에 비해 특별히 강하지도 않았다.

빙결 상태의 거인 스크럼은 탱커들과 충돌하자 속수무책으로 박살 났다.

물론 남태수는 이미 이중삼중으로 방어진을 짠 뒤였다.

“사령술사만 잡으면 된다!”

“1열은 저놈만 노리고 뛰어! 각이 안 나오는 후열은 엄호사격으로 틈을 만든다!”

미식축구를 연상시키는 충돌 직후 십수 명의 플레이어들이 남태수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를 지켜줄 최강의 말을 소환한 직후였다.

“마티아스!”

성좌들을 향한 복수로 불타는 요정기사는 언데드 특유의 지옥불 검기를 휘두르며 탱커들을 막아섰다.

탱커들은 그에 대항해 방패를 올리거나, 보호막을 치며 검기를 막아냈다.

50레벨 전사가 검기를 얻듯, 50레벨 탱커들은 또 그에 대항할 수 있는 방어 스킬을 얻는 법이었다.

“데스나이트 하나로 우리를 막겠다고?”

그들은 코웃음을 치며 마티아스를 지나치려 했으나, 그 순간 망토 안쪽으로 들어간 마티아스의 왼손에 살아 있는 그림자가 전해준 돌격소총이 잡혔다.

“잠깐, AK?”

100년도 전에 개발되어 전 세계 각지에 온갖 파생형이 튀어나온 그 무기.

구하기 쉽다는 이유로 아직도 쓰이는 이 돌격소총은 데스나이트의 손에 들린 채 심상치 않은 오색광채를 흘리고 있었다.

[+13 피로 얼룩진 축성된 신속한 공포의 치명적인 AK-47]

노말 무기 아이템

공격력 +10 (탄마다)

광(光)속성 대미지

물리 피해 흡혈 +5%

연사 속도 +50%

탄속 +50%

명중 시 10% 확률로 하급 저주 시전

명중 시 10% 확률로 출혈 악화

명중 시 10% 확률로 방어력 감소

센트럴 시티에서 연구용으로 온갖 주문서를 다 발라보다 탄생한 돌아버린 성능의 AK-47.

베르나데트가 창고에서 꺼내 온 이 끔찍한 혼종이 데스나이트의 손에서 불을 뿜었다.

타다다다다당!!!

총만이 아니라 장전된 총알마저도 유도 효과가 더해진 마탄.

이 마탄들은 단순히 처음에 노린 지점에 유도되는 게 아니라, 사용자의 컨트롤에 따라 궤적마저도 조종할 수 있었다.

물론 음속보다 빠른 총알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유도기능이 달려있다고 해도 활용하기 힘든 무기.

그러나 전장에서만 수백 년을 보낸 이 요정기사는 기어이 모든 탄을 개별적으로 조작해 상대의 갑옷 틈새에 처박았다.

“크아악!”

“뭐야 이 미친!”

관절부위에 총알이 틀어박힌 플레이어들은 넘어지거나 무릎 꿇으며 발목을 잡혔다.

공격대의 힐러들이 황급히 회복 스킬을 걸어주었으나, 전장에서 발이 멈춘 시점에서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퍼억!

얼어붙은 거인 스크럼 뒤쪽에 남아 있던 멀쩡한 거인들이 멈춰선 탱커들을 그대로 발로 차 버렸다.

“나이스 컷!”

카심은 아군의 탱커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입을 떡 벌렸고,

“일단 후퇴한다!”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도망치는 적들의 목을 수확할 때입니다, 마스터!

“아니다 이 리치야!”

남태수는 쫓으려는 거인들을 말렸다.

“어디까지나 탑에서 내보내는 게 목적이지 죽일 필요는 없거든? 패해서 도망쳤으니 저쪽에서도 항복하자는 이들이 나오겠지. 그냥 둬.”

게다가 마력도 문제였다.

“이번에는 미리 거인을 소환해둔 덕에 어떻게 비볐지만, 나는 혼자라고. 마력이 부족해서 싸움이 길어지면 위험해.”

상대는 어디까지나 남태수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기에 물러난 것.

서로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가며 멸망전을 펼치면 혼자인 남태수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뒤로 물러나서 알파카 애들한테 소모품 다시 보급받고 계속해서 75층으로 향한다. 어차피 싸울 생각이라면 결국 다시 만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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