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흑흑, 이것으로 고통스럽던 나날도 이제 끝이다!”
상업지구의 전투 이후로도 성진은 플레이어들의 교육이나, 다나의 레벨 업 등을 위해 센트럴 시티에 머물렀다.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명예의 전당에 도전하던 남태수는 마침내 49레벨 달성에 성공했다.
“내가 돌아왔다!”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린 사신의 대낫을 들고, 40레벨 소환수 유령마 팬텀 스티드에, 35레벨 스킬인 본 아머를 두른 남태수는 그야말로 사악한 악령기사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
“거기 아무도 없느냐! 이 몸이 금의환향했는데 마중은 나와야지!”
남태수는 그렇게 외치며 클럽 알파카의 대문을 박차며 들어섰다.
고생 끝에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49레벨을 달성했으니 칭찬도 듣고 싶고 자랑도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아아악!”
“손톱발톱 다 뽑아도 포션으로 재생시켜서 또 뽑을 거니까 빨리 아는 거 다 불어!”
그러나 알파카 내부로 들어선 남태수를 반긴 것은 베르나데트가 민홍기를 인두로 지지며 고문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척 봐도 못 볼 꼴을 본 상황.
인두를 든 베르나데트와 눈이 마주친 남태수는 잠깐의 침묵 후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 저 그냥 나갈게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얘들아 잡아!”
남태수를 처음 본 알파카 클랜원들은 혹시라도 센트럴 시티의 상황이 외부로 흘러나갈까 전력을 다해 남태수를 붙잡으려 했다.
아무리 남태수가 강해졌다고 해도 같은 49레벨.
그것도 전투에 익숙한 이들이 떼거지로 덤벼들면 방법이 없었다.
“으아악! 살려줘요!”
“도망치지 마라!”
“그런다고 멈추는 놈이 어디 있겠냐고!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아기 새가 어미를 찾듯 애처로운 그 부름에 성진이 응답했다.
“시끄럽다.”
성진은 능숙하게 도망치던 남태수의 뒷덜미를 잡아 세웠다.
“보스!”
“보스?”
베르나데트와 남태수의 상반된 반응을 본 성진은 깜빡했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설명을 안 해줬군. 이 녀석은 내 길잡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랬군요. 어쩐지 처음 보는 49레벨이다 했습니다.”
성진은 어리둥절해 있는 남태수에게 그간의 일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그나저나 예상보다 훨씬 빨리 49레벨을 달성했군. 보아하니 저 녀석들한테도 안 잡히고 잘 도망치고 있었고.”
“도망치는 거 하나는 죽어라 연습했죠. 보통은 마티아스를 온전한 상태로 소환하기만 하면 이기니까 도망치면서 싸웠거든요.”
명예의 전당은 기본적으로 일대일 스테이지.
소환수를 다루는 직업이라면 소환수를 뽑을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전부나 다름없었다.
“마티아스의 영혼을 언데드에 불어넣으려면 스킬이 아닌 마법으로 언데드를 소환해야 하니까요. 도망치면서 집중할 시간을 버는 건 도가 텄죠.”
성진의 엉덩이 뒤에 숨어있기만 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사령술사의 전투방식.
남태수는 이곳에서 진짜 사령술사의 전투방식을 몸에 익혔다.
“그렇다고 해도 예상보다 빨랐다만.”
성진은 그렇게 말하며 묘한 눈으로 남태수를 바라보았다.
남태수 또한 베르나데트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성진의 카르마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성진의 부하로서 카르마 효과를 받기 위해선 그만큼 성진과의 관계성이 필요했다.
‘배신할 생각을 하는 순간 효과가 끊어지는 건 물론,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면 신뢰할수록 효율이 높아지기도 하지.’
남태수를 향한 성진의 신뢰는 평범한 수준.
애초에 성진은 남태수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다.
반면 남태수의 신뢰는 그가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
전선에서 활약하며 자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이들도 많이 보았지만, 이건 또 다른 느낌.
말하자면…….
“그냥 생각이 없는 건가.”
적에 대한 걱정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진심으로 성진의 승리를 믿을 수 있는 것.
묘한 의미로 강철멘탈이라 할 수 있는 정신상태였다.
“태평한 녀석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상상 이상이었군.”
“네?”
“칭찬이다.”
빈말은 아니었다.
전장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건 보통 저런 녀석들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예정보다 일찍 49레벨을 달성한 건 잘 됐군. 바로 50층으로 출발할 수 있겠어.”
“성진 씨는 아직 31레벨이잖아요? 게다가 다나도 아직이지 않아요?”
“다나는 이미 그저께 49레벨을 달성했다.”
“예?”
남태수가 명예의 전당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센트럴 시티에서 활동하던 두 사람이었다.
남태수로서는 그런 다나가 오히려 자신보다 먼저 49레벨을 찍었다는 건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이상할 게 뭐가 있나. 그 녀석은 30층에서 이미 검기를 뽑아내고 왔는데.”
검기만 해도 50레벨 스킬.
또한 웨어울프들을 갈아마신 검술실력을 생각하면 이미 30레벨에 70레벨과도 맞먹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봐야 했다.
당연하게도 49레벨까지의 스테이지 따윈 순식간에 깰 수 있는 것.
“내가 어떤 고생을 하며 명예의 전당을 통과했는데…….”
직업군의 차이 때문에 다나의 재능을 실감하지 못하던 남태수는 재능의 차이에 절망했다.
그러나 진짜는 따로 있었다.
“그럼 바로 출발하지.”
“출발한다고요? 어디를요?”
남태수는 성진의 레벨을 보며 의문을 표했으나 성진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답했다.
“그럼 어딜 가겠나? 당연히 50층이다.”
“하지만 아직 31레벨이신데……?”
“그런 거야 2시간이면 충분하다.”
보통 31레벨에서 49레벨까지의 소요기간은 40일 정도.
실패하면 같은 챔피언에게는 다시 도전할 수 없기에 확실히 연습을 하고 도전하는 게 정석이었다.
거기에 도전할 상대에 따라 교복이라 불리는 특화장비를 맞추기 위해 중고 장비를 사고팔다 보면 그 이상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저도 보름 넘게 걸렸는데 20개 가까운 스테이지를 2시간 만에……?”
명예의 전당에 나오는 챔피언들은 단순한 몬스터들이 아니었다.
지능을 지닌 NPC.
당연하게도 적이 자신보다 강하면 도망치거나 숨기도 한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2시간 컷이 말이 돼요?”
그러한 의문에 성진은 간단히 답했다.
“20여 개를 도는데 2시간은 아니지.”
“그렇죠? 아무리 강해도 역시 그건…….”
“88개를 전부 도는데 2시간이다.”
“예??”
명예의 전당에 있는 챔피언들은 총 88명.
승리를 거듭하다 50레벨이 되어 버리면 88명을 다 만나지 못하고 다음 층으로 넘어가 버리지만, 일부러 실패하고 나오면 레벨 업 하지 않고 전부 만나보는 것도 가능했다.
“클리어하지 않고 영혼을 해방시킨 다음 실패하고 나온다. 이 방식으로 88개의 스테이지를 모두 돈다.”
실패와 재도전 기능을 이용해 이 스테이지의 네임드 NPC들을 전부 해방시킨다.
“명예의 전당 챔피언. 그놈들도 전부 데려갈 거다.”
* * *
-짜잔! 이렇게 하면 태수 아재가 언데드를 소환할 때마다 내가 과자 연금술로 무기랑 갑옷을 만들어 입혀줄 수 있어!
프릴이 잔뜩 달린 에이프런 차림의 영혼이 언데드 군단 앞에서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허어…….”
남태수는 새롭게 맞이한 영혼들의 능력을 확인하며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내가 도전했을 땐 못해도 8시간은 걸렸는데…….”
타르트는 탑의 레벨 측정 기준상 세 자릿수 레벨에 달하는 연금술사.
그녀와의 전투는 분명 일대일이었지만, 실제로는 진저맨 과자군단과의 대규모 전투였다.
“그걸 1분 컷 했다고? 말이 돼?”
-하하, 특이점은 내가 본래의 힘을 끌어낸다고 해도 손가락 하나 못 건드릴 진짜배기 영웅이니까!
명예의 전당에서 등장하는 타르트는 3~40레벨 대의 플레이어들이 깰 수 있게 무력화되어 있는 상태이긴 했다.
문제는 레벨에 맞춰 너프된 게 과자헬기가 몰려와 빼빼로 미사일을 쏴대고, 슈팅스타 맛 박격포로 주변을 초토화시키며 하는 전투라는 점.
거기서 시달리다 보면 보통의 플레이어들은 11월 11일만 되어도 PTSD가 도지는 상태가 되곤 했다.
이것은 남태수도 마찬가지였다.
“마티아스가 먼저 끝내서 다행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내가 죽을 뻔했는데…….”
-아하하! 아슬아슬했지 그땐. 본진을 다 밀었다고 생각했더니 최고 전력을 특공으로 보내올 줄이야.
계속해서 소환되는 언데드 군단과 진저맨 군단의 전투.
사실상 지휘관인 남태수와 타르트 중 누가 먼저 잡히냐 싸움이었다.
폭격을 피해 땅굴을 파고 도망 다니며 게릴라전을 했던 기억은 참전용사들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솟아오를 정도였다.
다나는 옆에서 자신도 과자 검을 받아서 써보고는 손에 묻은 슈가 파우더를 할짝거렸다.
“또 한 명 데려왔다. 이 녀석과도 계약해두도록.”
갑작스레 나타난 성진은 영혼 하나를 내려놓고 순식간에 다시 사라졌다.
-일주일 만에 다시 보는군요. 잘 지냈습니까, 사령술사.
“히익! 잡아먹지 말아주세요!
-안 잡아먹습니다. 애초에 남선생 피는 사령술이 얽힌 마력 때문에 맛도 끔찍했거든요.
아인은 정중한 태도로 신사답게 이야기했으나, 괴물처럼 변한 아인에게 척수액을 빨린 경험이 있는 남태수로서는 그의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피를 빨리고 있는 상태로 포션을 마셔 피를 채워 넣으며 버틴다니. 그런 끔찍한 기억은 다신 떠올리기 싫어…….”
아인과의 전투는 서로 피와 포션으로 배를 채우며 죽기 전에 죽이는 싸움이었다.
“실시간으로 죽어가면서도 계속 치료되어 영원히 고통받는 기분을 알아? 그건 ‘살려줘’가 아니라 ‘죽여줘’ 소리가 나오는 거였다고!”
-결국 죽은 건 저였습니다만.
성진은 남태수가 일찍 49레벨을 달성했다고 좋아했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듯 눈물 나는 발버둥만이 가득했다.
“성진 씨는 도대체 어떻게 1분 만에 클리어 한 거예요? 당신 공격하려고 하면 계속 핏물로 화해서 벽이나 바닥에 스며들어 피했잖아요?”
-잘 모르겠군요. 제대로 보기도 전에 죽었습니다. 아마 지형째로 부숴 버리시지 않았나 추측합니다만.
스테이지 기믹이고 뭐고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니 그게 무슨…….”
사실 성진이야 그렇다 칠 수 있었다.
성진의 스테이지 공략은 이미 1층부터 정상이 아니지 않았던가.
다만 다나도 자신이 고생고생하며 깬 스테이지를 하루 만에 싹 다 끝낼 수 있다는 점은 그에게도 충격이었다.
‘이런 걸로 충격이라니. 내가 딱히 잘난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데.’
분수를 아는 것.
지금까지 그거 하나만으로 살아온 남태수였다.
그러나 고생고생하며 목표했던 것을 이루고 온 지금.
지금은 왠지 조금 자신의 평범함이 분하게 느껴졌다.
“이걸로 마지막이군. 센트럴 시티에서 올라가기로 한 인원들도 모두 49레벨을 찍어뒀으니 바로 출발할 수 있겠어.”
그러는 사이 성진은 또다시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돌아왔다.
“자, 그럼 이제 50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실히 해둬야겠지.”
“예? 뭘요?”
“당연히 너희들의 2차 전직이다.”
탑의 50층.
그곳은 플레이어들이 2차 전직을 고르는 스테이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