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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부수는 플레이어-48화 (48/170)

<48>

나타니엘이 강림했을 때, 센트럴 시티의 거의 모든 플레이어는 전투를 중지하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의 모든 플레이어라는 것은 대천사가 강림하든 말든 자기 할 일을 한 사람도 있다는 뜻이었다.

다나가 그랬고, 얼떨결에 다나를 따라나선 베르나데트도 그랬다.

“저러면서 사도가 아니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어두운 밤하늘.

구름이 걷히고 찾아온 광명은 파괴광선이라는 이름으로 지상을 향해 쏟아졌다.

반대로 성진은 그 아래서 정령들을 부려 지상에서 하늘을 향해 요격에 나섰다.

수백에 달하는 빛줄기가 교차하는 모습은 지극히 신화적인 광경이었다.

“평화교단 지부장 확보. 다음은?”

“7시 방향 800미터쯤에 안보국 그랜트 대령이요.”

“도로가 파괴돼서 길이 막혔네. 건물 위로 간다.”

다나는 빌딩 위를 넘나들며 세계정부의 요인들을 잡으러 다녔다.

“건물 위에도 적이 있다! 요격해!”

다나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총탄과 마법들을 뚫고 빌딩 아래로 뛰어내렸다.

[적의 전력이 아군의 2배 이상입니다.]

[<불굴의 투지(희귀)>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적성 카르마 확인.]

[<피보다 진한 신념(영웅)>의 효과가 증폭됩니다.]

회오리치는 검기가 플레이어들의 총칼을 가르고 지나갔다.

착지와 동시에 적의 화력공백을 만들어낸 다나는 검을 집어넣고 격투술만으로 나머지를 제압했다.

적진 속에 뛰어들어 근접전으로 날뛰니 한 번에 서너 명만 상대해도 되어 편했다.

“미쳤어요? 40층이 넘는 빌딩에서 그냥 뛰어내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인벤토리에 챙겨둔 레펠 장비로 줄을 타고 내려온 베르나데트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뒤에야 지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러면서 사도가 아니라는 게 말이 돼요? 사도가 아니라면 왜 이런 짓을 하는데요?”

“성좌의 먹잇감이 될 순 없으니까.”

“예?”

다나는 설명 대신 저 멀리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오늘 밤의 전투로 죽은 플레이어들의 영혼이 떠오르고 있었다.

* * *

사령술이건 뭐건 영혼이 실존한다는 것이 증명된 세상.

성좌는 자신을 따르는 인간에게 사후 낙원에서의 평온과 안녕을 약속했다.

이로써 사도의 클랜에 소속된 이들은 목숨을 건 일도, 위법적인 일도 스스럼없이 행할 수 있게 되었다.

생전보다 긴 사후를 위함이었고, 자신이 죽인 영혼도 결국 그들이 믿던 성좌에 의해 구원받을 거라 생각했기에.

성진은 그런 그들에게 진실을 보여주었다.

“이게 성좌의 진실이다.”

성진이 한 일은 간단했다.

원래라면 일반 플레이어들에게 보일 일 없었던 영혼들에 누구나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마력을 입혀준 것.

간단한 일이었지만, 파급력은 대단했다.

“호세 오빠?”

-뭐야? 여긴 어디야? 멜라니? 거기 있어?

성좌가 약속한 낙원을 실제로 경험한 이들이 입을 열었다.

-이게 뭐야! 꺼내줘!

-뭐, 뭔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어!

-그만둬! 나한테 그러지 마!

영혼들은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낙원은 없다.

탑에서 죽은 플레이어의 영혼은 NPC와 같이 착취되어 시스템을 유지하는 연료로 사용된다.

성진은 시스템 뒤편에서 자행되고 있던 끔찍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거, 거짓말. 그럴 리 없어. 이건 가짜야!”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이 속출했으나 그들도 곧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짜라니! 우리 탑을 나가면 결혼하기로 약속했잖아!

-아들이 있다며! 죽으면 서로의 가족을 챙겨주기로 했으면서!

-구해줘! 날 여기서 꺼내달란 말이야!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눈앞의 영혼들은 진짜였다.

죽은 자들이 산 자와의 비밀을 떠들어대기 시작하자 더 이상 낙원의 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이야기는 다른 사람한텐 말해준 적 없는데…….”

“진짜 당신이야……?”

산 자도, 죽은 자도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고 굳어있을 때.

성진이 그들 앞에 나섰다.

“주목.”

카르마가 실린 그 목소리에는 영혼을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이곳에는 내가 새로운 사도인 줄 알고 따르던 이들도, 자기네 사도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던 이들도, 그와 상관없이 마침 센트럴 시티에 머물고 있었을 뿐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성진의 말에 모두가 침묵 속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감히 입을 열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까지 천사였던 것이 들려있었으니까.

“진짜 적은 성좌다. 그러니 내게 협력해라.”

성진은 그들에게 선택지를 내밀었다.

“싫다면 다시 사도를 따르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물론 그 결과는 저렇겠지만.”

하나뿐인 선택지였지만 말이다.

“대신 내게 협력한다면 이미 죽은 저들까지 구해주마.”

바로 직전에 대천사가 사도의 하수인이건 뭐건 구분 없이 그들 모두를 죽이려 했던 상황.

그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 * *

다나는 시에라를 포함해 센트럴 시티의 주요 인물들을 붙잡아 성진과 합류했다.

“잘했다.”

“네?”

“혼자서 영웅급의 카르마를 쌓아올 줄이야. 기대 이상이군.”

어차피 이들을 붙잡는 건 성진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성진의 칭찬은 그녀의 카르마에 대한 것이었다.

“아무튼 잘 끝나서 다행이지만 이거 괜찮은 거 맞죠?”

“뭐가 말이지?”

“아저씨가 여기 있는 걸 성좌들한테 최대한 숨겨야 한다면서요. 이렇게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들킬 가능성도 커지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아저씨라도 지금 힘으로는 성좌랑 정면으로 붙으면 안 될 텐데.”

“이들도 바보가 아니면 여기서 사도 편을 들어봐야 자신들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알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사실을 알고도 탑을 나가 세계정부의 손아귀 안에 자신의 목을 얹어주진 않으리라.

이들의 입장에선 이대로 탑에 남아있는 게 차라리 나았다.

“센트럴 시티의 대부분은 생산직 플레이어지. 이들이 우리를 지원해준다면 앞으로의 공략이 편해질 거다.”

그렇게 말하며 다나가 잡아온 이들을 확인하려던 성진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원래도 딱히 힘이 있어서 성좌들과 싸운 건 아니었다.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싸워왔지.”

강해서 이겨온 것이 아니라 이겨서 강해져온 것.

성진의 진정한 강함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보면 당장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좌가 덤벼와도 상관없다. 맞서 싸울 뿐.”

그것이 지금까지 성진이 해온 일이었다.

성진은 그렇게 말하며 시에라를 마주 보았다.

“그래서, 여전히 침묵과 광기를 위해 일할 생각인가? ‘가족’들을 그놈의 한 끼 식사로 만들기 위해?”

사도인 신시아가 정확히 무슨 조건으로 성좌를 따르고 있는지 알 순 없었으나 모든 웨어울프를 챙길 생각은 아니라는 게 확실했다.

성진이 보여준 영혼 중에는 이번에 죽은 웨어울프들도 있었으니까.

“네 사도는 저기 있는 다나까지만 살릴 생각이었을 거다.”

“……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웨어울프의 신경망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만 봐도 상위종이라는 건 확실하지.”

늑대들은 신시아와 다나를 가족처럼 여기고 있었지만, 정작 그 둘은 아니었다.

“네 사도는 너희들을 모두 버리고 제 동생만을 챙길 생각이었다. 자신들을 위해 모두를 희생시킬 생각이었지.”

“……!”

“반면 정작 그 동생은 모두를 위해 자신이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는 녀석이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누굴 따라야 할진 명확한 이야기다.”

“배신하라는 건가?”

“배신은 애초에 같은 편이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겠지.”

처음부터 그들은 소모품에 불과했다.

성진은 굳이 이 자리에서 확답을 받으려 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안보국 대령 그랜트.”

“당신들에게 협조하겠네. 성좌가 그런 존재였다면 사도들을 따를 이유가 없어!”

“잘 가라.”

퍼억!

“아저씨?”

지켜보던 다나가 그 모습에 눈을 크게 떴지만 성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성진이 그랜트의 카르마를 확인해봤다는 것도, 그것으로 그랜트가 성좌나 사도와 상관없이 답 없는 놈이었다고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마약 카르텔의 간부인 시에라를 살려놓은 것이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시에라는 쓸모가 있다. 늑대들을 통제해줄 녀석이 필요해.’

웨어울프의 유대감은 성좌가 어떤 놈들인지 알고도 그들이 신시아를 따르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시에라가 살아있을 필요가 있었다.

반면 그랜트는 쓸모가 없었을 뿐.

성진은 굳이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나, 시에라는 그 뜻을 알아들었다.

‘나 또한 저 놈과 다를 바 없는 짓을 해왔다. 그런데 나만 살려놨다는 건…….’

할 일을 다하고 죽어라.

웨어울프를 전부 죽이면 사도가 알아챈다.

그러니 사도를 향한 유대감보다 다나를 향한 유대감이 더 큰 늑대들을 만들어 바깥에 있을 사도를 속이겠다는 계획.

사도는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해야할 부하들이 배신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리라.

‘다나도 같은 상위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성진은 그 외에도 다른 사도의 하수인들을 처형한 뒤, 그 영혼을 붙잡았다.

-힉! 이게 뭐야?

-살려…… 아니, 이미 죽어서 죗값을 치렀잖아! 이제 놔줘!

“아니, 그거로는 부족하다.”

성진은 붙잡은 영혼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지은 죄는 고작 너희들의 목숨 따위로 갚을 수 없는 일이다. 너희들은 나와 함께 간다.”

이들은 남태수에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성진 자신이 직접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전쟁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내게 힘을 보태야 할 거다.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라. 그렇다면 최소한 죽을 순 있게 해주지.”

영혼까지 쥐어짜겠다는 성진의 선언에 이미 파랗던 영체의 안색이 더더욱 파래졌다.

성진은 그들의 영혼을 몸 안에 담아두고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하가 늘었군.”

사도와는 상관없는 3,000여명의 일반 플레이어들.

이들을 부려먹는 것도 일이었다.

“남태수를 불러와야겠군.”

부하를 부리는 건 사령술사의 일이었다.

* * *

센트럴 시티의 생존자들은 성진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함구했다.

떠들고 다녀봐야 자기 인생도 끝장나는 것은 마찬가지.

덕분에 바깥의 사람들은 30층이 막힌 일만 화제였지 그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탑 내부에 부하들을 들여놓았던 사도도 마찬가지였다.

-아가씨를 안전하게 보호했습니다.

버킹엄 궁전 내부의 집무실.

신시아는 시에라의 보고를 통해 성진에게 속아 넘어갔다.

-주성진과 남태수는 아무런 소동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50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흐음, 기존 12성좌 중의 하나가 두 번째 사도를 들인 거라면 센트럴 시티에서 접촉할 거라 예상했다만. 새로운 성좌였던 건가.”

현재 세계정부를 이루고 있는 것은 12성좌가 선택한 12명의 사도들.

그중 한 명이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 게 아니라면, 저 주성진이라는 남자는 완전히 새로운 성좌의 사도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끌어들일 수도 있다.’

다른 놈들과 손잡게 두는 대신 자신이 직접 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어느 쪽이든 다나의 안전이 확보된 이상 여유가 있지. 일단은 이쪽부터 정리한다.”

신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았다.

리처드 카이만과 그의 인페르노 클랜의 본거지인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리처드 카이만의 부재 사실을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챈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도를 잃은 인페르노 클랜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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