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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데트는 그 말에 재빨리 들고 있던 총을 인벤토리로 집어넣었다.
“그렇군요! 플레이어가 이만큼이나 죽어 나가고 있으면 관리자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어느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지 않아도 천사의 중재를 받으면…….”
다나는 멍한 눈으로 베르나데트를 바라보다 뒤늦게 상황을 눈치챘다.
‘이 사람한테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지 않으셨구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만한 인원들을 모두 설득해서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천사가 나온다는 소리에 무기를 집어넣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다나는 반대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 몸 상태로 검은 또 왜…… 이제 전투는 끝난 거 아닌가요?”
“천사는 사도의 편이야.”
“예? 예, 뭐 그렇겠죠?”
“그리고 성진 아저씨는 사도가 아니고.”
천사가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더 이상 기만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이제 모두가 진실을 알게 될 테니까.
“여하튼 저건 아저씨한테 맡겨놓는다고 해도 정부측 플레이어든, 인페르노 클랜이든 많이들 남아 있으니 나는 그쪽을 맡아야겠지.”
“아니 그게 무슨…….”
다나는 다시금 검을 들고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하늘이 열리며 성스러운 휘광을 두른 천사가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니엘.
50층에 상주하며 센트럴 시티와 2차 전직을 관장하는 관리자.
나타니엘은 세 쌍의 날개로 몸을 감싼 채 허공에 떠 있었다.
여신과도 같은 신비로운 모습의 천사는 하늘에 떠서 이 땅의 모든 존재에게 동시에 말을 걸어왔다.
[모두 멈춰라.]
천사의 목소리는 실제로 힘이 되어 모든 생물의 육체를 속박했다.
[성좌께서 인류의 연단을 위해 하사하신 탑에서 상잔이라니. 어찌 이리 어리석은!]
나타니엘은 울고 있었다.
철저한 연기.
마력을 볼 수 있는 다나는 그 눈물이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가짜임을 간파했으나, 평범한 사람에게는 비탄에 잠긴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짓 눈물. 하지만 한 폭의 그림 같다는 건 부정할 수 없네.’
천사는 인간이라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불수의근까지 자유자재로 다루며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을 연기했다.
또한 그 육체에 담긴 강대한 마력은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에게도 무의식적인 압력을 발휘했다.
적대하는 자에게 공포를,
경배하는 자에게 경의를,
애원하는 자에게는 희망을.
가장 먼저 그러한 감정조작에 걸려든 것은 가까이에 있던 일반 플레이어였다.
“나타니엘이시여! 저들이 무고한 플레이어들을 죽이려 들었습니다! 저들을 벌해주십시오!”
그 플레이어는 웨어울프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나타니엘은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더니 쓰러진 시에라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시에라는 등줄기에 칼이 꽂힌 채, 신경이 마비된 상태로 아직 살아 있었다.
여차하면 꽂힌 검에 검기를 불어넣어 바로 제압할 수 있는 상태로 생포한 것.
[당신은 침묵과 광기의 사도가 이곳의 플레이어들을 관리하라고 들여보낸 존재로군요.]
“큭, 그래서 뭐? 불만이라도 있나……?”
[어리석은 양들을 올바른 곳으로 이끌어라. 그런 간단한 명령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보호대상을 공격하다니요.]
“……!”
[양을 통제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양치기 개는 모두 소각입니다.]
나타니엘이 손을 뻗은 순간, 도시 전역의 웨어울프들이 성스러운 불꽃에 휘감겨 재로 화했다.
그 모습에 자신들을 지켜주는 것으로 오해한 일부 플레이어들이 환호했다.
그러나 나타니엘과 눈이 마주친 다나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방금 공격. 나를 향했다면 피할 수 있었나?’
전혀.
살아남을 방법 따윈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목격자는 남겨두지 않습니다.]
세계정부 소속 플레이어들이 섬기는 것은 사도.
사도가 섬기는 것은 성좌.
천사와 같았다.
애초에 천사가 일반 플레이어들의 편일 리가 없었다.
[진노의 날이 닥쳐오리니.]
그와 동시에 구름 사이에서 수십, 수백 개의 빛 덩어리가 생겨났다.
전투천사의 파괴광선.
하나로도 강력한 그것을 동시에 수백 발씩 내리꽂으려는 것.
나타니엘의 행동에 일반 플레이어들이 당황하는 한편, 이번에는 세계정부 측 플레이어가 외쳤다.
“천사시여! 처분 대상은 저놈들뿐입니다!”
[처분은 쓸모없는 플레이어들을 소각하는 것. 그렇다면 일 처리도 제대로 못 한 당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타니엘의 파괴광선은 평등하게 센트럴 시티의 모든 존재를 제거하려 하고 있었다.
[사라지십시오.]
파괴광선의 비가 지상에 내리꽂히려는 순간.
“티타니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시 전역에 뿌려놓은 정령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파괴광선을 몸으로 받아냈다.
이어서 정령들은 파괴광선의 마력을 흡수하고 미니언급에서 주니어급, 주니어급에서 시니어급까지 일시적으로 두 단계를 뛰어넘어 성장했다.
[요정공주?]
직후, 시니어급 정령의 힘으로 펼쳐진 마법진이 스테이지 전체를 휘감았다.
[레베키엘은 뭘 하고 있는 거지? 어째서 30층에 있어야 할 요정공주가 여기에?]
나타니엘은 황급히 전이하여 도망치려 했으나 이미 티타니아의 마법진이 스테이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성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 쌍의 날개라. 대천사급인가.”
억누르고 있던 카르마가 풀려나자 나타니엘은 목 부러질 속도로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 당신은 설마……!]
대천사급.
천사 중에서는 나름 부사관급이라 할 수 있는 나타니엘은 특이점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다.
이름이 같은 존재라면 온갖 차원에 수없이 많이 있다.
그러나 천사들은 카르마를 통해 상대를 인식했다.
30층에서 청동망치를 소환하며 돌아온 카르마.
비록 그 양은 미미했지만 이와 같은 카르마를 가진 것은 자신이 아는 그 특이점밖에 없으리라.
[도, 도망쳐야 한다. 당장 이 사실을 성좌들께 알려야……!]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그렇게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쓰나.”
성진은 티타니아의 마법진을 뚫기 위해 발악하는 나타니엘을 보며 조용히 청동망치를 소환했다.
“일단 내려와라.”
성진은 눈앞에 망치를 휘둘렀고,
저 멀리 있던 천사는 땅에 처박혔다.
* * *
천사들에게 성진의 이름은 생각보다 유명하지 않았다.
이는 천사 자체가 성좌들이 소모품으로 만들어낸 종족이란 점이 컸다.
대부분의 천사가 10년도 살지 못하고 병사로 소모되며, 그마저도 일반천사와 전투천사가 대부분.
나름의 자율권을 지닌 대천사 이상의 천사는 소수였다.
‘물론 그마저도 천사의 숫자 자체가 엄청나게 많다 보니 대천사 이상도 수두룩하지만.’
성진은 머릿속에 떠오른 4대 천사의 얼굴을 지워내며 나타니엘에게 향했다.
“일어나라 천사. 그런 걸로 죽지 않는단 건 이미 알고 있다.”
“으으으으……!”
나타니엘은 성진의 말에 마력을 잃곤 육성으로 신음하며 일어섰다.
상업지구 한복판에 생겨난 거대한 크레이터.
성진은 그곳에서 50층을 관장하는 대천사를 마주했다.
지구의 인간들이 떠받드는 대천사라는 존재의 실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초라한 모습이었다.
“흑요정인가.”
성진의 눈으로 본 나타니엘은 완전히 성좌에게 오염된 요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향한 놈들은 전부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남아 있는 놈이 있었나.”
“다, 당신이 어떻게…….”
대천사인 나타니엘은 성진의 카르마를 알아보았다.
얼굴이나 이름, 마력 따위는 마법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카르마는 위조가 불가능한 이 세계의 법칙 중 하나였다.
“왜? 나 어떻게? 따윈 별로 중요하지 않지. 중요한 건 네게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거다.”
“선택의 기회?”
“1번, 성좌들을 배신하고 내게 협조한다. 2번, 지금 이곳에서 영멸한다.”
성진의 말에 나타니엘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살려주겠다는 건가?’
흑요정은 요정왕을 배신하고 성좌들에게 붙은 요정들을 부르는 말.
요정왕의 가호를 잃고 성좌들에게 변형된 그들은 진작부터 배신자였다.
‘이제 와서 다시 갈아타는 것쯤이야 어려울 것 없지만 저 남자가 적을 살려준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대천사인 그녀는 전장에서의 성진이 어떤 존재인지 악명을 들어본 바 있었다.
특이점이 나타난 전장에서 살아돌아온 천사는 없다.
그저 멀찍이 떨어져 관측한 정보만이 상위 천사들 사이에서 흘러 다닐 뿐.
그 점을 의심한 나타니엘은 겁을 잔뜩 집어먹은 상태에서도 위화감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가 어떻게 탑에 들어와 있지?’
자세히 보면 카르마의 양이나 청동망치의 위력도 이상했다.
‘혹시 지금은 힘을 잃은 상태가 아닌지?’
영혼에 새겨지는 카르마를 어떻게 덜어낸 건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모든 것이 설명 가능했다.
‘모종의 방법으로 카르마를 초기화했다면 탑에 들어온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럼 나 같은 걸 바로 죽이지 않는 것도 말이 돼.’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라면.
‘이 남자는 지금 허세를 부리고 있다!’
탑의 관리자로서 인간을 지켜봐온 나타니엘은 인간의 습성에 대해 잘 알았다.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허세를 부리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다.
‘요정공주의 힘을 쓰면서도 굳이 기습을 시도한 거 보면 확실해! 그렇다면 내가 이길 수 있다!’
만일 자신이 성진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면?
성좌들은 그녀에게 4대 천사쯤은 발 깔개로 쓸 수 있는 권능을 내려주리라.
‘아니, 그딴 게 아니더라도 저 남자를 죽였다는 사실만으로 신성을 획득할 수도 있을 거야.’
눈앞의 남자는 세계의 특이점이라고 불릴 정도의 존재.
주성진을 죽여서 얻을 수 있는 업은 그녀의 주인인 성좌들이 가진 카르마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으리라.
‘이 자리에서 내가 성좌로 거듭날 수도 있다.’
나타니엘의 눈이 욕망으로 번뜩였다.
“협조하겠습니다! 협조할 테니 제발 목숨만은!”
방금까지 인간을 쓰레기처럼 여기던 천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모습.
파괴광선을 피해 도망치던 플레이어들은 어느새 크레이터 근처에 모여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개중에는 천사를 믿었던 일반 플레이어들도, 다른 의미에서 천사를 믿었던 세계정부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알았다. 그럼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와라.”
성진의 말에 나타니엘은 양손을 들고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충분히 접근한 다음에 일격으로 주성진을 죽인다!’
성진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힘을 잃은 지금이라면 기습이 가능하리라.
그렇게 생각한 나타니엘은 항복을 가장해 천천히 성진에게 다가가…….
푸욱!
가슴을 찔렀고,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성진에게 붙잡혔다.
“어?”
자신의 손은 분명 성진의 가슴을 관통해 심장을 꿰뚫었다.
그런데 어째서 성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자신의 목을 틀어잡는가?
의문은 금방 해결되었다.
스르륵!
나타니엘을 붙잡은 성진의 모습이 연기처럼 날아가고 그 아래 시니어급 정령의 모습을 한 티타니아가 나타났다.
10대 초반의 모습인 시니어급 정령 형태는 나타니엘이 찌른 심장보다 아래까지밖에 오지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허공을 꿰뚫은 나타니엘의 손안에서 성진의 심장이라 생각했던 환영마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진짜 성진은 나타니엘의 뒤에서 나타났다.
“나를 본 적도 없으면서 왜 눈앞에 나타난 것이 진짜라 생각한 거지?”
정령술을 이용한 은신은 근본적으로 환영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모습을 숨길 수 있다면 당연히 가짜를 내보일 수도 있는 법.
푸욱!
성진의 손이 천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가슴을 관통한 그의 손에 쥐어진 나타니엘의 심장은 이번에야말로 가짜가 아닌 진짜 심장이었다.
“잘 가라.”
[당신의 업적이 기존의 카르마와 중복됩니다.]
[<천사 살해자(영웅)>에 카르마가 더해집니다.]
[보유한 카르마만큼 힘이 회복됩니다.]
“이건 좋은 곳에 쓰도록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