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43화 (43/170)

<43>

“네놈들 뭐야? 지금 뭐하는 짓이야?”

“민홍기 씨한테는 미안하게 됐어. 그런데 위쪽 명령이라서. 알지?”

“위쪽이라니…….”

탑에서 ‘위’라고 부를만한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세계정부.

구체적으로는 그 뒤에 암약하고 있는 사도들.

‘고작 클럽 하나를 건 일에 사도가 개입했다고? 왜?’

반면 민홍기와 다르게 베르나데트는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며칠간 안 보인 건 이걸 위해서였구나!’

성진이 한 일은 간단한 것이었다.

베르나데트를 통해 얻은 센트럴 시티의 세력도.

그 세력도를 가지고 주요 클랜들을 찾아가 클럽 알파카에서 했던 일을 그대로 반복한 것.

사도를 사칭하여 동맹의 다른 클랜들을 회유하니 거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적이었던 수백 명이 순식간에 아군이 된 상황.

‘보스는 우릴 버린 게 아니었어!’

성진을 향한 베르나데트와 클랜원들의 인식이 뒤바뀐 순간, 그들의 카르마가 이어졌다.

[<불패의 선봉장(신화)> 효과가 적용됩니다.]

카르마를 인지하지 못한 베르나데트에게는 보이지 않을 시스템 메시지.

그러나 결과적으로 신체능력이 강화된 것을 상태창에서 확인하는 것은 가능했다.

‘권능스킬의 효과인가? 갑자기 힘이……!’

효과는 강력했다.

‘이건 거의 10레벨 수준의 깡스탯 버프잖아?’

탑에서 10레벨 차이는 10배의 차이.

49레벨이 10명은 있어야 59레벨 한 명을 잡을 수 있으며, 100명이 모여야 69레벨과도 해볼 만하다는 뜻이었다.

10레벨 어치의 버프라면 15명인 그들의 전투력이 150명 수준으로 상승했다는 뜻.

탑에서 이만한 효과는 웨어울프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수준의 페널티를 감수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버프에 놀라 있는 베르나데트에게 성진의 명령이 전해졌다.

-적의 클랜장을 쓰러뜨려라.

전투는 순식간이었다.

정의구현의 클랜장 민홍기는 눈앞의 상황에 전의를 상실한 상태.

베르나데트와 그녀의 부하들이 그에게서 항복선언을 받아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이겼다……!”

자신들을 협박해오던 민홍기가 결국 그녀의 앞에 무릎 꿇었다.

‘역시 내 선택이 맞았어! 줄을 잘못 선 게 아니었다구!’

잠깐이나마 성진을 의심했던 만큼 감격은 더욱 컸다.

‘어라? 그런데 어차피 이렇게 회유할 수 있으면 클랜전은 할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닌가? 왜 굳이 클랜전을 신청하게 한 거지?’

문득 그러한 의문이 베르나데트의 머릿속을 스침과 동시에 성진의 다음 명령이 떨어졌다.

-뭐하고 있나. 아직 적이 남아 있지 않나.

“예?”

-정의구현 클랜의 이름으로 클랜전에 참가한 용병 200명.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적을 섬멸해라.

“자, 잠깐만요. 보스가 데려온 사람들이잖아요?”

-그래. 너희가 쓰러뜨리라고 데려왔지.

200명의 배신으로 성진이 알파카를 버리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것으로 알파카와 성진간의 기초적인 신뢰관계가 생기며 카르마가 이어진다.

200명의 용도는 그게 전부였다.

‘세계정부의 끄나풀인 동맹 소속 플레이어들을 남겨둘 생각은 없다.’

토사구팽.

그의 밑에서 일할 사람은 베르나데트 정도면 충분했다.

그가 가진 카르마 효과를 받는 이상, 베르나데트와 알파카 클럽 멤버만으로도 센트럴 시티의 모든 플레이어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으니까.

-지금이라면 200명을 쓰러뜨리는 것도 가능하겠지?

정령의 가호로 전력이 10배가 되었다고 해도 150 대 200.

그러나 150명 치의 전력이 15명에게 압축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1 대 10의 싸움에서 열 명이 동시에 합공을 가할 수 없는 것처럼, 플레이어간의 전투도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병목현상이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전투력이 같은 값이면 상대적으로 소수인 쪽이 유리하다.

수백 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보단 몇 사람이 손잡고 움직이는 것이 훨씬 쉽고 효율적이었으니까.

-적을 섬멸하라.

성진의 카르마가 명령에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부여했다.

-그것으로 너희는 더 강해질 것이다.

고작 15명이 수백이나 되는 같은 레벨의 적들을 쓰러뜨린다면?

새로운 위업은 그들 자신의 카르마가 되리라.

그리하여 이날.

베르나데트와 부하들은 15명으로 220명을 쓰러뜨린다는 업적을 달성하였으며,

성진은 센트럴 시티 내에 세계정부의 입김이 닿아 있는 대형 클랜의 전투원을 완전히 쓸어버렸다.

“중소 클랜은 대부분 일반 기업소속. 이걸로 사도가 직접 운영하는 클랜만 남았군.”

이제 그들만 쓰러뜨리면 센트럴 시티에서 사도의 영향력을 일소.

이 층을 성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 * *

클럽 알파카는 정의구현과의 클랜전에서 승리한 후, 동맹의 다른 클랜들에 마구잡이로 클랜전을 신청했다.

연전연승은 예약된 것이나 마찬가지.

이미 전투원을 대부분 잃어버린 동맹이 성진의 카르마로 강화된 그들에게 대항할 방법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베르나데트나 다른 알파카 클랜원들이 다른 마음을 먹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어떡하지?”

“발을 빼야 하나 생각이라도 하는 순간 버프가 꺼지잖아……?”

그들을 강화하는 힘은 성진을 보스로 인정하면서 부하를 강화하는 성진의 카르마 효과를 받았기 때문.

덕분에 그들이 다른 마음을 먹기라도 하는 순간, 부하가 아니게 되면서 해당 효과가 사라져 버렸다.

배신의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차단된 것.

성진의 힘으로 성진에게 위해를 가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다른 클랜들의 원한을 사놓고 이제 와서 보스의 가호가 사라지면 우린 끝장이야.”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가는 수밖에…….”

정신을 차렸을 때, 클럽 알파카는 이미 센트럴 시티 플레이어 인구의 3분의 1을 병합한 상태였다.

“보스는?”

“오늘도 명상 중이셔.”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성진은 정령들의 눈을 통해 센트럴 시티 곳곳을 관조하고 있었다.

그 눈에 가장 먼저 비춘 것은 남태수였다.

-이걸 깨라고 만들어놨냐? 진짜로?

명예의 전당에는 88명의 챔피언이 있고, 그중 하나를 쓰러뜨릴 때마다 레벨이 하나씩 오른다.

즉, 50레벨을 찍을 수 있을 만큼만 성공하면 나머지는 실패해도 된다는 것.

아무래도 저쪽은 열심히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음으로 찾은 것은 백악관에 머물고 있는 다나.

다나는 클랜의 운영방침을 바꾸겠다는 시에라의 말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은 믿어봐야죠. 말을 해도 믿지 못하고 모든 걸 폭력으로 해결할 수는 없으니. 하지만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백악관 건물의 구조나, 관계자들의 숫자, 그들이 평소 하는 일 등등.

다나는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좌와 사도의 속내를 몰라요. 누군가는 그걸 알릴 사람도 있어야죠.

성진의 목표는 성좌를 쓰러뜨리는 것뿐.

그러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성진에게 사람들을 이끌어주기까지 바랄 수는 없었다.

성진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이 아니다.

다나는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가고 있었다.

다나를 확인한 성진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도시를 향했다.

클럽 알파카는 센트럴 시티에서 명예의 전당 주변의 모든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라면 결국 명예의 전당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걸 독점하고 있는 것.

그렇다면 사도의 부하들은 여기서 어떻게 나올 것인가?

“마침 알아서들 모여주는군.”

성진의 시선이 향한 그곳에 센트럴 시티의 진짜 권력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 * *

센트럴 시티의 세력구도는 크게 셋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세계정부의 입김이 닿은 클랜들의 동맹.

이들은 전체의 과반을 차지하며 사실상 센트럴 시티를 운영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클럽 알파카처럼 기업에 소속된 중소 클랜과 무소속 플레이어들.

이들은 일반 시민이라 할 수 있는 계층이었다.

소속된 기업에 따라 탑의 아이템을 구해서 내보내거나, 위로 올라가는 것이 주목적인 이들.

원래라면 이들이 가장 많아야 하지만, 이쪽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결국 50층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남아 있는 인원수가 그리 많진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사도가 개인적으로 굴리는 클랜들.

스펜서 가문의 웨어울프들처럼 성좌를 불러오기 위한 사도의 공작을 수행하는 이들.

이들이야말로 센트럴 시티의 진짜 권력자들이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평상시에는 임무에 전념할 뿐, 탑의 행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진이 동맹을 날려 버린 상황에서는 이들도 마냥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도대체 놈들은 어디서 그런 힘을 손에 넣은 거지? 고작 15명으로 200이 넘는 전투 플레이어들을 쓰러뜨리다니. 그놈들이 갑자기 뭐 웨어울프로 변이하기라도 했단 소리인가?”

세계정부 안보국 소속, 그랜트 대령의 말에 시에라가 그를 쏘아보았다.

평소라면 바로 이를 드러냈을 모욕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다나 아가씨가 센트럴 시티에 와 있는 지금은 아가씨를 보호하는 게 최우선이다.’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본가에서 갑자기 꽁꽁 숨겨오던 다나에 대한 정보를 보내오며 그녀를 지키라고 한 것은, 지금과 같은 일을 예상했기 때문이리라.

‘사도께서 원하신다면 그것이 최우선사항. 우리가 앞장서서 이번 일에 끼어들 필요는 없다.’

그녀에게는 이 일의 주범을 잡는 것보다 다나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시에라가 그렇게 입을 다물어 버리자 그랜트 대령의 화살은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

“불과 광채께서는 어떻지? 놈들에게 불이 함께한다는 소문마저 돌던데?”

“소문은 소문일 뿐. 억측으로 사도를 모욕하지 마시오.”

인페르노 클랜의 센트럴 시티 지부장 알론소는 그랜트의 말을 일축했다.

대외적으로는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그들 또한 리처드가 성진에게 붙잡힌 후, 사도의 부재사실을 숨기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성진의 행보를 따라 알게 모르게 세계정부를 이루는 톱니바퀴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던 것.

“태평교단은?”

“우린 원래 전도 외에는 관심 없소.”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사태를 파악한 사람도,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도 아무도 없군.”

암묵적으로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며 지내오던 그들이었다.

성진이 일으킨 유례없는 사태에 모두 모이긴 했으나 먼저 움직이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총대를 메겠다.”

“안보국이 이번 사태를 맡겠다고?”

“불만인가? 불만이라면 대안을 말해보시지. 대안이 없다면 잠자코 내게 협조해라.”

사도 소유의 클랜들은 각자의 임무만 지장 없이 해결하면 자신의 사도에게 보호받을 수 있다.

반면 세계정부 소속인 그랜트는 언제든지 모가지가 잘릴 수 있는 공무원이었다.

‘결국 이번 일로 제일 크게 문책당할 건 나다. 그렇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황을 내가 통제해야 해.’

“알파카 놈들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은 상태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힘이 필요하겠지. 시에라.”

“왜? 우리 강아지들을 보내 달라고? 네가 총대를 메겠다고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우리한테 희생을 떠넘겨?”

“전투원을 내놓으라는 게 아니다. 약을 내놔라.”

“흐음?”

“네놈들이 개발하고 있는 행맨. 그거라면 아무한테나 먹여도 늑대와 같은 전투력을 발휘한다지?”

행맨 개발은 카르텔의 최우선 목표지만 단순히 샘플을 제공하는 정도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약만 제공해라. 소탕은 이쪽에서 알아서 하지.”

“행맨은 아직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마약류다만?”

“내가 먹을 것도 아닌데 상관없지.”

이곳에 모인 이들 이외의 다른 일반 플레이어들에게 행맨을 먹인다.

센트럴 시티의 모든 일반 플레이어들이 행맨을 복용하고 폭주한다면 클럽 알파카라고 해도 어쩌지 못하리라.

행맨은 전투에 활용하기 위해 만든 약이다 보니 독무처럼 연기로 만들어 뿌리는 것도 가능했다.

작정하고 도시 전역에 대량살포하면 폭주한 놈들이 알아서 약을 뿌리고 다닐 터였다.

“전부 들어 엎겠다고?”

“센트럴 시티 바깥으로 문제가 퍼져나가는 것보단 차라리 목격자를 남겨두지 않는 편이 낫다.”

세계정부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세상.

센트럴 시티를 운영하는 그들에게는 원한다면 문제가 생긴 플레이어들을 처분하고 없었던 일로 만들 권한이 있었다.

“피차 책임지고 싶지 않다면 이거면 되겠지?”

다만 이번엔 숫자가 좀 컸다.

“이만한 인원수를 처분했다간 여파가 클 텐데 뒷감당은 어떻게 할 셈이지?”

“뒷감당? 여기서 전투원 200을 갈아 마신 놈들과 싸우고 싶은 놈이 있다면 반대하도록.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 또 이겨도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지 뻔히 알지 않나?”

직접 손을 대면 피를 볼 것은 뻔한 일.

그럴 거라면 차라리 행맨의 힘을 이용해 센트럴 시티를 통째로 리셋하는 것이 낫다는 소리였다.

“인페르노 클랜은 회차 리셋에 찬성한다.”

모두가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사이, 인페르노 클랜이 그랜트의 제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사도인 리처드 카이만이 부재중인 지금, 회차 리셋을 감행해도 인페르노에는 그들을 벌할 사람이 없다.

‘일단 문제해결을 해놓고 책임은 나중에 떠넘기면 된다.’

여기에 시에라도 동의했다.

“약만 제공하면 된다 이거지? 그런 거라면 우리도 찬성.”

다나의 보호가 최우선인 웨어울프들에게 일반 플레이어들의 생명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각자 이유는 달라도 일반 플레이어들의 목숨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똑같았다.

“우리 교단도 동의하지.”

“그걸로 문제가 해결된다면야 우리 상관없어.”

“결정났군.”

그날 정상회의는 센트럴 시티에 머물고 있는 일반 플레이어 약 1,000명에 대한 행맨 투여를 결정했다.

그리고 회의장 안에는 누구도 모르게 숨어든 정령 하나가 그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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