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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부수는 플레이어-38화 (38/170)

<38>

모인 이들 중, 성진이 무슨 짓을 한 건지 파악한 플레이어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사장인 베르나데트가 쓰러진 순간, 그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31층쯤 되면 슬슬 플레이어들도 반응이 좋군.’

물론 그래 봐야 달라질 건 없었다.

콰자작!

“젠장! 조명탄!”

성진은 손가락을 튕겨 그 충격파로 방 안의 조명을 깨부쉈다.

따로 은신 마법을 쓸 것도 없이 어둠 속에 녹아들자, 플레이어들은 바로 조명탄을 찾았다.

‘판단은 빠르지만…….’

실전경험이 쌓였으니까 가능한 대응.

그러나 성진에게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물러터진 대응이었다.

까앙!

가장 먼저 자신의 머리 위에 광구를 띄워 올린 마법사가 성진의 손에 머리가 깨져 날아갔다.

우득!

이어서 조명탄을 쏜 총잡이는 탄의 궤적을 쫓아온 성진에게 팔이 부러졌다.

투다다다다!

성진은 빼앗은 총을 난사하여 탄창을 모두 비웠다.

찰칵!

사격이 멈추자 한 사제가 발 빠르게 광역 힐을 뿌렸다.

총에 맞았을 아군의 회복 겸 스킬 이펙트를 이용한 조명 확보는 성공적이었다.

대신 사제는 그 대가로 성진이 던진 빈 총이 입에 틀어박히며 이빨이 날아갔다.

퍼억!

광역 힐이 꺼지며 다시금 빛이 사라졌다.

불빛이 깜빡일 때마다 사람이 하나씩 쓰러졌다.

조명을 키려고 하면 표적이 된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플레이어들은 전법을 바꿨다.

“방 안의 구조는 우리가 더 잘 알아! 그냥 어두운 채로 싸워!”

이곳은 그저 어두울 뿐, 딱히 시야를 가리는 스킬 효과가 돌고 있는 게 아니었다.

49레벨 플레이어의 감각이라면 충분히 불 없이도 전투가 가능했다.

‘깨닫는 게 느려.’

일 대 다수.

혹시라도 어둠 속에서 아군을 잘못 공격할까 봐 사리던 플레이어들은 뒤늦게 공세로 돌변했다.

펄럭!

“거기냐!”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에 가장 앞에 서 있던 기사가 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가 찌른 건 성진이 아니었다.

“커헉! 대, 대리님……!”

성진을 유인해온 종업원을 찌른 기사는 당황하여 뒤로 물러났다.

“으악!”

“칵!”

“억!”

어둠 속에서 비명만이 난무했다.

뒷걸음질 치는 잠깐 사이에 방 안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은 성진의 손에 제압당했다.

딸깍.

그리고 불이 켜졌을 때.

“이제 대화를 나눌 준비는 좀 되었나?”

“네, 네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모르니까 묻잖아.”

상대의 반응에 성진은 한숨을 내쉬며 돌진.

기사의 머리를 손으로 잡아채서 바닥에 찍어 버렸다.

콰앙!

“어억……!”

기사는 그제야 처음에 베르나데트가 어떻게 당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힘이……!’

49레벨인 그가 눈으로 쫓지 못할 정도의 속도와 기사로 전직하고도 버티지 못할 힘.

어떻게 보아도 31레벨 수준은 아니었다.

“말도 안 돼……!”

영약이나 아이템 등으로 신체능력을 올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사람보다 신체능력이 앞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레벨이 낮을 때의 이야기.

게임과 마찬가지로 탑에서도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1레벨 당 전투력 차이가 커졌으므로 30레벨을 넘기고도 전투력 역전이 일어나긴 쉽지 않았다.

하물며 31레벨과 49레벨.

거의 20단계에 가까운 레벨 차이가 난다면야 더더욱.

‘보통 10레벨 차이라면 전투력도 10배가 차이 난다고 본다.’

40레벨 플레이어 한 명은 30레벨 플레이어 10명분의 전력이라는 셈.

물론 직업이나 세팅에 따라 오차가 있었지만 31레벨과 49레벨이면 100배에 가까운 차이가 있는 셈 아닌가.

‘말도 안 돼.’

이런 게 가능한 인간은 하나밖에 없었다.

“설마 사도?”

“네 녀석의 빈곤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마.”

퍽! 퍽! 퍽!

성진은 그렇게 말하며 널브러져 있던 베르나데트의 머리통을 집어 바닥에 두들겼다.

사람 머리가 삶은 계란 까듯 터지며 피가 튀었다.

그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성진은 지구에 돌아온 뒤 ‘다들 한대 얻어맞기 전까지 사람 말을 안 들어먹더라.’라는 교훈을 얻은 상태였다.

베르나데트는 실시간으로 얼굴이 퉁퉁 부어가는 와중에 발버둥을 쳤다.

“으윽! 그, 그만!”

“대화를 나눌 준비는 되었나?”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아직 계란 껍질이 안 부서졌군.”

성진은 다시 계란을 바닥에 내리쳤다.

그 쿵쿵대는 소리에 이번에는 바깥에서 대기하던 다른 종업원들이 방 안에 난입했다.

“무슨 일입니까!”

문을 박차고 들어온 종업원들은 자신들의 사장이 피를 철철 쏟으며 바닥에 처박히고 있는 모습에 일제히 굳어졌다.

“메추리 알들도 왔군.”

그 직후 성진이 한 일은 간단했다.

베르나데트를 한 손에 든 채, 다른 손으로 클랜원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내려친다.

이어서 다른 놈의 머리도 잡고 내려친다.

그걸 놓고 다음, 또 다음.

그저 상대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내려치는 단순한 동작.

대신 그것을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가공할 속도로 반복했다.

쿵! 쿵! 쿵! 쿵!

제압은 순식간이었다.

몇 번의 둔탁음이 흐른 후, 성진은 다시 베르나데트에게 물었다.

“대화를 나눌 준비는 되었나?”

“아, 알았으니까 말로……!”

준비가 완료된 그 모습에 성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말이 통하는군.”

성진은 베르나데트를 놔주고 종업원들을 향해 손짓했다.

종업원들은 순간 무슨 소린가 싶어 당황했으나, 베르나데트가 눈을 부라리자 그제야 황급히 의자를 가져왔다.

성진은 그 의자에 앉아 베르나데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 그래서. 너희는 어디 소속이지?”

“…… 그런 것도 모르고 쳐들어왔다고?”

“묻는 말에만 답해라. 또 그러면 다음번엔 아래턱을 뽑아 버릴 테니.”

베르나데트는 아래턱을 감싸 쥐며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저 미친놈의 손속으로 보아 저 말은 빈말이 아닐 터였다.

“우리는 글록 사(社) 산하의 플레이어 클랜이다. 탑의 상점에서 구할 수 있는 무기들을 바깥에 보내주는 역할이지.”

글록이라면 영화에도 많이 나왔던 권총이자, 그 권총을 만든 회사 이름이었다.

“총기회사가 기존의 기술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플레이어 무기를 연구하고 있는 건가.”

탑에서 나온 물건들은 바깥에서 비싼 값에 팔린다.

개인이 굴리는 돈보다 기업이 굴리는 돈이 많은 건 당연지사.

탑의 등장으로 기존 사업이 위험해진 기업들은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활로를 찾아 나섰다.

대기업이 플레이어 클랜을 후원하거나, 아예 소유한 경우가 흔해진 것.

군수산업이라면 특히 영향이 큰 편일 테니 이상할 일도 없었다.

“우리는 이 층에서 포인트를 벌어 본사가 요청한 아이템을 상점에서 구입해 바깥으로 나가는 인원들에게 들려 보낸다. 일단은 세계정부의 승인도 받은 합법적인 사업이지.”

“마약도 팔고?”

“그건 우리 소관 아냐. 그놈들이 멋대로 우리 업장에서 장사하는 거지.”

“그걸 그냥 놔두나?”

“그럼 어떡해?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약팔이 놈들은 스펜서 가문의 후원을 받고 있단 말이야. 사도의 입김이 닿은 놈들을 잘못 건드렸다간 모가지가 날아갈 텐데.”

베르나데트는 그렇게 말하며 성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도에게 밉보이지 않도록 조심히 장사를 해온 그녀였다.

그런데 사도 같은 놈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자신들을 두들겨 패고 있으니 별별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눈 깔아라. 대놓고 내게 정보를 캐려는 꼴을 그냥 봐줄 정도로 자비롭진 않으니.”

“크으…….”

이곳 ‘알파카 클럽’은 아쉽게도 세계정부의 후원을 받는 클랜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쓸 곳이 있지.’

어차피 세계정부의 입김이 닿아 있는 클랜이라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소문이 나 있는 법이었다.

‘놈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외의 다른 클랜들이지.’

ll1illliil처럼 구분하기 힘든, 속칭 바코드 클랜명을 사용하며 음지에서 불법적인 일을 하는 범죄클랜들.

술을 파는 이곳이라면 그런 놈들과도 연이 닿아 있으리라.

범죄자라도 술은 마실 테니까.

“베르나데트는 본명인가?”

“가명이 아닌가 의심하는 거야? 이건 본명 맞아. 증명하라면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ID를 포함한 탑의 시스템은 사도조차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리처드 카이만이 빙의를 통해 탑에 다시 들어왔던 것처럼 편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ID에 뜨는 이름은 그 사람이 가장 많이 불린 이름. 예명이 더 유명한 연예인 같은 경우에는 본명 대신 예명이 뜨기도 한다지. 하지만 일반인은 그러기 힘들어.”

“작정하고 어릴 때부터 이름 대신 ID로 쓸 호칭으로만 부른다거나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놈들은 애초에 세계정부에서 탑에 들여보내지 않을 거 아냐. 어지간한 로비로는 그놈들의 선별을 통과할 수 없다고.”

성진은 베르나데트의 반응을 체크했다.

‘거짓말은 안 했군.’

별거 아닌 질문을 던지고, 대답할 때의 마력반응을 살핀다.

마력을 따로 조종할 수 없는 일반인이라면 마력반응만 봐도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었다.

“아무튼, 보는 사람에 따라 문자도 다 다르게 나오니 오차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베르나데트가 내 본명 맞아.”

이름 인식만이 아니었다.

탑 내부에서는 어떤 언어나 문자를 쓰더라도 모두 통역, 번역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탑이 모든 것을 카르마로 판단하기 때문.

입장하려는 이들의 카르마를 검사하여 가장 많이 불린 이름으로 ID를 부여하고, 이미 입장전력이 있다면 재입장을 거부한다.

성진은 이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카르마를 청동망치에 옮겨 담은 상태였다.

덕분에 청동망치를 소환한 동안에만 원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역으로 이를 이용하면 ID의 이름을 바꾸는 것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아직 다른 우회법은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군. 귀찮은 일을 덜겠어.’

“자, 그럼 여기에 네가 알고 있는 이 층의 플레이어들에 대한 정보를 모두 적어라.”

“나보고 장사 엎으라고?”

“싫으면 목숨을 엎어주지.”

‘미친놈…….’

장사고 뭐고 일단 살아야 했다.

성진은 베르나데트가 명단을 작성하는 모습을 보며 아까 보았던 마력반응과 대조했다.

그녀가 딴마음을 먹고 잘못된 정보를 적더라도 성진은 전부 간파할 수 있었다.

“이게 끝이야!”

베르나데트는 한참 동안이나 명부를 작성한 뒤 이거 먹고 제발 좀 가달라는 듯이 명부를 건넸다.

‘이걸로 센트럴 시티에 상주 중인 세력들은 대충 확인했다.’

이렇게 정리된 자료를 보니 어디부터 건드려야 할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내 명령에 따른다.”

이것만큼은 베르나데트도 저항했다.

“미쳤어? 당신 세계정부에 수배 중이잖아. 아무리 목줄을 잡고 협박해도 그런 건 안 해! 세계정부와 적대해도 죽는 건 똑같은데!”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성진은 그렇게 말하며 정령술을 발동해 티타니아를 불러냈다.

은신 상태로 소환된 티타니아는 곧장 리처드 카이만의 마력을 뽑아내 불길을 일으켰다.

“내 말이 바로 불과 광채의 뜻이니까.”

사도 사칭.

성진의 말을 부인할 리처드 카이만 본인은 30층에 봉인된 상태였다.

지금부터 성진이 무슨 말을 하든, 진짜 사도 본인의 불꽃을 두르고 있는 이상 거짓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부터 내가 너희들의 보스다.”

성진이 몰고 온 폭풍이 31층의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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