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33화 (33/170)

<33>

플레이어들이 보는 앞에서 그만한 일을 벌인 성진이었으나, 그는 이후에도 이전과 똑같이 행동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차원문의 건설에 동참해야 했고, 성진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요정들을 통해 명령을 내려보낼 뿐이었다.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자신들끼리 충분히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세계정부 음모론이야 예전부터 얼마든지 있었는데 그게 다 진짜였다는 건가?”

“아니 음모론이 문제가 아니라 성좌라는 것들부터가 지구를 침략해온 외계인이라는 거잖아.”

“이제 우린 어떡하지?”

사도와 세계정부가 저런 존재라면 탑을 나가 그들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그러나 세계정부가 나쁜 놈들이라고 해서 그들을 막겠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도 힘들었다.

“엄청났지 그거.”

성좌의 눈.

마력을 느낄 수 없는 일반 플레이어들도 그 눈을 마주한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영혼의 격이 다르다.

모든 영혼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르마를 품고 있었고, 카르마를 품고 있는 이상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지구인들이 신처럼 숭배하고 있던 저 괴물, 성좌는 짐승이나 다름없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신이었다.

이해할 필요도 없이 체감할 수 있었다.

맨손으로 바다를 모두 퍼내고, 맨발로 히말라야를 모두 다지더라도 저것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플레이어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감히 성진을 찾아 말을 걸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성좌가 무서운 만큼, 그 성좌의 눈을 부숴버린 성진은 더 무서웠으니까.

그러한 상황에서, 성진은 자신을 찾아온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도망가지 않았군.”

남태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건 너무 올려치기고. 솔직히 도망치지 못했다가 맞지 않을까요?”

도망칠 힘도 힘이지만, 당장의 위험에서 도망쳐봐야 낙원이 없다는 점도 그랬다.

어차피 성좌는 그들을 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만일 남태수에게 사도 제안이 들어와 정말 제 한 몸은 건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진지하게 고민했으리라.

“그런 면에서 저만큼 믿을만한 놈이 없겠네요. 성좌가 저 같은 놈한테 사도 제안을 할 리가 없으니.”

남태수가 자학하며 너스레를 떠는 동안 지난 며칠 그의 고민과 선택을 지켜봤던 무르무르도 입을 열었다.

-마스터의 결정은 오롯이 마스터 혼자서 스스로 내린 결정입니다. 제 존재가 영향을 끼쳤을지언정, 제가 설득하거나 한 바는 없습니다.

그 말에 성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성진의 뒤에 서 있던 티타니아는 더러운 사령술사가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해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네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니 지금까지처럼 봐주진 않을 거다.”

“지금까지 그게 봐주던 거였어요?”

“내 부하가 되겠다면 최소한 짐덩이가 아니라 내게 도움이 될 능력은 갖춰야 할 게 아닌가.”

남태수는 그 말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걱정 마라. 네 능력을 뻔히 알면서 비현실적인 일을 요구하진 않을 테니. 당장은 ‘지구 전문가’로 충분하다.”

“전엔 길잡이라고 부르더니 좀 바뀌었네요?”

“길잡이는 신규채용했거든.”

성진은 그렇게 말하며 턱짓으로 멀리 선 사람을 가리켰다.

“제가 제일 먼저 온 사람은 아니었나 봐요?”

“고민이 길었으니까.”

그곳에는 무공을 수련하고 있는 다나가 있었다.

* * *

다나가 웨어울프가 된 것은 웨어울프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던 나이의 일이었다.

당시 스펜서 가문은 가문의 전원이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파격적인 결정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신시아는 사도로 선택받은 후 그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모든 사람의 입을 침묵시켰으나, 당시에는 아직 후보자에 불과했다.

성진에게 진실을 들은 다나는 방 안에 틀어박힌 동안 그 시절의 일들을 떠올렸다.

개중에서도 기억나는 것은 역시 그녀의 인생을 뒤집어 버린 그 사건이었다.

개는 바닥에서 먹어야지? 라며 자신의 식판을 집어던지던 녀석.

홧김에 주먹을 내지르자 그녀가 무슨 끔찍한 짓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달려와 오히려 그녀를 공격하던 다른 녀석들.

평소에는 그놈과 별 친하지도 않은 놈들까지 달려와 그녀에게 의자를 집어 던지고 하키스틱이나 야구배트를 휘둘렀다.

학생 간의 싸움을 말리려는 게 아니라, 마치 짐승에게 습격 받은 사람을 지키려는 것처럼.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곧장 등을 돌린 것이었다.

이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싸운 상대보다 훨씬 크게 다쳤음에도 판사는 그녀에게만 특수상해죄를 적용했다.

어린 마음에 다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 일 이후 다나는 학교에 나가지 않고 방황했다.

가문에서는 사도 시련이라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녀를 붙잡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다나도 본성은 얌전한 아이였던지라, 가출해서 돌아다니다 보니 제 혼자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언니를 본 순간, 다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거, 누구야?’

웨어울프로서 강화된 그녀의 감각은 접시 위의 굽지 않은 스테이크가 사람의 간이라는 것도, 심지어 자신이 아는 사람의 간이라는 것까지 알려주었다.

‘너를 욕했던 녀석.’

‘사람을 죽였다고? 나 때문에……?’

그놈을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다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생각만 하는 것과 실천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닌가?

다나는 진심으로 그럴 생각 따윈 없었다.

‘네가 원했잖니.’

‘내 생각을 읽은 거야? 혈족 스킬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구나.’

‘당연하지! 아무리 그래도 그래선…… 그래선 안 되는 거잖아!’

‘그럼 어디까지면 네가 받아들일 수 있겠니?’

‘……!’

너무도 순수한 그 질문에 다나는 그제야 제 언니 신시아의 광기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행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겠다는 비뚤어진 가족애.

다나가 아무리 방황해봐야 신시아는 사고방식 자체가 달랐다.

충격을 먹은 그녀는 방에 틀어박혔다.

이튿날 다나의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의 실종소식이 들려왔다.

그다음은 다나를 욕했던 학생의 가족과 친지들.

이어서 그 상황에 동참했거나, 방관했던 관계자들까지.

노골적인 실종사건.

판사조차 실종된 그 사건에 공권력이나 언론을 포함, 수많은 이들이 스펜서 가문을 물어뜯으러 달려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청문회 자리에서,

신시아는 사도의 권능을 발했다.

새로운 사도의 탄생.

세계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펜서 가문을 최고위원회에 편입시키고, 신시아 스펜서의 사도 위(位)를 인정했다.

신이 지배하는 세상.

신의 사도는 인간사 모든 일의 꼭대기에 위치했다.

감히 사도에게 청문회를 요구했던 지방정부와 언론사들은 일제히 박살 났다.

이 일로 세계가 하나 된 지금도 구 영국령에 해당하는 땅은 스펜서 가문의 소유 하에 있을 지경.

신시아의 모든 행보는 긍정되었다.

그럴수록 다나의 죄책감은 커져만 갔다.

날이 갈수록 스펜서 가문의 힘은 커져만 갔고, 웨어울프의 숫자도 늘어났다.

그에 따라 불법 장기매매의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다나는 가문 내에서 소수의 양심 있는 자들과 함께 그에 반대했으나, 이미 웨어울프가 된 이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었기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신시아는 모든 반대파를 처형하는 와중에도 다나를 용서했다.

자신을 믿고 따라오던 이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은 용서받았다.

그 용서는 어떠한 처벌보다도 다나의 심장을 깊게 찔렀다.

결국 실패한 다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탑으로 향했고, 이곳에서 성진을 만났다.

그는 그녀보다 훨씬 거대한 적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세계정부에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혀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리고도,

신과 같은 존재와 싸우면서도 옳은 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가 있었다.

결론을 내린 다나는 방을 나섰다.

“제가 당신을 돕게 해주세요.”

남태수가 성진을 찾아오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 * *

“그래서 그걸 받아줬다고요?”

“아니 거절했다.”

“……?”

“대신 조건을 걸었다.”

지금까지 다나가 살아온 삶이 어떠했든 성진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건 내게 도움이 되냐는 것이니까.”

남태수는 사령술사로 전직하여 본인의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무르무르와 교대하거나 마티아스를 불러내는 등 나름대로 활약할 수 있었다.

반면 다나는 광전사로, 가진 건 사실상 전투력뿐.

그렇다면 그 전투력이라도 충분히 강해야했다.

“무공을 하나 가르쳐주고 시험을 보기로 했다.”

탑의 스킬 중에는 마법만이 아니라 무공도 존재했다.

플레이어는 이러한 무공을 스킬북으로 배우거나, 관련 직군이라면 레벨을 올려 직접 찍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무공을 사용하는 플레이어야 얼마든지 있었지만, 성진이 요구하는 것은 달랐다.

“제가 마법 배우는 것처럼 스킬이 아니라 진짜 무공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내가 31층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검기를 발현한다면 데려가 주기로 했지.”

“잠깐 그게 말이 돼요?”

성진이 내건 조건은 듣고 있던 남태수가 어이없어할 정도의 조건이었다.

“검기면 전사계열 2차 전직 스킬이잖아요. 고작 며칠 배운 걸로 그런 걸 어떻게 써요? 진작부터 마법을 배우고 있던 저도 기초마법만 쓰는데.”

이제 고작 10레벨 기본 스킬이나 마법으로 쓸 수 있게 된 남태수였다.

훨씬 일찍부터 마법을 배운 남태수도 그 정도인데, 이제 갓 무공을 배운 다나가 50레벨 스킬을 직접 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상식적인 녀석은 신성존재와 맞설 생각도 안 하지. 그런 녀석은 필요 없다.”

“허어…… 그럼 언제 31층으로 올라가실 건데요?”

“이틀 뒤.”

“걔도 그거 알아요?”

“당연히 말해뒀다. 충분하다고 답하더군.”

“충분하다니……?”

“빈 말은 아닐 거다.”

애초에 자질이 부족했으면 성진도 귀찮게 과제를 내어주는 대신 단칼에 거절했으리라.

다나에게는 충분한 자질이 있었다.

플레이어 유망주 정도가 아니라 무르무르와 같이 자신의 힘으로 강해질 수 있는 자질이.

성진은 다나에게 조건을 내걸었을 때를 떠올렸다.

‘검기요?’

‘그래. 탑의 모든 스킬은 실존하는 기술을 자동으로 발동시킬 뿐이다. 즉, 마력만 다룰 줄 알면 전부 직접 배워서 쓸 수 있는 것들이지.’

‘마력이라…….’

다나는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내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거 말씀이신가요?’

‘호오?’

그녀는 이미 마력을 느끼고, 또 그것을 다룰 수 있었다.

‘마력을 느끼는 건 웨어울프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걸 다루는 방법은 어디서 배운 거지?’

‘당신이 15층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요.’

다나는 설산의 보스전에서 성진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이 힘의 활용법을 깨우쳤다.

마력이 뭐 하는 힘인지도 모르고 한번 본 것만으로 그걸 따라 해낸 것.

‘당시에 내가 했던 걸 기억하나?’

‘네? 네, 대강은.’

‘여기서 그때 본 것을 펼쳐보아라.’

다나는 그 말에 인벤토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왜 검을 뽑지?’

‘예? 하지만 그때 그거…… 검술이잖아요?’

성진은 탑에 들어와서 한 번도 검을 든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가 사용한 무공을 ‘검술’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무공은커녕 마력에 대해서도 배운 적 없는 인간이.

천재.

지구상에 스킬이 아닌 진짜 무공이나 마법이 퍼진 적 없었을 뿐, 천재는 이곳에도 있었다.

“그 녀석에겐 이틀로 충분하다.”

성진은 그렇게 말하며 남태수를 돌아보았다.

“너랑은 다르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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