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32화 (32/170)

<32>

요정궁 내부 옥좌의 방.

“후우.”

티타니아는 이곳에서 리처드 카이만의 분신체를 회수해 봉인진 안에 가뒀다.

이제 리처드는 이곳에서 분신술을 해제하지도, 자살하여 본체로 되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태로 차원문에 마력을 공급하는 배터리가 되리라.

“봉인 완료했습니다. 분신체를 제가 지키고 있는 이상, 30층에서 이 자를 탈출시킬 수 있는 존재는 없겠지요.”

-잘했다.

“허나 바깥에 있을 이 자의 본체도 그냥 잠든 상태로 방치되고 있을 테니 몇 년이고 이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본체가 죽어도 이 시스템은 깨질 테니까요.”

-괜찮다. 어차피 탑의 끝에 도달하는 데 몇 년씩 걸리진 않을 테니까.

게다가 성좌가 이 모든 일들을 알아챈다고 해도 즉시 지구에 강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들킨다고 해도 한동안은 여유가 있다.

그러니 모든 걸 완벽하게 숨기겠다고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탑에 끝에 올라 티타니아 너를 이곳에서 꺼내주마.

“선생님…….”

티타니아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주먹을 꼭 쥐고 가슴에 얹어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요정왕의 유전자를 이용해 태어난 이론상 가장 완벽한 요정.

티타니아는 이성과 논리, 효율을 중시하는 요정족 중에서도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타니아는 오히려 다른 요정들보다 감정적인 편이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저 때문에 선생님께서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답니다.”

그녀에게 성진은 스승이자, 부모이자, 가족이며, 유일한 존재였다.

자아가 여물기 전,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잃은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무거운 의무와 성진뿐이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따르듯 그녀가 맹목적으로 성진을 따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기일 뿐.

성진을 향한 그녀의 마음은 언제부턴가 달라졌다.

“선생님께선 해야 할 일을 하세요.”

티타니아는 그녀의 마음을 숨기고 성진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요정왕의 후계자인 요정공주로서의 자존심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죽어 버린 요정왕을 대신해 유일한 가족이 되어준 인간을 향한 가족애였으며,

끝내는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킨 소녀심 때문이었다.

-그래 일단은…… 이 녀석의 정체부터 확인해봐야겠지.

세계정부의 비밀을 아는 듯 보이던 의문의 플레이어.

다나를 추궁해볼 시간이었다.

* * *

다나는 성진이 사도와 싸우던 모든 광경을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리처드 카이만, 불과 광채의 사도……!”

처음 리처드 카이만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녀는 이를 악 물고 도망칠 생각만 했다.

그의 만행은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사도를 막아설 능력이 없었으므로.

바로 도망치지 않은 것은 남태수가 리처드에게 붙잡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성진이 나타나 리처드를 한주먹에 날려버렸을 때, 다나는 리처드와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사도?’

사도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사도뿐.

그녀 또한 현대 사회의 상식이나 다름없는 그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던 건가?’

세계정부에 대항하는 사도.

만일 주성진이 바로 그녀가 찾던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어서 성좌의 눈까지 등장한 모든 전투가 끝났을 때, 다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성진을 기다렸다.

“그래서.”

티타니아에게 리처드 카이만의 뒤처리를 맡긴 성진은 다나를 향해 물었다.

“저 사도가 너를 잘 아는 모양이던데.”

“제 언니가 사도니까요.”

그 발언에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티타니아가 성진에게 붙여놓은 그림자 요정들이었다.

2명은 다나의 급소를 노렸고, 2명은 성진의 몸을 지켰다.

성진에게 호위 따윈 필요 없을 테지만 티타니아는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며 그에게 호위를 붙여두었다.

성진으로서는 24시간 붙어서 잡무를 맡길 사람이 생긴 셈이었으니 그도 굳이 거부하진 않았다.

덕분에 이번 전투 내내 유사시에 바로 대응하기 위해 근처에서 대기하던 그림자 요정들이 다나의 말에 반응한 것이었다.

“손 떼라.”

성진의 말에 다나의 급소를 노린 그림자 요정들의 무기가 치워졌다.

그러나 성진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너도.”

다나는 그제야 그림자 요정들의 몸통에 대고 있던 자신의 손을 뗐다.

“유망주라고 들었는데 생각 이상이군. 무기를 꺼내 들 시간이 없다고 바로 발경부터 시도한 건가?”

이런 식의 주저 없는 대응은 다나를 단순한 유망주로 생각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네 언니가 사도라는 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라. 대답 여하에 따라서 너는 이곳에서 죽는다.”

“……!”

성진은 담담히 말했으나 그것만으로도 숨 막히는 살기가 뿜어졌다.

다나는 살기를 받아내면서도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신시아 스펜서. 침묵과 광기의 사도이자, 세계정부 고문위원, 스펜서 가문의 당주. 그리고 스펜서 가문은…….”

“웨어울프 가문이겠군. 너도 그 가문의 일원이었나?”

성진은 뻔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받았다.

“침묵과 광기의 성좌는 항상 웨어울프만을 사도로 삼지. 지구에서도 그건 다를 바 없는 모양이군.”

웨어울프는 후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종족이었다.

침묵과 광기의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웨어울프로 종족을 바꿔야만 했다.

“맞아요. 언니는 사도로 선택받기 위해 가문에 소속된 일족 전체를 늑대인간으로 만들었어요. 저는 거기에 반대하다가 가문에서 제적당했고요.”

다나가 세계정부의 주축 중 하나인 스펜서 가문 출신이라는 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제적당하는 과정에서 다나의 존재는 완전히 비밀에 부쳐졌다.

세계정부의 사도인 리처드 카이만조차 동생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그게 다나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던 것도 이 때문.

“너는 반대했다? 왜지?”

그녀의 언니가 사도로 간택된다면 가문 전체가 성좌의 비호를 받을 수 있었다.

현시대에서 성좌의 비호란, 구시대의 핵무기 보유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였다.

실제로 스펜서 가문은 가주인 신시아의 사도지정 이후, 세계정부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가문으로 우뚝 섰다.

그 선택으로 가문이 승승장구하는 만큼 반대편에 섰던 이들의 입지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뻔했다.

그런 뻔한 미래를 알고서도 반대했다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건…… 웨어울프의 페널티 때문이에요.”

“보름달이 뜨면 광폭화하는 걸 말하는 건가.”

웨어울프의 광폭화.

그것은 유전자에 각인된 신성마법의 일종이었다.

“광폭화에 저항할 방법은 몇 가지 있지만, 그중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생간을 먹는 것이지.”

달빛을 받아 광폭화한 늑대인간이 인간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같은 인간의 생간을 먹어야 한다.

정확히는 늑대의 피를 받아들이기 전, 원래 종족의 간을.

“인간이라면 인간의 간을, 요정이라면 요정의 간을. 타인의 간을 뜯어먹고 사는 삶을 견딜 수 없었나 보군.”

다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가문에 소속된 웨어울프는 매번 보름달이 뜰 때마다 산 자의 간을 빼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다나는 그러한 스펜서 가문의 출신으로서 세계정부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스펜서 가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웨어울프들의 종가로 군림하며 이 사실을 숨기고 세계정부를 통해 간을 수급하고 있습니다.”

“장기기증이 있으니 간 정도는 합법적인 방법으로도 구할 수 있을 텐데?”

“예. 언니는 그렇게 말하며 가문의 사람들을 설득했죠. 하지만 현재 지구상의 웨어울프 숫자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합법적인 루트로 구할 수 있는 간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었다.

광폭화를 풀기 위해선 ‘생간’이 필요했으니까.

결국 스펜서 가문은 다나의 예상대로 불법적인 루트에 손을 뻗기 시작했고,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던 다나는 가문에서 제적당했다.

충격에 빠져있던 플레이어들은 어느새 옆에서 진행되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스펜서 가문이 겉으로는 명문가 행세를 하면서 뒤로는 사람들을 납치해 간을 빼먹는다고……?”

심지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한두 명 납치하는 걸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완전히 기업화되어 가축을 도축하듯 매달 엄청난 숫자의 인간이 희생되고 있는 것.

“맙소사.”

플레이어들은 그제야 오늘 자신들이 겪은 일의 의미를,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성좌가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악행.

마력감응 탓에 아직까지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남태수는 그보다 더 큰 충격에 경악했다.

‘그간 세계정부가 나쁜 놈들이라곤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예시를 들이밀자 머리로만 알고 있던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강해지기 위해 엄한 사람들을 납치해다 잡아먹고 있다는 소리 아냐……?’

성진은 그때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내 눈에는 지금 너도 제정신인 걸로 보이는데. 그럼 너도 똑같이 납치한 사람들의 간을 먹은 거 아닌가?”

“그, 그건……!”

다나가 벌떡 일어서자 또다시 그림자 요정들이 반응했으나, 성진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저는 더 이상 사람을 해치지 않기 위해 탑에 들어온 거예요! 여기선 광폭화 해제 포션을 구매할 수 있으니까요!”

탑의 광폭화 해제 포션은 웨어울프 플레이어들이 보름달이 떠도 스테이지를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포션이었다.

당연히 이것도 탑을 졸업할 때 들고 나갈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러는 사람은 적었다.

왜냐면 가격이 저렴했으니까.

똑같은 효과인 인간의 생간은 바깥에서도 구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탑에서 들고 나가는 물건은 보통 ‘탑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졸업 플레이어들이 조금이라도 비싼 물건을 들고 나가려는 건 당연한 일이고, 탑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아이템들은 바깥에서 매우 비싼 값에 팔렸다.

비싼 아이템 위주로 챙겨나가야 탑에 들어올 때 빌린 청약금도 갚고, 앞으로의 활동자금도 확보할 수 있으니 광폭화 해제 포션 따위를 가지고 나가려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저는 탑에서 나가지 않고 평생 이곳에서 살 생각으로 들어왔어요. 여기라면 죄를 짓지 않아도 되니까!”

감정의 분출.

성진은 그것을 통해 다나의 내면을 읽어냈다.

‘NPC를 향한 높은 도덕성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건가. 아니면 탑에서 살 생각으로 들어온 탓에 NPC도 같은 인간으로 느낀 탓?’

사도와 세계정부가 만들어둔 시스템이었다.

그녀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었으리라.

‘그래서 도망쳤군.’

젊다 못해 어려보이는 다나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기껏해야 고등학생쯤 될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일이었으니까.

물론 성진에겐 어찌되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모순이군. 피해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으로 자기 혼자 죗값을 치르려는 건가.”

“그런 건 저도……!”

아픈 곳을 찔린 다나는 담담한 말에도 격렬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성진은 그저 약점을 찌르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기기 위해 말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멍청이들보단 훨씬 낫다.”

성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격려하듯 다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죄는 죄다. 하지만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상 인간은 더 나아질 수 있다.”

“네……?”

한때 성진을 일으켜 세웠던 말을, 이번에는 성진이 다른 사람에게 전했다.

다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순 없었으나, 어깨에 닿은 손의 따뜻함은 전해졌다.

“가문의 일원으로서 속죄하고 싶나?”

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보여주마. 이것이 성좌의 진실이다.”

성진은 남태수에게 보여주었던 별들의 비밀을 30층에 있는 모두에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을 보여준 성진은 고요 속에서 입을 열었다.

“이대로 탑을 올라봐야 너희들을 기다리는 것은 성좌의 식탁에 오르는 것뿐. 살고 싶다면 내게 협조해라.”

살고 싶다면 허튼 생각 말고 공사나 열심히 하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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