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20화 (20/170)

<20>

성진과 눈이 마주친 순간, 오스본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천적을 마주한 먹잇감이 느끼는 감각과도 같았다.

어떻게 같은 사람을 보고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있는가?

그가 타고 있는 본 드래곤 때문에?

아니면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 자신을 맨눈으로 정확히 직시하는 모습 때문에?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계정부의 인간사냥부대인 추살대의 대장이 사람을 보고 공포를 느낀 것이었다.

누가 들으면 헛소리 말라고 일축할 만한 일이었으나, 이건 현실이었다.

휘릭!

한동안 오스본을 바라보던 주성진은 관심 없다는 듯이 첨탑의 창문을 통해 왕궁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왕궁에서 빛이 치솟으며 하늘이 열렸다.

“……!”

현세에 강림한 천사의 모습에 오스본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의 의지 따윈 상관없었다.

천사의 광채는 단순한 빛이 아니라 물리적인 힘을 지닌 마력이었다.

감히 인간이 항거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의 격차가 그곳에 있었다.

다만 모든 인간이 천사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었다.

퍼억!

빛이 터져 나갔다.

추락한 천사가 지면에 처박히나 싶은 순간 방어결계가 펼쳐졌고, 파괴광선이 발사되었다.

광선은 성진을 따라 움직이며 레이저 각인처럼 도시에 성흔을 남겼다.

건물이 반듯하게 잘려 나가고 단면이 용암처럼 녹아내렸다.

대로가 갈라지며 십 수 미터의 불길이 치솟았다.

광선이 지나간 자리를 중심으로 사제의 스킬 중 하나인 신성한 불꽃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불꽃은 피아를 가리지 않았다.

도시가 화마에 휩싸이고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사람이 휘두른 주먹에 포탄이라도 발사된 듯한 충격파가 터졌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정작 충격파를 발견하고 눈을 돌려도 성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추살대 대장인 그조차 전투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 이건……!”

눈의 움직임보다도 빠르게 진행되는 싸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성진을 찾던 오스본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광선을 인지하는 것이 늦었고,

이내 눈앞이 깜깜해졌다.

* * *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남태수는 무르무르의 보호 아래 도시 바깥에 대피해 있었다.

그러나 바깥에서도 충격파가 터져 나가는 모습이나, 파괴광선이 도시를 마구 그어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결국 천사도 직접 부르고, 싸움도 혼자 할 거면 맵 바깥에서 네 몸을 찾아올 필요도 없었던 거 아냐?”

“마냥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제가 언데드 군단으로 시선을 끌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니까요.”

천사가 소환에 응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자기가 해결하려는 대신 다른 천사들이나 성좌를 불렀을 수도 있었다.

그 경우 본신의 힘을 잃은 지금 상태로는 아무리 성진이라도 위험했으리라.

“저 망할 천사 놈이 화려하게 날뛰어준 덕분에 NPC도 대부분 죽었군요. 군단을 물려도 되겠습니다.”

그새 전투를 끝내고 천사의 영혼을 흡수한 성진은 수도의 NPC 영혼들을 회수하고 있었다.

무르무르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빙의를 풀고 남태수가 들고 있는 영혼석으로 되돌아왔다.

-기껏 얻은 몸인데 벌써 놔줘야 한다니 아쉽군요.

“가져가면 안 돼?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탑 내부에선 시스템이 아이템으로 지정해 준 것만 다음 층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NPC, 그것도 맵 바깥에 있던 제 몸을 가져갈 순 없겠지요.

탑에서는 스테이지 내에 있는 물건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대신 다음 층으로 넘어갈 때는 두고 가야 했다.

무르무르의 몸도 마찬가지.

이번 층에서처럼 무르무르를 직접 소환하여 전력으로 삼는 건 우연히 이곳의 배경이 그의 고향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도 마스터께서 리치를 생성할 수 있게 되시면 저를 직접 소환해 부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스킬로 생성하는 리치는 이렇게 강하지 않잖아.”

-그거야 그렇지만요. 하지만 직접 사령술을 배워 리치를 만드는 수준까지 도달하면 다를 겁니다.

남태수는 그 말에 무르무르가 데스나이트로 소환했던 마티아스를 떠올렸다.

데스나이트가 원래 강력한 언데드이긴 했지만 마티아스는 거의 보스몹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기야 합니다. 탑에서 스킬로 제공하는 사령술은 말만 사령술이지 영혼을 다루는 부분이 빠져 있는 반쪽짜리니까요.

영혼을 먹기 위해 탑을 만들었으니 사령술사들이 영혼을 빼가게 둘 리가 있겠는가.

성좌들은 일부러 사령술 스킬을 조작해놓았다.

-덕분에 저처럼 영혼을 언데드에 넣고 싶으시다면 직접 사령술을 배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네 영혼은 지금도 스켈레톤으로 소환해서 투구로 쓰고 다니고 있잖아. 그런 식으로는 안 되나?”

-그건 제가 탑의 아이템인 리치의 영혼석으로 판정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일종의 소환 아이템이지요.

반면 그 외의 영혼들은 탑의 굴레에서 해방시킨 영혼들이었다.

즉, 무르무르는 본인이 사령술사라 가능한 예외 케이스인 것.

그러는 사이, 천사를 끝장낸 성진이 남태수를 찾아왔다.

“천사의 포획은 예정대로 성공했다. 이걸로 30층까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아자키엘이 1층부터 10층까지를 담당했다면, 레베키엘은 11층부터 30층까지를 담당한 천사.

이것으로 현재 지구의 탑은 1층부터 30층까지 관리자가 공석인 셈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

“이번에 전투천사의 힘을 흡수한 것으로 한정적이나마 내 무기를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의 업적이 기존의 카르마와 중복됩니다.]

[<천사 살해자(영웅)>에 카르마가 더해집니다.]

[보유한 카르마만큼 힘이 회복됩니다.]

“무기요?”

남태수가 보기에 성진은 굳이 무기가 필요 없는 인간이었다.

때문에 되묻긴 했으나, 사실 성진의 입장에선 중요한 문제였다.

당장 이번 전투만 해도 파괴광선과 방어결계를 힘으로 뚫은 게 아니었으니까.

‘일개 전투천사를 잡는 데도 이렇게 고생해서야 대천사급 이상이 튀어나오면 귀찮아지겠지.’

하지만 무기가 있다면 달랐다.

“그래. 내 무기인 청동망치가 있다면 더 이상 전투천사 따위에게 고전할 필요는 없겠지.”

“청동망치라니? 청동기면 철기보다 약한 거 아니에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장장이 신이 살던 시기에는 오히려 청동기 기술이 더 뛰어났으니까.”

당시에는 철기의 질이 좋지도 못했고, 철의 생산량도 적었다.

청동을 잘 다루는 것이 중요한 시대였으니 대장장이 신도 청동 무기를 만든 것.

어차피 신성무구는 그 자체의 강도보다도 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으므로 재질은 상관없었다.

-마스터, 왕의 계약자께서 다루시는 청동망치는 물질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무기야?”

-신성존재에게 피해를 입히려면 물리적, 마법적 위력보다도 ‘업’이 더 중요하니까요.

업(業).

카르마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영혼 그 자체를 성장시키는 힘이 있었다.

성좌들이 인간의 영혼을 잡아먹는 이유도 손쉽게 업을 쌓기 위해서였으니 그 중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신이 직접 만들었고, 난쟁이 종족의 명운이 걸렸으며, 성좌를 쓰러뜨린 적이 있는 무기. 온갖 차원을 다 뒤져도 하나의 무기에 이만한 업이 쌓인 경우는 손에 꼽을 겁니다.

“잠깐, 성좌를 쓰러뜨렸다고?”

-그놈들이 강력하긴 해도, 절대적인 건 아니니까요.

신성존재라도 죽을 수 있다.

그리고 그걸 해낸 남자가 바로 남태수의 눈앞에 있었다.

“슬슬 다음 층으로 넘어가지.”

본격적인 탑 등반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성진과 남태수는 20층에서 붙잡은 천사에게 정보를 짜내 숨겨진 아이템을 박박 긁어가며 진행했다.

“감시자가 없다고 딱히 진행이 빨라지진 않네.”

-아무래도 디펜스 층이 많으니까요.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전투 경험을 쌓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들이 계속 밀려오는 디펜스 층을 만든다!

이러한 맥락으로 만들어진 21~30층 구간은 강하다고 빨리 끝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천사가 지켜보지 않는다고 해도 다음 층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미션을 깨야 합니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디펜스 맵은 클리어하는 시간이 정해져있지요.

남태수는 전투에 참가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소환수를 밀어 넣고 자신은 뒤에 빠져 있는 스타일이었다.

즉, 한가했다.

처음에는 그간 성진을 쫓아오느라 힘들었으니 쉬어갈 수 있어 좋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며칠째 이어지니 슬슬 몸이 근질거렸다.

“그래. 이럴 때 연습해야지 어쩌겠어. 무르무르, 마법 좀 가르쳐 줘.”

-이전에도 말했듯 마력을 감지하는 게 먼저입니다만, 혹시 느껴지신 겁니까?

“응.”

태생적으로 마력에 친숙한 종족이라면 모를까, 지구에서 나고 자란 남태수가 마력을 감지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무르무르 또한 1년쯤은 걸릴 거라 예상했던 일.

그러나 남태수는 오히려 일반적인 마법사들보다 훨씬 빠른 기간 만에 마력을 감지해냈다.

“아무래도 20층에서 그렇게 대량의 마력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있었던 게 좋게 작용한 것 같아.”

20층에서의 일 이후로 명상할 때마다 묘하게 간질간질함을 느낀 남태수는 어느 순간 눈이 탁 트이듯 마력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좋습니다! 아무래도 제 예상보다 진도를 앞당길 수 있겠군요!

성진과 함께 다니며 겪을 일들이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당장 이번에 마력을 느낀 것 외에도 앞으로의 진도를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뺄 수 있으리라.

어쩌면 남태수가 정말 무르무르가 보기에도 썩 괜찮은 사령술사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무르무르는 드물게도 신을 내며 말했다.

-일단 마력을 느꼈다면 그걸 조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마력은 사람의 염(念)에 반응하는 힘이니까요.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

“그렇게 설명해 봐야 어떻게 하라는 건지…….”

-사람이 생각할 때 뇌에 전기신호가 흐르고, 뇌파도 기계로 읽을 수 있지 않습니까? 미약한 전류지만 그것도 에너지입니다. 자신의 사념과 의지가 힘을 가진다고 인식하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될 겁니다.

실제로 뇌파가 마력을 움직이는 데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미지를 정리하는 건 도움이 되었다.

남태수는 무르무르의 말에 따라 집중했고, 이내 그의 말대로 마력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됐다!”

-아직은 조금밖에 안 움직일 테지만 연습하면 계속 늘어날 겁니다. 마력을 다루는 감각은 평생 연습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이 감각은 재능에 따라 늘어나는 속도가 다를 뿐, 연습하면 계속 늘어난다.

때문에 마력을 다루는 기술은 수명이 긴 종족일수록 유리한 점도 있었다.

“오오, 그러면 이제 나도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야?”

-마법이라고 다 어려운 것만 있는 건 아니니 그렇습니다만, 일단은 쓰려는 마법에 필요한 마력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겠지요.

“내가 지금 스켈레톤 하나 생성하는데 마력이 3 들어가니까 3만큼 움직일 수 있으면 직접 쓸 수 있는 건가?”

-스킬과는 달리 실제 사령술에서는 영혼까지 다뤄야 하니 조금 더 듭니다. 우호적인 영혼을 다루는 거라면 반대로 덜 들기도 하고요.

“적대적인 영혼이면 마력이 더 들어?”

-영혼한테 저주도 걸고, 고통도 가하고 그래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말로 설득할 수 있으면 마력을 아낄 수 있으니 설득력 또한 사령술사의 자질입니다.

“설득력?”

-영혼을 대하는 일은 결국 사람을 대하는 일 아닙니까. 반은 서비스직입니다 이거.

“내가 말빨이 좋은 편은 아닌데…….”

-걱정 마십시오. 마스터는 말빨만 안 좋은 게 아니니까요.

20층에서 언데드 백만대군의 위용을 봐버린 탓에 차마 영혼석을 집어던질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마법도 배울 수 있을 것 같고. 이런 식이라면 30층까진 손쉽게 올라가겠는걸?”

전혀 아니었다.

* * *

3일 뒤.

[진행에 따라 레벨이 상승합니다.]

[Lv.24 > Lv.25]

“어서 오십시오 용사님들! 우선 이쪽으로…….”

25층의 스테이지에 들어서자 안내인 NPC가 그들을 맞이했다.

이곳은 플레이어들이 소환용사가 되어 싸우는 곳으로, 디펜스 맵이라 오래 머물 순 없지만 용사랍시고 나름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층이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씻고 침대에서 잘 수 있어!’

성진과 함께 다니다 보니 스테이지를 깨는 건 걱정도 아니었기에 남태수는 대접받는 것만 생각하고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태수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 어라 그 대낫은? 설마 사령술사?”

“예, 그런데요?”

“이 간악한 사령술사가 용사님들 속에 숨어들어왔구나! 저놈을 잡아라!”

“엥? 엥?”

디펜스 맵에서는 아군 NPC를 지켜야 하니 싸울 수도 없었다.

“어떡해요, 성진 씨?”

덕분에 남태수는 저항도 못하고 밧줄에 꽁꽁 묶이며 성진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이곤 고개를 저었다.

“다들 사령술사를 싫어하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군.”

“예?”

“스테이지는 내가 알아서 깰 테니 감옥에서 마법이나 연습하고 있어라.”

“예???”

따뜻한 목욕물이 차가운 밤이슬로 바뀌고, 푹신한 침대가 딱딱한 돌침대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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