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남태수는 16층으로 올라가기 전, 잠시 대기실에 들러 스킬 포인트를 분배했다.
“흐흐흐, 이제 16레벨 스킬인 골렘소환도 찍었으니 탑의 공략은 두려울 게 없다.”
골렘소환 스킬은 언데드 생성과 달리 시체가 없어도 사용이 가능한 마법사계열 공통스킬이었다.
덕분에 시체가 없는 환경에서 사령술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스킬이기도 했다.
“거기에 난 레전더리 아이템인 골렘의 핵도 있지.”
[수호거상의 핵]
레전더리 재료 아이템
골렘 소환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소환 시 골렘에 모든 스탯 +40
소환 시 골렘에 물리 저항력 +800
소환 시 골렘에 속성 저항력 +620
소환 시 골렘에 저주 저항력 +40
(재료의 상태가 온전하지 못해 효과가 저하됩니다. 수리를 권장합니다.)
1층에서 성진이 버리고 간 기여도 보상.
덕분에 남태수는 골렘을 소환할 때 그것을 강화할 수 있는 이 아이템을 얻었다.
“비록 성진 씨한테 일격에 박살 나긴 했지만 1층에서의 위용을 생각해 보면 내 수준에선 확실히 오버스펙. 이거라면 동레벨 플레이어들은 우스운 수준이야.”
세계정부에서 1,202회차부터 추살대를 보내온다고 해도 스테이지에서 만날 때는 같은 레벨이리라.
그렇다면 남태수가 질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 어지간해서는 스테이지 내에서 위험할 일은 없다는 뜻.”
탑에서 죽을 때까지 사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세계정부에 잡혀 죽을 일은 없다는 소리였다.
제 목숨이 가장 중요한 소시민 남태수로서는 이만큼 든든한 점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걸 가지고 있는 건 성진 씨도 몰라.”
성진은 1층에서 기여도 보상을 확인하지 않고 지나갔다.
덕분에 성진은 남태수가 무엇을 골랐는지, 애초에 고르긴 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나, 나중에 가서 성좌와 싸우는 것까지 협력하라 할지도 모르니까 나도 도망갈 방법 하나는 남겨둬야지? 그러니까 이걸 숨기는 건 당연한 거라고.”
마냥 무책임한 합리화는 아니었다.
성진이 무리한 것을 요구하더라도 남태수가 거절할 방법은 없었다.
그가 만약 남태수를 버리고 가버리면 남태수 혼자선 진행이 불가능하니까.
그러나 수호거상의 핵이 있다면 5층처럼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스테이지에 남아 혼자 살아갈 수도 있었다.
말하자면 남태수에게는 최소한의 보험인 셈.
때문에 남태수는 대기실에서 무르무르의 영혼석까지 인벤토리에 넣어놓고 완전히 혼자가 되어서야 핵을 꺼내 볼 수 있었다.
“수리를 해야 하긴 하겠지만, 이 상태로도 사용은 가능하다고 하고. 어디 시험해 보도록 할까.”
성진과 함께 스테이지를 진행하며 소모품도 아끼고, 장비도 몰아주다 보니 포인트는 넉넉했다.
남태수는 대기실의 크기를 넓히고 골렘소환을 시험해 보았다.
그리하여 수호거상의 핵으로 소환된 골렘은,
“이, 이건 도대체…….”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 * *
잠시 후 16층으로 올라온 남태수는 여느 때처럼 먼저 진행 중이던 성진과 합류했다.
탑의 10층까지는 튜토리얼.
11층부터 15층까지는 자신이 고른 직업에 따른 파티 전투 연습이었다면, 16층부터는 본격적인 퀘스트 스테이지가 시작되었다.
“사도를 선별하기 위해선 단순히 잘 싸우는 게 다가 아니지. 여기서부터는 특정한 임무를 부여했을 때, 플레이어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느냐를 보는 스테이지다.”
때문에 16층부터는 다양한 해결법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보상도 달라졌다.
다만 성진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즉, 상황 제시를 위해 NPC가 많이 등장한다는 뜻이지.”
16층은 플레이어가 상단에서 고용한 용병이 되어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가는 스테이지였다.
문제가 있다면 그 상단이 노예상단이며,
잃어버린 물건은 바로 불법으로 납치되어 노예가 된 어린아이들이라는 점이었다.
“하아.”
“왜 한숨이지?”
“그럼 한숨을 안 쉬게 생겼어요?”
스테이지의 배경 설정이야 어쨌든 성진에게 걸린 이상 NPC는 그냥 몰살이다.
“아니, 저도 현실적으로 노예들을 잡아서 상단에 넘기는 공략법을 선택할 예정이긴 했지만요.”
애초에 남태수 자신도 특별히 도덕적인 인간은 아니었다.
아무리 인간같이 보여도 NPC는 NPC일 뿐.
인생을 걸고 탑에 들어온 이상 그런 기본적인 것도 생각해 두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이는 탑의 NPC들이 사실은 고통받는 영혼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 더 심화됐다.
NPC들의 입장에선 오히려 죽여주는 게 더 좋은 거 아닌가?
고통스럽게 죽이지만 않으면 말이다.
하물며 성진을 통해 영혼이 해방되는 건 오히려 감사받아 마땅한 일일 터였다.
NPC의 입장에서는 생명의 은인 그 이상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래도 이건 좀.”
처참하게 죽은 아이들의 시체가 가득한 방 안에서 남태수는 질색하며 말했다.
“무슨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염소도 아니고. 얘들은 사람인데 너무 잔인하잖아요.”
성진은 어린아이도 용서 없이 숨어 있는 걸 끌어내 하나씩 처죽여 버렸다.
머리로는 그게 NPC들을 해방시키는 일이란 걸 알아도 영화 속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무색해지는 그 모습에 오금이 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얘들도 떨고 있잖아요!”
실제로 그 모습이 너무 살벌하여 성진에게 해방된 당사자들의 영혼들도 무르무르의 영혼석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아, 아니에요. 저희가 감사해야죠.
-근데 정말로 구해주신 거 맞죠? 그냥 저런 걸 즐기고 그런 건 아니죠?
“이러니까 다나라는 그 유망주 아가씨도 성진 씨를 미친놈으로 보지!”
알고 봐도 무서운데 모르고 보면 어떻겠는가?
피 칠갑을 하고선 애들 모가지를 비틀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 있는 성진은 누가 봐도 사이코패스 그 자체였다.
함께 다니며 옆에서 지켜보니 남태수도 슬슬 성진에 대해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 양반, 완전히 15년간 군만두만 먹은 복수귀가 따로 없잖아?’
성좌를 족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인간.
정의감 때문에 놈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적들을 죽이는 것이 우선이고 사람들을 구하는 건 그 다음인 존재.
성진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을 치워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설령 그것이 성좌와는 상관없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천사를 죽이는 괴물.’
성진이 적개심을 불태우는 것이 인류의 적이라고 해서 그가 인류의 편인 건 아니란 소리였다.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는 법이다.”
“으힉, 사람 죽이고 좋아하면서 그런 소리 하니까 소름 돋잖아요!”
얼핏 들으면 그럴싸한 말이라 더 무서웠다.
-사령술사가 시체를 무서워하면 어떡합니까, 마스터?
“진짜 중요한 것을 잊지 마라. 외견에 눈이 멀면 어떻게 되는지 너는 알지 않나.”
“윽.”
양쪽에서 구박받은 남태수였으나 이번에는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아자키엘.
천사라는 가죽을 뒤집어썼을 뿐, 실상은 조악하게 기워 만들어진 임프에 불과했던 존재.
그 존재도 아는 남태수가 매번 이렇게 귀찮게 굴면 성진으로서는 현지 조력자를 갈아치우는 수밖에 없었다.
“…… 그야 그렇지만.”
“그게 바로 놈들의 노림수다. 먹잇감이 자신의 손으로 문을 열도록 만드는 것이지.”
남태수가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짓자 성진은 좀 더 설명해주었다.
“흡혈귀의 전설을 알고 있나?”
“흡혈귀요? 뱀파이어라면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뭘 이야기하려는지 알기 힘든데요…….”
“흡혈귀에 관한 전설 중에서 초대받지 못한 집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있을 거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나오는 곳마다 다 다르지만, 햇빛이나 말뚝처럼 일반적인 속성 중 하나였다.
“놈들도 마찬가지다.”
“……!”
“상세한 이유를 설명하려면 복잡해지지만, 그 강력한 놈들이 굳이 이런 귀찮은 방법을 쓰는 것은 다 그 때문이라고 봐도 좋다.”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지구인들에게 동의를 얻는 과정.
지구의 구성원들이 성좌를 반기게 되면, 성좌를 가로막는 카르마 장벽 또한 약해진다.
천사를 이용한 이미지 메이킹이나, 사도를 뽑아 사회를 장악하는 것은 모두 그런 이유였다.
“내가 실패하면 지구상에 이 사실을 아는 인간은 너밖에 없게 된다. 실패할 생각은 없지만 좀 더 진지하게 임해줬으면 좋겠군.”
성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피가 튀지 않은 자리에 적당히 걸터앉았다.
“네게 진지하게 임하라고 했으니 나도 너를 진지하게 대해야 앞뒤가 맞겠지.”
“아뇨, 대충 대해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항상 발 빼고 싶거든요? 점점 늪에 빠지는 기분인데요?”
“스테이지 공략 계획을 간단히 설명하겠다.”
“아니, 듣고 싶지 않다니까요?”
“20층에서 우린 어떠한 것을 손에 넣는다.”
남태수는 자신의 말은 들을 생각도 안 하는 이 망할 남자에게 최대한의 항의로 썩은 표정을 지었다.
‘20층이라면 왕국 수도 맵인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의 NPC가 등장할 테니 성진이 뭔가 일을 벌일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뭘 얻겠다는 건진 떠올리기 힘들었다.
“어떤 것?”
“그래. 그게 앞으로 우리 공략의 열쇠가 될 거다.”
“당신의 능력이라면 탑의 공략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텐데…… 설마?”
영혼해방은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탑의 끝까지 가도 부족했다.
성진은 놈들의 도청을 경계해 그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지만, 오히려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태수는 알아챌 수 있었다.
‘관리자 사냥.’
탑에 관리자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 그렇다면 성진은 탑의 꼭대기까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달려가리라.
‘이건 결국 성좌와의 싸움. 성진 씨가 관리자를 치워 버리려 하는 것은 당연해.’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하지만 탑의 관리자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극히 한정적인데.’
1층에서 아자키엘이 나타났던 것은 어디까지나 성진의 오류 때문.
일반적으로 천사들은 플레이어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놈들을 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탑의 설계오류와 맞먹는 수준의 미끼.
성진은 탑의 저층에 해당하는 20층에 바로 그런 게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침 그쯤일 테지.”
“뭐가요?”
“세계정부가 1,202회차에 들여보낼 추적자들이 우릴 따라잡는 것 말이다.”
흠칫!
슬쩍 흘러나온 살기에 남태수는 몸을 떨었다.
“더러운 것들을 한 번에 청소할 수 있겠군.”
‘이 남자는 절대로 힘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눈이 과연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는 것일까.
현시점에서 그 사실을 아는 인물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 * *
탑의 29층까지는 일반 플레이어라도 스펙이 부족해서 못 깨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거기까지는 어차피 템빨로 밀 수 있기 때문.
탑에 들어가기로 확정된 시점부터 탑 안팎으로 해당 플레이어에게 대출이나 아이템 대여 등, 지원을 받을 길이 열린다.
때문에 지구의 플레이어들은 아무리 능력이 없어도 30레벨은 찍는 편이었다.
그것조차 못 할 정도라면 애초에 탑에 들어갈 수 있는 허가 자체가 안 나올 테니까.
“그런데 타깃은 아직 20층도 안 지났다고?”
“놈들이 15층에서 모습을 드러낸 뒤로 20층에서 진행된 모든 스테이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직 16층에서 19층 사이에 있는 게 확실합니다.”
“이거 얕보인 모양이군.”
세계정부 안보국 소속 특수 범죄 수사대.
속칭 추살대.
탑에는 누구나 한 번밖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 탑 안에 숨은 범죄자를 잡기 위한 비 플레이어 부대였다.
비록 언제든지 탑에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소속원이 비 플레이어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그들을 얕보는 이들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써는 데 특화된 안보국의 칼날이었으니까.
금지된 스킬을 배우는 것이 허가된 합법적인 살인자들.
“장비는 모두 챙겼겠지? 그럼 바로 출발한다.”
[다음 층으로 이동합니다.]
[진행에 따라 레벨이 상승합니다.]
[Lv.15 > Lv.16]
1,202회차로 진입한 그들은 이미 성진과 남태수를 다 따라잡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