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15화 (15/170)

<15>

“눈의 상태를 보아하니 크게 뛰어다니다간 눈사태가 일어나겠군.”

“성진 씨의 능력이라면 눈사태쯤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지 않나요?”

“나야 상관없다만 보스 몬스터가 눈사태에 휩쓸려 버리면 찾기 힘들어진다. 그게 아니더라도 소란을 피우면 놈이 숨어버릴 수도 있겠지.”

무작정 뛰어다니며 찾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뜻.

“그럼 어떡하죠?”

“일단 정상에서 주변 시야를 확보한다.”

설산은 여러 봉우리들이 능선을 통해 이어져 있는 형태였다.

정상 근처에 보스가 있다고 해도 어느 봉우리의 정상인지 알 수가 없는 것.

결국 능선을 타고 이동하며 각각의 봉우리를 직접 확인해봐야 했다.

원래라면 토벌대 내의 레인저 계열의 플레이어가 하는 일.

“둘이 한다고 딱히 달라질 것도 없다.”

인원수라면 토벌대보다 남태수가 부리는 언데드가, 색적능력이라면 날고 기는 도적보다 성진이 더 뛰어났다.

성진은 3번째로 오른 봉우리에서 바로 보스의 흔적을 찾아냈다.

“저쪽의 그림자가 어색하군.”

“예? 뭐가요?”

남태수가 보기에는 별반 다를 바 없이 똑같은 설산.

그러나 성진은 사방이 새하얀 설산에서도 발자국으로 눈이 눌려 생긴 그림자를 알아보고 남태수를 이끌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 몬스터의 둥지인 얼음동굴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쉽게 찾았군.”

운이 없으면 모든 봉우리를 돌아봐야 할 수도 있는 맵이었으나 생각보다 운이 좋았다.

동굴을 찾는 게 문제였지 동굴 자체는 그리 깊지 않은 직선 구조라 내부로 들어서자 금방 보스를 마주할 수 있었다.

“크르르릉.”

눈처럼 새하얀 털로 뒤덮인 거대한 짐승이 그곳에서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키가 8미터쯤 되는 거대한 고릴라 같은 몬스터.

흔히 예티나 설인 등으로 불리는 몬스터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해 이름까지 지어진 것이 바로 15층의 보스 그레고리우스였다.

‘자고 있을 때 바로 잡아버리는 것도 가능한가?’

남태수는 혹시 성진의 피지컬이라면 입장 이벤트조차 생략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으나, 두 사람이 발을 내디딘 순간 여지없이 15층의 고정 이벤트가 발동했다.

빠직!

콰가가각!

얼음동굴 천장에 가득한 고드름 중 하나가 떨어지며 소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그 소리에 그레고리우스도 잠에서 깨어나 침입자를 발견하고 포효를 내질렀다.

“윽……!”

제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의 충격파.

그러나 성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남태수가 포효에 비틀거리는 동안 성진은 앞으로 달려 나가 고드름 파편을 집어 던졌다.

파바박!

성진이 던진 얼음파편은 그레고리우스의 양손을 꿰어 벽에 박아버렸다.

포효가 비명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포효가 멈추자 남태수도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마스터.

“알았어!”

무르무르의 영혼을 부여한 스켈레톤을 소환, 그 두개골을 투구처럼 머리에 썼다.

‘고드름이 떨어지는 입장 이벤트는 원래 저걸 이용해서 보스한테 큰 대미지를 줄 수 있다고 보여주는 건데.’

여럿이서 손발을 맞추고 지형까지 활용해서 잡으라고 만든 레이드 보스.

그러한 보스가 지금 성진의 손에 가볍게 얻어터지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성진의 파괴전차 짓거리를 보며 남태수는 스켈레톤을 일으켰다.

“언데드 생성, 스켈레톤.”

남태수의 명령에 20구의 스켈레톤이 일제히 일어섰다.

얼음동굴에는 그레고리우스가 잡아먹고 남긴 짐승이나 모험가의 뼈가 널려 있었다.

덕분에 사령술사도 언데드를 소환할 시체가 없어 놀고 있는 일 없이 1인분이 가능했다.

“좋아, 가라 얘들아!”

15레벨 사령술사 답지 않게 상당한 머릿수를 부리게 된 남태수는 기세등등하게 돌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크어어어어엉!!!”

그레고리우스는 포효를 내지르며 덤벼드는 스켈레톤을 한 손으로 싹 쓸어버렸다.

“허?”

기껏 20마리나 소환했더니 일격에 쪽도 못 쓰고 쓸려 나간 상황.

황당해진 남태수는 전투 중에 사고를 정지한 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성진은 그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최하급 언데드로는 한계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언데드 강화를 충분히 찍어 데스나이트 같은 걸 뽑으면 모를까, 스켈레톤을 떼거지로 소환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15층에서 저건 좀…….”

“원래 25인 레이드 보스다. 레벨도 30이니 당연한 일이지.”

성진은 됐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넌 그냥 저주나 걸고 뒤에 오는 애들이나 봐줘라.”

그 말을 들은 남태수가 돌아보니 그곳에는 다나를 비롯한 다른 플레이어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 * *

‘한발 늦었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포효 소리를 들었을 때, 다나는 성진과 남태수가 먼저 도착했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포효가 들린다는 것은 아직 전투가 진행 중이라는 것.

“지금이라도 기여도 따면 돼요! 뛰어요!”

토벌대를 이끌고 얼음동굴 내부로 들어섰을 때, 다나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성진의 전투 장면이었다.

‘와.’

감탄.

그 외에는 뭐라 덧붙일 말이 없었다.

플레이어가 되어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얻었다고 모두가 전설 속 영웅들처럼 싸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당장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전문적인 운동선수와 그냥 체력단련을 많이 한 일반인은 신체능력이 비슷하더라도 몸을 움직이는 기술 자체가 다르다.

플레이어의 경우에는 이 차이가 더 극명했다.

‘어떻게 저런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거지?’

초인의 각력으로 일반인처럼 달리려고 하면 몸이 공중에 붕 떠버린다.

지면을 박찰 때, 몸이 위로 뜨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바닥에 잘 붙어야만 계속해서 다리를 내딛을 수 있다.

벽을 타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지면에 쓰러질 듯 바짝 붙어야지만 각력을 속력으로 잘 전환할 수 있는 것.

달리는 것만 해도 방법이 이렇게 달라지는데 다른 동작들은 어떻겠는가?

성진의 신체능력보다 놀라운 것은 그걸 다루는 기술이었다.

각각의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전신이 꿈틀댄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빨라 인간이 아니라 짐승처럼 느껴질 정도의 이질감.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성진의 기예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강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광전사로 전직한 세계적인 유망주인 다나는 성진의 움직임을 보고 저게 단순히 스펙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면적인 움직임은 물론, 주변 지형이나 적의 거대한 몸체를 이용해 입체적인 움직임까지 완벽해.’

그녀 자신부터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그러나 보고 이해는 할 수 있을지언정 다나 자신도 따라 하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는 기술이었다.

‘아니, 감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냐.’

정신을 차린 다나는 황급히 전투에 끼어들려고 했으나 그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 마주한 순간, 다나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

남태수의 검은 로브는 인챈트 된 마법의 효과로 명암이 느껴지지 않는, 완전히 칠흑 같은 색을 자랑했다.

그러다 보니 그가 머리에 쓴 무르무르의 두개골은 마치 어둠 속을 떠다니는 듯한 으스스함을 풍겼다.

‘사신.’

사람이 아니라 사신을 마주한 느낌.

그 느낌은 남태수의 차림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전 강력한 리치였던 무르무르의 마력은 실제로 살아 있는 생물의 생존본능을 자극했다.

그러나 다나는 두개골 투구에서 느껴지는 그 기운을 남태수의 것이라고 착각했다.

“크아아아아아!!!”

보스의 포효로 인한 바람에 그림자 망토가 펄럭인다.

다나의 눈에는 그것이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였다.

‘이 살벌한 기운은…… 이게 진짜 살인마의 모습인가!’

성진의 힘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기 때문에 겉으로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반면에 무르무르의 영혼이 풍기는 위험한 냄새는 다나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것.

덕분에 그녀는 성진을 눈앞에 두고 남태수에게 쫄았다.

스륵!

남태수의 손짓에 언데드 병사들이 일어난다.

그가 불러낸 것은 평범한 스켈레톤이었지만, 숫자는 범상치 않았다.

15층의 사령술사가 저렇게 쉽게 다룰 수 있을 리 만무한 숫자.

거기에 분명 최하급 언데드인 스켈레톤임에도 어쩐지 악독한 기운이 느껴졌다.

스켈레톤들은 그대로 토벌대 앞에 일렬로 늘어서 벽을 쳤다.

마치 보스는 내 먹잇감이니 손대지 말라는 듯한 행동.

‘주성진과 한패라는 건가……!’

성진이 열심히 싸우는 와중에도 뒤에 서서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구경만 하는 모습.

이쯤 되니 완전히 성진보다 남태수가 흑막 같아 보였다.

마치 사악한 사령술사 그 자체.

‘애초에 요즘 같은 세상에 사령술사로 전직한 것부터가 나 범죄자요 하는 셈. 그렇다면 10층에서 백화점이나 스타디움을 무너뜨린 것도 실은 이 남자인 건가!’

남태수의 무시무시한 외견에 다나의 오해가 폭주했다.

저런 사악한 사령술사라면 금지된 스킬쯤은 얼마든지 가지고 있으리라.

이렇게 된 이상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 당신들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죠?”

다나는 싸움을 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남태수에게 물었다.

남태수는 한동안 말없이 그런 다나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두개골에 뚫린 눈구멍 안쪽으로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 모습은 마치 영혼마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무저갱.

다나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난 찰나, 남태수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큿……!”

그러는 사이, 성진이 보스를 쓰러뜨렸다는 메시지가 모두에게 떠올랐다.

* * *

한편 다나가 혼자 쫄아 있는 동안 정작 남태수는 쩔쩔매고 있었다.

‘이놈의 포효 때문에 온몸이 저려서 움직일 수가 없네.’

성진은 그에게 뒤따라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을 맡겼다.

전신에 쥐가 난 것처럼 저릿하긴 했지만, 시킨 일은 해야 할 거 아닌가.

남태수는 인벤토리에서 아껴둔 뼈를 꺼내 스켈레톤을 소환했다.

[린드블룸의 뼈]

레어 재료 아이템

언데드 생성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소환 시 언데드에 모든 스탯 +10

소환 시 언데드에 속성 저항력 +40

소환 시 언데드에 독 속성 부여

맵에 널린 시체와는 달리 소환환 언데드에 추가 효과를 부여할 수 있고, 재료템으로 취급되어 인벤토리에 가지고 다닐 수도 있는 유용한 뼈.

성진이 챙겨온 이 뼈로 스켈레톤을 일으키자 자동으로 포이즌 스켈레톤이 생성되어 주변에 독기를 흘렸다.

소환된 포이즌 스켈레톤들은 남태수의 명령에 따라 토벌대 앞에 벽을 쳤다.

성진이 보스를 사냥하는 여파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배려한 행동.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왠지 남태수의 행동에 바짝 움츠러들었다.

“…… 당신들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죠?”

‘뭔 소리지? 아, 성진 씨가 NPC를 죽이고 다닌 것 때문인가?’

성진과 다나가 5층에서 싸울 때, 남태수는 그곳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다나의 행동을 보면 그녀가 성진을 무슨 악독한 살인마쯤으로 여기는 것도 이해가 갔다.

‘성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음, 그럼 여기서는…….’

“당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당신들을 해치려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라는 뜻에서 한 말.

남태수로서는 걱정해서 한 말이나, 다나에게는 오히려 깝치지 말고 찌그러져 있으라는 소리로 들렸다.

“큿……!”

분하지만 두 사람을 상대로 이길 자신은 없다.

게다가 자신이 이들에게 덤볐다간 토벌대의 다른 플레이어들도 위험해질 수가 있었다.

결국 다나가 분을 삭이는 동안, 성진은 무난하게 보스를 쓰러뜨렸다.

[스테이지 클리어.]

[퍼펙트 클리어!]

[기여도 순위]

- 92%

- 8%

(소수점 이하의 기여도는 표기되지 않습니다.)

[기여도 보상을 추가 지급합니다.]

[스킬 포인트를 추가 지급합니다.]

끝났으니 여기 남아 있을 이유도 없다.

성진과 남태수는 곧장 보상을 고르고 16층으로 넘어갔다.

남겨진 토벌대는 닭 쫓던 개가 되어 멍하니 결과창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반면 다나는 속으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강하잖아?’

처음에는 단순히 5층에서의 일을 되갚아줄 생각이었으나 이제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10층에서의 참극.

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수많은 사람을 살해한 악당들이 고레벨이 되어 세상으로 나가면 엄청난 일이 벌어지리라.

‘주성진과 남태수. 이 둘만은 막아야 해.’

안타깝게도 그 오해를 풀어줄 사람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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