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14화 (14/170)

<14>

성진과 남태수는 11층 이후로도 14층까지 어렵지 않게 공략해 나갔다.

“으악, 뚫린다! 여기 뚫린다! 성진 씨 빨리 와요!”

-아직 거리는 충분합니다. 마스터, 괜히 쫄지 말고 스켈레톤 숫자 채워 넣으면서 저주나 비는 곳 없이 골고루 뿌리세요.

11층이 4인 파티 스테이지라면,

12층은 8인,

13층은 12인이었고,

14층은 20인 용병단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스테이지였다.

문제가 있다면 그 모든 스테이지를 성진의 존재 때문에 2인 파티로 진행해야만 했다는 점.

그리고 성진은 맵 바깥에 파밍하러 가서 매번 남태수 혼자 개고생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허억, 허억, 뒤질 뻔했다…….”

-뭘 화살 가지고 그러십니까. 무기에 붙은 저항력 때문에 급소에 맞아도 안 죽으십니다.

“그거 즉사만 안 할 뿐이지 아픈 건 똑같잖아!”

-아파도 포션 바를 시간만 있으면 살 수 있으니까요. 아니면 마스터께서도 저처럼 리치화 하시렵니까? 결혼도 안 하신 모양인데 부담도 없지 않습니까.

“싫어!”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 명이서 단체 스테이지를 진행한 덕분에 보상만큼은 차고 넘쳤다.

덕분에 초보 사령술사 풀 세트를 비롯해, 각종 아이템을 꽉꽉 채운 남태수는 어지간한 금수저 플레이어 못지않은 스펙을 자랑했다.

“이게 나 혼자 20인분이 되네…….”

14레벨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함을 손에 넣었다고 좋아해야 할지.

강한 만큼 앞으로도 과중한 업무가 돌아올 거라고 슬퍼해야 할지.

남태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한편 성진은 진행하며 나온 아이템을 몰빵해 둔 남태수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

“이 정도면 돌연사할 일은 없겠군.”

“아니, 한겨울에 놀러 나가는 다섯 살짜리 애 패딩으로 둘둘 감아놓는 것도 아니고. 이러면 저는 어떻게 싸워요?”

복잡하게 설명할 것도 없이 지금 남태수는 반지 여덟, 목걸이 둘에,

천 옷 + 누빔 갑옷 + 추가 각반 토시 + 마법사 로브 + 그림자 망토,

방한모자에 마법 투구까지 쓴 상태였다.

“음식점에 별 주고 다니는 타이어 업체 마스코트 복장도 이것보단 활동적이겠네!”

“어차피 스켈레톤이 싸우는데 네가 움직일 필요가 뭐가 있지?”

“15층은 대망의 25인으로 첫 레이드를 하게 되는 층이잖아요! 바닥은 피할 수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탑의 스테이지는 5층, 10층 이렇게 딱 떨어지는 숫자에서 일종의 보스 층이 등장했다.

이러한 층들은 난이도도 어렵고, 새로운 방식을 요구하기도 하는 등 마의 구간으로 불렸다.

대신 보상도 짭짤했지만 10층처럼 멀티 플레이어 층이라 소수의 상위권들이 보상을 독점하기 일쑤였다.

“그러고 보니 설마 15층도 저희 둘이서만 진행하나요?”

“아니. 5층 단위로는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합류가 강제적인 것 같더군.”

성진은 아자키엘의 영혼을 쥐어짜 이 사실을 알아냈으나 그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다.

튜토리얼을 넘어선 순간부터는 다른 관리자가 얼마든지 그들을 지켜볼 수도 있었으니까.

“15층에서도 바깥 파밍하러 가실 거예요?”

“지금의 너라면 혼자서도 충분할 텐데? 여차하면 무르무르와 교대하면 될 테고.”

“스펙이야 그런데 멀티 플레이잖아요. 10층에서 그 난리를 쳤으니 세계정부 쪽에서는 저희를 잡으려고 하고 있을 텐데.”

단순히 스테이지 미션을 깨는 것만이라면 남태수 혼자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플레이어들이 방해한다면 감당하기 힘들었다.

“걱정 마라 15층에서는 따로 얻을 것도 없으니.”

“그렇다면……?”

“나도 스테이지 진행에 합류할 거다. 다만 이전처럼 대놓고 날뛸 수는 없겠지.”

성진이 튜토리얼에서 대놓고 날뛸 수 있었던 것은 1층에서부터 해당 구간의 관리자인 아자키엘을 붙잡은 덕이었다.

‘담당 천사를 족치기 전까진 해당 구간에서 날뛰기 힘들다.’

1층에서야 오류 메시지 때문에 어차피 들켰다고 생각해 빠르게 진행하려 수호거상을 부숴 버렸던 것이지만, 안 들켰다면 최대한 조용하게 가는 게 이득이었다.

마지막까지 안 들킬 수 있다면 성좌들에게 기습펀치를 날릴 수 있을 테니까.

“엑? 그럼 어떻게 해요. 나중에는 세계정부에서 견제까지 할 텐데.”

“보스든 세계정부든 여차하면 맵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정리하면 된다.”

예컨대 힘을 숨겨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관리자의 눈에만 안 보이면 된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또다시 천사를 끌어내 잡든가.

“흔히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라고도 하지.”

“그건 또 무슨 해괴한……?”

남태수는 묘한 눈빛으로 성진을 바라보다가 이내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무튼 이쯤 되면 너도 실전경험이 좀 생겼을 거다. 최소한 이상한 곳에서 혼자 멋대로 죽을 일은 없겠지.”

11층부터 14층까지를 남태수 혼자 진행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연습은 되었으리라.

어차피 그를 전투원으로 쓰려고 받아들인 건 아니었으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먼저 진행할 테니 하던 대로 30초 후에 따라와라.”

세계정부가 다음 층에서 함정을 깔고 기다릴 경우를 대비한 작전.

성진은 그 말을 남기고 홀로 15층으로 진행했다.

[다음 층으로 이동합니다.]

[진행에 따라 레벨이 상승합니다.]

[Lv.14 > Lv.15]

성진이 도착한 곳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산의 베이스 캠프였다.

15층의 미션은 토벌대의 일원이 되어 설산의 보스를 레이드하는 것.

멀티 플레이 스테이지이며, 플레이어가 한 명 들어올 때마다 토벌대의 NPC가 플레이어로 교체되는 방식이었다.

“어? 또 사람 들어왔…… 으헉?”

갑자기 옆에 있던 NPC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자 그를 바라본 플레이어는 성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ID를 보고 기겁했다.

이미 커뮤니티 내에서 성진의 이름이 퍼진바, 그 또한 10층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주성진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왜 이 인간이 아직도 안 올라가고 15층에 있는데?’

스펙 빵빵한 신입들은 진작 15층을 지나갔을 시기.

성진을 발견한 플레이어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이어서 나타난 사람을 보고 더 크게 놀랐다.

“으아악!”

2미터가 넘어가는 커다란 대낫에 온통 시꺼먼 로브.

거기에 짐승의 두개골을 뒤집어쓴 사신 그 자체의 괴한이 등장한 것.

물론 괴한의 정체는 멀티 플레이 층에 들어가기 전에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풀무장을 하고 들어온 남태수일 뿐이었다.

“으허억! 깜짝이야, 갑자기 왜 비명을 지르고 그래요!”

남태수는 본인이 더 크게 놀라서는 맞비명을 지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무르무르의 소환을 해제했다.

여차하면 바로 빙의하기 위함이었으나 그럴 상황은 아닌 듯 보였다.

“그 꼴을 하고 있으니 비명을 지를 만도 하지.”

거울이 없어서 잊고 있었으나 남태수의 복장은 맨살이 드러난 곳이 없어 사람인지 몬스터인지 모를 몰골이었다.

남태수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당신이 입혀놓고 그런 소리예요?”

“최악의 경우에는 놈들이 우리가 소환될 공간에 불을 질러놓거나 했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니까.”

멀티 플레이 스테이지로의 진행은 어떤 상태일지 모르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남태수의 경우에는 장비를 둘둘 감아 저항력을 최대한 챙기지 않으면 아차 하는 사이에 골로 가는 수가 있었다.

“내가 무슨 개복치인 줄 아나…….”

“개복치나 너나 둘 다 한 방에 죽는 건 똑같겠군.”

남태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바로 진행하지. 보스 몬스터는 아마 정상 부근에 있을 거다.”

그때였다.

“자, 잠깐만요!”

성진이 베이스캠프를 나서려 하자 그들을 발견했던 플레이어가 황급히 두 사람을 붙잡았다.

“지금 두 분이서 보스를 잡으러 가시는 거죠?”

“그렇다만?”

“저희도 함께하면 안 될까요?”

이건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성진의 표정에도 그러한 생각이 떠올랐는지, 플레이어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물론 두 분이서도 잡으실 수 있겠지만, 그러면 저희가 기여도 보상을 못 먹거든요.”

퍼펙트 클리어에 따른 기여도 보상 선택권은 1% 이상의 기여도를 획득한 플레이어들에게 부여된다.

때문에 지구의 플레이어들은 일반적으로 깰 사람들이 알아서 1등부터 가져가되, 다른 이들도 모두 1%씩은 기여하게 하여 남는 보상을 뿌리는 편이었다.

어차피 기여도에 따라 고르는 순서만 정해질 뿐, 가져갈 수 있는 보상은 인당 하나씩이었으므로 남는 거라도 가져갈 수 있게 해주는 것.

“이런 거라도 챙기지 않으면 몇 층 못 가서 성장이 딸리기 시작하니까요…….”

그는 꽤나 절박했는지 성진 앞에 무릎까지 꿇었다.

사실 파밍하느라 늦게 올라온 두 사람과 같은 층에 남아 있던 것부터 이들이 상당히 뒤쳐지는 이들인 것은 확실했다.

“어쩔까요?”

클리어까지 시간이 좀 더 늘어나는 걸 빼면 딱히 그들에게 손해도 없는 부탁.

남태수는 저들이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도와주고 싶었으나, 파티의 리더는 성진이었다.

“안 된다.”

성진은 단호했다.

“탑을 오르는 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미 자신의 역량을 넘어선 거다. 그런 식으로 한두 층 더 올라봐야 의미는 없어.”

“하지만 당신들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우리가 먹을 보상…… 흡!”

부탁을 거절당한 플레이어는 홧김에 투덜대다 성진과 눈이 마주치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따로 시간을 내어 챙겨주진 않는다. 대신.”

성진은 거기서 이야기를 정리했다.

“너희가 스스로 기여도를 따내는 건 방해하지 않을 거다. 우리보다 먼저 보스를 발견하고 사냥해 버려도 보복하지 않겠다.”

떠먹여 주지만 않을 뿐.

스스로 쟁취하는 건 막지 않겠다는 것이 바로 성진의 입장.

사실 그로서는 지구의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하기를 권장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성진이 탑을 무너뜨린 뒤에도 지구의 인간들은 계속 살아가야 할 테니까.

“알아들었으면 우린 이만 출발하겠다.”

자신의 입장을 밝힌 성진은 남태수를 데리고 캠프를 나섰다.

* * *

남겨진 플레이어는 홀로 캠프를 지키다 정찰을 나갔던 다른 플레이어들이 돌아오자 이 이야기를 전했다.

“포기하지 말죠.”

성진의 이름이 나오자 단박에 플레이어들의 분위기가 축 처졌으나, 리더는 그들을 독려했다.

“설산은 넓어요. 아무리 그 남자가 강해도 우리가 먼저 보스를 찾으면 되는 거잖아요.”

상점과 커뮤니티가 열린 시점부터 1,201회차 플레이어들의 장비는 확연하게 좋아졌다.

밖에서는 잡템조차 비싸게 거래되지만 이 안에서는 상위 랭커들이 버린 육성용 장비들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탑에 오랫동안 남아 있던 고인물들은 신규 플레이어들이 가져온 고향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상위 아이템을 뿌렸다.

잡템이라도 고층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은 상당한 스펙을 지니고 있었다.

즉, 이곳에 있는 이들도 보스를 먼저 발견하기만 하면 잡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그 남자가 먼저 발견했다고 해도 우리가 따라가서 기여도를 먹는 건 상관없다면서요? 할 수 있어요. 다들 힘을 내요!”

리더의 말에 사람들은 하나둘 기운을 차렸다.

기껏 들어온 탑에서도 결과를 내지 못할 상황에 처해 다들 마음이 꺾여 있었지만, 이마저도 청약에 당첨되지 못한 이들보다는 나았다.

“다나 씨 말이 맞아. 아직 포기하긴 일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다들 움직이자고.”

플레이어들을 격려한 다나는 산등성이를 올려다보았다.

‘주성진.’

5층에서 성진에게 가볍게 제압당한 후, 다나는 계속해서 그를 쫓고 있었다.

‘10층에서는 만나지 못했지만 여기선 안 놓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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