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13화 (13/170)

<13>

탑의 11층은 동굴 형태의 지하 던전을 공략하는 스테이지였다.

던전 밖으로는 시작 지점이자 정비를 위한 작은 마을이 하나.

그 외에는 인근 수 킬로미터 정도의 숲과 들판이 전부인 맵.

“지금부터 전 맵을 불태운다.”

“미쳤어요?”

남태수에게는 다행히도 성진은 제정신이었다.

“던전 바깥에도 야생의 몬스터가 존재하는 스테이지다. 전부 잡고 그 영혼을 회수한다.”

일일이 때려잡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그거 가까이서 붙잡고 있어야 가능한 거 아니었어요?”

“10층에서 회복한 마력이 좀 돼서 이젠 멀리서도 가능하다.”

애초에 마을에 있는 지금도 남태수의 스켈레톤들이 던전 안에서 잡고 있는 영혼도 전부 회수하고 있었다.

“저는 영혼이 안 보이는데요. 아까 거기선 보였는데 왜 이러지?”

“탑의 시스템에 귀속된 영혼은 어지간한 수준의 사령술로는 볼 수 없을 거다. 이전에 본 건 내 정신세계 속이라서 가능했던 거고.”

이에 관해서 무르무르도 동의했다.

-탑은 성좌들이 만든 시스템입니다. 그런 탑의 시스템에 귀속된 영혼들은 평범한 영혼이 손댈 수 있는 게 아니지요.

“그럼 성진 씨는?”

-왕의 계약자께선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넘으시니 대단하신 겁니다.

무르무르가 자신을 칭송해도 성진은 관심 없다는 듯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고로, 불 좀 질러라.”

“제가요?”

“평범한 불은 쉽게 꺼지니 사령술과 같은 흑마법 계열의 검은 불꽃을 써야 한다.”

“저 그거 안 찍었는데요?”

“네가 아니라 무르무르보고 하는 말이다.”

-마스터께서 빙의를 허락해 주셔야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뭐 부작용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지? 괜찮으니까 해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방식은 간단했다.

-일단 저를 일반 스켈레톤으로라도 소환해 주십시오.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선 탑에게서 아이템이 아니라 소환수로 취급될 필요가 있습니다.

남태수는 던전에 보내놓은 스켈레톤 하나를 취소한 뒤, 리치의 영혼석을 이용해 무르무르를 소환했다.

무르무르의 영혼이 들어간 스켈레톤은 다른 스켈레톤과 달리 산양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리치가 아닌 일반 스켈레톤의 몸으로 소환되면 마력이 없어 마법은 못 씁니다만, 제가 저 자신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무르무르는 그 상태에서 자신의 두개골을 뚝 떼어내 남태수에게 내밀었다.

-이걸 투구처럼 머리에 쓰시면 됩니다.

“대두라 그런지 사람 머리도 통째로 들어가네.”

-대두라니요! 저는 바포메트 중에서도 작은 편입니다! 뿔이 머리뼈보다 큰 완벽한 비율을 가지고 있지요.

“…… 그게 중요해?”

그렇게 남태수가 무르무르의 두개골을 머리에 쓰자, 탑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빙의’ 요청이 있습니다.]

[허가하시겠습니까?]

[안심하십시오!]

[탑 내에서의 모든 정신간섭은 시스템의 통제를 받습니다.]

[플레이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허가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정신계 마법으로 깽판 치고 다니는 것을 방지하는 메시지.

남태수로서도 무르무르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을 일이 없다는 뜻이었기에 그는 부담 없이 요청을 허가했다.

‘허가한다.’

그와 동시에 남태수의 의식이 유체이탈 하듯 자신의 신체에서 유리(遊離)되었다.

감각은 이어져 있으나 몸을 움직이는 것은 더 이상 그가 아니었다.

반대로 신체의 조작권을 얻은 무르무르는 남태수의 입을 통해 소리 내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거 오랜만의 육체라 그런지 느낌이 묘하군요.”

무르무르는 간단하게 몸을 풀며 마력을 점검했다.

“지금 제가 마력을 움직이고 있는 게 느껴지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인간은 선천적 마법종족이 아니니 바로는 안 될 겁니다. 그래도 제가 빙의해서 직접 감각을 때려 박다 보면 아무리 재능이 없어도 중간은 하겠지요.”

-나한테 재능이 없는 게 기본 전제야?

“재능이 있으면 제가 물어보지 않아도 이미 알아챘을 테니까요.”

무르무르는 팩트에 가차 없는 편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탑의 스킬 시스템은 마력만 바치면 마법 시전과정의 모든 것이 전자동으로 펼쳐지는 성좌들의 걸작입니다.”

바보라도 마법을 쓸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은 사실 걸작이라는 말도 부족한 신기였다.

“게다가 탑의 스킬들은 그 종류 또한 전투에 특화되어 굉장히 실전적입니다. 어지간한 재능이 아니면 직접 마법을 배워서 스킬을 따라가긴 힘들단 뜻입니다.”

-그게 뭐야. 그럼 마법을 왜 배워?

“결국 이 모든 힘을 부여한 것은 성좌니까요. 성좌나 그 하수인인 사도, 세계정부와 싸우게 되면 결국 탑에서 얻은 힘은 모두 봉인될 겁니다.”

-난 싸우기 싫은데?

“싸움은 원래 한쪽만 찬성해도 일어나는 법입니다, 마스터. 게다가 꼭 그들과 싸우는 것 외에도 힘은 다다익선이지요. 당장 이대로 탑을 진행하다 보면 마스터는 왕의 계약자를 따라가는 것조차 힘들어질 게 아닙니까?”

지금에야 아직 남태수도 성진의 공략속도를 따라갈 수 있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결국 뒤쳐지게 될 것이 당연했다.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는 남태수도 강해져야 했다.

“직접 마법을 배우면 스킬 포인트를 아끼는 것도 가능합니다. 자잘한 마법은 직접 배워서 쓰면 되니까요. 또한 탑의 스킬체계를 뛰어넘어 다른 분야의 마법도 쓸 수 있지요.”

사령술사인줄 알았던 상대가 대뜸 원소마법을 갈겨대면 의표를 찔릴 수밖에 없었다.

“실전에서는 거인이라도 꼬마의 돌팔매에 죽는 법이죠.”

-다윗과 골리앗을 말하는 거야?

“탑에만 갇혀 있긴 했지만 저도 지구 생활 30년 차입니다. 이쪽 문화도 주워들은 게 꽤 되지요.”

아무튼, 하는 소리와 함께 무르무르는 말을 이어갔다.

“마스터 같은 사람들은 투석기 만드는 연구를 하는 것보단 돌팔매를 잘 맞추는 연습이나 하는 게 낫습니다.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쩌어기 왕의 계약자 같은 분들이나 하는 일이지요.”

무르무르는 잘 쳐줘야 평범한 수준인 남태수의 기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가 스테이지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짚어주었다.

“일단 마스터가 살아남아야 저도 이야기를 계속 구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남한테 재능 없다는 소리를 들으니 뭔가 억울한데.

그래도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남태수 자신부터가 재능이 없으니 성기사를 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준비해 온 성기사 빌드는 전부 말짱 도루묵이 되었지만, 방향성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제가 하는 걸 기억하고 계속 반복하십시오. 하다 보면 조금씩 늘 겁니다.”

무르무르는 그렇게 말하며 손 위에 검은 불꽃을 피워 올렸다.

“기초 흑마법 중 하나인 검은 불꽃입니다. 이 불꽃은 물리적인 연소가 아니라 마력과 영혼 자체를 불태우는 불꽃이지요.”

즉, 방어를 견고히 한 적에게도 일단 뿌려두면 지속딜이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물론 저항력이 거의 없는 자연물에 뿌리면 그 효과는 더욱 대단합니다.”

무르무르의 손에서 날아간 검은 불꽃이 풀밭에 닿자, 마치 기름 탱크에 불이 붙듯 순식간에 불이 번져 나갔다.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남태수에게는 거대한 불길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덕분에 스테이지 전체가 불타기 시작한 이 모습도 그에게는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불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주위의 마력이 요동칠 겁니다. 직접 몸을 움직이며 그 흐름을 느껴보시죠.”

무르무르는 그 말을 남기고 스스로 빙의를 해제하여 영혼석으로 돌아갔다.

남태수는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으나, 그런다고 잠깐 사이에 마력을 느끼게 되진 않았다.

“잘 타는군.”

잠자코 무르무르의 교육을 지켜보고 있던 성진은 그제야 한마디 했다.

그는 남태수에게 마을에서 찾은 삽을 한 자루 내밀었다.

마을에 구색 갖추기 용도로 배치되어 있던 소수의 NPC들은 이미 그의 손에 해방된 뒤였다.

“불길이 잦아들면 몬스터가 드롭한 아이템들을 수거해 둬라. 잿더미 속에서 삽질 좀 해야 할 거다.”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어딜 가려고요?”

“맵 바깥.”

탑의 각 층은 스테이지의 경계 바깥으로도 맵이 어느 정도 구현되어 있었다.

대신 경계를 넘어서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며, 제때 돌아오지 못하면 그대로 도전이 실패 처리됐다.

“제때 돌아오기만 하면 맵 바깥도 얼마든지 파밍할 수 있다. 너는 네 할 일을 하고 있도록.”

성진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몸을 날렸다.

이곳의 지형으로 보아 성진의 예상대로라면 저쪽 방향에는 강이 존재할 터였다.

그리고 던전이 나타날 정도로 마력이 진한 곳에 강이 있으면, 그 밑바닥에는 퇴적된 마력석이 있는 법이었다.

‘질은 떨어지겠지만, 양은 꽤 될 거다.’

[경계를 벗어났습니다.]

[스테이지로 복귀하십시오.]

성진은 탑의 경고 메시지에 코웃음 치며 더더욱 가속했다.

초인의 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달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강줄기가 나타났다.

그리고 성진이 마력에 이끌려 강줄기를 찾았듯, 강의 밑바닥에는 마력을 쫓아 먼저 자리 잡은 선객이 있었다.

“고작 11층에 별걸 다 넣어놨군.”

성진의 접근에 강 밑바닥에서 거대한 몬스터가 몸을 일으켰다.

강물 위로 내민 상체는 악어를 닮은 모습.

하지만 그 크기는 20미터에 이르는 건물 사이즈의 아룡(亞龍).

“맵 바깥이니 일부러 넣었을 리는 없고. 마침 스테이지의 배경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던 놈인가.”

탑의 스테이지는 탑에 갇힌 영혼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천사들은 그중 스테이지로 쓸 구간과 규칙 등을 정할 뿐, 정작 배경 자체는 실존했던 시공간이라는 것.

덕분에 스테이지에는 천사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도 들어 있었다.

NPC가 아닌 몬스터.

그 탓인지 놈에게는 영혼이 보이지 않았다.

스테이지 바깥의 존재이니만큼 시스템의 레벨 계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저곳에 어떠한 숫자가 적혀 있었든, 성진의 대응은 달라지지 않으리라.

영혼이 들어 있지 않은 이상 저것은 힘만 센 짐승에 불과했다.

성진은 강가에서 한번 멈춘 뒤, 자세를 잡고 진각을 밟았다.

파아아아앙!

그의 발 구름에 물속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양 강물이 하늘로 치솟는다.

그렇게 린드블룸의 전신이 드러난 순간.

퍼억!

총알처럼 쏘아진 성진의 몸뚱이가 놈의 가슴을 뚫고 반대쪽으로 튀어나왔다.

“네 심장은 잘 받아 가마.”

가뿐하게 착지하는 성진의 손에는 놈의 심장이 들려 있었다.

강바닥에 퇴적된 마력석과는 비교도 안 되는 보상.

퍼석!

그 안에 담긴 마력이 성진에게 흡수되자 심장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져 가루가 되었다.

“이건 좀 낫군.”

힘을 회복하기 위해 탑의 영혼들을 계속 해방시키곤 있었으나, 사실 노예로 굴려지는 영혼들에게 많은 힘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린드블룸의 마력은 천사의 영혼 이후로 그나마 쓸 만한 효과를 보였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

우연히 만난 것치곤 쏠쏠한 소득이었으나, 성진의 원래 힘을 복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플레이어들이야 포션 같은 걸 마셔서 회복할 수 있겠지만, 포션으로 회복한 마력은 결국 성좌들의 힘이었으니까.

성진의 회복은 ‘직접 얻어낸 자신의 것’으로만 이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영혼만이 아니라 맵 바깥의 것들도 이용해서 힘을 회복한다.’

그렇게 회복한 힘으로 가장 먼저 20층에서 숨겨진 루트를 개척한다.

“일단 한번 맵 안으로 복귀할까.”

맵의 안과 밖을 오가는 노가다의 시작이었다.

* * *

레베키엘은 아자키엘에 이어 지구의 탑 11층부터 30층까지를 담당하는 관리자였다.

“아아, 또 신규 플레이어들이 들어왔네.”

지구는 세계정부가 자체적으로 플레이어들을 선별하고 있는 세상이었다.

관리자라고는 해도 레베키엘이 할 일은 거의 없었으므로 그는 탑의 관리를 거의 손 놓고 지냈다.

“이번에도 보고만 써두면 문제없겠지.”

레베키엘은 맨날 쓰던 그 양식을 그대로 띄워놓고 예의 삼아 11층 신규 플레이어들의 현황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모든 스테이지가 별일 없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독특한 로그가 하나 있었다.

“뭐야 이 로그는?”

화면을 전환하자 그의 눈앞에 불타는 스테이지에서 홀로 삽질을 하고 있는 남태수의 모습이 나타났다.

“던전에는 소환수만 넣어놓고 자긴 바깥에 있는 놈들을 파밍하는 거야? 그것도 죄다 불태워 죽이고 아이템만? 또라이네 이거.”

무르무르의 영혼석은 이미 인벤토리에 돌려놓은 데다, 성진은 맵 밖으로 나가 있는 상황.

덕분에 레베키엘의 화면에는 좀 특이하긴 하나, 그래도 상정 범위 내의 플레이를 하고 있는 남태수의 모습만이 보였다.

사신의 대낫이 눈에 띄긴 했지만 지구에서는 한 번도 드롭 된 적 없는 아이템인 만큼 레베키엘은 그것을 보고도 10층의 물건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미 바깥에서 졸업한 플레이어들의 아이템을 사 들고 오는 경우가 수두룩했기에 새삼 특이한 모습도 아니었던 것.

“이름이 남태수? 얘는 내가 기억해 뒀다.”

나중에 남태수가 재미있는 층을 진행할 때 챙겨봐야지.

그렇게 결심한 레베키엘은 남태수의 이름을 머릿속 한구석에 던져놓고 항상 똑같은 보고서를 완성해 상급 관리자들에게 전송했다.

“그럼 할 일도 끝났고. 다시 1,202회차 올 때까지 잠이나 자야지.”

30년 동안 똑같이 이어진 여느 때와 같은 하루.

화면을 돌려 버린 레베키엘은 결국 성진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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