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 부수는 플레이어-10화 (10/170)

<10>

[클리어까지 남은 시간: 75:01:58]

“잠깐만요. 당신 설마 이대로 전 맵을 다 뒤질 생각이에요?”

“그렇다만.”

“상대가 가만히 숨어 있는 거면 모를까, 이렇게 소란을 피우며 돌아다니면 절대로 못 만날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조용히 있다가 여차하면 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남태수였으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대로 가다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문제는 더 커지기만 하겠어.’

민간인도 신경 쓰지 않고 전부 폭파시키는 놈들이다.

가만히 있었다고 봐줄 리는 없다.

차라리 이곳에서의 일을 바깥에 전할, 리 메이양 그 여자를 확실히 잡아 족치는 편이 자신에게도 안전하리라.

“저한테 그 여자를 찾을 방법이 있어요.”

“방법?”

“네. 그 여자는 1,201회차에 투입된 극동군구의 대표 플레이어예요. 다른 군 소속 플레이어들을 이끄는 입장이라고요.”

남태수가 기억하기로 1,201회차에 들어선 군 소속 플레이어는 약 80명.

개중 극동군구 소속은 대충 잡아서 20명에서 30명은 되리라.

“백화점에서 만났을 때 거기 있던 게 8명인가? 여하튼 10명 언저리였잖아요. 그럼 이 스테이지에 부하가 더 있을 거란 말이에요.”

“다른 이들은 먼저 올려보내고 몇 명만 남은 걸 수도 있잖나.”

“아뇨. 그러면 백화점에 8명이나 있진 않았겠죠. 당신이 이 스테이지의 어디에 나타날지 모르는데.”

10스테이지의 생존자 거점은 총 3개.

성진을 찾으려고 기다린 거라면, 3곳 모두에 부하들을 보내놨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3곳의 거점 중 하나인 백화점에 8명이 있었다면, 다른 거점에도 비슷한 숫자가 가 있었겠죠. 그럼 전원이 이번 스테이지에 남아 있단 뜻이에요.”

즉, 리 메이양만이 아니라 그녀의 부하들까지 조져야 할 놈이 20명쯤 된다는 소리였다.

“20명이나 되는 인원이 전부 숨어 있긴 힘들 거예요. 다른 거점으로 가보죠.”

놈들이 거점에 모여서 성진을 기다리고 있으면 베스트고, 그게 아니라도 거점에 가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놈들의 행방을 물어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두 명이서 발로 뛰어 찾는 것보단 훨씬 나을 터였다.

“일리 있군.”

성진은 자신의 기대대로 활약하는 남태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런 정보가 없었다면 잡아야 할 놈이 몇 놈이나 남은 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헤매야 했으리라.

성진은 남태수를 팔에 끼고 근처의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켁! 자, 잠깐 평범하게 좀…….”

‘여기서 가장 가까운 거점은 스타디움 거점.’

도로의 상황이나 지형을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직진한다.

스타디움까지는 순식간이었다.

“…… 우웨엑.”

남태수는 성진이 자신을 내려놓자마자 대차게 토했다.

“업든가 하지 그냥 들고 뛰는 게 어디 있어요! 목이랑 허리랑 다 부러질 뻔했네!”

“안 부러졌잖나.”

성진 딴에는 남태수를 들어보고 대충 신체강도를 생각해서 적당히 뛴 것이었다.

“멈춰!”

두 사람이 스타디움에 들어서려 하자 경계를 서고 있던 플레이어가 그들을 막아섰다.

“주성진, 남태수…… 백화점의 악마다! 놈들이 나타났다!”

“백화점의 악마?”

경보를 울리자 스타디움 내에서 온갖 기척들이 우르르 반응했다.

하나같이 적의를 발하는 기척.

위험의 수위는 남태수도 사신의 대낫에 붙은 저항력으로 버틸 수 있을 정도였으나, 상황 자체가 묘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시치미 떼지 마라! 네놈들이 백화점에 있던 NPC와 플레이어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사실을 모를 줄 아느냐!”

말도 안 되는 모함이었다.

백화점이 날아간 것은 리 메이양의 명령으로 인한 부하들의 자폭 때문.

그러나 이곳의 플레이어들은 마치 성진과 남태수가 그런 짓을 벌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저기, 네놈들이라니 혹시 저도 포함인가요?”

“물론이다 남태수! 네놈도 공범이렷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던 남태수는 이어진 말에 입을 떡 벌렸다.

졸지에 자신까지 주성진의 공범으로,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맙소사. 나까지……?”

리 메이양이 개 같은 년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군인이라는 놈들이 시민을 지키는 게 아니라 누명을 씌워 팔아먹다니?

얼토당토않은 누명이었으나 항변은 무의미했다.

왜냐하면 그들을 꾸짖는 저 플레이어들도 딱히 그 말을 믿고 정의감에 나선 건 아니었으니까.

‘저놈들을 잡으면 분명 세계정부에서 포상을 한다고 약속했지.’

백화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윈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들에겐 그저 리 메이양이 세계정부의 이름으로 저 두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현상금을 거는 리 메이양의 뒤가 구려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세계정부의 군인인 그녀를 적으로 돌릴 순 없지 않은가.

세계정부를 적으로 돌리느냐, 이름 없는 개인 플레이어 둘을 적으로 돌리느냐.

‘둘 중에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전자지. 이쪽은 포상까지 걸려 있는데.’

물론 스타디움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리 메이양의 말을 따라나선 건 아니었다.

이번 일에 엮이기 싫었던 이들은 진작 이곳을 떠났다.

남아 있는 것은 모두 포상에 눈이 멀어 성진과 남태수를 붙잡으려는 이들뿐.

‘돈만 주면 됐지. 보복을 걱정해야 하는 유명 클랜 플레이어도 아닌데 말이야.’

중요한 건 진실 따위가 아니었다.

남태수가 얼얼한 뒤통수에 입을 떡 벌리고 굳어진 동안 성진이 중얼거렸다.

“이래서 괜히 이상한 데 신경 쓰지 않고 탑이나 오르려 했다만.”

성진이 무시하고 넘어가는 건 어디까지나 ‘방해가 되지 않는’ 경우.

방해한다면 그땐 쓰러뜨릴 뿐이었다.

“스타디움 내에 리 메이양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병원 거점에 있는 걸까요?”

“거기까지 쫓아올 것을 예상하여 전혀 다른 곳에 숨어 있을 수도 있겠지.”

듣고 보니 남태수가 생각하기에도 그럴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그럼 여기는 패스? 그냥 떠날까요?”

“무슨 소리냐.”

성진은 자세를 잡았다.

“할 일은 하고 가야지.”

그리고는 정면을 향해 정권을 내질렀다.

쿠르르르릉!

제자리에서 내지른 주먹에 스타디움의 한쪽 벽이 통째로 쓰러졌다.

분명 엄청난 힘이 가해졌을 텐데도 충격파도 후폭풍도 없었다.

남태수는 그 광경에 눈을 비볐다.

“아니 뭔……?”

직후, 성진은 스타디움 안으로 뛰어 들어가 NPC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어린아이도 가리지 않는 잔혹한 모습.

“아, 악마…….”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은 그 모습에 백화점의 악마라는 이름을 떠올리며 경악했다.

NPC는 NPC일 뿐이라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인 세상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처럼 생긴 존재가 죽어나가는 모습은 어지간한 강심장으로도 버티기 힘든 것이었다.

성진은 그 혼란 속에서 NPC만을 골라잡은 뒤, 유유히 밖으로 나와 남태수와 합류했다.

“벽도 무너졌고, 이 소란으로 좀비들도 몰려올 테니 저 멍청한 놈들은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혼쭐이 나겠지.”

성진이 날뛰는 동안 단 한 명도 감히 그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쩌겠는가.

방금 주먹질 한 방에 건물 한쪽이 통째로 무너졌는데.

“…… 70시간 넘게 좀비에게 쫓기다 보면 죽을 만큼 힘들긴 하겠네요.”

그들은 무너진 건물과 얼빠진 플레이어들을 내버려 두고 다음 거점으로 떠났다.

남은 플레이어들은 그때부터 밀려드는 좀비를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만 했다.

* * *

‘어떻게?’

스타디움에 성진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리 메이양은 이를 악물었다.

백화점의 폭발로 성진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살아 있을 수도 있다곤 생각했지만 저렇게 멀쩡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여기까진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스타디움이 터진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병원 거점이 성진에게 무너졌다.

소식을 처음 듣고 리 메이양이 떠올린 생각은 이랬다.

‘상대가 거짓 정보를 흘리고 있나?’

성진이 강하다는 건 안다.

알지만 그래도 이건 상식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나.

도대체 어떻게 인간이 주먹 한 방에 건물을 무너뜨리나.

‘100레벨 무투가도 그런 건 못해.’

100레벨이 뭔가?

무투가는 150레벨도 그런 건 못한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10층의 남은 시간이 다 지나갈 때까지 계속 숨어 있어야 한다.’

클리어 후 세계정부에 튜토리얼 층부터 사고를 친 책임은 물겠지만,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10층을 깨고 나면 그때부턴 성진과 스테이지 진행이 겹치지 않게 천천히 하면 될 일이었다.

‘전투식량도 넉넉히 준비해 왔으니 여기선 굴욕을 참을 수밖에.’

탑에 처음 들어올 때는 입고 있는 옷가지를 비롯해 몇 가지 소지품을 그대로 들고 올 수 있었다.

10층까지는 상점 이용도 불가능하니 튜토리얼을 대비해 필요한 물건을 챙겨 오는 건 기본 상식이었다.

“10층의 대학교 내에 지하 쉘터가 있다는 건 극동군구에서만 알고 있는 정보. 분하지만 이곳에서 와신상담한다.”

리 메이양의 말에 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이라곤 해도 그들 또한 높은 곳에 오르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탑에 들어온 이들이었다.

괜히 레벨도 낮은 이 시점에서 강력한 적과 맞붙느니, 탑을 오르며 더 좋은 조건을 찾아서 싸우는 게 나았다.

실제로 그게 더 유리하기도 했고.

그러나 세상사 모든 일이 뜻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쿵!

“이게 무슨 소리지?”

“놈이 분을 못 이기고 난리를 피운 탓에 스테이지 내의 전투가 심화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쿵!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간 부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쿵!

리 메이양과 그 부하들 사이에 불안한 침묵이 흘렀다.

쿵!

소리는 이제 명백히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있었다.

쿵!

그리고 소리가 멈췄다.

“…….”

한참 뒤에야 들려온 것은, 노크 소리였다.

똑똑똑!

아까 나갔던 부하가 돌아온 것이라면 노크 따위를 할 리가 없었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리 메이양이 입을 열었다.

“…… 누구냐?”

“네 업보.”

그와 동시에 쉘터의 철문이 뜯겨 나갔다.

극동군구의 군인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총격을 가했으나, 대부분의 총알은 철문에 막혀 튕겨나갔다.

또르르.

“수류탄이다!”

철문 옆으로 굴러 나온 수류탄에 누군가가 용감하게 몸을 던져 그 위를 덮었다.

그러나 리 메이양은 실내에서의 총격전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수류탄을 정확히 보았다.

“이 바보! 그건 핀도 안 뽑힌……!”

콰직!

성진은 들고 있던 철문으로 엎드린 병사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이어서 그 철문을 근처의 병사에게 내던진다.

강력한 힘으로 던져진 철문은 사람 하나를 통째로 으깨 버렸다.

리 메이양은 황급히 총을 뽑아 마탄을 갈겼으나,

드르르륵!

성진은 정찰 나온 병사에게서 빼앗은 기관단총을 긁었다.

기관단총에서 발사된 총알들은 놀랍게도 날아오던 마탄을 전부 맞춰 떨어뜨렸다.

초인적인 동체시력과 반사 신경이 만들어낸 신기(神技).

성진은 리 메이양이 놀라고 있는 사이 그녀의 부하들을 모두 정리해 버렸다.

이제 쉘터 안에 남은 건 그녀 하나뿐이었다.

리 메이양은 자신이 악마라 이름 붙인 남자와 마주했다.

총을 든 그녀의 손이 떨려오고 있었다.

성진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두려운가?”

“뭐, 뭐?”

“그만큼이나 되는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에 몰아넣고도 자신의 죽음은 두려운가 보지?”

밖으로 나가도 세상은 세계정부의 군인인 그녀를 심판하지 않으리라.

리 메이양은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나, 이 세상에 그녀를 벌할 시스템은 없었다.

성진은 기꺼이 그 심판을 대신하기로 했다.

“판결은…….”

죽음.

성진의 주먹이 번쩍였고, 1,201회차 극동군구의 플레이어들은 전멸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뒤늦게 쉘터에 들어온 남태수는 피범벅이 된 내부의 모습에 질색했다.

“우욱!”

리 메이양에게 분노한 건 그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런 역한 광경은 생리적으로 힘들었다.

“탑에 오르기로 선택한 이상 너도 이런 광경을 피하기만 해선 안 될 거다.”

“알아요. 안다고요. 그냥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할 뿐이에요.”

각오는 그도 했다.

그저 아직은 연습이 안 되어 있을 뿐.

“그럼 잘됐군. 좀비들은 가만히 있어도 내장 구경이 가능한 놈들이니.”

어차피 성진이 보기에 지구의 플레이어들은 전부 고만고만했다.

남태수와 함께하기로 한 이상, 능력은 키우면 된다.

“NPC가 다 죽었으니 이대로라면 일반 플레이어들의 피해가 커지겠지. 네 연습도 할 겸 남은 시간 동안 좀비를 사냥하러 간다.”

보스를 잡았다고 쉬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리하여 백화점의 악마가 스테이지 내의 좀비를 쓸어담기 시작한 지 며칠.

[스테이지 내의 남은 좀비 수: 0]

[스테이지 클리어.]

[남은 시간 15:01:58]

[퍼펙트 클리어!]

[기여도 순위]

- 52%

- 33%

-사망 3%

-사망 1%

-사망 1%

(소수점 이하의 기여도는 표기되지 않습니다.)

[기여도 보상을 추가 지급합니다.]

[스킬 포인트를 추가 지급합니다.]

[상점이 해금됩니다.]

[커뮤니티가 해금됩니다.]

[지금까지의 행보에 따라 직업이 결정됩니다!]

[대기실로 돌아가 직업을 부여받으십시오!]

1,201회차의 튜토리얼이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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