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저희를 요새까지 데려다주세요.”
[스테이지 퀘스트 - 호위를 받았습니다.]
[생존자 무리를 최소 1명 이상 거점까지 호위하십시오.]
[최소 보상: 스테이지 지도.]
몬스터가 영혼 없는 좀비뿐이라고 해서 10스테이지에 NPC가 없는 건 아니었다.
10층에 들어선 남태수는 가장 먼저 생존자 NPC를 찾아 지도 퀘스트를 받았다.
‘좋아. 이 정도면 꽤 빠르게 찾았어.’
10층의 스테이지는 일정한 규칙하에 매 회차마다 조금씩 변했다.
때문에 이전 플레이어들에게 지형을 묻는 건 의미가 없고, 이렇게 지도 퀘스트를 통해 자기 맵은 자기가 찾아야 했다.
‘이걸로 지도를 얻고, 생존자들의 거점에서 총을 얻으면 된다.’
10층에서 주는 총은 다음 층으로 넘어가면 사라지는 임시 장비였으나, 그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총은 부족한 화력을 채워줄 보조무기였으니까.
‘비상시를 제외하면 무조건 이걸로 죽여야 해.’
남태수는 손에 든 단검을 고쳐 잡았다.
[축복받은 단검]
공격력 +15
성(聖)속성 대미지
방어 무시 +2
회복 속도 증가 +15%
처치한 적이 언데드로 부활하지 않음
청약이 당첨되고 나서 남은 돈을 털어서 산 마법 단검.
옵션 자체는 특별할 것도 없었으나 중요한 것은 아이템에 달린 ‘축복받은’이라는 접두사였다.
‘이걸 10층에서 주무기로 사용하면 성기사로 전직할 수 있다.’
그 점을 제외하면 사실상 쓰레기 템이었다.
우선 단검이라 옵션이 좋아도 쓰기 힘든 무기인데, 옵션 자체도 잡템 수준에 불과했다.
그나마 처치한 적이 언데드로 부활하지 않는다는 옵션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전직용 아이템으로 쓸 거라면 10층에서 쓸 텐데, 좀비들을 상대할 때는 유용한 옵션이었으니까.
문제는 이걸 주무기로 써야 하니, 총이 있어도 쓰지 못하고 최대한 단검으로 좀비를 잡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주무기 판정을 받으려면 최소한 잡은 적의 50% 이상은 이걸로 죽여야 해.’
총으로 10마리를 잡으면 단검으로 11마리를 잡아야 한다는 뜻.
당연한 말이지만 전직 후에 찍으려고 스킬 포인트도 아껴놓은 10레벨 플레이어가 단검만으로 좀비를 잡고 다니기는 쉽지 않았다.
하물며 후반부에 좀비들이 떼거지로 몰려올 것을 생각하면 초반에 잘해놔야 했다.
“조용히 따라오세요.”
남태수는 NPC들을 데리고 천천히 이동했다.
빨리 거점으로 가겠다고 거리를 내달리면 사방에 숨어 있던 좀비들이 우르르 몰려들 게 뻔했다.
이럴 때는 급해도 천천히.
남태수는 버려진 차나 건물 안에 좀비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가며 천천히 한 블록씩 나아갔다.
“쉬잇.”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따라오던 NPC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쇼윈도 안쪽으로 멍 때리고 있는 좀비들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다간 저놈들이 유리창을 깨고 나오며 큰 소리를 내리라.
“잡고 나올 테니까 여기서 대기하세요.”
남태수는 상가 뒤편의 비상구로 돌아갔다.
평소에 직원용 통로로 사용되던 그곳은 좀비사태답게 사람들이 도주하며 열린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안쪽으로 들어섰다.
‘으윽 씨!’
안쪽의 좀비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몸을 낮추고 이동하니 바닥에 널브러진 피와 시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찐득한 피는 한번 밟으면 질척이며 소리를 냈으므로 그는 최대한 시체를 피해 바깥에서 봤던 곳까지 진입했다.
‘카운터 앞에 하나. 좌석 쪽에 둘.’
단검술이라고는 인터넷에서 동영상으로 찾아본 게 전부.
영화 속 특수부대원들처럼 조용히 처리하는 건 무리다.
‘NPC들한테 여차하면 엄호해 달라고 하고 올걸.’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단검에 주무기 판정을 받으려면 결국 좀비와 근접전을 벌이긴 해야 했으니까.
지금처럼 3마리만 떼어놓고 상대할 수 있는 상황은 흔치 않았다.
어떻게든 단검으로 이놈들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
카운터 앞에 있는 놈의 목을 단숨에 찌르고, 다른 두 놈은 소음이 흘러나가지 않게 안쪽으로 유인해 좁은 곳에서 한 놈씩 친다.
계획을 점검한 남태수는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좋아. 간다!’
살은 썩어서 물러졌지만 뼈는 단단하니 전력으로 찌르지 않으면 안 된다.
남태수는 카운터 뒤편에서 벌떡 일어나 좀비의 뒤통수를 잡고 전력으로 목을 찔렀다.
성속성 공격에, 낮게나마 방어 무시가 달려 있는 덕에 단검은 일격에 좀비의 목을 부러뜨렸다.
“어어어…….”
“우어어…….”
좌석 쪽에 있던 두 놈이 남태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남태수는 카운터를 끼고 뒷걸음질 치며 놈들을 한 명씩 상대할 수 있는 좁은 통로로 유인했다.
인벤토리에서 기본 장비로 받은 버클러를 꺼내 좀비가 내미는 손을 쳐낸다.
그 틈에 달려들어 앞에 선 놈의 목을 쑤시고 발로 차버렸다.
앞에 선 놈이 쓰러지며 뒤에 오던 좀비가 그 아래 깔린다.
깔린 좀비는 팔을 밟고 서서 머리를 내려쳤다.
앞서 찌른 놈에 의해 목이 가려졌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머리를 노린 것이었으나, 10레벨이나마 플레이어로서 얻은 육체능력에 단검의 옵션이 더해지자 좀비의 두개골이 일격에 부서졌다.
“허억, 허억.”
상처 없이 가볍게 승리하긴 했으나, 징그럽게 생긴 좀비들과 근접전을 펼쳤다는 사실 자체로 손이 떨려왔다.
남태수는 일단 물러나서 숨을 가다듬으며 주위를 경계했다.
좀비들이 쓰러지며 소음이 있었으나, 다행히 근처에 다른 놈은 없는 모양이었다.
“좋아, 잘했어 태수야. 이걸로 단검 3킬이야.”
플레이어의 직업에도 귀천이 있다.
쓰레기 직업을 선택할 경우, 어지간히 레벨이 높지 않고서야 쓸모없는 놈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었다.
‘후열의 원거리 딜러들은 편하고 안전해서 경쟁이 심해.’
특히 초창기 플레이어들은 생존을 우선하기 위해 마법사, 궁수, 총잡이 등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후열 직군은 경쟁이 심할뿐더러 마법사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들었다.
귀족처럼 지원 팍팍 받으며 클 게 아니라면 후열은 답이 없었다.
‘그리고 마검사 같은 어정쩡한 직업도 쓰레기.’
탑에서 주는 스킬 포인트는 획득처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분야에 스킬 포인트를 투자해야 하는 경우 효율이 급감했다.
혼자 다 해먹는 건 사람이 없을 때나 그렇고, 사회가 유지되고 있을 때는 자기 분야에 특화된 게 유리했다.
자기만의 경쟁력이 없으면 이도 저도 아닌 놈이 될 뿐이니까.
‘개중에서도 가장 쓰레기인 건 테이머나 사령술사 같은 천민직업!’
테이머는 탑 안에서라면 모를까, 현실로 나가면 테이밍 할 몬스터가 없었다.
또한 사령술사가 쓰레기 직업인 건 간단한 이유였다.
-우와? 웬 스켈레톤이야?
-저 뒤에 공동묘지에서 하나 만들어왔어.
-뭐 이 새끼야? 거기 우리 할머니도 묻혀 계신데?
시체를 구하는 건 둘째치고 사망한 유명인사의 시체라도 잘못 언데드로 만들었다간?
어딘가의 종친회에서 고용한 암살자와 PK를 떠야 할지도 몰랐다.
덕분에 세계정부에서 정신이나 사령 계열 스킬을 상당수 금지한 바, 사령술사가 쓸 수 있는 건 저주계열 디버프뿐이었다.
‘반면 성기사는 어디서나 유용한 탱커에 버프, 치유 스킬도 장착한 만능직업.’
파티 플레이 1티어임은 물론, 탑을 진행하는 도중 마주하는 솔로 플레이 구간도 성기사라면 안심이었다.
본인이 뭔가 천재적인 재능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성기사만 한 게 없다.
그리고 남태수는 재능이라곤 청약에 당첨되는 재능이 전부인 인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평범한 놈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자신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성기사를 해야 했다.
사냥도 힘든 이런 똥쓰레기 단검을 전직 한번 하겠다고 4,000만 원이나 주고 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단검이 아니라 창 정도만, 하다못해 장검만 되었어도…….”
남태수는 단검에 들러붙은 체액을 질색하며 좀비의 옷에 닦아냈다.
좀비와 근접전을 펼치다 보니 몸에도 놈들의 피가 튀어 있었다.
‘으으, 드러.’
마법으로 일어난 좀비들이니 전염은 안 되겠지만,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성기사 전직 한번 하겠다고 이게 무슨 고생이야.”
만일 단검이 아니라 금수저 플레이어들이 흔히 쓰는 축복받은 총이었다면?
거점에서 탄약만 왕창 사다가 차타고 돌아다니면서 좀비 사냥 투어를 다녀도 되었으리라.
플레이어들의 세계에서도 흙수저와 금수저의 차이는 명확했다.
그리고,
부아아아앙!!!
“미친?”
마침 근처에서 바로 그 투어를 하고 있던 차량이 굉음을 내며 상가 앞을 지나갔다.
‘누군 이렇게 개고생하면서 하나씩 잡고 있는데!’
순간 억울해진 남태수는 욕을 한 바가지 갈겨주고 싶었으나 그럴 때가 아니었다.
뭐 하는 새끼들인지 모르겠으나 저 소음으로 인해 주위의 좀비들이 모두 이곳으로 몰려오리라.
“튀어야 돼.”
그는 황급히 가게 앞으로 나가 대기시켜둔 NPC들을 불렀다.
이어서 황급히 도망치려는 찰나.
끼이이이익! 콰아앙!!!
방금 지나쳐 간 차량이 저 멀리서 뒤집어지며 폭발했다.
“이게 무슨?”
폭발의 화염이 가시자 그 뒤로 드러난 것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4미터짜리 해골이었다.
커다란 대낫을 들고 지면에서 조금 떨어져 부유하고 있는 해골의 로브가 폭발의 여파로 펄럭였다.
“시발.”
생존이 목표인 10스테이지.
10레벨 플레이어들이 잡으라고 넣어둔 게 아닌 괴물이 그곳에 있었다.
“튀어요!”
남태수는 곧장 NPC들과 함께 리치의 반대편, 즉 자동차가 온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쪽에는 차를 따라오던 좀비들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총 내놔!”
“드, 드리겠습니다!”
NPC의 총을 넘겨받아 탄을 장전한다.
성기사 전직?
총잡이가 되는 게 아무리 구려도 뒤지는 것보단 낫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리치의 저주……!’
적을 도망치게 하는 공포 저주의 반대판인 눈먼 분노 저주.
저주에 걸린 대상은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못했다.
‘이건 나까지 리치한테 타깃 지정을 당했단 소리잖아!’
끝장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라면 모를까 밑도 끝도 없이 보스를 마주친 지금, 남태수에게는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으아아아아!”
타다다다당!
차에 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플레이어가 수류탄을 까고 총을 난사했으나 43레벨인 리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마법사의 인챈트나 성직자의 축성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노전직 10레벨들의 사격으로는 대미지 자체가 안 박혔다.
‘차 타고 달리면서 어그로를 끈 건 저놈들인데 왜 나까지!’
최소 나흘간 진행되는 10스테이지.
여기 보스는 원래 3일 차까지 공격에 나서지 않고 숨어 다닌다.
그러니 저들도 차를 타고 몰이사냥을 다닌 것이리라.
그런데 그 보스란 놈을 마침 딱 마주칠 확률은?
그 와중에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마침 근처에 있어 함께 휘말릴 확률은?
수많은 시작지점 중 마침 이 근처에 걸리고, 그대로 인생을 마쳐버릴 확률은?
“차라리 벼락 맞아 뒤진다고 해라, 개 같은 놈들아!”
남태수는 분노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불운이 있다면 예상치 못한 행운도 있는 법.
하늘에서 리치보다 무서운 놈이 떨어졌다.
남태수는 그 순간 일어난 일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
뭔가 번쩍였고, 리치의 뼈가 조각조각 나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성진은 그의 눈앞에 있었다.
“언데드라 그런지 부숴놔도 계속 부활하는군. 잠깐 그것 좀 빌리지.”
“예?”
말을 끝까지 듣고 나서야 축복받은 단검이 성진의 손에 들려 있음을 깨달았다.
‘처치한 적이 언데드로 부활하지 않음.’
성진은 단검에 서려 있는 기운을 통해 상태창 없이도 그 옵션을 간파한 것.
크게 와인드업 한 직후, 단검을 던진다.
맨손으로 던졌을 뿐인데 전차포를 쏘는 것처럼 충격파에 공기가 밀려나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다시 모여들고 있던 리치의 뼈는 단검에 닿은 순간 분해되며 가루가 되어 터져 나갔다.
물론 단검도 함께 박살 났다.
“으악! 내, 내 단검!”
“미안하게 됐군. 내겐 필요 없는 물건이니 대신 이거라도 써라.”
성진은 리치의 잔해 속에서 사령술사의 오브를 하나 챙기고, 놈이 드롭한 대낫을 남태수에게 넘겼다.
[저주받은 사신의 대낫]
레전더리 무기 아이템
공격력 +885
암(暗)속성 대미지
방어력 무시 공격력 +85
마력 +155
마법 시전 속도 +30%
물리 저항력 +80
속성 저항력 +80
저주 저항력 +420
마력 흡수 +15%
언데드 생성 스킬 레벨 +3
언데드 강화 스킬 레벨 +3
모든 하급저주 스킬 레벨 +1
쓰러뜨린 적의 영혼을 수확하여 스스로 진화함 (0/1,000,000)
저주받음 (착용해제 불가)
눈이 돌아가는 옵션에 입을 떡 벌리고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남태수는 마지막 줄에서 생각이 정지했다.
“엥?”
대낫을 쥐고 있던 왼손을 뗀다.
이어서 오른손을 떼려 하나 대낫을 놓을 수가 없었다.
황급히 왼손으로 대낫을 잡으니 오른손을 놓을 수 있었다.
대신 왼손이 안 놓아진다.
무기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저주.
“그 정도면 사령술사 졸업무기로 삼아도 될 테니 보상은 충분하겠지.”
“예? 예?”
성진은 그 말만 남기고 떠나갔다.
남겨진 남태수는 멍하니 대낫의 옵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만한 옵션이면 사령술사 장비라고 해도 백억은 가뿐하리라.
스킬 다 빼고 깡스탯만 봐도 상당했으니까.
‘신전 가서 정화하면 저주템도 벗을 수 있어.’
어떻게든 성직자 NPC가 나오는 스테이지까지 버텨서 저주를 해제하면 된다.
“근데 이번 층은 어떻게 버티지?”
현재까지 성기사 단검으로 3킬.
앞으로 사흘 동안 싸우지 않고 2킬 이하로 버텨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하면…….
“사령술사 확정이잖아?”
남태수는 정신을 차리고 성진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자, 잠깐만요!”
리치가 쓰러졌어도 방금의 소란 때문에 주변의 좀비들이 죄다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을 터.
“같이 가요! 적어도 여길 벗어날 때까지만이라도!”
그는 NPC들과 함께 황급히 성진의 뒤를 따라나섰다.